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동물

디딤돌 2008. 3. 14. 20:29
 

1970년대 중반, ‘산이슬’이란 인천 출신의 여성 듀엣은 포크송 풍의 <이사 가던 날>을 발표해 인기를 크게 모았다. “이사 가던 날 뒷집 아이 돌이는, 각시되어 놀던 나와 헤어지기 싫어서, 장독 뒤에 숨어서 하루를 울었고, 탱자나무 꽃잎만 흔들었다네. 지나버린 어린 시절 그 어릴 적 추억은, 탱자나무 울타리에 피어오른다.” 가사는 그렇게 이어졌지만 인천에 탱자나무는 자라지 못한다. 온난화가 진행되고 있어도 탱자나무가 자라기에 아직 춥다.

 

정묘호란을 강화도에서 피한 인조가 성 밖에 심은 것으로 추정되는 화도면 사기리의 탱자나무는 천연기념물 79호로 보호된다. 400년 수령이 대단하기 때문이라기보다 북방한계선을 지키는 까닭이다. 남쪽 지방에서 울타리 대용으로 심었던 탱자나무는 날카로운 가시를 가진다. 그래서 집을 지키는데 그만이다. 탱자나무를 흔들던 ‘뒷집 아이 돌이’는 지금 40대를 바라볼 텐데, 모르긴 해도, 흔들리던 탱자나무에서 호랑나비가 날아올랐을 것이다. 완연한 봄날, 탱자나무 잎사귀에 알을 낳던 호랑나비가 서울로 이사 가는 각시 친구를 돌이 대신 배웅했을지 모른다.

 

조선의 문호 송강 정철은 <사미인곡>이서 호랑나비를 노래한다. 때는 망국적 당쟁이 그칠 줄 몰랐던 시절. 탄핵으로 낙향한 전남 담양군 창평에서 여인의 마음을 담아 “님이야 날인 줄 모셔도 이 님의 타시로다. 범나� 되오리까.” 하며 임금을 그리워했다고 대입 참고서는 풀이한다. 여기서 범나�는 호랑나비다. 정철의 고대광실은 탱자나무로 울타리치지 않았을까. 귀양 보낸 죄수가 달아나지 못하도록 심기도 했다는 탱자나무는 호랑나비 애벌레가 즐겨먹는다. 그래서 곤충학자는 탱자나무를 호랑나비의 기주식물이라고 유식하게 말한다.

 

탱자나무와 비슷한 귤나무도 호랑나비의 주요 기주식물이다. 나비들은 꿀을 위해 꽃을 가리지 않지만 애벌레는 아니다. 특별한 나뭇잎만 먹는다. 특정 기주나무는 그 곳에 어떤 나비가 있다는 걸 신호한다. 식목일을 맞아 햇볕 따사로운 마당에 운향과 나무를 심어보자. 잎사귀에서 냄새가 나는 산초나무와 황벽나무도 포함된다. 봄부터 가을까지 호랑나비는 집 주위를 맴돌 것이다. 지난해 늦가을부터 번데기로 지낸 애벌레는 어느새 7센티미터의 날개를 펄럭이며 봄볕을 희롱하고 있다. 이른바 ‘봄 형’이다. 그 호랑나비에게 남은 시간은 2주일. 기주식물 잎사귀에 진주처럼 영롱한 알을 하나씩 붙이려 짝을 찾아야 한다.

 

200개 넘는 알에 자신의 삶을 넘긴 호랑나비 춘형이 사라지고 일주일이 지나면 언뜻 새똥으로 보이는 애벌레가 앙증맞게 잎사귀를 갉아먹고 있을 것이다. 나비를 포함한 곤충의 애벌레는 껍질을 갈아입을 때마다 성큼성큼 자란다. 부화하고 20여 일 동안 꽉 끼는 껍질을 네 차례 벗어던진 호랑나비 애벌레는 어느덧 5센티미터에 육박하고, 토실토실한 녹색이다. 이때 새를 조심해야 한다. 뱀에 놀란 새는 뱀눈을 싫어할 터. 머리처럼 보이는 셋째 마디에 뱀눈 무늬를 드러낸 애벌레는 그동안 먹은 잎사귀의 향을 구린내로 바꿔 다가오는 천적에 가차 없이 뿌릴 것이다.

 

다 자란 애벌레는 번데기로 모습을 바꾸고, 다시 보름. 봄 형보다 훨씬 화려한 여름 형으로 변신한 호랑나비는 10센티미터에 가까운 날개를 펄럭이며 낮 시간이 따뜻한 초가을까지 여름을 희구할 것이다. 그렇게 한해 3번, 마을에 나타난 호랑나비는 우리의 이웃이었다. 어린 귤나무에 피해를 주니 과수원 주인은 미워했을지 모르지만 노래로 반기는 사람들이야 어디 그런가. 술에 담겨나 약에 쓰는 탱자를 덜 딴다 해도 호랑나비를 몰아내고 싶지 않을 것이다. 호랑나비는 구린내를 무릅쓰고 알 낳으려 애벌레에 덤벼드는 배추벌레고치벌이나 기생파리를 조심하기만 하면 되었다.

 

이를 반영했을까. 당시 무명이었던 김흥국은 ‘호랑나비’란 가요를 발표해 일약 스타로 떠올랐다. ‘앗싸! 호랑나비’로 통한 가요는 “호랑나비 한 마리가 꽃밭에 앉았는데, 도대체 한 사람도 즐겨 찾는 이 하나 없네. 하루 이틀 기다려도 도대체 사람 없네. 이것 참 속상해, 속상해 못살겠네.”로 이어지며, 흥얼거리는 시민들의 어깨를 들썩이게 했다. 김흥국은 그 노래에 힘입어 1993년 연말 ‘10대 가수’로 등극했는데, 이혜민이 작사 작곡한 그 가사는 호랑나비의 특징이 나타나 있지 않다. 다른 나비로 바꿔 불러도 무방하다. 그렇다고 호랑나비가 섭섭해 할 리 없지만.

 

아직도 자신을 10대 가수라고 능청을 떠는 김흥국이 호랑나비로 유명해졌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요즘, 남녘 시골에 호랑나비가 드물어졌다. 전에 없던 현상이다. 탱자나무 울타리가 사라졌을 뿐 아니라 귤 농장은 살충제로 흥건하니 호랑나비는 제 알을 낳을 곳을 찾지 못한다. 강이 오염되거나 시멘트로 가장자리가 정돈된 후, 민물고기가 잡히지 않자 매운탕에 넣을 산초는 수요를 잃었다. 호랑나비를 맞을 산초나무와 초피나무도 희귀해진 것이다. 아낌없는 제초제로 마을길과 논둑의 풀이 봄부터 바싹 마르니 고작 2주일 우리 눈을 즐겁게 하던 호랑나비는 꿀이 없는 마을을 떠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4월말부터 5월초까지 인파로 붐비는 ‘함평나비축제’는 올해로 10회를 맞는다. 자운영과 유채꽃이 만발한 함평천 둔치 1천500만평에서 펼쳐지는 축제는 단순히 나비를 바라보는 체험으로 그치지 않는다. 축제를 주관하는 함평군은 나비 인형을 만들며 콘서트도 즐길 수 있다고 자랑한다. 인형이나 콘서트는 축제의 부제에 지나지 않다. 중요한 건 자운영과 유채꽃 사이를 날아다니는 각종 나비일 텐데, 축제 담당자는 일찌감치 운향과 기주나무를 심어 확보한 호랑나비를 잔뜩 날렸을 것이다. 그렇다면 희망이 있다.

 

범나비에게 함께 청산가자고 노래했던 우리 조상은 문갑이나 화장대에 호랑나비 문양을 새겼다. 봄에 호랑나비를 처음 보면 그 해 운이 트고 아침에 호랑나비를 보면 그날 좋은 일이 생긴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농촌은 물론 회색도시에 운향과 나무를 심자. 담을 없앤 자리에 탱자나무를 심는 거다. 자투리공원에 산초나무와 황벽나무를 심고, 꿀이 많은 엉겅퀴나 백일홍, 라일락과 누리장나무를 곳곳에 심는 거다. 봄부터 가을까지 호랑나비가 수놓는 도시를 시민들이 만끽할 수 있도록. (물푸레골에서, 2008년 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