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일반·개발

디딤돌 2017. 2. 17. 00:44


그럭저럭 올겨울도 무탈하게 지나가려나 보다. 겨울이 오기 전, 북극해 얼음이 완전하지 않을 거라는 예보가 있었기에 지레 겁을 먹었다. 냉기를 가두는 제트기류가 약하면 북극해가 단단하지 않게 되고, 북극권의 냉기가 아래 내려가 우리나라와 같은 위도의 국가들에 혹한이 몰릴 거로 기상 전문가들이 예상하지 않았던가. 실제 3년 전 경험이 그랬다. 꼭 다행이라 여길 건 아니지만, 올겨울은 견디기 어려울 정도는 아니었다. 기상이변은 계절이 따로 없는데, 앞으로는 어떨지?


재난영화를 즐기지 않지만 영화 투모로우는 텔레비전으로 개봉 한참 뒤에 보았다. 혹독한 추위가 한바탕 지나자 빙하로 둘러싸인 건물마다 살아남은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던 장면이 인상적이었는데, 안타까운 내용도 있었다. 추위를 막을 연료가 바닥난 상황에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던 과학자들이 의연한 장면이었는데, 영화 속의 그들은 견디지 못하고 희생되었을 것이다. 그들은 살려줄 구명선에 연료가 충분하지 않았던 거다.


선의의 희생자가 반드시 필요한 재난영화에서 판도라해운대도 예외가 아닐 텐데, 친구를 섭외하지 못해 여태 볼 기회가 없었다. 하지만 스포일러 덕분에 내용은 짐작한다. 두 영화에서 대규모 탈출 장면이 나오는지 알지 못하는데, 2004년 남아시아 지진에 이은 쓰나미, 그리고 2011년 동일본 대지진에서 보듯, 거대한 파고가 평지로 몰려오면 아무리 빠른 자동차도 안전지대로 달아나기 어려울 것이다. 먼저 달아나려는 차량들로 엉키면 살아남을 희망은 사라진다.


핵발전소가 폭발한다면 반경 30킬로미터 이내의 사람이 가장 먼저 할 일은? 우리나라에서 탈핵운동의 최전선에서 애를 쓰는 김익중 선생이 제시하는 정답은 달아나라!”는 것이지만, 현실은 달아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방법도 장소도 없다는 것이다. 핵발전소가 폭발하면 개인 자동차는 운행이 제한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안전 공간으로 한동안 대피해야할 텐데, 우리 핵발전소 주변에 그런 시설은 없다. 개인이든 공공이든 핵발전소 폭발에 대비하는 구명선이 아예 없다는 거다. 구명선은 인천에 필요 없을까?


영화 판도라의 무대인 부산 고리에서 400킬로미터 이상 떨어졌고 한빛으로 이름을 바꾼 영광핵발전소에서 200킬로미터 정도 떨어졌으니 인천시민이라 해서 안심해도 좋은 건 아니다. 두 곳의 핵발전소에서 사소하지 않은 사고가 빈발하거나 사고 위험으로 연결될 수 있는 부정부패와 직무유기가 만연되었기 때문만이 아니다. 폭발사고가 발생한지 6년이 넘은 후쿠시마 핵발전소 지역에서 퍼진 핵물질은 이미 태평양을 폭넓게 오염시켰고 우리 동해와 황해도 예외가 아니지 않은가.


미국 전문가는 서해안에서 잡히는 참치를 주의하라고 자국민에게 당부했다고 한다. 먹이사슬이 거듭될수록 방사능은 기하급수로 누적되기 때문이라고 했다.1986년 구소련의 체르노빌 핵발전소는 8000킬로미터 떨어진 일본에 낙진을 떨어뜨렸다. 인천도 안심할 처지가 아닌데 중국 동해안, 다시 말해 우리 서해안을 바라보는 곳에 핵발전소가 밀집돼 있다. 아직 설비가 젊지만 머지않아 낡을 것인데, 중국에 핵발전소를 감시하는 시민단체는 없다. 감시가 느슨하면 사고는 가까워진다. 문제는 확산이 어려운 황해는 독극물이 될 거라는 점이다.


불확실성을 키우는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미국에서 개인 구명선 열기가 뜨겁다는 보도가 나왔다. 전쟁으로 핵무기가 폭발해도 가족과 이웃이 안전해질 때까지 피신할 공간이 만들어지고 성황리에 판매된다는 건데, 그런 구명선에 들어갈 자격을 갖춘 부자들은 만일의 사고 이후에 살아남겠지만, 살갑게 지내던 친지들이 보이지 않는 만큼 그리 행복할 거 같지 않다. 황폐된 생태계 앞에서 황망할 텐데, 먹고살 길도 막막하겠지.


핵발전소나 핵무기 폭발처럼 당장 눈에 띄는 무지막지한 사고만이 아니다. 서서히 뜨거워지는 물속의 개구리에게 빠져나갈 기회조차 없듯, 미세먼지나 기후변화와 같은 사고는 피할 겨를을 앗아간다. 초미세먼지를 다량 배출하는 화력발전소가 밀집된 인천이 특히 그렇다. 발전소에서 배출하는 온배수는 앞바다의 수온을 상승시킨다. 세계 평균 기온 상승보다 두 배 가까이 높은 우리나라에서 인천은 그 정도가 더할 것이다. 태풍과 높은 파고에 대비해야 할 텐데, 인천시가 구명선을 준비한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


하지만 거대한 인큐베이터와 같은 공공 구명선이라 해도 한계가 있다. 핵무기든 핵발전소든 폭발 뒤 남은 현장의 참혹함이 위로를 줄 리 없다. 폭발 이후에도 오염 위험성이 말끔하게 사라지지 않는다. 화력발전소가 주도할 지구온난화와 미세먼지도 마찬가지다. 며칠 목숨을 더 연장하는 것이 행복을 보장할 리 없다면 근원적 구명선을 준비해야 한다. 기술과 관리의 강화로 핵발전소의 폭발 위험을 없애기보다 핵발전소를 없애는 것이 중요하듯, 지구온난화와 미세먼지를 사라지게 할 대안행동을 근원에서 모색하고 실천해야 한다.


같이 자리해준 친구 덕분에 나 다니엘 브레이크를 보았다. 과연 황금종려상을 수상할 만한 작품이라는 걸 느끼게 한 켄 로치였다. 그는 영화라는 언어로 복지의 민영화 문제와 기본소득의 당위성을 절실하게 알렸다. 켄 로치 감독이 사는 영국이나 우리나, 아니 전 세계가 마찬가지겠지만, 일할 능력과 의지가 있어도 단지 돈이 없다는 이유로 굶주려야 하는 사회가 되었다. 불합리하다. 이런 사회에서 돈은 공기나 물과 같은 존재인데, 기본소득은 구명선이 된다. 그렇다면 환경위기가 코앞으로 다가온 지금, 자식의 행복을 원하는 우리는 어떤 구명선을 준비해야할까? (인천in, 2017.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