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추억

디딤돌 2008. 12. 11. 09:20

 

《웰컴 투 머신》, 데릭 젠슨, 조지 드래펀 지음, 신현승 옮김, 한겨레출판, 2006년.

 

 

전기 없이 살 수 있을까? 인간은 진화된 지 99.99퍼센트 이상의 세월 동안 전기 없이 잘 살아왔건만 찰랑찰랑한 생머리를 잘 간수하는 한 여학생은 고개를 살살 흔들었다. 헤어드라이어가 필요하므로 안 된단다. 하긴, 워드프로세서 없이 한 줄의 원고도 불가능해진 나도 사용전력량이 많든 적든, 마찬가지 신세다. 워드프로세서 없을 때도 원고를 더러 썼는데, 이제 컴퓨터 앞에 앉지 않으면 글 흐름을 영 떠올리지 못한다.

 

친구를 3시간 기다린 적 있는가? 70에서 80년대를 풍미한 대중가수 정미조가 노래한 이른바 ‘기다리는 기쁨’, 이동전화기가 보편화된 세상에 그 기분을 이해하는 젊은이는 드물다. 쉽게 만나 쉽게 헤어지는 세상이 도래했으면 했지 이동전화기 두고 무작정 기다리는 3시간은 정말이지 참을 수 없는 시간낭비다. 이 생각 저 생각하며 기다리면 철학자가 된다는 선배의 말, 요즘 젊은이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21세기를 눈앞에 둔 한 과학잡지는 DNA칩을 몸에 삽입하고 다니는 장밋빛 미래상을 펼쳐보였다. DNA칩은 개인 맞춤이다. 그 DNA칩을 주치의 컴퓨터와 연결해놓으면 자신의 건강상태가 그때그때 관리될 테니 병을 키우기 전에 적절한 처치가 즉각 이루어질 것이라고 기대한다. 과학잡지는 그 정도에서 그치지 않을 것이라며 농을 던진다. 가뜩이나 혈압이 높은 남성 환자가 독한 술을 거푸 들이키는지 혈압이 빠르게 상승할 경우, 주치의는 환자에 전화를 걸어 술잔을 놓으라고 경고를 하고, 그래도 통하지 않을 경우, 그의 아내와 아이에게 긴급 전화를 해 술집에서 나가게 만들 수 있다는 거다.

 

이동전화기로 영상을 주고받는 세상인데, DNA칩과 전화기와 ‘범지구위치결정시스템(GPS, Global Positioning System)’이라 억지로 번역하는 기술이 만나면 장차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긴급을 알리는 주치의의 전화를 받은 아내는 남편에게 냉큼 전화를 걸어 “술 좀 작작 마셔욧!” 하기보다 “거기 어디야! 또 룸살롱 들어간 거 아냐? 당신 전화기로 주위를 보여줘!” 하며 다그칠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DNA칩을 삽입하고 친절한 주치의를 둔 가정은 아무래도 부자일 테니. 그 이야기를 들은 어떤 이는 안심하라며, 더 영악해질 술집을 상상한다. 룸살롱의 한 구석에 그런 가장을 위해 포장마차 코너를 준비해 둘 거란다. 아무튼, 그 환자의 혈압은 이래저래 내려갈 것 같지 않다.

 

GPS기술은 여러모로 유용하다. 시내버스 배차간격을 실시간으로 파악하는 승객은 버스를 기다리며 우왕좌왕할 필요가 없어졌고, 내비게이션만 달면 초행길도 쉽게 찾아갈 수 있다. 어디 그뿐인가. 고기잡이 나간 척하고 돌아와 면세기름 팔아먹는 부정직한 행위를 쉽게 단속할 수 있다. 만약 GPS기술을 통제하는 컴퓨터가 작동을 멈춘다면? 혼란이 극에 달할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 컴퓨터를 의도적으로 오작동하게 만든다면? 군사작전에 심각한 차질이 발생할 수 있겠다. 데릭 젠슨과 조지 드래펀은 《웰컴 투 머신》에서 기계에 의존해 사는 편리함 뒤에 도사리는 권력의 문제를 냉소적으로 파악한다. 감시하는 권력에 의해 시민사회는 간단하게 지배되고 길들여진다는 것이다.

 

“오늘날에는 과학이 종교이고, 전문가가 사제이고, 관료는 문지기이고, 연구개발 단체는 성당”이라고 해석하는 저자들은 일찍이 제레미 벤담이 도입하기를 영국 정부에 제안한 감시체제 ‘판옵티콘’을 상기한다. 많은 죄수를 아주 적은 간수가 쉽게 감시하는 구조로, 판옵티콘에서 죄수는 자신이 감시당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기 어렵다. 권력에 복무하는 과학기술이 추진하는 감시가 그렇다는 것으로, 시민사회는 자신이 감시당한다는 사실에 무감각해질 뿐 아니라 오히려 길들여진다. GPS기술은 물론이고 이동전화와 신용카드가 그 예다. 앞으로 DNA칩이 패권을 쥔 권력에 의해 감시된다면 어떤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을까. 지금 우리나라는 환자의 질병 정보를 보험회사에 알려주려고 한다. 보험회사나 경찰이 시민 개개인의 DNA정보를 꿰뚫어본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 수 있을까.

 

개인을 디지털 인식신호로 기억하는 세상이라면 피치 못할 사정이나 변명 따위가 참작될 가능성은 없는 반면 특정인을 배제하는 일은 식은 죽 먹기일 것이다. 권력이 마음만 먹으면 알리바이 변조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뭐 그런 무시무시한 세계까지 상상하지 말고, 당장 생활 전반에 침투한 전자테그(RFID, Radio Frequency Identification)를 보자. 타이어에 RFID칩을 넣으면 공기와 마모 상태를 수시로 점검해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기업은 옷에 들어간 RFID칩으로 고객의 취향을 분류해 판촉에 적극 활용할 것이다. 대리운전 회사에 일단 한번이라도 전화하면 저녁마다 홍보문자가 전해지는 건 약과라 하겠다. 현대의 전자 판옵티콘은 18세기 제레미 벤담의 기대수준을 훨씬 초월한다.

 

사회가 기계에 길들어지면 개인의 개성은 배려되지 않는다. 기계가 요구하는 표준에서 벗어난 자는 소외될 뿐이다. 그 표준은 무엇인가. 수도권 지하철에 극성으로 광고하는 ‘미고성형외과’에서 환자라기보다 고객에게 어떤 아름다움을 권하는지 알지 못하지만, 표준은 20대 젊음일 것이다. 경륜은 폐기될 뿐이다. 쌍꺼풀과 보조개가 없거나 광대뼈와 턱이 나온 개성을 환자로 규정하던 표준은 성장호르몬이 개발한 이후 아들의 키가 190센티미터가 못되면 치료대상이라고 광고한다. 딸은 170. 강남의 입시학원이 아무리 교정해도 수능이 2등급 이하면 지진아가 되는 우리 현실에서 기계에 길들여지지 않은 이는 찾기 어렵다.

 

미국에 비자 없이 입국하려면 개인정보가 담긴 반도체를 여권에 삽입해야 한다. 테러를 방지하려는 목적이라지만, 미국은 자국을 찾는 외국인을 분류해 그들의 행동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감시할 것이다. 68억 지구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할 날도 멀지 않았다. 동네마다 널린 감시카메라는 애교에 불과할 지경인데, 숱한 비밀번호에 치여 사는 세상에서 술 취하면 현관 자물쇠의 번호가 헷갈리는 독자들이여, 《웰컴 투 머신》을 읽고 기계에 길들여진 이른바 ‘기심(機心)’에서 빠져나갈 궁리라도 합시다! (우리와다음, 2009년 1-2월호)

금요일 퇴근하면서 휴대폰을 놓고 가다가 휴대폰없이 토일요일 지내기가 도저히 안 될 것 같아 회사로 돌아왔던 적이 있었지요. 지인들 전화번혼은 따로 적어서 다녀야겠더라구요..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