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동물

디딤돌 2008. 11. 9. 09:37

 

에일 정도는 아니지만 뺨이 시리도록 차가운 11월 중순. 서쪽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석양이 찬란한 빛을 잃어갈 즈음, 하늘로 일제히 날아오르는 가창오리 떼는 아까부터 기다리던 탐조인들을 탄성에 젖게 한다. 안면도가 파고를 막아주는 천수만, 그 천수만과 연한 서산 A지구와 B지구 간척지는 1990년대 이후 황새, 노랑부리저어새, 흰꼬리수리와 같은 10여 종의 천연기념물, 기러기와 청둥오리를 비롯한 수십 종의 겨울철새들이 찾는 안식처가 되었다. 그중 가창오리는 20만을 헤아린다.

 

1989년 완공되면서 모습을 광활하게 드러낸 서산간척지는 농경지가 3000만평에 이르고 1300만평에 달하는 두개의 담수호가 펼쳐진다. 간만의 차가 큰 만큼 물살이 거세 어려움을 겪을 때, 폐선을 동원해 물길을 차단하고 물막이를 마무리한 이른바 ‘정주영’ 공법은 지금도 획기적 토목공사로 손꼽히는데, 그래서 생긴 간척지 중 B지구의 부남호에 해마다 가창오리가 떼를 지어 찾아온다. 부남호의 가창오리들은 추위가 깊어지면 물이 얼지 않는 금강하구로 내려가는데, 이때 금강하구에는 다른 습지에서 날아온 가창오리까지 50만 마리 넘게 운집해 형용할 수 없는 경이를 연출한다.

 

수면 가득 점점이 앉은 무리. 그 한 군데에서 몇 마리가 물을 박차면 기다렸다는 듯 연이어 수면을 스치며 날아오르는 가창오리 떼는 탐조객의 뇌리에 지워질 수 없는 기억을 남긴다. 가없는 호수를 덮을 듯 퍼졌다 앞서는 무리를 따라 물결치듯 휩쓸려 솟아오르고,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다시 방향을 바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부셔지는 파도와 같은 날개소리를 하늘에 남기며 호수 저편에서 이편으로, 이편에서 저편으로 휘돌아 감다 다시 소용돌이치며 방향을 바꾼다. 블랙홀에 빠지려는 듯, 하늘의 좁은 통로로 몰려들다 이내 부챗살처럼 활짝 퍼지던 거대한 무리는 자석에 끌리는 듯, 방향을 바꾸며 하늘 저 꼭대기까지 치솟아 오르다 펼쳐지기를 5분 남짓. 누구의 지휘를 받는지 호수의 여기저기를 파도치듯 교차하면서 한 마리도 부딪히지 않는 경이를 눈을 크게 뜨고 숨을 죽인 탐조객에서 아낌없이 선사한 후, 어둠 저편으로 사라진다.

 

놓치고 싶지 않은 순간들. 벅차오른 가슴을 주체할 길 없는 탐조객들은 시린 뺨으로 흐르는 눈매의 이슬을 닦을 엄두도 내지 못하고 아쉬움 속에 발길 돌리는데, 문득 시장기를 느낀다. 가창오리들도 멀지 않은 농경지로 낙곡 주우러 떠났을 것이다. 밤에 먹이를 먹는 가창오리들은 동 트기 전에 다시 화려한 군무를 펼치며 돌아올 텐데, 그때까지 기다릴 수 없는 탐조객은 삼삼오오 버스에 올라 식당으로 자리를 옮긴다. 압도되었던 연속 장면을 잊고 싶지 않은 이들은 상기된 얼굴로 비로소 말문을 연다. “몇 마리나 되었을까요?” 가창오리 떼가 몇 마리인지 궁금했던 게 아니다. 군무의 크기를 헤아리기보다 조금 전의 감동을 되새기려는 의지다.

 

2004년 1월, 한국과 일본의 전문가들은 전국 14군데 월동지역에 65만 8천 마리의 가창오리가 우리나라를 찾았고 그 중 90퍼센트 이상이 금강에 내려앉았다고 보고했다. 실로 대단한 숫자다. 한데, 환경부에서 보호야생동물로 지정한 가창오리는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의 적색목록에 포함돼 있으며 ‘멸종위기 동식물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에 수록되었을 정도로 희귀하다. 여름이면 러시아와 몽골의 바이칼호수 근처에서 번식하고 겨울에 90퍼센트 가까이 우리나라의 습지로 날아오는 가창오리는 세계적으로 80만 마리에 가깝건만 전문가들은 왜 멸종을 걱정할까. 서산간척지와 금강하구는 습지가 넓을 뿐더러 주변에 기계로 경작하는 논이 넓어 낙곡이 충분하다. 지방단체는 많은 예산을 감당하며 나락을 남기거나 논에 물을 빼지 않으며 보살피려 애를 쓴다. 그런데 멸종위기라니. 우리의 대표적 겨울 진객에게 무슨 변고라도 생긴 걸까.

 

국립환경과학원은 2007년 1월, 82만 마리의 가창오리를 비롯해 우리나라 내륙과 해안 습지에 사상 최대의 겨울철새가 날아왔다고 밝혔다. 가창오리는 2006년의 3배에 달했으며 2002년부터 겨울철새의 방문이 증가한다고 전했다. 국립환경과학원 측은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하다는 점을 전제로, 겨울철새 증가의 원인을 지구온난화로 들었다. 번식지가 확대되고 먹이가 증가한 걸 그 이유로 풀이하는데, 그런 반가운 일을 전문가는 왜 걱정스러워하는 걸까. 지구온난화가 우연치 않게 만든 이상적인 조건이 지속될 리 없기 때문이다. 비교적 최근에 우리나라를 찾기 시작한 가창오리는 주로 갯벌을 매립해 만든 너른 평야와 그 평야 주변에 조성한 호수에 내려앉는데, 그런 평야는 화학농법에 의존하고, 호수는 지속적으로 오염된다. 매립이 계속되면서 우리나라를 찾는 겨울철새는 얼마 남지 않는 갯벌에 내려앉거나 주변 호수로 몰려들 수밖에 없다. 밀집되면 질병이 쉽게 창궐한다. 실제로 천수만을 비롯하여 전국 철새도래지에서 조류 콜레라와 호흡곤란을 유발하는 보툴리즘균이 최근 거푸 발생해 수만 마리의 철새들이 죽어나가고 있다. 정작 문제는 이런 현상이 우리나라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몸이 40센티미터인 가창오리는 암수의 생김새가 완연히 다르다. 멀리서 보아도 드러날 정도로 얼굴이 화려한 수컷은 갈색 눈의 앞과 뒷부분을 반달 같은 노란색 깃이 태극처럼 휘감고 그 뒤를 흰 테두리가 있는 초록색 깃으로 감싸 ‘태극오리’로 불린다. 하지만 온몸이 갈색인 암컷은 수수하기 그지없다. 눈 아래 흰 점과 턱이 특색인 암컷은 수컷 무리와 섞이지 않는다면 다른 오리 종류와 구별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 가창오리는 군집성이다. 수십만 마리가 모이니 천적의 위협에서 집단을 최대한 보호할 수 있어도 군집성 조류는 집단의 크기가 줄어들면 보전이 어려워지는 특징이 있다. 100억 마리에 달했던 북미의 나그네비둘기는 백인들의 광포한 사냥으로 70만 마리로 줄었다. 뒤늦게 보호에 나섰지만 그 정도 크기로는 집단이 회복되지 못했고, 결국 멸종하고 말았다. 가창오리는 보전될 수 있을까.

 

얼마 전, 경남 창원에서 제10차 람사총회가 마무리되었다. 우리도 철새가 찾는 습지를 보전하겠다고 세계에 천명한 것이다. 가창오리의 처지에서 만족스러울지 알 수 없지만, 해마다 잊지 않고 찾아와 군무를 펼쳐주니 고맙고 반갑다. 염치없지만, 내년 이후에도 계속 찾아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전원생활, 2008년 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