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인천

디딤돌 2009. 2. 20. 12:02

 

지난 해 겨울, 이경해 열사의 자결장소로 세계 농업운동가에게 알려진 멕시코 유카탄반도의 세계적인 휴양도시 칸쿤을 다녀왔다. 부서진 산호가 만든 새하얀 모래를 투명하게 드러내는 카리브 바닷물, 그 바다와 눈부시게 어우러지는 코발트 빛 하늘에는 보트가 끌어올린 패러글라이더가 두둥실 떠있고, 세계 최고 수준의 유명 호텔이 총집결한 호텔존에는 미국과 유럽에서 한겨울을 피해 찾아온 형형색색의 관광객들이 북적이고 있었다.

 

지난 10여 년 동안 부동산 가격이 치솟은 칸쿤은 과연 흥청거렸다. 늘어나는 관광객을 수용하려고 바다를 바라보는 호텔존에 화려한 호텔의 신축과 증개축이 한창이고 호텔 부지를 늘리기 위해 인근 숲의 나무가 연실 제거되고 있었는데, 공항에서 이어지는 길을 장식한 야자 가로수는 키가 유난히 작았다. 2005년 허리케인 윌마가 칸쿤 일원을 삼킨 이후 새로 심은 까닭이었다.

 

시속 230킬로미터로 강타한 허리케인 윌마는 3미터가 넘는 너울 파도로 호텔존을 덮쳤다. 세운 지 그리 오래지 않은 호텔이 증개축되는 것은 윌마의 공격에 맥없이 무너졌기 때문인데, 피해는 호텔존 거의 전역에 해당될 정도였다. 윌마의 순간속도가 그만큼 강했기 때문만이 아니다. 너울이 최신 호텔의 기반인 모래를 쓸어냈기 때문인데, 너울이 크고 높아진 건 지구온난화에 이유가 있었다.

 

해마다 동해안에 피해 범위를 넓히는 너울이라는 존재의 성격은 해안에서 부서지는 파고와 다르다. 먼 바다에서 받은 에너지가 중첩된 너울은 소리도 없이 다가와 바닷가 시설물을 순식간에 휩쓸어버린다. 더 화려한 호텔로 해안을 장식하자마자 닥친 2007년 허리케인 딘에 크게 놀란 칸쿤은 불안하기 짝이 없다. 거액을 들여 모래를 퍼올린 호텔존 앞 백사장도 너울이 깎아낸 흔적이 완연한데, 앞으로 윌마 이상의 너울이 다가오지 않을 보장이 없고, 대피 이외에 피해를 예방할 수단도 없기 때문이다.

 

지구온난화가 더욱 거세지는 현상과 관계없이 오늘도 휘황찬란한 칸쿤은 불황에도 찾아주는 부자들 덕분에 유지되는 건 아니다. 멕시코 땅의 선주민, 다시 말해 가난한 마야 후예의 노동력이 있기에 다른 휴양지에 비해 경쟁력을 갖는다. 누추하지만 언제나 웃는 가난한 노동자의 희생이 없이 유지할 수 없는 지역은 칸쿤에 한정되지 않는다. 세계 최고의 경기장에서 17일 동안 개최된 화려한 축전을 세계만방에 과시했던 북경올림픽도 ‘농민공’이라 칭한 가난한 노동자 덕분이었다.

 

걸핏하면 우리의 모델이라 떠받들었던 두바이가 흔들린다는 외신이 들린다. 최근 영국의 경제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는 두바이의 국가채무가 채무불이행 위기에 있는 아일랜드와 비슷한 수준의 부도위험에 처해 있다고 보도했다. 두바이의 상징으로 과시된 야자수 모양 인공섬의 부동산 가격이 지난해 9월 이후 이미 40퍼센트 곤두박질친 마당에 주택담보로 부동산을 구입한 계약자까지 중도금을 제 때 상환하지 못할 경우 애초 100만 명 이상을 기대했던 두바이는 주택 30퍼센트가 텅 빈 유령 도시로 전락할 것이라 예측한다.

 

두바이에 사무실을 둔 기업의 잇단 해고로 본국으로 돌아가는 외국인이 늘어나면서 벌어진 경제한파의 공급과잉 현상으로 부동산 전문가는 분석하지만, 그동안 두바이가 유지된 것도 아시아에서 파견된 저임금의 노동력 덕분이었다는 점을 잊으면 안 된다. 경제가 다시 호전돼도 가난한 이에 대한 착취가 선행되지 않는다면 두바이는 다시 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인데, 석유 자원도 없는 우리가 두바이를 흉내내야 할까. 막대한 에너지를 소비하지 않으면 번듯함을 과시할 수 없는 두바이를 송도신도시가 뒤따라야 할까.

 

지구온난화를 촉발하고 심화시킨 석유의 신기루에 불과한 두바이는 경제위기를 맞자 그 본질인 사상누각이 드러나고 말았다. 경제가 다시 호황을 찾으면 잠시 번쩍일 수 있어도 석유위기가 가속되고 지구온난화가 심화되면 이내 침체의 늪에 빠지고 말 것이다. 두바이는 극복의 대상이지 맹목적으로 좇아야 할 신기루가 아니다. 신기루에 정신을 빼앗긴 자의 앞날은 비참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인천e뉴스, 2009년 2월 두 번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