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에너지

디딤돌 2012. 11. 27. 17:32

   석유 없는 축제를 위해

 

미국의 저널리스트 리처드 하인버그는 파티는 끝났다고 천명했다. 그가 이야기하는 파티는 값싼 석유로 흥청거릴 수 있었던 시절의 낭비를 말한다. 치솟았던 석유 가격이 내릴 기미를 보이지 않는 이때, 세계는 석유위기 시대를 앞두고 있다. 석유가 이끈 산업사회의 광란의 축제는 머지않아 중단될 수밖에 없다고 하인버그는 근거를 들며 말한다.


가을 들판이 풍요로우면 우리는 축제를 준비한다. 음식을 저장하지 않았던 수렵채취 시절이라면 수확의 기쁨을 누리는 축제가 필요하지 않겠지만, 경작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추석이나 추수감사절과 같은 명절이 생겼다. 충분하든 그렇지 못하든, 저장할 수 있는 곡식이 갈무리된 만큼, 함께 일할 사람들과 나누며 즐기는 행사가 중요해졌을 것이다. 봄이 오면 다시 모여야 할 사람들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겨울이 길수록 봄까지 견딜 가을걷이가 요긴했다. 조상은 제 땅과 기후에 맞는 씨앗을 찾아 심고 갈무리하며 소비를 조절하고, 인구를 유지해왔지만, 석유 시대는 오랜 농경사회의 풍속도를 바꿨다. 계절 변화와 농민의 땀을 무시하는 요즘은 석유로 농사를 짓는다. 석유 덕분에 과거에 없던 가을을 풍요롭게 맞지만 그만큼 소비와 인구가 늘었다. 갈무리를 했으니 축제를 벌이지만 전처럼 신명나지 않다. 석유 때문이다.


가을걷이를 만끽하는 축제는 흥에 겨워야 당연하지만, 값 비싼 석유로 빚은 축제는 흥과 거리가 멀다. 봄부터 추수할 때까지 굵은 땀을 흘렸다면 농부는 황금빛 벌판에서 뿌듯해할 수 있겠지만, 석유 펑펑 쓰는 무거운 농기계에 앉아 땀 흘릴 기회조차 없었다면 수확의 기쁨보다 수확의 크기를 견주고 싶을 것이다. 농사라기보다, 농업에 들어간 경비보다 수확으로 챙길 대금이 많아야 당장의 생계는 물론, 내년 농사도 기약할 수 있을 게 아닌가.


석유를 사용하면서 수확량이 몰라보게 늘어날 때엔 축제가 계속될 줄 알았다. 하지만 그런 호시절은 오래가지 않았다. 요즘 농업은 농부를 만족시키지 못한다. 농사용 석유에 세금을 감면하고 농기계 구입비용의 일부를 정부가 지원해도 봄부터 가을까지, 경작에 들어가는 경비가 만만치 않다. 요즘 농업은 떠날 수 없는 농민의 피땀과 서러움으로 유지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우리가 유일하게 자급하는 쌀은 비교적 석유를 적게 소비하는 농작물이다. 정작 문제는 쌀이 아니다. 반찬이 밥보다 많은 세상에서 쌀 소비량은 줄어들기만 하는데, 반찬에 들어가는 농작물의 대부분을 수입하지 않던가. 쌀을 뺀 농작물 95퍼센트가 그렇다. 그런 농산물을 수입하려면 석유가 필요하다. 한데 그 농산물들, 언제까지 수입이 자유로울 수 있을까. 석유 가격이 치솟기 때문만이 아니다. 산업국들의 석유 과소비가 빚은 지구온난화는 지구촌의 가뭄과 홍수를 빈발하게 해 곡창지대마다 흉작이 전에 없이 심각해진다. 우리나라에 농작물을 계속 수출할 국가는 과연 있을까.


대부분을 미국에서 수입하는 옥수수는 차라리 석유다. 옥수수에서 얻는 에너지의 10배에 해당하는 석유를 경작, 운송, 저장 과정에서 소비하기 때문인데, 그 옥수수 16킬로그램을 사료로 먹으면 쇠고기 1킬로그램을 얻을 뿐이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콩과 감자도 마찬가지다. 끝 간 데 없이 농작물을 심는 미국은 농기계와 석유, 그리고 화학비료와 제초제와 살충제 없이 경작이 아예 불가능하다. 그런데 화학비료는 물론이고 제초제와 살충제 역시 석유로 가공한다.


과일도 차라리 석유다. 기계로 자동화한 북중미 대륙이나 유럽만이 아니다. 수확하는 과일 부피의 10배 이상 농약을 살포하는 우리나라도 저장과 보관, 운송과 판매에 적지 않은 석유를 소비해야 한다.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하는 엽채소와 과실채소도 사정이 비슷하다. 사시사철 수확하기 위해 가동해야 하는 보일러는 석유 과소비의 상징이다. 그렇게 재배한 농산물을 가공하면서 석유는 걷잡을 수 없이 들어가지만 온갖 첨가물이 들어가면서 몸과 생태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석유가 없다면 농축산물만 처리하지 못하는 게 아니다. 먼 바다로 나가 해산물을 잡아오지 못할 뿐 아니라 이제껏 누려온 기본적인 생활 자체를 도저히 지속할 수 없다. 옷도 입을 수 없다. 석유를 가공한 인조견만이 아니다. 대량 생산해야 국경선 너머로 수출입할 수 있는 가죽과 양털도 석유 없이 물량을 확보할 없다. 그뿐인가. 드넓은 평야에 심는 면화도 석유 없이 재배가 불가능하다.


음식과 옷에서 그칠 수 없다. 집도 지을 수 없고 많은 지역에서 겨울철을 견디지 못한다. 대부분의 건축 자재는 석유 없이 조달할 수 없고, 요즘의 집은 대부분 석유 난방에 의존하지 않던가. 석유 없었던 시절, 조상은 옷을 껴입으며 혹독한 겨울을 버텨냈지만 참을성을 잃은 지금은 전 같을 리 없다. 석유가 없으면 의식주는 물론, 온갖 편의를 포기해야 하고 석유가 인도하는 문화생활은 잊어야 할지 모른다.


박승옥은 리처드 하인버그의 주장을 빌려, 잔치가 끝나면 무엇을 먹고 살까(녹색평론사, 2007) 물었다. 그 책에서 박승옥은 흥미로운 그래프 하나를 선보인다. 가로 9.6센티미터에 서기 0년에서 4000년까지 표시한 그래프 한가운데, 그러니까 서기 2000년 전후에 지게 작대기처럼 비죽 올라온 석유 소비 곡선을 그린 그 그래프의 설명을 주목해야 한다. 석유 생성 시기까지 그래프를 좌측으로 연장하려면 종이가 17킬로미터 더 필요하다는 게 아닌가.


까마득히 오래 전 생성된 석유를 20세기 전후 마구 소비하는 인간은 그동안 광란의 축제를 벌였지만 머지않아 축제는 끝난다. 산유국과 주식 가격 하락에 민감한 석유기업에서 실상을 감추려 해도 드러나는 한계는 속이지 못한다. 하인버그와 박승옥은 더 늦기 전에 석유 없이 살아갈 방법을 찾자고 호소하기 위해 책을 써야 했다. 올해도 어김없이 갈무리 계절이 왔건만 우리는 마냥 기뻐할 수 없다.


     세계 경기가 주춤해도 석유 가격은 그리 내리지 않을 텐데, 우리의 식량 자급률은 비참하다. 고작 26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에 수출해주는 지역이 있기에 우리는 견딜만했는데, 그 시효는 충분하지 않다. 들판이 황금색이라고 안심할 수 없다. 더 늦기 전에, 우리는 석유 없어도 먹고 살았던 조상의 삶에서 내일의 대안을 찾아야 한다. 갈무리 축제가 다시 즐거울 수 있도록. (작은책, 2012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