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14. 7. 22. 13:59


태양의 도시라고 말하는 독일 남부의 프라이부르크는 시민들의 힘겨운 투쟁으로 핵발전소 건설을 막은 도시로 유명하다. 날씨가 우중충한 유럽의 많은 도시와 달리 햇빛이 많은 까닭에 태양광 발전을 지붕마다 적극 도입해 핵발전소를 무색하게 만든 프라이부르크는 주변에 농촌지역이 넓다. 그곳에서 생산하는 포도는 달콤한 화이트와인으로 발효되고 풍성한 목초지는 신선한 우유와 더불어 바이오 에너지를 생산해 낸다. 젖소의 배설물이 에너지가 되고 남는 찌꺼기는 목초의 유기질 비료가 되는 순환을 멋지게 보여준다.


에너지를 자립하는 주변의 유기농단지 뿐 아니라 도심에서 멀지 않은 트라이잠 강가에 시민을 위한 텃밭이 길게 이어지는 프라이부르크는 한 복판에 성당이 자리잡고 있다. 뮌스터 성당이다. 유럽의 유서 깊은 도시가 대부분이 그렇듯, 성당은 광장을 넓게 차지한다. 광장 복판에 분수가 물을 흘리고 광장 주변은 고풍스런 건물이 둘러싸고 있는 점 또한 같다. 예전 관청이었을 텐데 지금은 관광객들이 찾는 찻집이나 식당, 그리고 기념품점들이다. 프라이부르크의 뮌스터 성당은 주말마다 색다른 광장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주말이면 뮌스터 성당의 마당은 프라이부르크 농민의 직거래 장터가 선다. 유기농으로 재배한 농산물과 과일은 물론이고 우유와 낙농제품, 그리고 고기와 소시지들도 판매하지만 집안과 정원을 장식할 형형색색의 물건들이 광장을 나온 시민들을 유혹한다. 그 광장에서 작은 공간을 나눈 시민들의 좌판도 흥미롭다. 텃밭에서 생산한 과일이나 농산물을 앙증맞게 내놓고 팔다 다른 농부의 좌판을 기웃거리는 광장의 주역들이다. 외국인도 반갑게 맞는 지역 농업 축제의 광장이 프라이부르크 시민들의 자부심으로 보였다.


분수가 있는 유럽의 많은 광장에 그 지역이 기리는 인물의 동상이 멋지게 서 있곤 하지만 자동차는 보이지 않는다. 물론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수시로 벌어지는 연주회와 전시, 그리도 다양한 행사를 위한 물건을 가져왔다 가지고 가는 차량이 조심스레 드나들지만 광장을 찾은 시민들의 북적임과 흐름을 전혀 방해하지 않는다. 프라이부르크의 주말 직거래 장터도 마찬가지다. 장터 시작 전에 물건을 내려놓고 사라졌다 파할 때 나타날 뿐이다. 많은 도시들은 주말이면 간선도로에서 자동차의 통행을 막아 주말이면 광장을 만들기도 한다. 차를 없앤 도로는 시민들이 모여드는 광장이 된다.


골목길을 물이 없는 지역에 흐르는 개울과 같다고 표현한 환경단체 풀꽃세상을 위한 모임1999년 말 인사동 골목길에 풀꽃상을 드렸다. 자연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자연물에 상을 주는 게 아니라 드리는 행동을 하는 그 단체는 발걸음에 여유를 주고 시간의 깊이를 느끼게 하준인사동 골목길을 그렇게 기린 것이다. 꼭 인사동일 필요는 없다. 골목길에 자동차가 다니지 않는다면 어디나 광장이 된다. 분필로 금을 그으면 놀이터가 되고 돗자리를 깔면 이야기 마당이 되었는데, 이젠 아련해지고 말았다.


광장을 두려워한 정권이 물러섰건만 우리네 도시에 광장은 여전히 드물다. 땅값을 따지는 사람들이 높고 넓은 건물로 광장을 독차지했고 우리는 그 안에서 길을 잃는다. 대형 쇼핑센터에 오랜 터를 내준 역 광장들이 대개 그렇다. 현란한 조명 아래 어깨를 부딪치며 걷는 사람들은 서로 모른다. 늘어놓은 물건을 피해 다녀야 하는 실내공간은 최저임금으로 혹사당하는 알바들의 건조한 인사가 난무하고 방범카메라들이 사방에서 번뜩일 뿐이다. 미세먼지와 유기화학물질이 냉방기 바람에 뒤섞이는 철근콘크리트 공간 안에서 군중은 고독하다.


땅값 때문일까? 건물을 임대한 교회가 없는 건 아니지만, 역사를 지녔다면 교회에 좁든 마당이 있고 마당은 골목과 이어져 있다. 미사나 예배를 마친 신자들이 반가운 소식을 전하며 신도가 생산한 농작물을 나누기도 하는 마당은 아쉽게 폐쇄된 공간이다. 신자가 아니라도 들어갈 수 있지만 흔쾌하지 않다. 신도들의 자동차로 북새통을 이루는 골목은 이웃의 통행을 방해한다. 미사나 예배가 없는 시간의 교회 마당은 자동차가 꼬리를 무는 골목과 단절을 선언한다. 안팎이 고독하다.


골목을 걷는 사람도 호기심 어린 얼굴로 찾아와 반갑게 만나는 광장으로 우리 교회의 마당이 거듭날 방법은 없을까. 철문과 담장을 헐어낸다면 사람들이 들어서기 편하다. 요일과 시간을 정해 유기농업을 하는 농부가 신선한 농산물을 판매한다면 마당을 찾은 신자는 물론 동네 주민들도 반가울 것이다. 동네 공방에서 만든 예쁘고 실용적인 장식품이나 교환할 옷가지를 내놓아도 마당은 광장으로 변할 것이다. 때때로 좋은 책을 쓴 저자와 만나는 시간을 만들면 주민들도 귀를 기울일 텐데.


교회의 마당이 광장이 되면 주차장으로 변한 골목에서 꼬리를 무는 자동차도 줄어들거나 사라지게 만들 수 있다. 신자들부터 자동차를 외면한다면 주민들도 새로운 주차장을 찾아 나서거나 운행을 자제할 것이다. 이웃을 반갑게 만나는 광장을 위험하게 방치할 수 없지 않은가. 그런 골목과 광장에서 범죄는 자취를 감추겠지. 맘 따뜻한 신자도 늘어날 텐데. (야곱의우물, 2014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