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인천

디딤돌 2010. 8. 7. 02:53

 

지금은 새벽 한시. 먼동 틀 무렵부터 선잠을 깨웠던 아파트 단지의 매미 몇 마리가 여태 울어 젖힌다. 저 녀석들은 잠도 없나. 매미는 보통 날이 훤할 때 운다고 들었는데, 요즘 도시의 매미는 시도 때도 없는 모양이다. 가로등이나 현관 불이 훤해도 목이 터져라 운다. 아파트 단지의 어떤 이웃은 매미 울음소리가 시끄럽다고 민원을 띄우고, 방학을 맞은 초등학생들은 플라스틱 채집통으로 하나 매미들을 잡고도 잠자리채를 놓지 않는데, 숨을 턱턱 막히게 하던 한낮의 더위는 열대야를 며칠 째 연장시킨다.

 

아파트 단지의 매미는 정확히 9시 종합뉴스의 기상캐스터가 마지막 장마전선이 북쪽으로 올라갔다던 날의 아침부터 울기 시작했다. 장마전선은 대만 아래까지 내려간 뒤 흐지부지 사라지는 줄 알았는데, 아닌가. 올라가더니 함흥차사다. 그걸 매미는 진작 알았나보다. 장마철에 침묵을 지키던, 아니 땅 속에서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던 매미가 일제히 나무로 올라와 단단한 껍질을 벗고 드디어 우렁찬 울음을 터뜨렸다. 이제 장마가 끝났다고 아우성이다. 땅 속에서 나무뿌리나 등걸을 파먹으며 서너 해 이상 기다리더니 이제 제 세상을 선언하기 시작한 거다.

 

열대야에 지쳐 새벽녘에 겨우 잠이 든 아파트 단지의 도시인들은 매미가 원망스러울지 모른다. 겨우 잠이 들었나 싶은데 귓전에서 얼마나 우렁차게 울어 젖히는지, 도저히 깊은 잠을 이룰 수 없지 않은가. 약이 오른 마음은 민원을 띄워 아파트 단지의 알량한 나무들을 베어내 수종갱신까지 재촉했는데, 웬걸. 매미는 아랑곳하지 않고 올해도 그 자리에서 우렁차기만 하다. 작년에 자른 나무 등걸을 보니 커다란 구멍이 숭숭 뚫렸던데, 녹지가 휑할 정도로 베어냈건만, 저 녀석들은 어디에서 나타난 걸까. 모질기도 하다.

 

사람들은 사실 매미 소리로 여름을 맞는다. 산들바람이 부는 그늘에서 매미 소리를 들으면 무덥던 여름이 시원해진다고 말한다. 전에 들었던 매미 소리는 사실 그리 시끄럽지 않았다. 아니, 아무리 시끄럽다 한들, 아스팔트에서 파열음을 내는 자동차 바퀴만 하랴. 자동차 소음은 사시사철 잘도 참아내면서 길어야 고작 한 달? 그 짧은 시간 안에 제 짝을 찾으려 목이 터져라 단조로운 가락을 반복하는 매미를 탓할까. 시끄럽다고 겉보기 멀쩡한 나무까지 자르다니. 도시의 인간들, 참 야박하기도 하다.

 

애벌레인 굼벵이 시절이 훨씬 긴 매미는 오로지 번식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운다. 매미는 자신의 일생 대부분을 어둡고 침침한 땅 속에서 보내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괜히 그 처지를 안타까워할 필요는 없다. 매미에게 그 시절이 가장 행복할지 모른다. 학원도 다니지 않고 꾸물꾸물 자랐을 테니. 그 꿈같은 시간이 지나 한 보름 동안 밝은 세상으로 나오니 자동차 소음으로 시끄러울 뿐 아니라 공기도 더럽다. 그 뿐이 아니다. 어렵사리 짝을 만나도 도무지 알을 낳을 틈이 없다. 나무 옆구리에 앉아 날개를 비비며 열심히 우느라 잠시 긴장을 놓았을 때 잠자리채로 잡아들이는 어린 인간들 때문이 아니다. 알 낳을 만한 나무가 점점 줄어들지 않은가.

 

베란다의 방충망까지 붙잡고 날개를 비비는 매미는 왜 하필 녹지가 태부족한 아파트 단지에 많은 걸까. 아닐 수 있다. 사실 아파트 단지보다 교외나 숲속에 더 많을지 모르지만 거긴 다른 생물들도 많다. 매미처럼 우는 곤충이 더 있고 봄부터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는 새들도 많다. 그러므로 매미 소리가 도시보다 크지 않을 수 있다. 또한 나무가 도시보다 훨씬 많다. 알을 여기저기 흩어서 낳았으니 여름철 숲에서 우는 매미 소리는 도시보다 드물 수밖에. 한데 시골의 매미는 그리 시끄럽지 않은 것 같다. 왜 그럴까. 혹시 시끄러운 자동차보다 더 크게 울어야 짝을 찾을 수 있으니 그런 거 아닐까. 우리도 전화 속의 목소리가 작으면 고래고래 소리 지르지 않던가. 상대는 잘 듣고 있는지 모르면서.

 

복중의 아파트 단지에 매미가 시끄러운 건 어쩌면 농약 때문일 수 있다. 매미보다 나비와 나방 애벌레 때문에 이른 여름부터 나무 잎사귀에 진득한 농약을 흥건하게 뿌렸다. 농약 냄새가 나서 산책하기 싫어질 정도로. 그건 독약이다. 작은 애벌레는 바로 죽어 떨어지지만 사람에게 좋을 까닭이 없다. 아장아장 걷는 아기들에게는 훨씬 나쁠 게 뻔하다. 한데 아파트 단지의 녹지마다 집요하게 뿌려댄다. 애벌레 몇 마리 기어 다닌다고 질병이 도는 것도 아닌데, 애벌레가 있어야 나비도 나방도 생기고, 그래야 새들이 찾아와 교교한 노래를 부를 수 있는데, 알량한 녹지에 모여드는 사람들도 비로소 마음이 편안해질 텐데.

 

도시의 녹지에 악착같이 뿌려대는 농약은 매미의 천적을 몰아냈다. 나무줄기를 쪼는 딱따구리도 땅 속에서 헤집고 다니다 굼벵이 잡아먹는 두더지와 땃쥐도 자취를 감췄다. 무더위가 꺾이는 저녁 무렵에 귀뚜라미가 나타나기 전까지, 여름 한 철의 밝은 대낮을 풍미하는 매미는 거의 아무 것도 먹지 않으며 질세라 사랑의 세레나데만 부르다 녹지의 나무껍질 안에 수백 개의 알을 낳은 뒤 죽어가지만 나뭇결의 영양분을 먹는 굼벵이는 농약 세례를 피하며 세월을 기다린다. 천적이 사라진 도시의 여름 녹지에서 제철을 만난 매미들은 많은데 밤에도 불이 훤하니 어쩌겠는가. 목이 터져라 경쟁적으로 울 수밖에. 그러지 않으면 짝을 찾지 못하지 않겠나. 우리는 매미가 시끄럽다고 탓할 하등의 자격이 없다.

 

아파트 단지의 매미가 시끄럽다고 이 더위에 짜증내지 말자. 저 자동차 소음보다 낫지 않은가. 그래도 도저히 시끄러워 견딜 수 없고 시골로 이사 갈 형편이 되지 않는다면, 도시의 녹지에 자연의 이웃을 끌어들이자. 독한 농약을 아무 때나 치지 않는 건 물론이고 외곽의 숲에서 아파트 단지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녹지축을 연결하는 거다. 딱따구리와 같은 새들은 물론이고 두더지와 땃쥐도 와 줄 수 있도록 배려하면 더욱 좋겠다. 농약을 치지 않으면 어이들 아토피도 그만큼 줄어들 테고, 정서도 메마르지 않을 것이다. 또한 되도록 자동차를 집에 두고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자전거를 타고 아예 걷는다면 매미는 그렇게 시끄럽게 울지 않으려 할지 모르다.

 

매미도 밤에 울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저 먼동 틀 때 다른 매미보다 먼저 울고 싶을지 모른다. 새벽에 우는 매미, 열대야에 잠 못 든 우리에게 아침 안부인사 하는 것으로 생각하자. 귀뚜라미가 바통을 이어받을 때까지. 불쾌지수 높아 우릴 짜증스럽게 하는 이 더위도 곧 물러난다. 그나마 매미라도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이렇게 녹지를 허물어 아파트 단지를 짓고, 거기에 농약을 마구 뿌려대는 도시에. (인천in, 2010.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