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생명공학

디딤돌 2009. 2. 11. 19:22

 

지난 1월 15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이충렬 감독의 <워낭소리>는 상영한지 19일이 지나 관객 10만 명을 넘어서더니 25일 만에 30만 명을 돌파해 영화인 스스로 놀라고 있다는 소식이다. 극장가에서 조심스레 100만 관객을 점친다는데, 규모가 작은 개봉관 7군데에서 시작한 독립영화가 입소문을 타더니 상영관수를 10배 이상 확대하며 관객을 끌어들이는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그 방면에 문외한이라 분석할 능력이 없는데, 영화를 본 이웃은 속도와 경쟁에 치어 삭막해진 가슴에 뭔가 울컥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고 소감을 전한다.

 

늙어 빠진 소와 그 소를 마지막까지 지켜주는 8순의 노인의 정과 배려를 담아낸 아름다운 영상을 바라보다 눈가가 촉촉해진 도시인들도 고향의 아련한 정취를 기억한다. 고물상도 외면할 트랜지스터라디오처럼 바싹 늙어버린 그들은 요즘의 도시 사람들과 달리 돈 앞에 영악하지 않았다. 늙은 소의 상주가 되겠다는 아버지에게 40년을 함께 지낸 소를 팔아치우라는 노인의 자식들은 시골을 떠나 산다. 자식들의 성화에 마지못해 우시장으로 간 노인은 500만원을 불렀고, 10만원이라도 팔 수 없을 거라며 손사래치는 소장수를 뒤로 노인은 자기처럼 절뚝거리는 소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온 뒤, 마지막 숨을 편히 쉬도록 코뚜레와 워낭을 풀어주었다.

 

노인이 땅에 묻기 귀찮다고 10만 원에 흥정해 늙은 소를 팔아넘기고 고급 라디오 하나 장만했다면, 구름 같은 관객은커녕 개봉관 찾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남은 숨을 몰아쉬며 노인을 위해 숙명과 같은 역할을 다한 늙은 소는 노인에 의해 자기 생명의 존엄을 마지막까지 지킬 수 있었다. 그래서 늙은 소도 노인도 관객에게 크게 다가왔을 것이다. 젊고 튼튼한 소를 새로 들여놓았어도 늙은 소를 끝까지 보듬은 노인은 소를 인간 편의로 상찬하는 이른바 ‘아낌없이 주는 존재’로 취급하지 않았다. 고기와 가죽이 아닌, 천수를 누려야 할 생명으로 여겼다. 광우병을 일으킨 오늘날의 축산자본과 달라도 한참 달랐다.

 

1990년 4월, 로스앤젤레스 근교에 사는 메리 아얄라는 40을 훌쩍 넘긴 나이에 막내 딸 멜리사를 낳았다. 출산 전 진단을 받은 메리는 배속의 아기가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아니사와 골수조직의 형질이 맞는다는 걸 알았다. 맞지 않았다면 낙태하고 아기를 다시 임신하려했다. 멜리사의 언니 아니사는 골수성백혈병이었다. 부모와 형제의 골수가 모두 맞지 않아 친지에서 물색했지만 소용없었다. 2년 동안 전국을 백방으로 뒤져도 이식할 수 있는 골수 가진 이를 만날 수 없었던 아니사의 부모는 최후의 수단을 모색하기로 했다. 수술한 지 10년이 넘은 정관을 복원한 45세의 아버지와 아이 낳기 부담스러운 42세의 엄마는 추가 임신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정관을 다시 잇는다고 임신이 가능할 만큼 정자가 생산될지 확신이 서지 않았고, 다시 가진 아이의 골수가 아니사와 맞을 확률은 25퍼센트에 불과했으며, 골수가 맞는다 해도 아니사가 치유될 확률은 70퍼센트에 지나지 않았지만, 천만다행으로 부부는 멜리사를 잉태했고, 생후 14개월이 된 멜리사의 척추에 주사바늘을 넣은 의료진은 아니사에 골수를 이식할 수 있었다. 1996년 멜리사가 6살이 되었을 때 마침내 해피엔딩을 만들어낸 아얄라 가족을 미국의 CNN은 주목했지만, 그 소식을 들은 이 모두 흔쾌해한 건 아니었다. 시간과 비용을 둘째 치고, 권장할만한 처방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실패가 두려워서가 아니었다. 치료를 위한 ‘도구’로 사용하기 위해 생명을 잉태한 게 아닌가.

 

과문한 탓에 아얄라 가족과 같은 사례가 더 발생했는지 여부는 알지 못한다. 만일 앞뒤 가리지 않는 국가와 자본이 연구비를 충분히 제공한 덕택에 맞춤형 배아복제줄기세포 기술이 확립되고, 그 줄기세포로 안정적인 골수조직을 적절하게 확보할 수 있는 세상이 도래한다면 아얄라 가족과 같은 해피엔딩은 재현될 필요가 없을 것인가. 말로야 참으로 간단하지만, 그 가정이 이루어진다면 줄기세포가 약속하는 치료의 범위는 아니사와 같은 불치병이나 난치병 환자의 치료에서 머물러 있으려하지 않을 것이다. 생명공학이 수백억 달러에서 수백조 달러의 부가가치 창출을 장담하는 한,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과 패권을 노리는 권력이 줄기세포 치료에 적용하려는 분야는 가당치 않게 늘어날 것이다. 치료의 범위를 얼마든지 확장할 수 있으므로.

 

지하철 출입문 가까이에 부착된 ‘미고성형외과’ 광고는 “1000번 고민하고 1001번째 미고에서 했다!”며 승객들을 유혹한다. 그 성형외과의 이름은 한자로 ‘美高’일 테지. 광고에 등장하는 모델의 미모 수준은 과연 높아 보인다. 미고라, 그 용례가 한문의 어법에 맞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그 성형외과 원장은 미의 개념을 어떻게 정리하고 있을까. 의학도 시절, 어렵다는 미학을 남 못지않게 공부했을까. 외모가 근사한 젊은이를 염두에 두는 거라면 광고를 보고 병원 문을 노크하는 남녀노소는 고객인가 환자인가. 가끔 텔레비전에 비치는 성형외과 의사는 제 병원을 찾은 이를 환자라고 칭한다. 환자란 정상에서 벗어나 치료를 요하는 대상일 텐데, 성형외과 의사는 상담하려는 환자에게 어떤 모습을 ‘정상’으로 제시할까.

 

여성지 표지를 장식하는 “당신의 아들을 193센티미터로!” 광고는 딸은 170로 키워주겠단다. 성장판이 열렸는지 확인한 다음 성장호르몬을 처방하라는 유혹인데, 그 광고는 193센티미터와 170센티미터 이하의 아들과 딸은 치료가 필요한 환자라고 규정한다. 일찍이 성장호르몬을 개발하지 않았다면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치료가 아닐 수 없다. 10여 년 전, ‘인도주의실천 의사협의회’ 소속 의사들은 여성호르몬 처방을 남용하는 미국 의사들의 태도를 개탄했는데, 요즘 우리나라는 만연돼 있다. 주사하자마자 “용한 의사”가 되어 환자가 밀어닥치는데, 어찌 자기만 의연해할 수 있겠는가. 성호르몬이 개발되지 않았다면 있을 수 없는 현상이다.

 

고혈압의 기준이 낮아진 이후 제약회사들의 수익은 급증했다. 주가도 솟구쳐 올랐다. 키가 작으면 질병인가. 성장호르몬을 개발한 회사는 키가 작다는 이유로 차별과 서러움을 받은 사람과 키가 큰 것 말고 특별할 게 없지만 승승장구한 이를 비교하며 그렇다고 주장한다. 그런 자료는 전문가들이 작성했을 텐데, 연구비는 보통 제약회사가 제공한다. 성장호르몬은 발육이 현저하게 왜소한 이른바 ‘난쟁이’에게 사용하기 위해 미국의 정부보조금을 받고 개발했지만 제약회사는 판매고를 높이고 싶었고 연구비를 제공했다. 그러자 전문가들은 100명 중 3퍼센트에 미치지 못하면 ‘저성장증후군’으로 규정하며 화답했고, 우리 여성지에 안내될 정도로 치료 대상이 확대된 것이다. 성장호르몬과 성호르몬은 생명공학 기술이 만들었다. 물론 남용을 위해 개발한 건 아니라고 강변할 테지.

 

지난 2월 5일, 차병원에서 신청한 연구를 심의한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는 “특별한 법적 하자가 없”지만 과도한 기대나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연구제목을 변경을 비롯한 몇 가지 사항을 요구하면서 재심의를 결의했다고 언론이 일제히 보도했다. 차병원의 정확한 연구계획의 제목은 <파킨슨병, 뇌졸중, 척수손상, 당뇨병, 심근경색 및 근골격형성 이상을 치료하기 위한 면역적합성 인간체세포 복제배아줄기세포의 확립과 세포치료제 개발>이다.

 

한 언론은 황우석 박사가 시도한 방식과 동일한 그 연구가 승인된다면 “인간 난자의 무분별한 사용, 인간복제의 가능성 등을 둘러싸고 엄청난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우려했지만 이번 재심의는 다음에 승인하려는 수순밟기에 지나지 않을 것으로 생명공학계는 전망한다. 문제는 공부하지 않은 언론의 호들갑이다. 체세포핵이식을 통한 배아복제만이 차병원에서 가능성을 타진하려는 여러 가지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아직도 생각하는 언론이라면, 어지간히 공부를 하지 않았다고 단정해도 좋을 듯하다. 연구비 자체가 탐이 난다면 모를까, 굳이 생명을 복제한 후 희생시키는 연구는 더는 필요하지 않다는 점, 수년 전부터 그리 강조되었건만 벌써 잊었다는 건가.

 

한 언론은 “우리나라가 윤리적, 규제적 역풍을 맞는 사이 선진국들은 오히려 관련 연구를 더욱 독려”한다고 주장하지만, 근거는 명확하지 않다. 언론이 지적한 영국은 논란이 뜨거운 전문가 집단을 제외하더라도, 의회 역시 반대가 만만치 않다는 점을 몰랐던 걸까. 미국 오바마 정권이 당장 연구를 지원할 듯 주장하지만 그리 녹록치 않다. 체세포핵이식보다 실용가능성이 훨씬 높고 안전하며 안정적인 성체줄기세포 연구가 있는데 제 정신을 가진 연구자들이 왜 시대착오적인 연구에 매진하려 할 것인가. 미국의 정부에 사리분별이 있다면 성과가 부정적인 연구를 위해 거액의 연구비를 책정하지 않을 것이다. 어떤 교수는 우리가 주춤하고 있는 사이에 앞다투어 경쟁하는 국가의 목록으로 호주와 중국을 추가했지만 근거를 대지 못할 뿐 아니라 그 이외의 나라가 더 있는지 밝히지 못한다. 당연하다. 대부분의 나라는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관심을 껐다. 배아가 아니라 환자의 성체줄기세포를 활용하는 연구에 사활을 건다. 해외 연구추이에 촉각을 세우는 연구자라면 그런 글을 감히 발표하지 않았을 것이다.

 

배아연구 재개를 요구하는 언론의 특징은 배아로 창출할 줄기세포가 ‘성장동력’이 될 거라는 기대다. 결국 돈벌이에 활용하자는 취지인데,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결정 이후 줄기세포 관련 주가가 춤을 춘 우리 사회에서 “복제 줄기세포를 여러 장기 세포로 분화시킬 수 있다면 병들거나 손상된 장기를 기계부품처럼 바꿔 끼우는 게 가능하다”고 언급한 유력 신문의 사설은 어처구니가 없다. 내용 자체도 틀렸지만 생명체를 돈벌이를 위한 기계로 본다는 게 아닌가. “지금이라도 체세포복제배아줄기세포분야를 국가적인 기간 사업으로 선정, 모든 인재를 총 동원하여 21세기 대한민국 차세대 성장 동력원으로 만들어내는 역량”을 모으자는 ‘아이러브황우석’ 카페야 그렇다 치고, 어떤 교수의 “윤리적 문제를 최소화하면서 얻어지는 막대한 의학적 의료적 가치”는 무엇을 뜻하는가.

 

돈벌이를 앞세우는 순간, 생명은 존엄성을 잃는다는 점은 만고불변의 진리다. 우리 사회의 어떤 언론도 그 점을 인식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참으로 불행한 일인데, 우리는 더 나아가 세계가 경쟁하는 성체줄기세포 연구는 진정 불치병 난치병 연구에 매진하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어린이 당뇨병이나 젊은이의 백혈병과 마찬가지로 교통사고나 작업장사고나 전쟁으로 척수가 끊어진 환자를 치료하는데 국가의 성장동력은 창출되지 않는다. 환자 수가 그리 많지 않다.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는 사회적 안정망에 먼저 노력하지 않으며 추진하는 성체줄기세포 연구도 문제일 텐데, 설마 외모 수려한 젊은이를 기준으로 고객을 모집하고자 피부와 뼈 성형을 염두에 두는 줄기세포 연구에 매달리는 게 아닌지 살펴야 한다. (신앙세계, 2009년 3월호)

내가 썩 좋아하는 블로거가 아주 좋은 책 만났다며 적극 권장하길래 '친구'라고 했는데...무례했남요.
얼굴 한 번 못 본, 그러나 오래 전부터 맘 속에서 멋대로 '친구'로 매김한 닭친구, 잘 있지요?
그 블로거한테 요기로 오라고 소개를 해줬는데.^^
물론 무례했을 리 없지요. 오히려 고맙고 또 반가울 따름입니다. 저 또한 비바라기를(님 생략했음!) 오랜 친구로 생각하고 있구요. 온라인이라도 자주 만나 이야기나누길 희망합니다. 저 또한 한동안 격조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