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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딤돌 2016. 5. 15. 10:12

매보다 사람이 두려운 흑염소

 

굴업도에서 천남성을 만났다. 그것도 한 차례 여행에서 여럿 종류를. “첫 남성이 아니다. 첫 남성은 여럿일 수 없는 노릇. 작아도 화사한 들꽃들이 자신의 자태를 부끄럽게 펼치는 5, 서해안의 진주, 인천시 옹진군 덕적면 서포3리 굴업도의 햇빛이 잘 닿지 않는 기슭에 웅크린 그는 남쪽 하늘의 별, 천남성(天南星)이라는 들풀이다.


천남성은 독초다. 임금이 내리는 사약으로 사용하던 천남성에 섣불리 접근하는 초식동물이라면 자칫 생명을 잃을 수 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장미 가시에 찔린 뒤 죽었다지만 천남성은 차원이 다르다. 릴케는 백혈병을 앓았기에 장미 가시에 쓰러졌지만 천남성은 가시가 없어도 치명적으로 아름답다. 장미처럼 화려하지 않아도 응달에 숨은 자태가 순수하기 이를 데 없다. 섣부른 첫 남성에게 팜므파탈의 고혹적 유혹일까?


들풀마다 새순을 펼치는 계절에 긴 꽃대를 내밀고 원통 깔때기 모양의 녹색 꽃을 비스듬하게 펼치는 천남성은 첫 남성에게 팜므파탈일지 모르지만 굴업도에서 주인 행세하는 흑염소에게 유혹은 통하지 않는다. 철저히 외면을 받는다. 어미젖 보채는 새끼 때문에 아무리 허기지더라도 말랑말랑한 천남성 잎사귀에 입도 대지 않는다. 젖 물리던 어미에게 일찍이 그렇게 학습되었다.


5월 바닷바람이 싱그러운 덕적도에서 연락선으로 30분 정도 달리면 닿는 작은 섬 굴업도는 마을 진입로부터 하얀 민들레 군락이 방문객의 눈을 끌어 모았는데, 지금은 아니다. 흑염소가 뜯어낸 건 아니다. 경관을 즐기려 모여든 방문객의 등쌀로 하얀 민들레가 자취를 감춘 것인데 마침 연두색 잎사귀를 펼친 바닷가의 소사나무 군락은 따사로운 햇살을 만끽한다. 봄이 무르익을 때, 새 생명은 저마다 나래를 편다.





잎을 막 펼친 소사나무 사이로 파란 하늘이 두드러지는데, 커다란 매들이 천천히 맴도는 모습이 한가롭다. 봄볕을 받으며 산등성이로 오르는 사람들이 나른해질 오후, 무리지은 흑염소들은 기슭마다 부산하다. 매가 떴다. 태어난 지 며칠 되지 않은 새끼를 먹이랴 보호하랴 흑염소 어미는 바쁘다.


새 생명이 움트는 계절, 사람에게 5월은 계절의 여왕이지만, 새끼들을 걷어 먹여야하는 매와 흑염소는 한가로울 수 없다. 마른 억새 사이로 파릇하게 움터 오르는 부드러운 풀을 뜯는 흑염소 가족, 그 중 어미의 품에서 멀어진 새끼에게 매는 치명적 천적이다. 새끼가 천남성에 입을 댈지 몰라 어미가 안절부절못하는 사이에 벼락 같이 내려와 새끼를 채가지 않던가.


사람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흑염소가 만든 굴업도 산등성이의 오솔길로 들어서면 여기저기 어린 흑염소의 잔해가 눈에 띈다. 서해안의 작은 섬에서 자유롭게 풀을 뜯으며 하층 생태계를 지배하는 흑염소는 저렇듯 매를 불러들여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요사이 특히 드물어진 매를 보려면 서해안의 작은 섬을 찾아야 할 정도라는데, 무인도가 아니라면 주민도 흑염소 증가를 억제한다.


2천 년 전 중국에서 들여와 서해연안부터 사육했을 것으로 전문가들이 추정하는 흑염소는 덕적도 인근의 작은 섬에 흔하고 굴업도도 예외가 아니다. 절해고도를 지키는 주민들의 소득 증대를 위해 정부가 일찌감치 풀어놓았기 때문이다. 땅콩 밖에 심을 게 없어 엎드려 일해야 목구멍에 풀칠할 수 있었다는 굴업도는 예나 지금이나 척박한 모래섬이다. 산등성이 말잔등처럼 완만하게 이어지는 경관이 더 없이 빼어나지만 조기도 민어도 두 세대 전의 전설로 남았을 따름이다.


굴업도 주민들은 절대 엽총을 사용하지 않는다. 오솔길 바닥에 주변 나무에 묶은 나일론 올무를 여러 개 펼쳐놓고 기다리면 영락없을 터. 발목이 걸렸어도 겉보기에 당황하지 않는 녀석이 오솔길을 지키고 있다. 당황? 눈을 치켜뜨며 뿔 달린 이마를 앞세워 달려들겠지. 그렇다고 땅콩농사를 접은 주민들이 당황할 소냐! 억센 두 손으로 뿔을 움켜쥔 뒤, 인천 연안부두의 식당에 탕 거리로 팔겠지.





포유강 우제목 소과 염소속에 속하지만 흑염소가 그걸 따지랴. 암수 모두 뿔이 있지만 수염은 수컷만 가진 흑염소는 몸무게가 30킬로그램 정도에 불과해 염소 무리 중에서 작은 편이다. 추위에 잘 견디며 독초를 제외하면 아무거나 잘 먹어 섬 지방 주민의 수익을 도모하는 흑염소는 늦은 가을 짝짓기를 해 새싹이 파릇파릇한 계절에 2마리의 새끼를 낳는 분명한 가축이지만 다른 축산업과 달리 특별한 관리가 필요하지 않다. 그런 특성을 살려 서해안의 유인도와 무인도에 방생했는데 뒤늦게 문제를 일으킬 줄이야. 도서 주민이 줄고 몰이꾼의 인건비가 높아지면서 허락 없이 섬 지방 하층 생태계를 지배하는 터줏대감이 됐다.


초식동물의 눈매는 대개 선하다. 소를 보라. 사람들이 아무리 가혹하게 사육해도 눈매가 그리 무던할 수 없다. 반면, 육식동물의 눈매는 사납다. 흑염소 새끼를 낚아채는 매는 말할 것도 없고 개구리를 노리는 때까치의 눈매도 여간 날카로운 게 아닌데, 흑염소는 예외다. 바위투성이 절벽, 천적이 도저히 접근할 수 없는 난공불락 계곡, 햇살 강한 절벽에서 고독 속에 거친 풀을 뜯는 흑염소가 서글서글해야할 이유는 없겠지.


노려보는 듯 치켜 뜬 눈은 거만해 보이기까지 해 머리통을 쥐어박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인데, 그래서 그런가? 흑염소를 집 가까이에서 사육하는 농가는 드물다. 거친 사료는 물론, 소나무 잎이나 나무줄기까지 거뜬히 소화시키므로 인적이 드문 임야나 외딴섬에 방목해도 사람의 수입에 이바지해왔는데, 이제와 아우성이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더니, 유해동물이라는 게 아닌가.


엽총을 들자 매가 접근하지 않고, 천적이 사라지자 거침없이 늘어나게 된 원인은 사람이 제공했건만, 천남성이 아니라 나무껍질과 가지까지 뜯는다고 난리다. 설마, 사람을 노려본다는 죄목이 덧씌워진 건 아니겠지? 절벽에 은둔하는 염소를 굳이 데리고 와 가축으로 개량한 건 사람이었다. 살쾡이도 접근할 수 없는 환경에서 표정이 선하든 험하든 사람이 신경 쓸 이유가 전혀 없는데,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사람 세계로 다가온 흑염소는 치명적 곤혹을 강요받아야 했다.





1970년대 방생된 흑염소가 마음껏 늘어난 198112, 국내에서 14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다도해국립공원은 참다못해 엽총을 들었다. 2011년 연구로 생태계에 부정적이라는 견해를 확보한 환경부가 생태계 위해성 2급 종으로 분류하자 다도해와 한려해상국립공원 17개 섬에 퍼진 흑염소를 포획하기로 화답한 것인가?


2007년부터 2500마리가 넘는 흑염소를 생포해 주인에게 넘긴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지난해 4월 경남 통영시의 매물도에서 엽총 쏘았다. 그물을 이용한 생포가 원칙이지만 절벽으로 숨어드니 어쩔 수 없었다면서. 껍질 잃은 나무와 뿌리까지 뜯긴 풀이 국립공원에서 사라지자 산사태가 일어났다. 결국 매물도의 마지막 수컷마저 사살했으니 흑염소가 지배한 국립공원 생태계의 흑역사는 지워졌지만 사료 한 톨 얻어먹지 못한 흑염소는 몹시 억울할 것이다.


사람에게 큰 이익을 안겨줄 거라 환호를 받다 억울해진 흑염소는 더 있다. 1998년 한국과학기술원은 사람의 백혈구 증식인자를 젖으로 분비하는 흑염소를 개발했다고 자랑했다. 이름하여 메디’. 1그램에 9억 원을 호가하는 치료제를 정제하면 국가 부가가치를 크게 향상시킬 것으로 기대했는데, 지금 어떤 신세인가? 메디의 후손들은 부가가치를 여전히 약속하는가? 2001년에 임상시험에 들어갈 거로 장담한 백혈구 증식인자는 여태 감감무소식인데, 분명한 사실은 메디 후손은 굴업도의 흑염소보다 결코 높은 부가가치를 보장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칼슘과 철분이 많을 뿐 아니라 근육까지 연해 소화흡수가 잘 되므로 예로부터 환자의 보양식으로 애용되는 흑염소는 왕실의 약용동물이었다. 소가 건드리지 않는 “100가지의 풀과 1만 가지의 꽃을 고루 먹는 매우 신비한 동물이라는 게 아닌가. 동의보감에서 양기의 으뜸으로 치켜세운 흑염소는 왕실보다 오히려 백성에게 적합할지 모른다. 사육하느라 큰돈 들이지 않아도 되는 가축이므로.


구우면 딱딱해지는 흑염소는 온갖 약재와 과일, 심지어 파인애플까지 넣고 조리거나 중탕으로 먹는 편이 좋다는데,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성질이 있어서 체열이 많은 사람에게 두드러기가 발생할 수 있다고 민간의료 전문가들은 귀띔한다. 식욕을 돋우니 살이 심하게 오를 수 있다는 진단도 등장한다. 살찌고 싶은 사람들 솔깃해지겠다. 민간의료 왈, 비타민E가 많아 세포의 노화를 늦추고, 새살을 돋게 해 수술 뒤 회복하는 환자에 좋으며 불임을 예방하니 임산부에게 이롭다는데, 결혼을 앞둔 요즘 자녀들이 관심을 보이려나.


간에 비타민A가 풍부하니 시력감퇴에 효과가 좋고 동맥경화, 고혈압, 심장병, 신경통을 비롯해 성인병의 예방에 효과가 있다지만, 그게 어디 흑염소만의 특징이던가. 아무튼, 그런 이유로 해마다 100만 마리의 흑염소가 세상에 태어났다 등지는데, 봄이 무르익은 굴업도에는 천남성이 군락을 이뤘다. 천남성을 외면하는 흑염소는 매를 조심해야 할 계절을 다시 맞았는데, 100세 수명을 기대하는 사람은 굴업도에 인산인해다. 매가 떠나면 흑염소가 늘어나겠지. (중앙Sunday, 2016.5.15.)

잘 보았습니다.
잘 보았습니다.
흑염소가 가엽군요.
굴업도엔 이제 흑염소가 없나보죠.

 
 
 

도시·인천

디딤돌 2009. 12. 19. 01:07

 

저어새들 날아간 송도 11공구 갯벌은 썰렁하다. 작년 가을 겨울철새들이 떼로 죽은 뒤라 그런지 오리도 그리 많지 않다. 악취가 진동하고 공사 중장비들이 밤낮 없이 질주하는 남동산업단지 유수지의 작은 인공섬에 둥지를 친 저어새는 한줄기 희망 같았는데, 덕분에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세계의 철새와 습지단체들이 굳이 찾아와 보존을 요구하는 성지가 되었는데, 둥지에서 다음세대를 잘 키워낸 저어새가 따뜻한 나라의 습지로 날아간 뒤 송도 11공구 갯벌은 다시 불안해진 거다. 그래도 내년에 다시 찾겠지. 거기가 고향이므로. 한데, 송도 11공구 갯벌은 저어새가 돌아올 수 있을 만큼 보전될 수 있을까.

 

인천의 오랜 역사이자 문화였던 갯벌은 다 매립돼 시방 송도 11공구에 유일하게 남았다. 갯벌을 보려면 강화나 장봉도 일대로 가야 하는데, 거기도 안전하지 않다. 조력발전으로 휩쓸려 사라지거나 생태계를 돌이킬 수 없게 훼손될 위기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기후변화협약은 선진국이든 개도국이든 온실가스 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여 평균 기온이 섭씨 2도 상승하는 데 그치게 해보자고 마음을 졸였는데, 온실가스를 자연스레 제거해주는 갯벌을 파괴하며 친환경에너지라 칭하니 어처구니없다. 2도 오르면 해수면이 어느 정도 상승하겠지만 거기에서 그치는 게 아니다. 파고가 높아져 송도신도시나 인천공항이 위험할 수 있다. 그런 사실을 아는 최고 정책 담당자는 갯벌은 개발이 아니라 보존대상이란 걸 이해하려나. 내년을 기대해본다.

 

초고층빌딩이 늘어나는 만큼 녹지가 잠식되는 인천의 대기가 다른 지역보다 더 뜨거운 건 상식일 텐데, 대기질도 그리 좋을 리 없다. 인천에 특히 많은 화물자동차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데, 인천의 앞바다를 거의 두르며 굴뚝을 솟아올린 화력발전소마다 온배수를 토해내지 않은가. 게다가 남동발전(주)은 영흥도에 발전설비를 당장 2기 추가하겠다고 나섰고 중부발전도 뒤질세라 보령시의 발전설비를 서구 경서동으로 옮기겠단다. 일단 발끈했다지만, 숱한 개발에 대한 중앙정부의 지원에 목말라하는 인천시의 처지에서 실제로 막아낼 수 있을지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내년이면 어떻게든 결론이 날 텐데, 인천의 하늘과 바다의 운명이 걱정이다.

 

결국 경인운하는 ‘아라뱃길’이라는 야릇한 이름을 달고 올해 착공되었다. 내년에도 공사는 계속될 테지만 일자리는 정부의 장담처럼 늘어나지 않았다. ‘살리기’로 위장된 4대강 사업도 마찬가지일 텐데, 경인운하를 이동할 선박에 장차 무엇을 실을 수 있을까. 해양생태계를 바닥에서 훑을 바닷모래? 수도권 생활쓰레기? 물론 호화유람선은 아닐 것이다. 도무지 볼 게 없지 않은가. 그럼 누군가 책임져야 한다. 인천시에서 추진하는 ‘검단 장수 간 민자도로’는 어떤가. 착공된다면 장차 책임소재를 따져야 할 사태가 발생할 게 뻔하다. 녹지의 가치를 인식하는 일단의 시의원이 해당 예산을 막아 올해는 위기를 면했지만 내년은 어떨지. 마지막 남은 S자 녹지마저 허무는 범죄행위로 후손의 생명을 위협하는 일을 설마 자행하지 않겠지. 지방선거가 내년인데.

 

인천의 진산, 계양산은 여전히 바람 앞의 등불 신세다. 백두대간에서 한남정맥으로 이어져 황해를 굽어보던 계양산이 인구 280만을 바라보는 대도시의 마지막 위안으로 남았건만 껌과 초콜릿을 팔아 큰돈을 번 대기업 롯데가 시민 대다수의 요구에 눈을 감은 태도를 아직 버리지 못한다. 합법적 절차를 내세우는 모양이지만 우리나라의 소비자들도 곧 ‘사회적 기업’, 다시 말해 이윤을 능동적으로 사회에 돌려주는 기업을 주목할 거라고 아직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 안타까운 일이다. 핵폐기장으로 버림받기 직전에 시민들의 노력으로 지킨 굴업도에 CJ 산하 C&I는 ‘오션파크’라는 리조트를 조성하려고 한다. 한데 C&I는 롯데와 달리 현재 주민과 환경단체와 미리 논의하는 자리를 이어가고 있다. 내년에 논의가 어떻게 진행될지 진지하게 지켜볼 일이다.

 

내년은 2010년 호랑이띠의 해, 경인년이다. 고단하게 물러난 기축년 소꼴이 되지 않길 호랑이에게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기호일보, 2009.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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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계·동물

디딤돌 2009. 3. 2. 01:15

 

쇠똥구리가 맞나 소똥구리가 맞나. 아니면 말똥구리인가. ‘소의 똥’을 굴리므로 쇠똥구리가 맞는다고 국어사전은 주장하는데 말똥구리는 말똥을 굴리나. 세상의 똥은 참 많은데 쇠똥구리는 쇠똥이나 말똥만 굴리나. 굴리기 딱 좋은 염소나 토끼 똥은 누가 굴리나. 염소똥구리나 토끼똥구리에 대한 이야기는 앙리 파브르가 그 유명한 곤충기에서 쓰지 않았다. 모르지 않았을 텐데. 사람똥구리는 없나.

 

똥은 무서운 게 아니라 더러워서 피한다고 핏대를 세우는 이가 있지만 쇠똥구리가 듣자니 참 터무니없을 것이다. 쇠똥을 땔감에 쓰고 쇠똥으로 집도 짓는 인도 농민도 어처구니없어 할 것이다. 말똥을 치우지 않고 씨름하다 그 위에 넘어지곤 하는 몽골의 목동은 또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들은 영하 40도까지 내려가는 추위를 이겨내는데 말똥이 없으면 안 된다는 걸 잘 안다. 4시간 뜨겁게 타다 금방 사그라지는 장작과 달리 8시간 동안 은은한 온기를 내는 데는 말똥이 최고가 아닌가. 그들에게 겨울철 잘 마른 말똥은 광에 수백 장 월동준비를 위해 쌓아놓던 우리네 연탄만큼이나 중요하다.

 

쇠똥구리를 말똥구리라고 말하기도 한다는데, 생물학자는 소똥구리라고 쓴다. 16밀리미터인 딱정벌레인 소똥구리보다 커 30밀리미터가 되면 왕소똥구리, 소똥구리보다 작아 12밀리미터에 불과하지만 뒷다리가 길면 긴다리소똥구리, 28밀리미터라 왕소똥구리보다 조금 작아 크기가 비슷하지만 코뿔소처럼 뿔이 솟아 있으면 뿔소똥구리, 뿔소똥구리보다 작은 18밀리미터 정도면 애기뿔소똥구리, 애기뿔소똥구리보다 작아 11밀리미터에 못 미치지만 뿔이 창처럼 길면 창뿔소똥구리라 칭하는 소똥구리는 종류도 많다. 유럽에는 토끼 똥만 굴리는 쇠똥구리가 있다하고 아프리카에는 코끼리 똥만 굴리는 녀석도 있는데 코끼리 똥이 워낙에 커서 그런지 코끼리똥구리(맞았을까?)의 종류도 많다고 한다.

 

호주에는 유럽에서 사람이 데려오기 전까지 소가 없었다. 당연히 소똥구리도 없었다. 호주 초원의 오랜 터줏대감은 캥거루였다. 그래서 호주에 캥거루 똥을 굴리는 소똥구리는 있다. 아니 캥거루똥구리라 해야 하나. 유럽에서 총도 가지고 간 사람이 캥거루를 몰아내고 그 자리에 소를 들여놓자 소는 개체수를 급속하게 늘였다. 먹을 게 지천이었으므로. 그런데 건조하고 햇볕이 뜨거우며 바람이 거센 기후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초원을 뒤덮은 소똥이 말라 바람에 가루로 날리는 게 아닌가.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날린 소똥이 초원에 곱게 가라앉자 탄소동화작용을 제대로 못한 목초가 말라죽고, 이내 소들이 굶주리게 된 것이다.

 

캥거루 똥 굴리던 소똥가리가 소똥을 거들떠보지 않으니 과학자들은 비상에 걸렸고, 호주와 비슷한 기후를 가진 아프리카 초원에서 코끼리 똥을 굴리는 종류를 찾아 나섰다. 소똥구리와 비슷한 크기의 코끼리똥구리를 대량 번식시켜 호주의 초원에 풀어놓은 것이다. 결론은 해피엔딩. 캥거루 똥에 특화된 소똥구리 대신 아프리카 출신의 코끼리똥구리가 호주의 소똥을 먹으며 늘어난 뒤 이제 호주에서 소똥 바람은 불지 않는다고 한다.

 

호주 초원에 화학비료나 농약은 뿌리지 않는 모양이다. 출신이 어디든 소똥가리 종류가 아직 멀쩡한 걸 보면. 우리의 사정은 아니 그렇다. 거의 대부분 멸종위기에 몰린 보호대상종으로 짐작하다시피 농촌에 살포되는 농약이 주범이다. 소똥구리가 발견되면 소문이 파다하게 나서 생태관광객이 각지에서 모여들고, 그 지역에서 생산되는 농작물은 비싼 값이 팔려나갈 정도가 되었다.

 

그런데 나름대로 똥을 특화했던 우리나라 소똥구리도 별 수 없었던 모양이다. 농약 뿐 아니라 유전자조작 옥수수를 먹은 소가 내놓은 똥을 도저히 먹을 수 없던 소똥구리가 하는 수 없이 서해안 외딴섬에 방치된 흑염소의 똥을 먹기로 작정했다는 게 아닌가. 발견 자체가 로또가 된 소똥구리가 아니라 환경부에서 멸종위기 2급으로 지정한 애기뿔소똥구리가 그들이다. 1994년에서 1995년, 시민들의 열화와 같은 반대운동으로 간신히 핵폐기장 위기에서 살아남은 굴업도에 애기뿔소똥구리가 흑염소 똥에서 발견했다고 한 지질학자의 얼굴이 환해졌다.

 

애기뿔소똥구리는 파브르가 기록한 소똥구리처럼 똥을 경단처럼 둥글게 말아 집에 굴려 넣은 뒤 그 안에 알을 낳지 않는다. 행동이 독특하기 짝이 없다. 짝짓기를 마친 수컷이 똥 덩어리 아래 긴 굴을 파는데 굴도 복잡하지만 굴을 판 다음의 행동도 여간이 아니다. 수컷이 굴 표면에 소똥을 발라 매끄럽게 만들면 암컷이 안으로 들어가고, 수컷이 길쭉한 서양 배처럼 뭉친 소똥 경단을 내려보내면 암컷은 경단을 받아 그 속에 하나의 알을 낳는다는데, 그것 참! 작은 소똥 경단의 수는 낳을 알과 일치한다고 한다. 그러는데 이틀에서 나흘이 걸리고, 애벌레가 알에서 깨어나는데 1주일, 경단 속에서 3번 허물을 벗으며 소똥을 먹고 자라 작은 성체가 되어 경단을 깨고 나오는데 두 달이 걸린다고 한다. 누가 소똥 속을 그리 들여다보며 연구했는지 대단한데, 애기뿔소똥구리는 연구자에게 고마워할 것 같지 않다.

 

흑염소 똥이 동글동글하지만 보통 무더기로 쌓이니 굴업도의 애기뿔소똥구리는 흑염소 똥 아래 굴을 팔 것인데, 오래 살아가려면 흑염소의 서식지가 불안하지 않아야 한다. 핵폐기장 위협에서 벗어낸 굴업도는 시방 흑염소에게 살만한 공간인가. 아직은 그렇다. 서해안의 생태계를 파괴한다며 총 들고 들어오는 무뢰배는 없다. 손님에게 내주려고 나일론 끈 올무로 발목을 잡는 주민이 흑염소 집단을 위협하지 않는다. 하늘을 선회하다 새끼를 낚아채는 매도 지나친 증가를 막을 따름이다. 무심한 흑염소는 모르겠지만 애기뿔소똥구리를 위기에 몰아붙이는 건 다름 아닌 골프장이다. 국내 굴지의 기업에서 굴업도의 땅을 대부분 구입, 18홀 정규코스의 골프장을 고집하는 까닭이다.

 

골프장과 흑염소는 당연히 상극이다. 흑염소가 쫓겨나면 애기뿔소똥구리 수컷은 뭘 경단으로 만들어 암컷에 내려보내려 할까. 개똥? 하긴 어떤 생태관광지에서 개똥에 모인 애기뿔소똥구리를 보았다는 소문이 있다. 골프장까지 왕림할 개가 먹을 미국산 수입 개사료는 소 도축 부산물로 가공했을 텐데, 그 똥에 항생제는 없을까. 광우병을 일으키는 프리온은 뇌가 작은 곤충과 무관하겠지. 고급 관광지에 사람의 똥이 있을 리 없지만 혹시 있더라도 먹지 말길 바라야 한다. 멸종위기종이 항생제나 식품첨가물에 오염되면 안 될 테니까. (물푸레골에서, 2009년 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