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일반·개발

디딤돌 2012. 5. 3. 13:48

 

1970년대를 풍미한 가수 정미조는 <그리운 생각>에서 마음을 조이며 기다리는 기쁨도 있다고 노래했다. 젊었던 시절, 짝사랑하는 이를 3시간 기다리며 철학자나 시인이 되었다는 말. 요사이 젊은이들은 헤아리지 못한다. 제 앞가림을 할 수 있는 이 대부분의 손에 전화기가 쥐어진 이후의 일일 것이다.

 

다소 늦은 감이 있어도 봄이 오자 근린공원에 벚꽃이 만개했다. 벚꽃뿐이랴. 개나리와 진달래, 산수유와 목련은 꽃망울을 터뜨린 지 오래고, 과수원의 살구와 배나무도 화사한 봄을 안내하고 있다. 꽃만 봄을 기다린 건 아니다. 부지런한 까치와 박새는 짝짓기에 나섰고, 노랑텃멧새와 직박구리도 짝을 찾아 목청을 가다듬는다. 남동산업단지 유수지에 저어새가 와서 둥지를 틀고 있으니 머지않아 꾀꼬리와 흰눈썹황금새도 근교의 산록에서 자태를 뽐낼 것이다.

 

계절이 어김없이 찾아와주니 반가우면서 또한 고맙다. 세계정상의 감축 약속과 관계없이 늘어나는 온실가스로 난대성 어류가 찾아오고, 제주도 곶자왈에 머물던 삼광조가 인천의 근린공원을 기웃거리는 데 그치지 않는다. 사과와 감 북한계선이 올라가고 명태가 잡히지 않는 것보다 두려운 건, 계절이 전 같지 않다는 것이다. 겨울을 맞은 북극해에 얼음이 얼지 않자 우리나라를 포함한 그 아래 위도에 혹한이 몰아치는 현상은 장마철 이후 느닷없는 국지성호우가 빗발치는 이유와 같다. 지구온난화현상이다. 그래도 봄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봄이 오면 나물 뜯으며 겨우내 잃었던 입맛을 돌이키려 애쓰지만,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봄이 와도 봄을 느끼지 못한다. 조금만 더워도 에어컨으로 겨울을 부르고 조금만 추워도 보일러로 여름을 부르기 시작하면서부터 봄과 가을이 실종되었기 때문일 텐데, 요즘은 과일이나 채소도 제철을 잃은 지 오래다. 5월에 빨간 과육을 드러내던 딸기는 어느새 끝물이고 참외와 수박이 출하될 날도 머지않았다. 비닐하우스에 보일러를 펑펑 가동한 이후의 일인데, 사실 이번 봄, 사차를 두고 차례로 봉오리를 열던 봄꽃이 한꺼번에 피어 전문가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시차가 있는 산새들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곤충과 개구리가 갈피를 잡지 못하니 뱀도 매와 수리도 한해의 시작을 종잡지 못한다.

 

유치원을 다니기 한참 전부터 산으로 들로 쏘다녔던 시절은 이젠 전설이 되었다. 봄이 왔으니 유치원 또는 유아원 차에서 내리는 꼬마 신사 숙녀들은 현장학습을 위해 근린공원을 찾겠지만 박물관이나 전람회에 쪼르르 몰려다닌다. 그 나머지 시간에 무엇을 할까. 태권도 학원조차 글쓰기를 가르쳐주지 않으면 안 되는 현실은 우리네 조급함을 반영한다. 인문계 고등학생이 2년 만에 3년 과정을 마치고 3학년 때 입시 대비에 몰입하던 시절은 과거다. 중학생이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기 일쑤고, 우리말도 서툰 초등학생이 영어회화에 몰두해야 정상인 요즘, 대학입시, 아니 남을 제치고 근사한 직장에 잘 들어가는 대학에 들어가려는 경쟁은 유치원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니 봄이 와도 산에 들에 쏘다닐 여유가 없다. 조급증은 어린 시절을 앗아갔다.

 

얼마 전 우리나라 최고 과학수재의 전당인 대전 한국과학기술원에서 그 대학 4학년 학생이 투신자살을 했다. “열정은 사라지고 진로가 고민이라는 유서를 남긴 그는 왜 자살을 감행한 걸까. 졸업을 앞두고 본격적으로 열정을 불태울 시기가 다가올 텐데, 꽃봉오리가 터지기 전에 생을 마감해야 할 만큼 쫓긴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승리를 보장한다며 그 학교가 부추긴 경쟁이 작년 4명의 생명을 앗아가게 했는데, 여전한 건 아닐까. 충분히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이를 절망시킨 건, ‘기다리는 기쁨을 잊게 한 경쟁의 살벌함은 아니었을까.

 

겨울에 꽃눈과 잎눈을 준비한 나무들은 봄꽃에 이어 새잎을 펼쳐낼 것이다. 이윽고 잎사귀의 애벌레가 새들을 부르겠지. 자연을 그렇게 계절의 변화에 순응하는데, 언젠가부터 흐드러지게 핀 봄꽃에 꿀벌이 다가오지 못한다. 꽃그늘 아래 북적이면서 꿀벌이 없다는 사실을 주목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기다리는 기쁨을 다시 찾게 할 방법은 없을까. (요즘세상, 2012.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