공동체·인간

디딤돌 2012. 9. 27. 10:27

     유기농산물은 고급 상품이 아니다

 

어렵게 찾아들어간 강원도 정선의 어느 산골. 겨울철 멧돼지 사냥으로 아연 생기가 도는 곳이지만, 머지않았던 산간마을은 무척 고단한 삶을 이어갔을 것이다. 멧돼지 잡은 경력으로 가격이 정해지는 개들이 요즘 가계에 도움을 주지만, 사냥이 겨울철 부자들의 놀이가 되기 전에는 집집마다 입에 풀칠하기 버거웠다. 한 칸짜리 방에서 7남매를 키웠다는 노인도 자신이 자랄 때 무척 빈곤했다고 했다. 당시 사람과 가축의 똥은 대단히 중요한 자원이었다. 밥은 아무데서 먹어도 됐지만 똥은 반드시 집에서 해결해야 했다. 반대로 내 집에서 밥 먹더니 제 집 뒷간으로 가는 녀석이 그리 미웠다고 노인은 덧붙였다.


1900년대 초, 우리나라를 포함해 중국과 일본을 방문한 미국의 고위 관료 프랭클린 히람 킹은 미국의 황폐한 경작지와 비교되는 3국의 땅 상태를 보고 놀랐다. 농사 역사가 미천한 미국은 휴경을 해도 땅이 척박한데 동북아시아의 3국은 해마다 같은 농작물을 심는데도 어떻게 4000년 동안 풍작인 것인가. 궁금했는데, 해답은 사람의 똥에 있다는 걸 간파했다. 한데 유럽과 북중미는 예나 지금이나 사람 똥을 경작지에 뿌리는 걸 꺼린다. 사람 똥을 밭에 뿌릴 수 있도록 효과적으로 모을 체계가 없기 때문이겠지만, 가축 똥은 사용해도 사람 똥은 회피한 전통이 있다고 한다.


서울의 오랜 직장 생활을 때려치우고 농약과 화학비료에 의존하는 과수원을 인수한 초보 농부는 한 환경단체 회원들의 따뜻한 배려에 신이 났다. 식구와 손님들의 똥을 담은 외발수레를 싱글벙글 옮기다 그만 돌부리에 부딪혀 수레의 똥을 몸에 쏟으며 넘어졌지만 더럽다거나 냄새가 고약하다는 생각은 전혀 머리에 스치지 않았다고 했다. “이 아까운 똥!”하며 손바닥으로 주섬주섬 쓸어 담았다면서, 자신이 서툴게 생산한 과일을 즐겨 주문해주는 환경단체 회원 덕분이라고 누차 강조했다.


한 해 3000박스의 배를 생산하던 과수원을 유기농업으로 바꾸자 첫해 100박스에서 그쳤는데, 그나마 판로를 찾기 어려웠다. 헐값으로 가져가 저농약이라며 비싸게 파는 상인에게 실망한 그는 이듬해 친분이 있는 환경단체에 구입을 부탁했다. 그런데 거기에 실수가 있을 줄이야. 관행 과수원의 배 가격을 받고 유기농업으로 생산한 배를 추석 전에 제공하겠다고 제안하면서 50박스 비용을 선물로 받았던 건데, 추석이 다가와도 배는 익지 않는 게 아닌가. 식물성장호르몬을 바르지 않았다면 추석 전 생산이 불가능하다는 걸 진작 몰랐던 그는 환불을 제안했다. 하지만 환경단체 회원 누구도 환불을 요구하지 않았고, 오히려 더 많은 배를 주문했다. 유기농 배 생산에 이력이 붙고, 땅힘도 좋아지며, 나무도 튼실해져 지금이야 주문을 거의 맞추지만, 초보 농부 시절 저를 믿어준 환경단체 회원들을 지금도 그이는 고마워한다.


올해 한반도를 거푸 통과한 태풍은 출하 직전의 과일을 땅에 우수수 떨어뜨렸다. 떨어지며 긁히거나 상처가 생겼을지언정 과일은 크기나 맛에 이상이 없지만 상품성을 잃어 내다팔 수 없다. 농부들은 실망이 컸지만 유기농업으로 생산한 과일은 사정이 달랐다. 정상으로 수확한 과일보다 가격이 낮기도 했지만 많은 소비자들이 흔쾌히 구입해서 예상 외로 금방 동이 날 정도였다. 반면 관행농업으로 생산한 과일은 수확 전에 떨어지면 즉각 가치를 잃는다. 음료수용으로 대기업에 처분하겠지만 수입은 기대하기 어렵다. 반면 유기농으로 생산한 과즙도 제값을 받는다.


잊을만하면 유기농산물이나 관행농산물이 실질적으로 큰 차이가 없다는 주장이 나온다. 그 출처는 굳이 살피지 않았어도 짐작은 가능한데, 그들의 주장에 근거가 없다고 단정할 수 없을 것이다. 이른바 허용기준치를 비교하니 그렇다는 주장인데, 맛과 향, 영양분이나 검출되는 농약 성분은 무시해도 좋을 정도이므로 비싼 유기농산물을 구하기보다 저렴한 관행농산물을 구입하는 것이 가계에 도움이 된다고 소비자에게 강조한다. 소비자보다 생산자의 입김에 의해 들쭉날쭉해지는 허용기준치를 근거로 내세우다니, 다분히 의도적이다.


그 연구 결과는 사람만 대상으로 했다. 그러다보니 유기농산물을 부자들이 먹는 비싼 상품으로 취급하는 실례를 범하고 말았다. 유기농산물은 사람 뿐 아니라 생태계의 건강을 살피며 그 관계를 유기적으로 연결한다는 생각은 아예 하지 않았다. 그를 위해 애쓰는 농부의 노고 따위는 염두에 두지 않았다. 돈이 많아서 비싼 유기농산물을 사먹는 게 아니라, 땅을 살리고 생태계를 살리며 후손의 내일을 살리는 농사를 짓느라 고생하는 농부들을 지원하기 위한 비용이라는 사실을 연구자들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들어가는 비용이 숨겨져서 그렇지, 유기농산물은 관행농산물에 비해 실제 가격은 오히려 저렴하다. 화학비료와 농약으로 가공하는 석유 자원에 음으로 양으로 들어가는 정부의 보조금, 관행농업에 대한 정부의 지원금, 농기계 구입 지원금이 관행농산물에 포함되지 않았지 않은가.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농약으로 인한 농민과 소비자의 건강 피해, 그리고 토양과 수질오염으로 인한 생태계 교란은 관행농산물의 원가에 포함되지 않았다. 관행농산물과 그런 농산물을 가공한 식품을 지속적으로 먹어 생긴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들어가는 비용까지 생각한다면 유기농산물이 훨씬 저렴하다는 걸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뿐인가. 유기농산물은 석유 소비를 최소화하므로 지구온난화를 그만큼 막는다. 그에 상응하는 비용을 생각해보라.


     유기농산물은 사람과 사람, 사람과 생태계, 생태계와 생태계를 유기적으로 이어주면서 거기에 참여하는 농부, 그런 농산물을 믿음으로 구입해서 먹는 소비자의 영성을 끌어올린다. 되도록 지역에서 생산해 지역에서 소비하면서 이웃은 돈독해진다. 삶을 지역에 뿌리내리게 하여 관계를 따뜻하게 만든다. 돈으로 따질 수 없는 가치가 포함되는 셈이다. 그런 유기농산물을 생산자와 소비자가 신뢰로 만나 교환할 수 있도록 생활협동조합은 돕는다. 그러므로 유기농산물은 부자들의 호사를 위한 고급 상품이 아니다. 땅과 생태계와 내일의 건강을 위한 가장 책임감 있는 농산물이다. 소비자가 아니라 소비자 조합원은 유기농산물을 흔쾌히 구입해 생산자 조합원을 돕는 것이다. (지금여기, 2012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