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15. 7. 17. 01:35


50만원이 아니라도 좋다. 물가가 높기로 유명한 스위스는 월 70만원이라고 했다. 소득 수준을 감안한다면 우리는 대략 30만원? 하지만 우리나라는 임대료가 지나치다. 전월세나 주택 구입으로 지불해야 하는 은행이자가 만만치 않다. 그뿐인가. 건물이나 상가 임대료가 물건의 가격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그러므로 월 30만원이면 모자라겠다. 50만원이면 어떨까? 넉넉하지 않더라도 기본적 삶은 가능하지 않을까? 이른바 기본소득이다.


부자든 가난하든, 나라를 구한 사람이든 전과자든,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무조건 일률적으로 일정액의 기본소득이 입금된다면 사회는 어떻게 바뀔까? 거리에서 인터뷰를 했더니 많은 사람은 나태해질 것으로 예상했다고 한다. 뜻하지 않은 돈이 들어오니 술 마셔 없애거나 과도한 쇼핑으로 날릴 거로 대답한 이에게 인터뷰를 시도한 이는 당신은 어떨 생각인지 다시 물었다고 한다. 대답은 아니요. 저는 지금 하는 일을 계속할 겁니다.” 또는 그렇다면 돈벌이 때문에 억지로 하는 지금 일을 집어치우고 싶네요.”


국가에서 모든 국민이나 거주민에게 지급하는 기본소득을 국민배당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국민의 범위에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겠지만, 과거나 현재에 국가에 기여했거나 기여하고 있는 국민, 그리고 내일의 국가에 기여할 미래세대에게 배당한다는 개념이다. 국민이 있어야 국가는 존재한다. 신체조건이나 지능의 차이와 관계없이, 성별과 나이는 물론 직업의 다양성과 무관하게 모든 국민은 국가 안에게 제 역할에 충실하게 임한다. 그런 국민은 지분을 가진 것이니 국가는 배당하는 게 타당하다고 본다. 호의호식할 정도의 배당은 아니다. 좀 더 여유로운 삶을 원하는 이라면 그에 상응하는 일자리를 찾을 것이다.


기본소득이 주어진다면 사람들은 오로지 돈벌이 때문에 붙잡는 일, 스트레스를 받으며 심신이 피곤해지는 일은 마다할 게 틀림없다. 저임금에 혹사당하는 감정노동은 차차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최저임금이 최고임금인 아르바이트에 매달려야하는 대학생이나 젊은이들은 비로소 자신의 길을 찾아 몸과 마음을 수련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을 더 잃고 선배와 만나 토론할 기회를 더 만들 것이다. 운동을 좋아하는 이는 체력을 연마하고 악기를 다루는 이는 연습할 시간을 늘릴 것이다.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의 일에 몰두하는 사람들로 넘치는 사회는 그 만큼 건강해질 것이다.


고객을 상대하며 감정을 주고받는 일자리의 임금수준이 상승하거나 자신을 왕이라 믿는 고객이 노동자를 제멋대로 대하는 일은 줄겠지. 불소가스가 누출돼 소중한 목숨을 내놓게 했던 반도체 공장은 철저한 통제와 관리에 투자를 늘리겠지. 파업 노동자를 완력으로 밀어내는 구사대나 쫓겨날 세입자를 폭력으로 제압하는 직종은 사라지겠지. 대신 큰돈은 벌지 못해도 마음에 품던 활동에 몰두하는 이는 늘어날 것이다. 시민단체나 협동조합이 활발해지고 창작이나 정치활동에 더욱 적극적일 수 있겠다.


독일의 자동차회사 폭스바겐은 라이프치히에 대규모 공장을 지었다. 임금이 낮은 국가로 투자하지 않아 호평을 받았지만 시민들이 기대했던 일자리는 창출되지 않았다. 공장을 전면으로 자동화했기 때문이었다. 일자리를 늘리지 않은 폭스바겐은 공장 신축으로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이지만 분배는 감소되었을 것이다. 그러한 예는 도처에 차고 넘친다. 공장 자동화로 일자리를 잃는 노동자는 돈이 없으니 경제활동에 소외된다. 대신 부자들의 호화스런 소비행각은 더욱 유별나게 튀겠지. 그런 사회에 위화감은 커질 뿐, 공동체는 돈독해지지 못한다. 돈의 순환이 정체되는 만큼 경제수준도 뒷걸음칠 것이다.


일자리가 사라지니 젊은이의 취업 기회는 박탈된다. 직장 이탈자의 재취업은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인건비를 줄이려는 자본의 경영방식이 변하지 않는다면 일자리가 늘어날 가능성은 없다. 그런 상황을 벗어나려는 국가에서 기본소득을 지불한다면 세상은 바뀐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이라도 희망을 스스로 만들어갈 수 있다. 은퇴한 이도 새로운 기회를 능동적으로 만들 수 있다. 다만 기본소득의 재원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지 국가가 고심해야할 텐데, 기본소득 전문가들은 다양한 방법을 안내한다. 투명하고 엄격한 과세하고 예산 편성을 획기적으로 개편한다면 어느 정도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당장 지원할 재원이 모자란다면 수혜 대상자를 제한하며 시작할 수 있다. 노인부터 시작하면 어떨까? 월급이 많은 직장에서 은퇴했든 퇴직금을 듬뿍 받았든, 웬만한 노인은 벌어들인 재산의 대부분을 자식에게 이러저러한 이유로 넘기고 수중에 돈이 부족하다. 손주에게 쥐어줄 용돈이 없어 자식에게 손을 벌려야 한다면 서글프다. 사회적 합의로 어느 연령 이상의 노인 모두에게 일정액을 기본소득으로 제공한다면, 그 나라가 대한민국이라면, 이 나라의 노인들은 지금보다 훨씬 건강해질 것이다. 경륜을 발판삼아 남은 삶을 더욱 보람 있게 이어갈 것이다. 기존의 노인 관련 예산을 조정하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그 방면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농촌부터 기본소득을 지불하자는 정당도 있다. 권력과 이권에 눈이 어두운 기존의 거대 정당은 물론 아니다. 농촌에 농민만 있는 건 아니지만, 기본소득을 받는 농민과 농업 관련 일에 종사하는 이는 땅과 자신의 건강을 위해, 그리고 농작물을 먹는 소비자를 위해 유기농업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겠다. 젊은이가 모이면 시골은 활발해지고 농토도 효율적으로 관리될 것이며 지금처럼 처참한 우리의 식량자급률은 높아지겠지. “소비자는 왕이라는 구호에 속아왔던 도시의 소비자들은 농촌의 생산자에게 감사해하는 마음을 비로소 가질지 모른다.


유럽에서 100년이 넘는 기본소득 논의를 우리는 이제 시작했다. 스위스와 핀란드는 기본소득을 정책에 반영할 준비에 나섰다는 소문이 들린다. 기본소득의 개념을 알리기 급급한 실정이지만, 우리도 타당성을 폭넓게 논의할 때가 되었다. 돈 없이 가족과 건강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없는 현대 사회에서 돈은 생명체의 피와 다르지 않다. 공기와 물처럼 생명 유지에 없어서 안 되므로 국가는 국민 개개인에게 자존심과 건강을 지킬 수 있는 수준 이상으로 일정액을 지불해야 하는 게 정의롭지 않을까? 기본소득의 개념이 거기에 있다. (야곱의우물, 20158월호)

 
 
 

서평·추억

디딤돌 2012. 6. 12. 14:31

   모두에게 일정액의 돈을 거저 준다면

 

                                                          《모두에게 기본소득을, 최광은 지음, 박종철출판사, 2011.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이른바 시카고 보이라고 일컫는 시카고대학교 경제학자의 거두, 고 밀턴 프리드먼이 남긴 말이다. 선물이든 무상원조든, 대가를 기대할 수 있으므로 시도된다는 주장이다. 어떻게 보면 그런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은데, 서울역 광장에서 술에 취해 흐느적거리는 노숙자에게 천원 지폐를 뿌리는 사내를 보았다. 비굴한 머슴에게 일당 나누어주듯 거만했던 그는 노숙자의 건강이나 영양 상태를 걱정한 것이라 믿기 어려웠는데, 노숙자가 나중에 점심을 살 거로 기대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미국의 금융위기가 번져나가면서 많은 국가들이 통화량이 줄어 어려움을 겪을 때, 호주는 자국민에게 적지 않은 현금을 제공하며 국내외 여행을 권한 적 있다. 언뜻 세금 낭비 같았는데, 왜 호주는 국제여행까지 권했을까. 그 방면에 문외한이라서 분석할 역량이 없는데, 목적지에서 돈을 쓰는 국내여행은 물론이고 해외여행 준비로 적지 않은 돈을 쓸 테니 국내의 경기 회복에 도움이 되긴 되었을 것 같다. 호주 여행자를 만나 친해진 외국인이 답방을 와 돈 푸는 걸 기대했을지 모른다. 막혔던 통화량이 늘어나면 경기가 회복되는 건 상식이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보자.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국민이나 주민 모두에게 기초생활이 가능할 정도의 돈을 거저 준다면 세상이 어떻게 변할 것인가를. 여름철 새벽 식당가에서 악취를 참아가며 음식쓰레기를 치워내던 청소원들은 더는 고된 일을 하지 않을 테니, 그 골목은 지저분해질까. 질문을 받은 대부분은 빈둥거리는 사람들이 넘쳐 세상은 어지러워질 것으로 염려했다고 한다. 그러자 질문자는 되물었단다. 당신이라면 일을 버리고 빈둥거릴 것인지를. 그러자 이번엔 대답이 달랐단다. 자신은 하고 싶은 일을 그만둘 생각이 없노라고. 거의 한결같이.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기업이 불특정다수에게 일정액의 돈을 거저로 나누어줄 리 없지만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는 다르다. 공익에 꼭 필요하다면 조건을 달지 않고 일정액의 돈을 나누어준다. 노인이나 취약 계층에게 제공하는 돈은 내버리는 게 아니다. 그들이 기초 생활을 위해 돈을 쓰면서 지역이나 국가의 경제는 그만큼 활기차게 된다. 모든 계층, 빈부 격차를 따지지 말고, 남녀노소는 물론 외국인과 중환자실의 환자까지 일정액의 돈을 그 지역에 살아 있는 동안 지불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만큼 생활이 안정적이 된 이는 자신의 의지와 거리가 있는 일을 마다하지 않을까.


“21세기 지구를 뒤흔들 희망 프로젝트로 부제를 단 모두에게 기본소득을은 보편적 복지로 논의를 제한할 책이 아니다. 저자 최광은이 사회당의 핵심 인사였지만 사회당의 강령에 충실한 책도 아니다. 아이의 장래든, 자신의 노후든, 기초 생활이 가능한 돈이 보장돼 있다면, 그 사람은 접어두었던 자신의 일을 찾아 신바람 낼 수 있다. 예를 들어, 주택융자금을 갚으려 4대강의 모래를 퍼내 재앙을 일으키는 일, 자식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려 방사능 농도가 심각한 원자로 안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4대강은 여전히 금모래은모래를 펼치며 굽이칠 테고 전기는 재생 가능한 에너지원에서 얻었을지 모른다.


1980년대 중반, 유럽에서 본격적 논의가 시작된 기본소득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해당 지역에 거주하는 모든 이에게 제공하는 일정액의 돈을 말한다. 최광은은 모두에게 기본소득을에서 세계 최초로 일부 실시하는 브라질의 사례와 전 국민에게 본격적으로 확장할 것을 검토하는 나미비아의 예를 들며, 미국 알래스카 주의 사례도 살펴본다. 건강검진과 예방주사, 그리고 청소년의 등교를 조건으로 저소득 계층에 제공한 기본소득은 브라질의 빈부와 문화 격차를 단숨에 해소하게 했다. 가진 자에게 착취당하거나 범죄 집단에 휩쓸리지 않았는데, 나미비아도 비슷했다. 다만 배고픈 자에게 강제노동 시키려던 농장주만이 불평했다고 최광은은 전한다.


그렇다면 재원은 어떻게 마련해야 하나. 막대한 석유를 허락 없이 빼가면서 주민들을 몰라라하는 부조리를 기본소득으로 해결한 알라스카는 석유 판매 대금을 기금으로 활용했고 브라질은 세금으로, 나미비아는 해외의 기부금으로 해결했다. 브라질처럼 세금 사용의 우선순위를 조절해 재원 일부를 확보할 수 있지만 국민 모두에게 제공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주장하는 최광은은 조세 제도의 획기적 개선을 주문한다. 기본소득으로 노동과 복지의 패러다임을 싹 바꿀 수 있다고 전망하며 남보다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이기 위해 아등바등해야 하는 불행은 사라지리라 믿는다. 불안을 조성하는 사회 분위기가 잠재워지며 한결 여유가 생긴 사회는 장애인이나 노약자를 그들의 눈높이에서 보살피는 사회 안전망이 뿌리내릴 것으로 전망한다.


기존 정당의 진입 장벽 때문에 국회 진출에 실패한 뒤, 재창당을 절치부심하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사회당 핵심 인사였던 최광은은 모두에게 기본소득을에서 기본소득을 복지 차원에서 바라보려는 경향이 강하다. 자존심 건드리며 줄 세워 차등으로 내주는 선별적 복지가 아니라, 분별하지 않고 모두에게 보편적으로 제공하는 복지의 차원에서 기본소득을 바라보려고 한다. 그런데 정작 논의를 끌어냈던 유럽은 국민 배당의 개념으로 접근한다고 녹색평론은 여러 차례 지적해왔다. 한 국가 또는 지역의 소득과 노동 뿐 아니라 역사와 문화를 함께 이끌어왔거나 이끌어갈 국민 또는 주민에 대한 당연한 배당이라는 거다.


     뉴딜정책은 거대한 댐 공사에 배고픈 미국인들을 동원했지만 진작 기본소득을 모든 이에게 제공했다면 테네시 강의 생태계는 무너지지 않았을 것이다. 위험한 계곡의 공사판에 굳이 끼어들고 싶지 않았을 테니까. 알라스카의 원주민에게 일정액의 돈을 주자 애초 걱정과 달리 게을러지거나 술로 흐느적거리는 주민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지역의 환경과 문화를 보전하려는 움직임이 늘었다. 최광은은 언급하지 않았어도 기본소득의 논의를 앞으로 환경 차원에서 확장할 필요가 있다. 재원 문제까지 포함해서. (우리와다음, 2012년 여름호)

 
 
 

공동체·인간

디딤돌 2010. 10. 30. 11:09

 

김황식 국무총리는 임명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언론 기자와 공관에서 오찬을 가졌다. 그 자리에서 총리는 “약자라고 해서 무조건 봐주지는 말아야 한다. 응석받이 어린이처럼 복지도 ‘무조건’은 안 된다!”며 지하철 적자가 누적되는 상황에서 65세 이상 노인에게 일괄적으로 무임승차를 허용하는 복지를 반대한다고 발언해 작은 파문이 잠깐 일었다. “복지도 결국 생산과 연결돼야 하는데 과잉복지가 되다보니 일 안하고 술 마시고 알코올 중독된다.”고 현 노인복지 제도에 불만을 표출한 국무총리는 "서민을 보살피더라도 원칙 있어야지 인심 쓰듯 복지 정책을 펴면 안 된다!"는 소신을 밝힌 것이었다.

 

국무총리의 발언이 나오자마자, “오늘의 우리나라를 있게 한 어르신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지 말기를 바란다”며 포문을 연 야당은 돈 많은 노인 중에 지하철 타는 이가 몇이나 되는가 반문하며 “돈 내고 지하철 타는 노인과 안 내고 타는 노인을 나눠 이 사회를 또 분열”시키려고 노인 무임승차를 과잉복지라고 발언한 정부의 철학과 복지 부재를 나무랬다. 나아가 노인에게 지하철 요금을 받아 알량한 적자폭 메우기보다 한해에 20조나 되는 ‘부자감세’를 줄여 적자를 보전하라고 되받아친 야당은 지하철의 노인 무임승차를 우리나라가 가야할 ‘보편적 복지’의 출발점이라고 주장했다.

 

국무총리의 발언을 두고 대한노인회에서 사과와 해명을 요구하자 파문을 가라앉히려는 총리실 담당자는 진짜 필요한 계층에게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가는 ‘높은 수준의 복지’를 강조하며 예를 드는 과정에서 나온 실수라고 사과하고 “무임승차 제도 반대나 지하철 적자 보전을 위한 책임 전가로 해석하는 것은 총리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다”고 해명하며 이해를 구했고, 대한노인회 측은 사과를 받아들이며 일단락되었다. 하지만 일단락된 것일까. 야당이 요구한 ‘보편적 복지’에 대응한 국무총리실의 ‘높은 수준의 복지’에 대한 개념이 자못 궁금한데, 사실상 김황식 국무총리는 노인들을 인심 좋은 부자에게 손 내미는 걸인 취급했다.

 

오늘 대도시마다 지하철이 뚫리고 노인에게 무임승차권을 배포할 수 있게 된 데 이 시대 노인의 노력이 지대했다. 노인들의 희생을 딛고 전에 없던 여유가 생긴 자손들은 시방 이 땅의 노인에게 고작 지하철 무임승차권 이외에 어떤 보편적 대접을 하는가. 지하철 노약자 좌석 정도? 국무총리는 기초노령연금을 받아 술이나 마셔 알코올 중독이 된 사례를 지적했지만 “65세이상 전체 노인의 70%에게 매월 일정액의 연금을 드려서 국가발전과 자녀양육에 헌신해 온 노고에 보답하려는” 기초노령연금의 취지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노인이 가난하든 돈이 많던, 기초노령연금은 요긴한 생활자금이 된다. 생활비는 물론이고 손자손녀에게 용돈을 쥐어주거나 이웃과 만나는 비용에 보탤 것이다. 알량한 연금으로 어쩌다 술도 마시겠지. 그런 노인의 생활이 과잉인가.

 

사실 많은 노인들은 과거 돈이 많았든 아니든, 당장 생활이 어려울 때가 많다. 이른바 ‘역모기지론’이라 하여, 집을 담보로 저당해 연금처럼 얼마의 돈을 지불하는 제도를 안내하면서 은행이나 보험회사는 재산을 보유하라고 귀띔하지만, 대부분의 노인은 재산을 보유하지 않는다. 흔히 말하는 ‘내리사랑’ 때문이다. 사업이든, 집 장만이든, 손 내미는 자식들에게 재산과 퇴직금까지 다 내주고 남긴 게 없는 게 보통이다. 보편적 복지라면 과거나 현재의 재산 크기를 고려해 기초노령연금을 지불하기보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기초생활이 가능한 비용을 제공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생각한다. 노인에게 지불하는 이른바 ‘국민배당’이다. 1920년대 영국을 중심으로 논의된 시회신용 운동의 선구자인 클리포드 더글러스가 《경제적 민주주의》에서 추장한 ‘국민배당’은 “국민 개개인에게 정기적으로 현급을 지급하여 모든 사람이 근대적 기술이 가져다준 생산적 경제를 정당하게 나누어 갖는 제도”로 그 덕분에 “사회의 안정을 확보하고 시민들에게 대지의 은혜와 자신들의 노동성과를 공평하게 나누러 가질 수 있게” 한다고 주장한다. (‘국민배당’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녹색평론》 111호와 113호에서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일정액의 배당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한 달 단위로 정해진 나이 이상의 모든 노인에게 어김없이 지불된다면, 노인은 가족 부양하느라 힘겨워하는 자식에게 손 벌릴 일도 없고 지하철 무임승차권 논쟁 때문에 속상해할 일도 없다. 꼭 65세가 기준일 필요도 없다. 병원비나 장례비 걱정을 하는 70세 이상부터 차차 지불금을 늘릴 수 있다. 액수는 통념에 맞는 기초생활비를 사회적 합의로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상급학교에 진학할수록 늘어나는 의무교육의 비용을 국가에서 감당하듯 노인에 대한 배당금을 나이에 따라 조절할 수 있을 것이다. 병원에 입원했더라고, 치매로 의식이 흔들릴지라도, 배당이 정확하게 지불된다면 가족이나 보호자에게 들어가는 부담이 줄어들 것이다.

 

노인에 지불되는 배당만큼 돈이 더 풀려 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고 주장하는 이가 있을 테지만, 안심해도 좋다. 인플레이션이 유발될 정도의 거금을 지불할 이유도 없지만, 어차피 배당을 하지 않아도 보험이든, 연금이든, 자식들에게 받은 용돈이든, 자신이 직접 벌어들인 돈이든, 어차피 그 정도 통화는 풀려나갈 게 아닌가. 당장 막대한 예산이 더 들어가서 어려울 것이라고? 교육과 국방, 그리고 복지에 들어가는 예산을 조정한다면 노인에게 배당되는 비용이 전체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높지 않을 것이다. 정부나 지방정부에서 노인 개개인의 구좌에 정해진 날 일정액을 기입한다면 당장 현금이 없어도 지출 가능하다. 카드를 지급할 수도 있겠다.

 

그만큼 많은 돈을 세금으로 걷기 어렵다고? 그럴까. 사회적 합의가 있다면 머지않아 노인이 될 젊은이라도 흔쾌히 양해할 수 있겠지만, 투명하고 진지한 논의를 통해 충분히 검토한다면 추가 세금 없이 얼마든지 운용할 방안은 찾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클리포드 더글러스의 제안처럼 모든 국민에게 배당금을 제공하려 한다면 별도의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노인의 사회복지와 안정을 우선 고려하는 배당은 그게 어렵지 않을 것이다.

 

돈이 생기면 생활이 방탕해져서 오히려 건강이 나빠질 수 있다는 의구심은 지워도 된다. 그런 노인이 간혹 있을 수 있겠지만 마음이 안정된 상태에서 그런 일탈은 드물 일 것이다. 돈이 들어올 테니 하던 일을 포기할까. 예를 들어 농사를 그만두는 일이 생길 거로 걱정할 수 있겠지만, 아닐 가능성이 높다. 대부분의 나이든 농부들은 돈보다 땅, 생명을 생각한다. 돈벌이를 위한 농업에서 해방된다면 진정으로 땅과 생명을 생각하는 농사에 나설 수 있을 것이다. 오히려 시골에 가서 농사짓고 싶은 노인이 늘어날 수 있고 돈이 없어 접어야 했던 자신과 이웃을 위한 일을 찾아나설 가능성이 높다. 노인의 배당금조차 자식에게 빼앗기지 않을까 걱정하는 이도 있겠지만, 그런 자식은 많지 않을 것이다. 또한 그렇게 못된 자식은 사회에서 당연히 교정해야겠지만, 생각해보라. 생활을 위해 못된 자식에게 손 내밀어야 하는 처지보다 훨씬 낫지 않은가.

 

노후에 안정적인 배당금이 지불된다는 사실은 노후대비를 위해 돈을 모아야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게 할 것이니, 젊은이도 안정적으로 가족과 사회를 위한 삶을 추구하게 이끌 수 있다. 출세를 위해 남을 모함할 일도, 모함 받을 일도 없을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 아등바등 애쓰기보다 이웃과 사회와 생태계와 후손의 삶을 먼저 생각하는 이가 늘어날 게 틀림없다. 그런 사회를 좀 더 긍정적으로 지향하려면, 노인 뿐 아니라 이 땅에 사는 모든 이에게 국민배당이 지불되는 것이 바람직하겠지만 우선 노인부터 실시한 뒤 성과를 보고 확장할 수 있겠다. 국민배당이 확장되면 남들보다 많이 빨리 자식들을 가르치지 않으면 인생이 망칠 것 같은 강박관념 따위는 사라질 수 있다. 오직 돈벌이 때문에 원하지 않는 일을 해야 하는 스트레스에서 풀릴 것이고 조바심이 이끄는 탐욕보다 내일과 이웃을 생각하는 여유가 깃들 수 있다. 나아가 안정된 삶을 위협하는 지구온난화나 석유위기로 인한 국제사회의 갈등을 피할 수 있는 대안적 삶에 관심을 기울이게 될 것이니 노인 배당에 대한 논의부터 활성화되면 어떨까. (인천in, 2010.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