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14. 2. 20. 16:03


낮 기온이 따사로웠던 토요일, 집안 어른의 생일을 맞아 뷔페식당에 모였다. 엄마 품에서 칭얼대던 처남의 막내까지 어엿한 숙녀로 변신한 그날, 먹성 좋은 젊은이들이 예닐곱 차례 새 접시에 음식을 가득 담아왔지만, 출출했어도 그리 흔쾌하지 않았다. 채식 위주로 담은 한 접시에 만족하기로 했다. 결혼식 피로연처럼 왁자지껄한 식당의 식탁 사이가 비좁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저 음식들 대부분의 원산지는 분명 우리나라가 아니었다. 생면부지의 남녀노소가 담아오는 산해진미는 언제까지 유효할까.


넓은 식당 어딘가에 원산지가 표시돼 있겠지만, 눈의 띄지 않는다. 관심을 가진 손님도 없어 보인다. 유전자 조작 농산물을 사료로 먹었을 가축의 살코기를 빼고,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로 방사성 물질이 전보다 심하게 포함되었을 음식은 피했다. 집에서 늘 먹는 메뉴를 제외하니 고를 음식이 얼마 남지 않는다. 우리 바다에서 잡았어도 알 한 번도 낳지 않을 정도로 작은 생선을 빼고, 저인망 쌍끌이로 바닥을 훑었을 해산물을 외면했더니 쏟아질 듯 쌓아놓은 온갖 음식들이 다 전시물로 보였다. 머지않아 박제가 될 전시물.


분위기와 상관없이 오직 먹어치우기 위해 모여든 듯 보이는 손님들. 그들의 식탁에 쌓은 음식의 칼로리는 무척 높을 것이다. 날씬한 체형을 유지하려면 식당 떠나자마자 땀 꽤나 흘리는 운동에 돌입해야 할 성싶은데, 음식을 장만하는데 들어간 에너지도 적지 않을 것이다. 곡물과 채소를 파종, 재배, 수확, 저장하는데 들어간 에너지는 얼마나 될까. 온갖 살코기와 해산물을 사육 도축한 뒤 포장, 채취하여 냉동보관, 음식으로 가공하는 과정에 들어간 에너지뿐이 아니다. 농수축산물이나 가공식품으로 포장돼 누빈 오대양육대주의 거리를 감안할 때, 우리는 먹은 음식의 칼로리보다 훨씬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며 엔트로피를 높였을 게 틀림없다.

 

반도체, 자동차 팔아도 사들일 식량이 없을 수도

 

더는 사용할 수 없이 낮은 에너지, 다시 말해 엔트로피가 늘어나면서 지구는 더워진다. 동계올림픽이 열린 이번 러시아 소치는 원래 겨울이 영하로 떨어지지 않는 지역이라고 한다. 합당하지 않아도 과시적 목적과 정치적 이유로 동계올림픽을 유치해서 에너지 낭비를 자초한 소치야 그렇다 치고, 4년 전 캐나다의 밴쿠버는 겨울철 끊임없이 쌓이는 눈으로 유명한 곳인데 그해 겨울에 비가 하염없이 내렸다. 4년 후 평창은 온난화된 겨울을 극복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며 엔트로피를 높여야 할까?


문제는 지구가 더워지면서 세계 곡창지대의 상황이 전 같지 않다는 거다. 식량 자급률이 쌀을 포함해도 23% 정도에 지나지 않는 우리나라에 상당한 곡물과 살코기를 수출하는 미국이 그 대표적이다. 갈수록 가뭄이 심해지지만 그 동안 에너지를 마구 소비하는 기술과 지하수로 극복했는데, 한계에 다다른다는 최근 소식이 들린다. 품종개량과 유전자 조작이 한계에 이른 이유는 지구온난화와 무관하지 않다. 기계화를 위해 유전자를 단순하게 만든 녹색혁명 농산물과 유전자 조작 농산물은 지구온난화와 같은 기상이변에 적응할 재간이 없다.


석유로 가공한 화학비료와 제초제와 살충제를 동원하며 단일 품종을 심은 광활한 들판은 경작 환경의 안정이 필수적인데 가뭄이 심화된다. 깊이를 더해가는 지하수를 끌어올리며 수확량을 한동안 유지해왔지만, 요사이 힘겨워진다고 한다. 수확량이 급감에 대처할 수단이 막막하다고 한다. 정부의 농업보조금 덕분에 농축산물을 낮은 가격으로 식량을 수출해온 다국적기업은 대책을 세울 수 있다. 자본력을 바탕으로 가격을 슬그머니 올리지만, 그런다고 농부가 돈을 더 버는 건 아니다.


반도체와 자동차를 수출해 벌어들인 돈으로 해외 농축산물을 수입하는데 거리낌이 없는 우리나라.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미국의 잉여 농산물을 수입하는 국가가 우리만이 아니다. 수입 산해진미를 뷔페식당에 쌓아놓는 우리는 빈자리 없이 들어온 손님마다 여전히 배 터지게 먹지만, 기상이변의 여파는 녹록치 않다. 국제 농산물의 가격이 오르면 굶주리는 인구가 늘어나는 지역이 있다. 그런 지역이 넓은 국가는 국제 곡물가격에 희비가 엇갈리는데, 돈이 넘쳐도 수입할 식량이 없다면 처지는 비슷하게 된다. 굶는 이가 늘어난다. 식량자급률이 처참할수록 심할 텐데, 반도체와 자동차는 석유 없이 만들 수 없다. 사용할 수도 없다.


천정부지로 오른 석유 가격은 세계의 경제가 둔화되어도 내릴 생각을 하지 못한다. 국제 석유 가격은 투기자본에 의해 가격이 오르는 측면이 없지 않지만, 근원적으로 소비보다 추출할 수 있는 양이 적기 때문이다. 자본을 더 많이 투여하고 새로운 기술을 적용하면 석유 생산량이 늘어날까? 그 방면 전문가들은 고개를 젓는다. 흡혈귀처럼 지하 깊숙한 바위틈의 세일가스까지 연실 퍼올리지만, 머지않아 한계를 만날 것으로 추정한다. 사용하는 에너지의 대부분을 수입하는 우리는 대책을 세워야 한다. 절박하게.

 

줄어드는 인구, 반성할 일이 아니라 새로운 기회

 

최근 여당의 한 실세 국회의원이 출산율을 공천에 반영해야 하는지 의중을 떠보았다고 언론이 전했다. 그러자 실세 중의 실세인 어떤 국회의원은 김연아나 이상화 같은 딸을 낳아야 한다면서, “아이 하나만 낳은 분들은 반성해야 한다!”고 거들었다고 언론은 덧붙였다. 일찍이 언론이 가족관계를 들추지 않은 이상화가 둘째인지 알지 못하는데, 김연아나 이상화와 같은 천재 스포츠인은 첫째에 없다는 통계라도 확보한 걸까. 셋째와 넷째는 어떤가? 해괴한 논리를 앞세운 그 국회의원은 아이 하나 낳은 이에게 죄를 물으려는 태세다. 둘 이상 낳으라는 법이라도 만들겠다는 기세다.


첫째에게 토지를 모두 물려주던 농경사회에서 둘째가 기술을 익히거나 상인이 되는 경우가 동서고금에 드물지 않았지만 요즘은 아니다. 아인슈타인은 장남이었다. 슈베르트와 같은 음악가를 만나기 위해 아이를 13명이나 낳아야 하는 건 아니다. 거의 한 명, 어쩌다 둘 낳는 중국에서 랑랑이나 유자왕 같은 발군의 피아니스트가 배출되었다. 낳은 아이 모두 적성과 재주, 의지와 신념을 건강하게 키울 수 있다면 부러울 게 없지만, 현실은 만용에 가깝다. 예측할 수 없는 내일은 얼마나 무서운가. 농경사회에서 소박하게 살 의지와 수단이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되겠지하는 마음으로 아이를 더 낳으려는 부모는 요즘 세상에 없다.


정부와 기업의 성화로 잠시 오르는듯하던 우리나라의 출산율이 2013년 가구당 평균 1.18명으로 다시 하락했다는 소식이다. 위기의식이 발동했는지, 여당 실세 국회의원이 아이를 더 낳아달라는 발언을 우스꽝스럽게 남겼지만, 조금 더 깊게 생각해보아야 한다. 지구온난화와 식량위기가 가시권으로 다가왔고 석유위기는 코앞인데, 쌀을 빼면 자급률이 3%에도 미치지 못하는 우리의 처지에 아이를 더 낳으라는 요구가 과연 타당한가. 자급하는 식량이 더 많았던 시절보다 인구가 훨씬 늘어난 상황에서 누구를 위해 왜 더 낳으라는 겐가. 태어난 아이의 행복은 분명히 아니다.


요즘 신세대 부부가 아이를 하나 이상 낳으려 하지 않는 건 환경보다 경제적 이유가 압도적이다. 그렇기에 제 자녀에게 온갖 성의와 애정, 투자와 치맛바람이 부모세대보다 드세졌지만, 엔트로피가 높아지는 만큼 무서워지는 자연재해는 낭비적 삶을 허용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거듭 경고한다. 아이 하나 낳은 부부 욕보이며 조롱하는 일이 힘 있는 국회의원이 임무일 수 없다. 진정 다음세대의 행복을 생각하는 대의제 의원이라면 자연이 허용해줄 한계를 직시하면서 절제의 미덕을 행동으로 솔선하며 대안을 모색해야 옳다.


줄어드는 인구는 오히려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 허세와 낭비로 엔트로피를 높이는 시대에서 인구 과밀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위기의 시대를 코앞에 두었다. 절제와 배려로 소박하면서 행복하게 살아갈 내일을 인구를 줄이면서 구상해야 할 때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이 하나를 낳고 만족해하는 젊은 부부에게 반성을 요구할 게 아니라, 마땅히 고마워해야 한다. (지금여기, 2014.2.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