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추억

디딤돌 2009. 10. 5. 00:27

 

《북극곰은 걷고 싶다》, 남종영 지음, 한겨레출판, 2009년.

 

 

인형에도 의미가 붙는다. 어린 곰을 향한 엽총의 총구를 거두었다는 미국 대통령 테오도어 루즈벨트의 이름을 딴 인형 ‘테디베어’와 누울 때마다 눈을 감으며 수많은 옷을 갈아입는 ‘바비’ 인형은 미국의 풍족한 물질문명을 반영한다면, 불에 그슬린 ‘스모키 베어’ 인형은 산불에 대한 경각심을 미국 서북부 원시림에서 알리고 있다. 아직 인형으로 변신하지 않았지만 이제 북극곰은 지구온난화의 아이콘이 되었다. 지구온난화까지 상품화하는 자본주의는 조각난 빙상에 위태롭게 앉아 자신의 내일을 걱정하는 북극곰 인형을 만들어 팔지 모른다.

 

남종영은 얼마 전까지 시사주간지 《한겨레21》에 환경 관련 기사를 담당해온 기자다. 한겨레 창간 이후 일간지는 물론이고 시사주간지까지 모두 구독했지만 남 기자의 글 이외에 점점 이렇다하게 들여다볼 기사가 없어지기에 지갑과 상의하고 《한겨레21》을 끊은 걸 미안해하는 한 가지 이유는 그에게 있었다. 그래서 그의 기사가 실리면 구입해서 보곤 했는데, 최근 남종영은 지구온난화에 특히 천착했고, 그에 걸맞게 심도 있는 기사를 쏟아냈다. 또한 더욱 고맙게도 얼마 전 《북극곰은 걷고 싶다》를 단행본으로 출간했다.

 

작년 수려하고 세심한 영상으로 제작한 BBC의 다큐멘터리 《지구》와 MBC의 《북극의 눈물》이 여실히 웅변했듯, 북극곰은 단단한 빙원을 걷고 싶었다! 얼음이 사라진 북극해를 하염없이 헤엄치는 새하얀 북극곰. 얼어붙은 빙원의 갈라진 틈으로 고개를 삐죽 내미는 물범을 그 순간 잡아먹어야 하는 북극곰에게 녹아버린 북극해는 굶주림을 의미한다. 수영으로 신출귀몰한 물범을 잡아챌 수 없는 일. 망망대해에서 북극곰은 내일을 기약할 수 없다. 홀로 다니는 수컷은 그나마 덜하지만 새끼까지 건사해야하는 암컷에게 줄어드는 빙원은 재앙과 다름없다. 굶주린 수컷에게 희생되는 사례까지 발생했다고 남종영은 기겁한다.

 

북극해의 얼음이 풀리면 우린 해상강국이 된다고? 그러면 북극해를 휘저으며 오대양육대주를 누비는 거대한 선박이 대량으로 운송하는 석유와 농산물과 공산품으로 세계 경제는 성장을 거듭할 테고, 그 무역항을 싱가포르를 제친 우리나라 항구가 차지하게 될 거라고? 꿈이 야무지다고 칭찬하는 자가 없지 않겠지만 그 때문에 심화될 지구온난화는 어이할꼬. 우주에 커튼을 치자는 공학자들이 햇살을 반사시키던 빙원 대신 북극해에 스티로폼을 덮어 태양열 흡수를 차단하자고 왜 아직까지 주장하지 않는지 알 수 없지만, 북극해의 빙원이 모두 녹는다고 해수면이 상승하는 건 아니다. 물에 뜬 얼음이기 때문인데, 문제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도 눈으로 녹는 모습을 확인한 뒤 걱정한 그린란드다. 대지 위의 빙하인 그린란드가 모두 녹으면 유엔 산하 정부 간 기후변화 위원회(IPCC)는 해수면이 7미터 상승할 거로 예측했다.

 

문제는 해수면이 욕조에 목욕물 채워지듯 조금씩 서서히 오르는 게 아니라는 사실일 것이다. 대지부터 녹아 조각난 빙하가 바다로 미끄러져 들어갈 경우 재앙이 거듭 발생할 것이다. 올여름 극장가를 강타한 영화 《해운대》에서 본 거대한 파고가 인근 도시를 덮칠 테고, 북극항로로 대형선박을 경쟁적으로 띄우던 도시부터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만날 게 틀림없다. 우리나라는 예외일 수 없지만 가장 먼저 수몰될 지역은 이미 국가 재난을 선포한 태평양의 작은 국가들이 될 터. 아무래도 해발 3미터에 불과한 투발루가 그 첫 제물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한데 아니라고? 한 때 환경단체에서 환경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던 어떤 보수적 법학자는 자신이 편집한 일부 자료만을 바탕으로 투발루의 바다는 오히려 낮아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위기의식을 부추겨 연구비를 챙기려는 일부 극단적 좌파 환경학자의 간교함을 이용해 가난한 고국을 버리고 호주나 뉴질랜드로 국적을 옮기려는 수작에 불과하다고 투발루 국민들을 잔뜩 폄하하기까지 했는데, 과연 그런가. 남극의 위기를 극지방의 원주민을 만나 지구온난화의 위기를 피부로 경험한 남종영은 내친 김에 투발루를 찾았다.

 

미군이 활주로를 만들려 흙을 파낸 자리마다 바닷물이 차 올라오는 통에 지하수가 오염돼 농작물 재배를 포기할 지경에 이르렀고 만조 때 바람이 불면 해수면은 가늘고 긴 국가를 집어삼킬 태세로 넘실거린 지 오래다. 투발루는 국가를 포기했다고? 그 또한 오해다. 지구온난화에 대한 책임이 거의 없는 그들은 나름대로 재생에너지원을 찾으려 노력하면서 후손과 머물고 싶어 한다. 하지만 해수면이 올라가는데 어찌할 방법이 없지 않은가. 투발루를 모함하는 서방인들, 그들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빙원에서 북극곰처럼 자연의 순리에 따라 살던 동토의 원주민들을 돈으로 길들인 자본은 석유를 캐내지만 온난화되면서 삶터가 위축된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원주민들은 석유채굴이 도무지 흔쾌하지 않다. 물범과 고래가 자취를 감추는 동토에 순록마저 전 같지 않기 때문인데, 남극의 펭귄도 오랜 생태적 지위가 위태로워졌다. 우선 온난화 때문이지만 그들의 식량인 크릴을 남획하는 인간이 당장 문제를 일으키는 까닭인데 한국 선단도 만만치 않게 크릴을 쓸어가고 있다. 펭귄은 21세기의 도도새가 될 것인가, 남종영은 묻는다.

 

남종영은 명태가 떠난 우리 동해안도 찾았다. 명태 없는 고성에 들려 오호츠크 해에서 잡아와 내설악 덕장에서 말린 황태가 길손을 공허하게 유혹하는 명태축제 현장을 서성인다. 명태만이 아니다. 여름철새가 겨울을 나는 한반도는 이미 바다부터 아열대화 되었고 명태가 떠난 자리를 오징어와 참치가 메운다는 걸 지적하지만 그 사실이 그리 반갑지 않다. 지난 100년간 상승한 지구 평균 온도보다 두 배 이상 오른 우리 바다와 땅은 조상이 물려준 문화와 전통을 상실할 위기에서 그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일 터. 그는 굳이 지적하지 않았지만 한창 팡파르를 울리는 전북의 새만금과 인천의 송도신도시 개발현장은 청청할 수 있을까. 인천공항은 내내 안녕할까. 하지만 이 나라 정부는 지구온난화 방지를 위해 4대강의 흐름을 차단하겠단다. 하늘을 향해 에어컨을 가동하려는 건가. (우리와다음, 2009년 11-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