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인천

디딤돌 2013. 6. 25. 17:50


겨울이 길고 추우면 여름도 길고 덥던가. 지난겨울이 유난히 길어 제철을 만난 밴댕이가 볼음도 찬 바다에서 아직 넘실거리지 않는다는데, 도시는 벌써부터 초여름 더위에 물씬 젖는다. 한여름이 얼마나 뜨거울 건지 벌써 땀이 맺힌다. 쌀쌀한 아침저녁에 잠깐 걸치던 얇은 저고리는 저만치 치웠다. 이제 셔츠만 입어도 어색하지 않겠지.


30분 일찍 나와 지하철 서너 정거장을 걷는 버릇을 위해 가벼운 옷차림이 편한데, 이맘때 도시를 걷는 일은 썩 상쾌한 건 아니다. 사계절 불편하게 하는 자동차 배기가스와 소음이 초여름 더위와 만나기 때문인데, 더 있다. 가로수 잎사귀들이 활짝 펴졌을 때부터 생명을 저주하는 냄새가 난다. 한낮의 볕이 뜨겁지 않아도 자전거도로를 피하며 가로수 그늘을 따라 걷는데, 농약 냄새가 여전하다. 봄비가 적지 않게 내렸건만 얼마나 끈적끈적하게 뿌렸는지, 가로수 잎사귀를 적신 농약이 완전히 씻기지 않았다.


나뭇잎이 잎눈을 벗어나 활짝 퍼질 즈음, 가까운 자연공원에 둥지를 튼 새들은 알에서 깨어난 새끼들을 부지런히 먹여야 한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며 보채는 새끼들은 점점 더 큰 먹이로 만족시켜야 하는데, 마침 나뭇잎을 갉는 애벌레들도 무럭무럭 커진다. 자연공원의 새들은 요즘 사람들을 전처럼 경계하지 않는다. 해코지하는 이 거의 없으니 근린공원의 조경수나 가로수로 부지런히 찾아와 살이 토실토실 오른 애벌레들을 물고 둥지로 날아가야 한다.


줄기의 두께에 비해 많은 가지를 여러 층으로 넓게 펼치는 나무들은 자라는데 필요한 광합성을 충분하게 한다. 그만큼 펼쳐놓은 이파리들이 많다. 무수한 잎사귀들이 태양빛을 차지하니 나무 아래 그늘이 지고 시원하다. 햇살이 뜨거워지는 초여름부터 한여름 광합성에 지친 잎사귀들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이른 가을까지, 가로수 그늘을 따라 걷는 게 아무래도 낫다. 세상의 나무들은 애벌레에게 뜯겨나갈 것을 감안하고 잎사귀를 무성하게 단다. 다만 나무 밖에서 쉽사리 눈에 띄지 않는 가지에 둥지를 치기도 하는 새들이 상당한 애벌레를 먹어치우리라고 기대하면서.


가로수 잎사귀가 아직 부드러울 때 구청은 살충제를 원료로 하는 농약을 뿌린다. 그때 뿌려야 애벌레가 잘 생기지 않는다는 걸 경험적으로 잘 알기 때문이겠지만, 똑똑하다 스스로 믿는 사람들의 행동이지만, 생각은 그리 깊은 것 같지 않다. 살충제 냄새로 벌레가 없으니 새들이 찾지 않지만, 사람보다 코가 예민한 새들은 살충제가 살포된 지역을 한동안 얼씬도 하지 않는다. 나뭇잎에 묻는 농약이 빗물에 잘 씻겨나가지 않도록 끈적끈적하기에 냄새는 여름이 다가와도 가시지 않고, 자연공원의 새들은 사람들이 해코지 하지 않아도 도무지 가로수 근처로 오지 않는다.


오래 전 효과 있었던 모기약이 소용없듯, 사람이 개발한 농약은 애벌레를 결국 이기지 못한다. 해마다 반복하는 살충제는 내성을 가진 애벌레를 늘려놓았다. 초록의 잎사귀가 가벼운 바람에 흔들릴 때 살포하는 살충제에 내성을 가진 애벌레는 냄새에 아랑곳하지 않고 나뭇잎을 열심히 갉아먹지만 새들은 찾아오지 않는다. 얼마 지나지 않으면 늘어난 애벌레에 점령된 가로수는 무성했던 이파리를 잃어 성겨지고, 가을이 시작하기도 전에 그늘을 잃어버린다. 성장을 멈추는 것이다.


전용 트럭에서 살포하는 살충제는 나뭇잎 아래 집중 들러붙거나 보도블록을 적신다. 햇볕에 습기를 잃은 살충제는 바람이 일면 날아오르고, 보도블록 위를 걷거나 뛰는 사람의 코 높이로 날아오른다. 보행자도로에서 자전거 타는 이의 코를 자극하는 살충제는 근린공원에서 아장아장 걷는 아기의 코를 예외로 여기지 않는다. 더욱 강력해지는 모기약이 사람들, 그 중 아이들의 건강을 위협하듯, 살충제의 독성을 높이면 근린공원에서 공을 차거나 자전거를 타는 어린이의 폐를 공격할 게 틀림없다.


가로수와 근린공원에 뿌리는 살충제를 규정대로 희석했으며 분무하는 도중에 사람의 접근을 차단한다고 구청 담당자는 주장하겠지만 현장은 그와 다르다. 인부를 감독하는 공무원이 어디에 있었던가. 살충제를 살포하는 차량이 주변 차도와 보행자도로를 폐쇄한 적은 아예 없다. 지나가는 자동차의 열린 차창으로 들어갈 가능성이 큰 살충제는 한동안 사람의 코를 저주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는다.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기승을 부리며 퍼지는 살충제 성분은 빗물을 타고 하수종말처리장으로 가서 미생물의 생장을 방해할 것이다. 그뿐인가.


아파트단지의 벽을 장식하는 덩굴장미가 붉은 꽃잎을 펼칠 때, 근린공원으로 이어지는 가로수 아래 아장아장 걷던 아기가 무언가 밟으려 발을 꽁꽁 내딛는 게 보였다. 유모차를 밀며 다가온 엄마는 선글라스를 벗더니, “아이, 더러워!”하며 아기 손을 낚아챘다. 다가가 보니 초록색 애벌레가 바닥에서 구물거렸다. 밟히지 않은 애벌레는 다행히 터지지 않았는데, 터졌다면 아기의 고운 신에 푸른 물이 들었겠지. 더러워진 걸까?


근린공원에 애벌레가 생기면 민원이 득달같다고 한다. 아이들이 무서워한다면서. 애벌레는 가만히 있는데, 어른이 더 무서워하는 건 아닐까. 가로수와 근린공원의 부드러운 잎사귀를 갉는 애벌레는 더럽지 않다. 그러기에 자연공원의 새들이 자신의 새끼들에게 먹이는 게 아닌가. 그런 애벌레에 병균이 있겠는가. 사람을 감염시키는 세균은 사실상 사람 손에 가장 많다.


떨어진 애벌레를 보고 꽁꽁 밟으려는 아기를 불러 세워, “아이 가여워라, 애벌레가 나무에서 떨어졌네. 예쁜 나비가 되어야 하는데, 우리 다시 나무 위로 올려줄까?”하고 엄마가 눈을 마주보는 다정하게 말한다면 어떨까. 밟으려했던 아기는 그 순간 생명의 소중함을 알게 될 텐데. 사람은 태어나면서 악하다는 성악설성선설로 바뀔 수 있었을 텐데. 그 아기는 자라면서, 장차 나비가 되던 나방이 되던, 나뭇잎에 애벌레가 적당히 있어야 너무도 건강하고 새들이 근린공원으로 날아온다는 걸 깨닫게 될 텐데.


장마가 시작되기 전까지 가로수 잎사귀를 충분히 씻어낼 비가 내리지 않았는지 그늘진 보행자도로에서 농약 냄새를 피하기 어려운데, 스며드는 빗물을 피해 밖으로 나온 지렁이가 햇볕에 몸이 마른다. 한데 개미들이 전혀 모이지 않는다. 참새도 직박구리도 한 마리 보이지 않는다. 어서 장마가 와야겠다. 장마 끝날 무렵 다시 살충제 뿌리는 건 아닐까. 그때 살충제 뿌리지 말라는 민원이 빗발치면 좋겠다. 구구절절이. (작은책, 20137월호)

산에는 살충제를 뿌리지 않아도 숲이 우거지기만 합니다.
살충제를 뿌리는 건 자연을 망가뜨리는 우매한 짓이지요. ㅠ.ㅠ
저도 가끔 나무에 뭐하러 약을 치지하고 생각할 때가 있었는데 결과적으로 새들만 떠나가고 좋지 않군요.

공원이나 가로수 밑도 잡초가 자라면 사람들은 관리하지 않는 것으로 여기고 싫어하는 것 같아요. 저는 잡초가 자연스레 자라면 그게 숲이 아닌가 싶은데 사람들은 뭔가 깔끔히 정리된게 좋은가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