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동물

디딤돌 2009. 6. 5. 01:21

 

합의 현장에 있던 처지에서, 참으로 허망하다. 정부기관에 대한 불신은 이제 시대상이 되는 건가. 2005년 7월 6일, 산림청 산하 국립수목원과 ‘광릉숲 보존을 위한 환경단체 연대회의’는 어렵게 끌어온 논란을 마치고 ‘광릉숲 내 국립수목원 유리온실 건립 현안에 대한 민ㆍ관 협의회 합의문’을 작성한 바 있다. 하필 체계적 보전이 요청되는 광릉숲에 세계 최대 규모의 유리온실을 건설하겠다기에 녹색연합, 우이령 보존회, 풀꽃세상을 위한 모임, 그리고 환경정의가 연대해서 그 부당성을 지적했고, 오랜 논란 끝에 대안을 합의했건만 환경단체들은 결국 배신당할 모양이다.

 

수목원 측은 훼손된 조림지에 유리온실을 짓겠다고 생색을 했지만 우리나라에서 거의 마지막으로 보전된 생태유산인 광릉숲은 열대식물 관람을 위한 유리온실의 대상지일 수 없었다. 더구나 인근 도시들의 개발 압력으로 안정성이 위협받는 생태계일 뿐 아니라 관통도로를 질주하는 대형 차량으로 거대한 전나무들이 죽어가지 않던가. 그런 판국에 광릉숲 보전을 연구하겠다던 국립수목원에서 숲을 항구적으로 훼손하는 유리온실을 광릉숲 복판에 지어 토종도 아닌 식물을 수집해 전시하겠다니, 도저히 방관할 수 없었다.

 

환경단체들은 생물종 다양성 확보를 위해 열대식물을 수집, 보관, 연구하는 온실의 필요성을 부정한 게 아니었다. 그런 온실을 교육에 활용하는 걸 환영하면서 광릉숲 이외 지역에 유리온실을 신축하자고 제안했고, 논의 끝에 대안을 합의한 것이다. 열대식물 유전자원과 관계될 유리온실은 교육 효과가 높은 지역에 국제 규모로 신축하고 문제의 터에는 1600여 제곱미터로 자생 식물을 연구할 유리온실을 짓돼 일반인의 관람은 제한하기로 했다. 또한 지속적으로 수집하는 열대식물 유전자원의 보관과 연구를 위해 국제 규모의 유리온실이 완공되기 전까지 광릉숲의 유리온실에 한시적으로 보관하는 건 동의했다.

 

주요 일간지에 보도된 내용은 국립수목원에 대한 신뢰를 되묻게 했다. 산림청장을 비롯해 200여명이 참석한 3834제곱미터의 ‘열대식물자원 연구센터’ 개원식에서 “내년 하반기부터 일반인들에게 유리온실의 관람을 허용하겠다!”고 천명했다는 게 아닌가. 머리 좋은 박사들이 시대를 영특하게 반영했는지, “광릉숲의 역사ㆍ문화적 가치를 존중하여 생태계 보전을 위한 실천계획의 수립을 공동으로 추진한다.”는 약속은 시행하지 않고 3년이 지나도록 새로운 유리온실의 부지도 찾지 않더니, 합의와 달리 면적을 2배 이상 넓힌 유리온실을 관람용으로 개방하려는 태도를 느닷없이 연출한 거다.

 

일반인의 잦은 방문은 연구에 방해될 뿐 아니라 광릉숲의 보전에 역행한다는 걸 동의했던 국립수목원은 언론 앞에서 자신에 대한 신뢰를 스스로 그것도 공개적으로 허물었다. 이제 광릉숲만 위기를 맞은 게 아니다. 시민들은 정부 연구기관조차 신뢰할 수 없게 되고 말았다. (경향신문, 2009.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