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동물

디딤돌 2010. 7. 6. 08:48

 

삼라만상의 생명이 움트며 약동하는 계절, 여름이 성큼 다가왔다. 아파트단지 근린공원의 키 작은 나무들도 보드라운 잎사귀를 펼쳤고 어떤 나방이 될지 모를 애벌레가 나뭇잎을 갉아먹고 있다. 애벌레가 무럭무럭 자라야 나비와 나방들도 후손을 널리 퍼뜨릴 수 있으니 이맘때가 참 중요하다. 작년 가을, 나뭇가지에 붙인 알에서 막 부화한 애벌레는 단단해지기 전에 이파리를 열심히 먹어야 한다. 대개의 애벌레는 초록색을 띈다. 잎사귀와 색깔이 다르면 천적의 눈에 쉽게 띌 것이다.

 

엄마 손 풀고 근린공원을 대중없이 달음박질하는 꼬맹이도 새 생명인데 뒤따르는 엄마는 걱정이 많다. 저러다 넘어지는 건 아닐까. 이번엔 오른 발로 꽁꽁, 무언가를 열심히 밟아댄다. 황급히 다가가니 작은 애벌레가 꼼지락거린다. “아이, 더러워! 저기 예쁜 꽃 보러 가자.” 터져 죽은 애벌레의 초록색 흔적이 아이 신발에 남는 게 싫었는지 엄마는 얼른 손목을 잡아챈다. “예쁜 나비가 될 애벌레로구나. 불쌍하게 나뭇잎에서 떨어졌네. 다시 올려주자!”하고 권할 수 없었을까.

 

나비가 주변에서 펄럭여야 씨앗이 잘 맺는다는 걸 아는지 나무는 이파리가 무성한데, 잎사귀에 바싹 붙은 애벌레들이 모두 나비로 변하는 건 아니다. 이맘때 무럭무럭 자라는 새끼들을 부지런히 먹여야 하는 딱새와 박새들은 애벌레들을 앙 물고 근린공원을 바삐 오간다. 잿빛 직박구리가 화려한 조경용 나무의 꽃망울을 뒤지는 근린공원은 아카시 향기로 가득하고, 포도송이 같은 꽃무리에 꿀벌이 맴돈다. 어제 흥건히 비가 내려 그런가, 어둑해지자 어디선가 맹꽁이 한 마리 외롭게 운다. 태양의 직사광선이 조금씩 강렬해지는 이른 여름, 녹색공간마다 온갖 새 생명들이 그렇듯 제 모습을 드러낸다.

 

이른 아침. 조찬회의를 위해 서둘러 아파트를 빠져나가는데 낯선 새 한 마리 황급히 몸을 숨긴다. 아직 인적이 드문 시간. 걸음을 멈추고 천천히 다가가니, 이런! 텔레비전 다큐멘터리에서 본 삼광조다. 여느 산새보다 꼬리가 길지만 제 수컷보다는 두드러지게 짧고, 등에서 꼬리와 날개깃이 갈색인 암컷 삼광조를 이 시간 여기에서 만나다니. 그렇다면 같은 부분이 흑갈색인 수컷도 근처 어딘가에 있을 텐데. 두리번거리는 사이, 놀이터 주변의 알량한 녹지에 숨어들었던 암컷마저 날아가 버렸다. 어디로 간 걸까. 그리고 왜 여기를 찾았을까. 늦은 저녁까지 인간의 소음과 냄새가 끊이지 않는 아파트단지의 근린공원에 삼광조가 머물 공간이 없어 보이는데.

 

제비 정도의 체구는 18센티미터를 넘지 않아도 암컷은 제 몸보다 약간 짧은 꼬리를 과시하는데 수컷은 제 몸의 두 배 이상 긴 꼬리를 늘어뜨려 주위의 시선을 사로잡는 여름철새가 삼광조다. 삼광조가 일본식 이름이므로 긴꼬리딱새라고 주장하는 이가 없지 않은데, 영어로 Japanese Paradise-Flycatcher다. 일본과 우리나라에 분포하고 새를 일본에서 먼저 분류했으니 ‘재패니스’라는 이름이 붙은데 별 이의가 없고, 공중에서 나방을 낚아챈다니 ‘플라이캐처’라는 이름도 타당할 테지만, ‘파라다이스’는 뭔가. 뉴기니 열대우림에 분포한다는 극락조라는 뜻인가. 머리 깃과 가슴이 현란한 극락조처럼 삼광조도 긴 꼬리가 우아하다는 의미일 테지.

 

꼬리가 지나치게 길면 생활하기 불편하다. 천적의 눈에 잘 띌 뿐 아니라 먹이를 사냥할 때 거추장스러울 수 있는데 왜 긴 꼬리를 가지는 걸까. 진화생물학자는 성선택(sexual selection)이라고 점잖게 설명한다. 다소 위험하더라도 배우자의 눈에 잘 띄어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많이 전하려는 속성이란다. 삼광조만 그런가. 공작새와 극락조도 마찬가지지만 무거운 뿔을 이고 암컷 앞에서 씩씩 거리는 사슴 종류들이 그렇다. 곤충 중에도 더러 있다. 여성 앞에 무스 바른 머리와 부단히 단련한 식스팩을 자랑하고픈 청년들은 아니 그럴까. 아무튼, 꼬리가 긴 수컷이든, 짧은 암컷이든, 삼광조는 숨넘어갈 정도로 아름답다. 금속광택의 검은 머리와 축구선수 데이비드 베컴이 흉내 낸 듯 보이는 정수리의 머리 관 또한 아름답지만 까만 눈을 둘러싼 파란 테두리와 같은 색의 주둥이가 더없이 이채롭다. 그 삼광조가 우리 땅에 날아온다는 사실이 기쁘다.

 

팔색조가 은둔한다고 알려진 제주도 곶자왈과 거제도 학동의 동백림에서 운 좋으면 만날 수 있다는 삼광조가 무슨 일로 인천의 삭막한 아파트단지까지 날아들었을까. 우리나라가 그만큼 온난화되었기 때문일지 모른다. 창원에 모습을 드러내더니 어느새 포천에서 촬영했다는 네티즌이 사진을 인터넷에 공개하지 않았나. 먹이가 보장돼야 할 테니 녹지가 많은 창원과 포천이야 이해할 수 있는데, 갯벌을 메워 세운 아파트단지에 먹이가 얼마나 있겠나. 있더라도 직박구리들이 게걸스레 먹어치울지 모르는데. 한데 아니란다. 겉보기 가녀려도 둥지의 새끼들을 보호하려 붉은배새매를 필사적으로 공격할 만큼 앙칼지단다. 우거진 숲 그늘에 눈에 띄는 먹이는 여지없단다.

 

붉은배새매에 대적하는 삼광조도 살충제는 견딜 수 없는 모양이다. 맹꽁이를 울게 한 장맛비가 공원을 적신 그 이튿날, 삼광조가 몸을 숨겼던 녹지에서 농약 냄새가 코를 찌른다. 이파리의 농약이 보도블록에 떨어진 모양인데, 그러고 보니 떠들썩한 직박구리 소리도 며칠 동안 들리지 않았다. 아교를 섞었는지, 끈적끈적한 살충제를 나뭇잎에 뿜어대자 애벌레만 사라진 게 아니다. 극성스러운 직박구리를 비롯해 박새와 참새를 달아나게 했고 호기심으로 다가왔을 삼광조마저 진저리치고 떠났을 것이다. 우리는 멀리서 스스로 찾아온 손님을 독약으로 맞았다. 오죽하면 곶자왈을 떠났는지 알 수 없는 삼광조. 천상에서나 볼 수 있는 삼광조가 다신 찾지 않는 건 아닐까. 이 결례를 어찌 사죄해야 하나.

 

환경부가 지정한 멸종위기종 2급이자 국제자연보호연맹(IUCN)의 적색목록에 등재된 삼광조는 나무가 울울창창한 곶자왈의 가는 나무줄기 사이에 컵 모양의 둥지를 치고 이른 여름이면 서너 개의 알을 낳아 기르는데, 곶자왈에 무슨 변고라도 생긴 걸까. 물이 배어나오는 곶자왈마다 생수공장과 골프장이 난립한다던데, 곶자왈마저 숲이 말라가는 건 아닐까. 일부 곶자왈에 밀집 서식하던 삼광조가 다른 곶자왈을 찾지 못하자 온난화된 포천까지 날아가기 시작했는데, 그만 인천의 한 아파트단지에서 독약 사워를 받았다. 애벌레가 있어야 나비가 날고 삼광조도 찾는다는 것, 자식 키우는 사람은 아직도 깨닫지 못하는가. (사이언스타임즈, 2010.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