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인천

디딤돌 2010. 7. 2. 12:35

 

인천에 하키를 즐기는 이가 몇이나 될까. 만일 국제 하키 경기가 열리면 5천명 이상의 관객이 몰려올 수 있을까. 스스로 찾는 관람객이 그 정도 되려면 인천과 우리나라에 하키 동호회가 적지 않아야 할 텐데, 그렇다는 소문은 듣지 못했다. 아르헨티나와 월드컵 축구 시합이 중계될 때, 사업차 그 나라를 다녀왔다는 지인은 동네 축구에도 열광하는 나라를 우리가 넘본다는 것도 대단한 일이라고 했다. 2014년 인천에서 개최할 아시안게임을 위해 44만 제곱킬로미터 이상의 녹지를 허물고 두 면의 하키 경기장과 대형 볼링장을 신축한다는 거, 이해해야 할까.

 

아시안게임 주경기장 신축을 둘러싼 민원이 서구에 발생했다. 민원의 정확한 출처와 내용을 모르니 평가할 처지가 못 되지만 분명한 것은 신축할 주경기장보다 규모가 작은 문학종합운동장도 적자에 허덕인다는 점이다. 프로축구경기가 열릴 뿐 아니라 예식장도 운영되지만 해마다 20억 이상의 적자를 세금으로 메워야한다는데, 서구에 신축할 주경기장은 적자를 면할 수 있을까. 서울 상암동의 축구전용경기장은 대규모 극장과 양판점이 들어가 적자를 극복한다지만 서구에 그런 상업시설을 유치할 경우, 지역의 기존 상권은 견딜 수 있을까. 민원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아시안게임 이후에 서구와 인천시의 부담으로 남지 않을 확실한 청사진이라도 확보한 걸까.

 

월드컵 이후 전국의 경기장마다 누적되는 적자로 걱정이 크다던데, 2002년 아시안게임을 치룬 부산시도 예외 없이 해마다 불어나는 거액의 적자를 감당하지 못한다고 한다. 주민등록은 두었으되 정주의식이 약해 돈이 생기면, 직장이 바뀌면, 아이가 고등학교를 진학할 때면, 미련 없이 떠나려는 시민이 다른 도시에 비해 많은 인천은 신축된 경기장들을 경제성 있게 운영할 자신이 있을까. 중앙정부에서 신축을 위해 자금을 지원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운영자금도 지원하지 않는 상황에서 주경기장을 비롯해 하키와 볼링장, 럭비와 농구장 들이 적자를 면할 수 없을 게 틀림없을 것이다.

 

개막을 고려할 때, 신축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하니, 면밀히 평가해 꼭 필요한 시설은 주민의 정당한 동의를 거쳐 신축해야겠지만 되도록 대학이나 민간의 기존 시설을 보수해 활용하거나 인근 도시의 협조를 구하는 편이 경제성과 시민의 지속적인 이용 가능성으로 볼 때 합리적이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경제성 평가만으로 부족하다. 인천이 우리나라의 온난화를 끌어갈 정도로 평균 기온 상승이 높은 실상을 감안하더라도 환경성까지 평가해야 한다. 국제적으로 환경이 강조되는 시기에 녹지를 파괴하며 경기장을 신축해도 부끄럽지 않을 것인가.

 

주경기장의 신축 여부는 소통을 강조한 신임 시장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논의를 투명하게 실시한 뒤 민주적으로 처리할 것으로 믿는데, 걱정은 선학동에 예정된 하키와 볼링경기장이다. 56레인의 볼링 경기장이 신축된다면 기존 민간시설의 운영자는 실음이 깊어지고 경기를 마친 하키 경기장은 허구헛날 놀릴 가능성이 높은데, 더 큰 문제는 15만 평 가까운 녹지가 사라진다는 사실이다. 도서지방을 제외하고 외곽을 잇는 S자 녹지축 이외에 이렇다 할 녹지가 도심에 태부족한 곳이 인천이다. 그린벨트로 묶인 덕분에 가녀리게 남은 선학동의 녹지마저 일과성 행사를 위해 희생시켜야 하나.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면 서구의 주경기장 계획을 논의할 때 선학동의 경기장 부지도 다시 검토하길 인천시에 간곡하게 부탁한다. 이미 부지 매입에 들어갔으므로 절차상, 또는 형평상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도 들리지만, 노력 여하에 따라 도심에서 거의 마지막으로 남은 녹지를 지금보다 가치를 높이는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녹지공원도 가능할 테고 시민을 위한 텃밭도 강구할 수 있다. 유럽 대부분의 도시가 그렇듯, 인천 규모의 도시라면 시민을 위한 텃밭을 저렴하게 임대하는 서비스를 충분히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평소 녹지가 되는 텃밭은 시민에게 안전한 먹을거리를 제공할 뿐 아니라 정주의식을 높이는 공간으로 승화될 게 아닌가. 아무튼, 시민 동의 없는 경기장은 반드시 재검토되길 희망한다. (인천신문, 2010.7.6)

 
 
 

공동체·인간

디딤돌 2010. 5. 18. 00:30

 

선학지하철 역에서 버스종합터미널 방향으로 걸으면 오른편 길가에 비닐하우스 여러 동을 엮은 화원들이 나오고 조금 더 걸으면 인천 시내에서 얼마 남지 않은 농토가 제법 넓게 펼쳐진다. 올해 이맘때면 밭이랑에 검은 비닐멀칭이 덮이고 고추와 상추 묘가 심겨야 할 텐데, 올봄의 날씨가 하도 수상해서 그랬는지, 아니면 개발 신호가 나와 그런지 조용하기만 하다. 어느새 도시 한 복판이 된 농토라서 땅값이 여간 아닐 테니 금싸라기 땅이다. 농사 이외의 개발행위가 제한된 지역이 아니라면 농사 수입으로 세금을 감당하지 못하겠지. 개발 압력이 매우 드셀 지역이라는 예상이 충분히 가능하겠다.

 

아닌 게 아니라 최근 개발이 예정된 모양이다. 고추 묘를 심었던 밭 한가운데 대책위원회 펼침막을 붙인 작은 비닐하우스가 새로 섰고 그 안에 접이식 의자와 탁상이 놓여 있지 않은가. 주민 동의 없는 토지수용을 결사반대한다는 결의를 담은 위원회 사무실은 찾는 이 거의 없이 밭 한가운데 덩그러니 서 있는데, 주민들은 개발 자체를 반대하는 것 같지 않다. 보상 조건을 조율하려는 의지로 보인다. 여기에도 아파트가 들어설 건가. 도시의 여백 한 군데가 또 사라지겠군. 시민들은 얼마나 답답해질까. 개발보다 수지가 작다고 이렇듯 도시의 농토를 없애버리면 정작 시민과 후손 들은 무엇을 먹고 살아야 하나. 농촌의 땅값도 전 같지 않다. 농지를 구입한 귀농인은 농산물로 융자금의 이자도 나오지 않는다던데, 수입농산물이 더욱 늘어야 하나.

 

지난 3월 21일 정부는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농업전망 2010’ 보고서에 의거, 현 추세라면 10년 뒤에 우리 농지가 목표치 이하로 줄어들 수 있어 ‘식량안보’에 빨간 불이 들어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현재 27퍼센트인 식량 자급률을 30퍼센트로 끌어올리려면 최소한 165만 헥타르의 농지가 확보되어야 하는데 2008년 기준 176만 헥타르였던 농지가 10년 뒤에 17만2천 헥타르가 줄어 목표치에 미달한다고 한국농촌경제연구소가 전망했다는 거다. 도로와 같은 사회간접시설과 세종시, 기업과 혁신도시의 부지에 대규모로 편입되면서 나타난 현상으로 분석하는 정부는 개발이 거의 마무리되고 사회간접시설의 기반도 충분히 확보한 만큼 당분간 농지 전용은 없을 것으로 예측했다. 다행인긴 한데 정부는 갯벌 매립지의 일부가 농지로 활용될 것이라는 기대도 덧붙였다.

 

언뜻 정부가 우리의 고질적인 식량 사정과 농지 부족을 걱정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마음이 흔쾌하지 않다. 30퍼센트의 식량자급도 채우지 못하면서 농지보전 운운하다니. 자급 30퍼센트 이하가 되면 빨갈 불이 켜지는 식량안보는 무슨 이유로 30퍼센트가 넘으면 괜찮아진다는 걸까. 현재 우리가 먹는 식량의 70퍼센트 이상을 가깝거나 먼 외국에서 거대한 배나 비행기로 크거나 작은 돈을 부담하며 운반해야 한다. 그런데, 수입 양이 69퍼센트 이하면 안전하고 71퍼센트 이상이면 비상이 걸리는 이유에 대한 납득 가능한 설명은 없다. “식량 자급률 목표치를 높인다면 식량안보를 위한 최소 농지 확보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다”고 여전히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을 편 농촌경제연구원의 담당 연구위원은 “농지를 최대한 보전하도록 유도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집행돼야 할 것”이라고 희망사항을 전했지만 우리 정부는 경각심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30퍼센트 미만의 식량 자급률은 내일을 대비해 진정 참을 수 있는 수준일까. 분명한 것은 국제사회에 식량 부족을 해마다 호소하는 북한의 식량 자급률이 우리보다 월등하다는 건데, 우리는 언제까지 북한보다 사정이 나을 수 있을까. 필요한 식량을 보유한 외화로 언제든 충분히 구입할 수 있다는 안도감이 알량한 30퍼센트 자급률로 식량안보를 확신하게 만든 걸까. 그런 가정은 수출국이 항상 대기하고 있다는 전제가 있어야 가능할 텐데, 지구온난화가 견인하는 지구촌의 사정은 이미 전 같지 않다. 자국 사정이 불안해도 남의 나라에 제 식량을 흔쾌히 퍼줄 국가가 과연 몇이나 될까. 경작지의 사막화는 더욱 광범위해지고, 지나친 화학농법은 세계 식량의 생산량을 점점 감축시키는 실정이다. 그 뿐인가. 화학비료와 농약의 가격을 끌어 올릴 석유위기는 농작물 운송과 보관 비용을 상승시키면서 국제 식량 가격과 연동될 텐데, 수입으로 확보하려는 우리의 ‘식량 안보론’은 지나치게 한가로운 게 아닐까.

 

아무리 많은 돈으로 협상하려 해도 유권자의 눈치를 살펴야하는 국가의 지도자라면 모자라는 자국의 식량을 남의 나라로 넘기지 않을 것이다. 거대 창고를 소유하는 기업은 은근히 수출하려 들지 모르지만 그 나라 정부가 말릴 게다. 평소 남는 밀을 수출하던 카자흐스탄은 몇 년 전, 기상악화로 생산량이 줄자 긴급 수출관세로 해외 반출을 억제한 바 있다. 그러자 선물 거래로 곡물 가격을 조절하는 투기세력의 준동으로 국제 밀 가격이 일제히 수직상승했는데, 우리의 외환은 언제나 쾌청한가. 외국의 투기자본이 물러서는 순간 갑자기 쪼들려지는 우리의 구조에서 70퍼센트가 넘는 식량의 해외 의존은 내일을 걱정스럽게 한다. 최근 의식 있는 세계의 농업 활동가들은 ‘식량안보’가 아닌 ‘식량주권’을 제창한다. 식량기지를 주권 차원에서 자국 내에 확보해야 한다는 과제를 말하는 거다.

 

정부는 갯벌 매립으로 확보될 농지가 있다는 점을 덧붙였지만 그 정도의 면적은 식량주권에 턱없이 모자라지만, 갯벌이 가진 식량 기지 가치는 매립으로 사라졌다는 점을 상기하지 못했다. 우리 해양연구소는 10여 년 전, 육지의 농지로 효율이 가장 높은 논과 비교할 때 갯벌에서 생산되는 어패류는 칼로리로 10배, 가격으로 3배 이상이라는 연구결과를 내놓지 않았던가. 통일을 대비해 농지를 확보하겠다는 둥, 개발로 사라지는 농지만큼 보전할 것이라는 둥, 약속을 남발했던 정부의 새만금 간척공사는 대부분의 부지를 역시나 개발하는 것으로 결론을 냈다. 농번기가 따로 없고 특별한 장비나 기술이 없어도 우리 밥상을 풍요롭게 보장해준 갯벌은 식량주권 뿐 아니라 지구온난화를 가장 효율적으로 억제한다. 게다가 더워진 바다에서 전에 없이 빈번해진 너울성 파고를 육지에 도달하기 전에 완충해준다. 지구온난화 시대에 더욱 소중한 갯벌을 매립하고 식량안보 운운하다니. 손바닥만큼 남은 갯벌마저 매립하지 못해 안달하는 인천 역시 단기 수익을 위해 내일의 삶을 저당한 선조였다는 후손은 원망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수도권의 과밀화 억제를 위해 지방도시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명제에 동의하지만 마냥 반길 수는 없는 지점이 있다. 기업도시, 혁신도시 그리고 세종시 들을 위해 멀쩡한 농지를 반드시 매립해야했나. 기존 주거공간을 얼마든지 보완할 여지는 없었나. 그나마 이제 농지 훼손이 당분간 없을 거라 확인해주니 다행이라면 다행인데, 지방자치단체마다 ‘보금자리 주택’이라는 이름으로 추진하는 그린벨트 개발행위는 농지 파괴와 무관한가. 어지럽게 흩어진 비닐하우스는 시민들이 주로 먹는 잎채소를 재배한다. 비닐하우스가 지저분하다면 사회적 합의를 거쳐 깨끗하게 개선하면 된다. 잎채소는 우수한 식량이다. 수입 잎채소에 번번이 기준치 이상의 농약이 검출되는 마당에 정부는 ‘4대강 사업’의 일환이라며 우리 유기농의 역사이자 산실인 팔당마저 파괴하려 든다. 자전거도로와 위락시설을 위해 유기농산물 단지를 파괴하려는 정부의 행위는 식량주권의 차원에서 용인될 수 있을까.

 

지금 눈이 있다면 ‘4대강 사업’ 현장을 환경운동가들과 둘러보고 귀가 있다면 그 처참한 결과가 후손에 미칠 악영향을 생태학자와 수리학자, 그리고 인문학자 들에게 들어볼 필요도 있다. 그들은 자신의 이권을 탐하는 게 아니라 후손의 내일을 걱정한다. 강물을 정화할 뿐 아니라 밀물고기의 산란장이 되는 바닥의 모래와 자갈은 배가 다닐 정도의 깊이인 최소 6미터 이상 준설되고 있다. 그로 인해 드러난 처참한 광경은 이 나라의 생태계는 물론이고 역사와 문화의 종말을 연상케 한다. 심각한 건 작업자들이 과로로 쓰러질 지경으로 밤새 퍼올린 토사가 인근 농지에 막대하게 쌓인다는 거다. 미국 기준치보다 높은 중금속과 독성물질이 농축된 토사를 정화 처리 없이 6미터 이상의 높이로 농지에 안정장치 없이 쌓아 놓기만 한다면 식량주권은 물론, 정부가 되뇌는 식량주권에도 역행할 게 분명하다. 우리는 시방 선조가 온전히 물려준 4대강과 주변의 풍요로운 농지를 치명적으로 손상시키는 생태적 범죄, 후손에게 돌이킬 수 없는 역사적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우리의 농지는 10년 뒤에 부족해지는 게 아니다. 현시점에서 부족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없다고 보아야 옳을 지경이다. 식량주권의 확보를 위해 식량기지를 확보하려 최대한 노력해야 한다. 기존 농지의 절대보전은 물론이지만 활용할 수 있는 농지 자원을 세심하게 살펴 서둘러 확보해야 한다. 골프장이나 목장으로 사용하는 부지를 건강한 농토로 전용하는 방안도 연구할 가치가 있을 것이다. 갯벌 매립의 중단은 물론이고 기존 간척지라도 둑을 헐어 갯벌을 복원하는 일도 멀지 않은 내일 다급해질 게 틀림없다. 아무튼, 당장 후손의 안전한 생존을 위해 농지 회복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올봄의 날씨가 유난히 추워 제대로 농촌은 씨앗을 제대로 뿌리지 못했고, 냉해를 입은 과수원에 꿀벌이 찾지 않았다는데, 이렇듯 기상이변이 심화되는 이때, 농지의 확보처럼 시급한 일은 없을 것이다. 10년 뒤를 걱정할 만큼 절대 한가롭지 않다는 거다. (인천in, 2010.5.?)

 
 
 

공동체·인간

디딤돌 2009. 5. 18. 01:33

 

재작년 황사 발원지의 실상을 눈으로 확인하고자 인천환경원탁회의 일원으로 찾은 이래 올해가 두 번째 몽골 방문이다. 유기질을 거의 잃어 모래나 다름없는 땅에 뿌리가 들뜬 풀이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는 모습, 그 땅으로 몰려가 발로 모래를 긁어 풀을 뿌리까지 먹어대는 양과 염소 떼를 재작년에 보았다. 이윽고 작년, 재작년 방문을 계기로 인천환경원탁회의는 노도와 같은 물줄기가 모래땅을 뒤엎듯 초원을 파헤치며 종으로 횡으로 사람의 삶터까지 파고드는 사막화를 어떡해든 막아보자는 행동에 인천시민도 동참하게 되었다. 이른바 ‘몽골 인천 희망의 숲 식림행사’였다.

 

나무를 심는 첫해는 참석하지 못했다. 시간강사 주제에 수업을 도저히 뺄 수 없었던 건데 이번 학기에는 학생들의 양해를 얻어 다녀올 수 있었다. 다만 빠듯한 일정이 방문 전에 더 촘촘해졌고 집에 돌아오자 마감을 기다리는 원고가 꼬리를 물고 있다는 사실을 통감해야 했다. 일상에서 비웠던 일주일은 내일의 생각과 행동을 풍부하게 할 게 분명한데, 성큼 앞당겨진 마감시간으로 몸과 마음이 당장 조급해진 것이다. 적막 속에서 천천히 흐르던 몽골의 시간은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다.

 

잠들 틈 주지 않으며 물수건과 땅콩과 기내식과 커피를 종용하고, 비행기 바퀴 내리기 직전까지 면세품 팔던 승무원들은 새벽에 내려 며칠 푹 쉴 틈이 보장되겠지. 공항에서 첫 지하철로 집에 도착해 아침 먹고, 쌓인 우편물 정리하고, 메일 확인한 후 답장 보내고, 씻자마자 오밤중까지 편집회의에 참석해 지쳤어도 몸을 추슬러 책방에 들려야 했다. 황사의 원인을 분석하기보다 몽골 사막을 몸으로 체험한 이의 감성을 호흡하고 싶었다. 이틀 나무심고 하루 시내를 돌아다닌 우리가 도저히 느낄 수 없는 몽골의 진면목을 늦게라도 공유하고 싶었다.

 

2007년 여름, 오후에 당도한 울란바타르는 우리의 완연한 봄처럼 싱그러웠는데, 공항을 빠져나오자마자 코를 자극하는 매캐한 공기는 화력발전소가 원인이었다. 이번엔 그 정도가 더 심해진 느낌이다. 시커먼 연기를 내뿜는 중고 트럭과 버스는 여전히 한국산이 대부분이지만 승용차는 2년 전과 달리 일제가 훨씬 많아 보인다. 스포츠 유틸리티 차량도 눈에 띄게 늘었다. 해외 송금이 아무리 많아도 아직 그답지 않을 텐데, 말 타던 사람에게 자동차에 대한 욕구는 어쩔 수 없는 건가. 가축 출입이 허용되지 않는 시내는 언제나 막힌다.

 

80명이 넘는 인원이 한꺼번에 움직이는 건 아무래도 복잡했다. 출발에서 도착까지, 공항과 호텔과 게르와 식당과 상점을 들고나거나 버스를 오르내릴 때마다 반복하는 인원파악은 베테랑 가이드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일행의 절반 이상은 마음보다 몸이 먼저인 중고등학생이 아닌가. 여비를 감당한 집안 덕을 본 그들은 애초 높은 자원봉사 점수에 마음이 빼앗겼을 수 있다. 하지만 아이들은 몽골 또래와 벅차고 뿌듯했던 작년의 체험을 돌이키고 싶었고, 몽골 다녀온 뒤 한층 진지해진 자녀가 제 성적을 쑥쑥 끌어올리는 걸 본 부모도 선뜻 동의했다고 한다. 그래서 학생들이 행사의 주인공이 되었다.

 

재작년에 묵었던 한국 자본의 선진호텔은 여러모로 안정된 느낌이었다. 규모도 투숙객도 늘었고 늦은 시간의 스낵바에 손님이 남아 있었지만 무엇보다 특급호텔답게 눈과 코를 찌르던 새집증후군이 사라져 좋았다. 피곤한 가운데 회의실에 모여 인사 나누고 잠자리에 든 시간이 새벽 2시. 행사 주체인 인천환경원탁회의를 비롯해 진행을 맡은 인천지역환경기술센터, 그리고 인천시 공무원과 연관 연구기관, 또한 언론사에서 30여 명의 어른이 참여했는데 한나라당 조진형 의원도 시간을 냈다. 아무래도 어른보다 수원과 광명에서 온 학생과 40여 명의 인천 중고등학생이 많은 나무를 심을 것이다.

 

회랑처럼 좁다란 3500킬로미터의 숲으로 진전되는 사막화를 차단하려는 그린벨트 사업은 몽골 정부에서 능동적으로 수행하는데 한계가 있다. 부족한 건 정부예산만이 아니다. 나무를 심으려는 의지가 유목에 익숙한 몽골인에게 그리 절박하지 않고 무엇보다 동원할 인원이 턱없이 부족한 것이다. 유목문화를 수천년 지켜온 몽골인에게 더욱 심각해지는 최근의 황사는 재앙에 가깝다. 목축에 방해가 되더라도 이제 사막화를 막기 위해 나무를 심어야 한다는데 동의할 정도가 되었지만 인구 280만 중에 120만이 수도 울란바타르에 몰려 있는 몽골은 그린벨트가 필요한 지역에 사람이 몹시 드물다.

 

울란바타르 인근 성긴 지역과 서쪽으로 200여 킬로미터 떨어진 바양노르솜의 ‘한몽 희망의 숲’은 희망대로 숲이 완연해져도 그린벨트 3500킬로미터에 비하면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겠지만, 시작은 반이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2만 그루 심고 내년에도 행사가 이어진다면 제법 우거진 숲을 보게 될지 모른다. 사막화는 그 숲을 뚫지 못할 것이다. 인천에서 분 나무심기 바람이 인천 이외의 지역을 넘어 한국과 일본의 시민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면 몽골 그린벨트의 녹색 띠는 더욱 길고 두툼해져 그냥 두면 국토의 90퍼센트 이상 사막으로 변할지 모를 몽골의 초원을 푸르게 보전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그 시작을 열었는데, 아주 반갑고 다행인 것은 학생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행사가 시민들의 모금 덕분에 힘을 입는다는 사실이다.

 

물론 나무를 심는다고 숲이 저절로 조성되는 건 아니다. 일교차가 심할 뿐 아니라 건조한 몽골 사막에서 뿌리가 깊게 내리기 전까지 보살피지 않으면 나무는 말라죽고 만다. 적어도 3년 동안 1주일에 두 차례 물을 주어야하고 양이나 염소와 같은 가축이 나무를 갉아먹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 몽골의 시민들, 그 중에 학생들의 관심과 역할이 중요하다. 사실 사막화의 책임은 몽골과 거의 무관하다. 지구온난화의 원인과 같은 맥락으로 상당 부분 우리와 일본을 비롯한 동북아와 세계가 책임을 공유해야 한다. 우리의 나무심기는 그런 반성의 자세로 비롯되어야 하지만 무엇보다 행사를 계기로 몽골과 진한 우정이 이어지기를 희망해야한다.

 

이번 행사를 인천환경원탁회의와 공동으로 주관하는 ‘푸른아시아’는 몽골에 나무 심는 시민운동의 시원을 마련했고, 어렵사리 노하우를 개척한 우리나라의 시민단체다. 몽골 정부에서 전폭적인 신뢰를 보내는 푸른아시아가 나무를 심는 노하우를 우리에게 아낌없이 전수했기에 ‘인천 희망의 숲’은 나무를 건강하게 채워나갈 수 있었다. 더구나 푸른아시아는 우리에게 묘목을 알선하고 장비를 마련해주었을 뿐 아니라 몽골과 우리 학생들이 함께 나무를 심도록 주선해주었다. 그 또한 두 나라의 내일을 위한 나무심기가 아닐 수 없었다.

 

성긴에서 첫날 나무 심는 일은 쉬웠다. 누구였을까. 구덩이도 미리 파놓았고 모래땅에 부을 물과 거름이 벌써 준비해두었다. 몽골과 우리 학생들은 비록 말이 통하지 않아도 손짓발짓과 즐거운 표정으로 의사소통이 활발했고, 손잡고 나무를 심었다. 가는 나무를 50센티미터 깊이의 구덩이에 넣고 흙과 거름을 덮어 발로 밟고 그 위에 두 양동이의 물을 붓는 일련의 과정을 뙤약볕에서 함께 해나가며 우정을 나눴다. 그 와중에 이름을 교환한 학생들은 간단한 말은 물론이고 춤과 노래까지 서로 배워, 준비한 나무를 다 심도록 격이 없이 가까워졌다.

 

좁은 포장도로와 초원을 이리저리 누비는 비포장도로를 먼지 일으키는 좁은 버스에서 6시간이나 견뎌야 도착하는 바양노르에서 학생들은 처음 잡는 삽으로 땅을 파면서도 힘들어하지 않았다. 오히려 몽골학생들과 어찌나 잘 어울리며 나무를 심는지 뒤에서 어정대던 어른 중의 한 사람이던 내게 진한 감동을 주었다. 뙤약볕에서 어울려 땀 흘리다 헤어질 때 미리 준비한 선물을 교환하면서 서로 주소를 적는 모습에서 희망을 느꼈다. 작년에 참석한 학생은 다시 만난 몽골 학생과 반가움을 나누고, 처음 만났어도 기념사진 찍고 헤어지면서 눈물을 머금었다. 집에서 정성껏 준비한 장신구를 남몰래 가지고와 버스 앞에서 전하는 몽골 학생들의 눈매에서 진한 아쉬움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몽골에 나무를 성공적으로 심은 것이다. 몽골 학생들은 나무들을 잘 보살필 것이다. 1주일에 두 번 물을 주고 한국 학생들과 편지를 주고받을 것이다.

 

이틀 동안 나무를 심은 일행은 울란바타르 인근의 테를지국립공원을 다녀온 뒤 시내에서 자연사박물관과 수흐바타르 혁명광장을 둘러보고 국립민속극단의 수준 높은 공연을 보았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유네스코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테를지국립공원에 한국인의 흔적은 완연했다. 골프장도 한국인 소유였지만 자질구레한 물건을 파는 상인들은 한국어를 알아듣고 호객에 여념이 없었다. 관광버스가 서자마자 어디선가 나타나는 몽골인들은 매사냥용 매를 잡아들거나 쌍봉낙타를 타라며 조르고 있었다. 물론 2달러를 반드시 받았고. 토끼를 잡던 매와 고비사막에 사는 쌍봉낙타가 앵벌이가 된 셈이었다.

 

울란바타르 시내는 재작년에 없던 건물이 속속 들어섰고, 또 올라가고 있었다. 일본과 중국의 지배에서 벗어나게 도와준 구소련에 의해 고유 키릴문자와 존댓말과 젓가락 문화를 잃은 젊은 몽골인들은 행동과 표정이 자유분방했지만, 소련 멸망 후 자리 잡은 자본주의는 빈부격차를 벌려놓았고 시민들의 마음에 자신의 국가가 후진국이라는 인식이 스며들고 말았다. 그래서 외국인 소유의 빌딩이 솟는 걸 자랑스러워하고, 수입한 고물차로 거리가 막혀 매연이 매캐해도 참아내는 것 같았다. 2년 만에 다시 찾은 사막화되는 초원은 아직 그대로인데 몽골 수도의 강산은 변했다. 이미 우리가 겪었고 앞으로 피할 수 없을 환경재난이 몽골에서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건만 확신하기 어렵다.

 

‘몽골’은 용감하다는 의미를 가진다고 한다. 아름답고 순박하며 자신의 문화에 자존심을 잃지 않던 모습을 보전하길 바란다고 당부한다면, 그들은 우리의 당부를 어떻게 생각할까. 알 수 없지만, 경제학자 칼 폴라니는 일찍이 이윤을 앞세우는 개발은 내일을 어둡게 한다고 지적했다. 산업화로 인한 환경오염만이 내일에 대한 걱정의 전부가 아니다. 지각없는 개발로 식량기지를 없애버린 오늘, 내일을 기준으로 우리는 이미 돌이킬 수 없게 버림받지 않았던가. 우리는 앞으로 몽골의 도움을 애타게 청하는 신세가 될지 모른다.

 

작년부터 ‘희망의 숲’을 몽골에 가꾸고 있는 우리는 후손의 건강한 내일을 위해 두 나라의 우정이 지금보다 깊어져야 한다는 인식에 동의할 필요가 있다. 이제 그 시작의 큰 걸음은 내딛었다. (작가들, 2009년 여름호)

큰 일 하고 오셨군요, 심은 나무가 울창한 숲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