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추억

디딤돌 2009. 4. 3. 22:41

 

김은진 지음, 《GMO, 유전자조작 밥상을 치워라!》(도솔, 2009년)

 

 

올 겨울, 설 연휴를 빼면 그다지 춥지 않았다. 주머니가 갑자기 빈약해진 터에 난방비라도 절약할 수 있어 다행이었을 텐데, 지구 반대편 호주의 여름은 대단히 더웠다고 한다. 세계4대 메이저 테니스 대회라는 호주오픈 기간에 섭씨 40도를 오르내리는 온도로 선수는 물론 관중들도 지쳤고 때때로 50도를 넘나들던 열파로 면역이 약한 노약자나 수입이 적어 에어컨을 설치하지 못한 계층 수백 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언론은 전했다. 교토협약에 가입하지 않은 호주의 이번 더위는 온실가스로 인한 기후변화가 원인이라고 전문가들은 추정하는데, 다가오는 우리의 여름은 어떨지.

 

짜증나게 무덥던 작년 어느 여름날 오후, 매연이 심한 시내를 땀 흘리며 걷는데 버스 옆구리를 장식한 어떤 증권회사의 광고가 눈을 거스른다. “너흰 지구온난화로 괴롭니? 나는 즐긴다!”는 듯, 쩍쩍 갈라진 호수 바닥에 파라솔을 펼치고 비스듬하게 앉은 비키니의 여인은 기후변화는 돈벌이의 기회라며 투자를 유혹하고 있었다. 투자? 투기일 테지. 아무튼, 지구온난화를 돈벌이 기회로 여기는 자본에게 식량위기도 절호의 찬스일 것인데, 치솟던 원유가격이 미국발 경제침체로 푸시시 꺼진 이후 국내외 투기자본이 식량시장으로 몰린다는 소문은 이미 흉흉하다. 지구촌에서 거래되는 모든 물건의 가격보다 수백배 많은 돈이 빛의 속도로 투기 대상을 찾아 몰려다니는데, 겁도 없이 늘어난 세계 인구가 반드시 먹어야 하는 식량은 더 없이 매력적인 투기 대상이 아닌가.

 

자본이 클수록 투전판의 규모도 커야한다. 자급자족하는 지역의 농산물 시장은 투전판의 노리개가 될 수 없다. 규모가 낯간지럽다. 몇 안되는 초국적기업이 지배하는 농산물이라야 거래할 맛이 난다. 생산과 수확, 저장과 포장, 가공과 운송에 이르기까지, 식량에 관한 모든 분야를 지배하는 초국적기업이 취급하는 물동량의 규모는 실로 막대하지 않던가. 더구나 초국적기업의 농산물은 세계기구에 의해 표준화되었다. 자본이 선물(先物)로 투기해 축적한 농산물은 이미 세계 주요 항구에서 가장 높고 큰 창고에 저장돼 있는데, 머지않아 그런 창고의 부피는 석유비축기지보다 커질지 모른다. 석유가 모자라면 좀 고생스럽더라도 살아갈 수 있지만 먹을 게 모자라면 폭동이 일어나지 않던가. 일찍이 경제학은 모자랄수록 돈이 된다고 가르쳐왔다.

 

지역에서 이웃과 나눴던 농산물은 시장에서 모습을 감춘 지 이미 오래다. 그런 농작물은 유전자가 다양해 수확량과 시기를 종잡을 수 없고, 수확물의 크기가 들쭉날쭉하니 규격화가 어렵다. 예측 가능한 거래를 원하는 자본에게 배당되는 이윤이 높지 않다. 자본은 유전자의 폭이 좁은 농산물을 선호하는데 그런 농작물은 경작환경을 통제해야 기대했던 소출을 보장한다. 그러자면 농약과 비료는 물론이고 관개와 기계화가 필요한데 비용부담이 따른다. 그래서 보조금이 주효했고 그 덕분에 초국적기업의 농작물은 지역보다 훨씬 값이 싸다. 지구촌의 많은 지역은 자신의 오랜 식량기반을 없앤 대신 똑똑한 딜러를 고용했다. 초국적기업의 농작물을 구입하려면 외화가 필요하다면서 식량기반을 매립한 자리에 산업기지를 만들었을 테고.

 

요즘 농업은 “모 아니면 도”라고 한다. 모든 조건이 잘 맞는 해는 풍성한 수확을 만끽할 수 있지만 그건 다른 농부도 마찬가지라 모이는 돈이 많지 않고, 잘 자라던 농작물에 한 가지 병이라도 돌면 소출이 형편없어지는데 역시 나만 그런 게 아니다. 이렇듯 모든 도든, 농사로 큰돈을 벌어들이기는 어렵다. 남들은 다 망치고 나만 잘돼야 하는데, 그러는 경우는 드물지만 어쩌다 그런 행운이 와도 소용이 없다. 정부에서 냉큼 수입을 하니 이래저래 돈이 안된다는 거다. 그렇다 해도 그나마 먹고 살려면 남들 심는 걸 심어야한다. 모두들 망하면 보상금이 나올 거고, 다 잘돼도 헐값이나마 팔 곳은 있다. 초국적은 아니더라도 투기를 일삼는 자본이 사줄 것이다. 규모가 막대한 외국의 농부라면 아무래도 초국적기업이 선호하는 작물의 종자를 선정하는 게 속편하겠지. 바로 초국적기업에 의해 세계적으로 유통되는 유전자조작 농산물, 다시 말해, GMO 농작물이 그것일 게다.

 

경작환경의 가장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인 기후는 전에 없이 더워지는데, 안정된 경작조건을 전제로 개발된 GMO 농작물은 앞으로 초국적기업이 기대하는 소출을 지속적으로 약속할 수 있을까. 더구나 GMO 농작물의 유전자는 다양성의 폭이 좁은 게 아니라 차라리 없는데. GMO 농작물에 의해 생태계가 오염되는 현실은 당장 심각하다. 조작된 유전자가 종의 경계를 넘어 다른 식물의 유전자에 파고들기 시작한 거다. 사람의 몸에 이상이 초래된다는 심각한 사태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지만 생태적 교란은 결국 사람에게 영향을 주는 일이다. 나중에 GMO 농작물을 먹은 이에게 이상이 초래된다는 걸 확인하는 순간, 세계는 에이즈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사태에 봉착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유전자는 리콜이 안된 채 후손에게 유전될 뿐 아니라, 누가 그 유전자를 지니고 있는지 파악하기 조차 어렵기 때문이다.

 

1994년 최초로 토마토가 GMO로 개발돼 시장에 출하된 이후 유럽에서 들끓었던 반대운동은 1998년 우리나라로 이어졌다. 처음 GMO가 무엇인지 모르는 이를 향한 운동은 벽에 대고 외치는 것처럼 힘에 겨웠지만 효과는 있었고, 많은 시민들은 선택의 여지가 있다면 GMO 농산물을 회피하게 되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여전히 사료나 식용유의 원료라며 GMO 농산물을 수입하더니 아예 식용으로 공공연히 수입하는 일이 생기고, 세계의 GMO 농작물의 재배 면적은 늘어나기만 한다. 아직 우리나라 땅에 GMO 종자를 심는 농촌은 없다고 정부는 주장하지만 연구를 위한 재배는 성행하고 있으며 그 종류와 양은 해마다 경신되는 실정이다. 때를 같이해 식량위기를 기회로 생각하는지, 정부 일각에서 GMO를 옹호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어느새 느슨해진 GMO 반대운동이 새로워질 국면을 맞았다.

 

김은진. 그는 법을 전공한 시민운동가다. GMO 농산물의 위험성을 소비자에게 알리는데 누구보다 노력해왔고, 원광대학교 법학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현재에도 멈추지 않는다. 1998년부터 거리에서 유전자조작의 위험성을 알릴 때 반짝했던 시민들의 경각심이 무디어갈 2000년 초부터 시민단체 활동가들은 지쳐갔는데 농어촌사회연구소의 연구원이던 김은진이 혜성같이 나타나 앞장서자 우리는 신발끈을 다시 묶을 수 있었다. 토론회, 세미나, 성명서, 신문투고에 몸과 마음을 아끼지 않았던 김은진이 있기에 우리나라의 느슨하기 짝이 없는 GMO 표시제를 그나마 유지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보통이라면 알아서 수용했을 우리 정부가 미국의 압력에도 버틴 것이다. GMO 문제를 소비자에게 알리는데 몸을 던졌던 김은진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GMO, 유전자조작 밥상을 치워라!》를 펴냈다. 우리는 그의 책을 펼치고 다시 느슨해진 신발끈을 질끈 동여야 한다.

 

GMO는 유전자 조작인가 변형인가. 시민단체는 대체로 조작을, 농림수산식품부는 변형을,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재조합을 고집한다. 물론 내용은 같다. 사람에 의한 돌연변이다. 변형은 특정 목적이 없는 그저 중립적이라는 의미를 갖지만 사실상 GMO는 중립적일 수 없다. 환경에 대한 혹독한 적응과 도태 과정을 거처 집단적으로 다채롭게 형성되는 유전자 조합을 사람이 함부로 변형할 경우 발생할 사태를 미리 점칠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재조합이라고 학술적 용어를 사용해도 마찬가지다. GMO는 Gene Manipulated Organism의 약자였다. 한데 우리나 거기나, 조작에 대한 부정적인 어감을 윤색하고 싶었는지 Manipulated를 Modified로 바꿔 GMO라 칭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에 관계없이 사람들이 GMO 자체를 혐오하게 되자 미국은 LMO라 고쳐 말한다. Living, 다시 말해, 살아있다면서 은근히 식품과 같이 조리된 상태는 제외된다는 느낌이 들도록 언어유희를 시도한 것인데, 우리의 법률은 미국의 주장에 맥없이 동조한다. 그런 식의 언어유희에 대해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생물체”인 까닭에 GMO를 걱정해야 한다면서 김은진은 책장을 연다.

 

하나의 GMO를 개발하려면 보통 4만번의 실험을 반복해야 한다. 그쯤 되면 과학이 아니라 요행이거나 운일 텐데, GMO는 왜 실패했고 어떻게 성공했는지, 성공했더라도 엉뚱한 유전자가 삽입되었으니 부작용은 발생하지 않는지 충실하게 살펴야 위험성을 최소화할 수 있지만, 현실은 안전을 살필 여유가 없다. 막대한 연구인원과 자금으로 GMO를 개발한 초국적기업이 내다팔아 이윤을 창출할 궁리에 빠져있는 까닭이다. 영국의 푸스타이 박사가 밝힌 유전자조작 감자를 먹은 쥐에 뇌를 비롯한 장기에 이상이 초래된 이야기는 이미 고전이 되었지만, 대표적인 GMO 농작물 개발회사인 몬산토가 시장에 내놓았던 옥수수의 한 품종도 심각한 문제를 드러낸 바 있다. 그 옥수수를 먹은 쥐의 순환계와 배설계에서 문제가 나타났던 거다. 그 사실을 몬산토는 자체 실험으로 파악했다고 김은진은 생명공학을 열심히 공부해서 밝히는데, 우리 정부의 굴욕적 자세는 어처구니없다. 이미 그 실험결과를 알고 있으면서 수입을 허가했다는 게 아닌가.

 

영국 원산인 잔디를 심는 우리 골프장은 지하수를 상당히 사용해야 한다. 골프장이 들어서면 논에 물이 마르고 지하수의 고갈과 오염으로 민원이 발생한다는 걸 우리의 생명공학자들이 걱정한 걸까. 눈물겹게도 물을 적게 소비하는 잔디를 유전자조작으로 개발하려는 걸 보면. 수천종의 식물이 어우러진 생태계를 획일적으로 재단할 뿐 아니라 경작지보다 훨씬 강력한 농약으로 인한 피해를 가중시키고 지역에 위화감을 선사한다는 상식은 생명공학자의 뇌리에 각인되지 않았던 모양인데, 아마 연구비의 출처와 관계가 있을 것이다. GMO 잔디의 연구비는 누가 제공했을까. 정부? 골프장협회? 그런 GMO 잔디는 자연에서 다른 잔디의 유전자를 오염시키지 않을까?

 

연구자는 연구 과정에서 GMO 유전자가 생태계에 퍼지는 걸 예방하려고 안전장치를 한다. 이른바 ‘격리 포장’ 실험이다. 하지만 그게 엉터리라고 김은진은 고발한다. “격리 포장 실험 중”이라는 간판과 1미터 높이의 담장을 쌓으면 꽃가루가 알아서 월담을 포기할 것인가. GMO 잔디는 그나마 나은 편이라면서, 40여 GMO 농작물을 연구하는 농촌진흥청의 어처구니없는 사례를 고발하는 김은진은 우리나라가 식량의 4분의3을 수입에 의존하는 주제에 GMO 수출강국의 꿈을 꾼다면서 어처구니없어한다. 자급률이 형편없는 처지에 GMO 농산물의 수출은 식량의 막대한 수입을 전제로 할 때나 가능할 텐데, 우리보다 안전성 검사가 엄격한 미국에서 개발한 GMO 쌀을 보자. 안전성 평가를 마쳤건만 4년이 지난 뒤에 조작된 유전자가 뜻하지 않은 곳으로 퍼졌다는데, 그 GMO 쌀. 한미FTA가 본격 시행되면 우리나라에 얼씨구나 들어오는 건 아닐까. 미국을 비롯해 많은 국가에서 GMO 농작물의 조작된 유전자가 인근의 엉뚱한 식물로 전이되는 사례는 속속 보고되는데, 우리가 개발한 GMO 잔디가 토종 잔디의 유전자를 교란하는 걸 넘어 다른 식물과, 그 식물을 먹는 동물, 그리고 육식동물까지 오염시키는 건 아닐까.

 

소비자는 GMO의 생태계 교란보다 먹어도 안전할지를 먼저 걱정한다. 이미 밝혀진 GMO 감자와 옥수수의 사례처럼 우리가 모르는 사이, 이미 먹었거나 먹고 있을지 모를 GMO 콩이나 옥수수가 어떤 문제를 일으킬지 아이를 키우는 소비자는 당연히 걱정을 한다. 생명공학자는 특별한 문제가 나타난 적이 없다고 주장하고 싶겠으나 아직 모른다고 해야 솔직한 자세일 것이다. 더구나 농약과 첨가물이 뒤죽박죽인 가공식품의 홍수 속에서 GMO에 의한 건강상 문제를 소비자가 끄집어낸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지 않던가. 그러므로 소비자는 내가 구입하는 농작물이 GMO인지 아닌지 사전에 충분히 파악할 필요가 있고, 그래서 시민단체가 끈질기게 요구해 어렵게 도입된 제도가 이른바 ‘GMO 표시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그 제도는 시방 유명무실하다. 기특하게도 아직 완화하라는 미국의 압력을 이겨내고 있어도 예외 조항이 워낙 기업 친화적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 속사정을 뻔히 들여다보기에 미국이 우리를 적당히 건드려보기만 하는지 모른다. 김은진은 자신의 책에서 그 답답한 마음을 사례를 들면서 토로하니 살펴보길 바란다.

 

GMO 종자는 친환경이라고? 농부의 이익을 도모한다고? 식량 생산을 획기적으로 늘린다고? 우리 정부는 은근히 GMO를 판매하는 초국적기업의 편에 선다. 《GMO, 유전자조작 밥상을 치워라!》는 구체적인 국내외 사례를 제시하며 실상을 밝힌다. 그래서 시민운동에 힘을 실어준다. 시방 시들한 우리와 달리 외국의 GMO 반대운동은 어떨까. 프랑스의 농민운동가 조제 보베가 우리나라에 와서 외국인인 자신이 시험재배장을 대신 훼손하겠다고 나섰다는데, 안타깝게도 우리는 시험재배 장소가 어디인지 모른다. 우리 생명공학자의 태도가 그만큼 불성실하기 때문일 텐데, 한미FTA 타결 과정에서 미국의 요구에 선뜻 합의해준 6가지는 무엇일까. 한마디로, 미국에서 수입하는 GMO에 대한 한국의 의사결정을 바꿀 경우 사전에 미국의 허락을 받으라는 것인데, 상식을 가진 독자라면 《GMO, 유전자조작 밥상을 치워라!》에서 그 대목을 일다가 부아가 끓을 것 같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김은진은 유럽에서 시작돼 세계로 퍼지는 ‘GMO Free Zone’ 운동을 소개하면서도 우리 농작물로 자급자족해야 한다는 상식을 주장한다. 우리 씨앗을 제철 제고장에 심어 유기농업으로 자급하는 일, 여러가지 이유로 쉽지 않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이상의 대안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거기에 한가지를 첨언한다면, GMO 사료를 수입해 먹인 고기를 덜 먹거나 아예 먹지 않는 식단을 권해본다. 식량자급률이 꽤 높아질 것이다. 한가지를 더 추가한다면, 지구온난화가 앞당겨지는 시대를 대비해 기존의 골프장들을 농토나 산림으로 환원시키는 연구도 해볼만하다고 여긴다.

 

GMO는 우리가 먹는 농산물에서 그치지 않는다. 사람의 유전자도 조작할 수 있다. 어떤 생명공학자는 유전자를 좋고 나쁜 측면으로 구별하려 들지만, 생태계에서 그런 구별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생태계의 다채로움을 형성해온 유전자는 사람의 변덕스런 취향에 따라 호불호를 규정할 수 없다. 다만 다양성이 훼손된 유전자는 변화되는 환경에서 도태되기 십상일 따름이다. 더구나 생명공학이 조작한 엉뚱한 유전자가 예상치 못한 형질을 발현시킬 수 있는데, 언제 문제가 나타날지 생명공학도 짐작할 수 없다는 점을 우리는 되새겨야 한다. 예를 들어보자. 기억력을 증진시킨다고 광고해 수정란의 유전자를 교환했는데, 그렇게 태어난 아이가 성인이 되어 결혼했더니 유전병을 가진 아이를 낳게 되었다면, 그 책임은 누가 어떻게 질 수 있을 것인가. 유전자가 아니라 유전자의 산물인 의약품도 나중에 치명적인 부작용이 나타나 질겁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은데, 먹지 않으면 안되는 농산물의 유전자를 조작하다니. 쌀과 같은 주곡의 조작된 유전자는 후손에게 아무런 문제도 일으키지 않을 것인가. 어처구니없게 우리의 농업과학기술원에서 GMO 쌀을 개발했다고 한다.

 

올 여름은 또 얼마나 더울까. 북극해의 빙상이 몇 년을 버티지 못하고 녹을 것으로 세계의 기후학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예측하는 가운데, 올봄의 더위가 작년 겨울의 더위처럼 기상관측 사상 가장 덥다고 기상대는 전한다. 기후변화 시기에 GMO, 그건 후손에 대한 범죄에 가깝다. 이제 우리의 미지근해진 경각심에 불을 지펴야 한다. 그를 위해 어처구니없는 우리 실정을 현장에서 뛴 경험으로 분노하는 김은진의 책, 《GMO, 유전자조작 밥상을 치워라!》를 읽어볼 필요가 있겠다. 자식 키우는 이를 뜨겁게 할 것이 틀림없다. (녹색평론, 2009년 5-6월호)

박병상선생님. 김은진입니다. 이렇게 정말 고운 서평을 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무엇보다도 감사한 것은 제 이름을 온전히 써주셔서, 그 어떤 직함이나 직위 없이 온전히 제이름만으로 저를 불러주셔서 더욱 그렇습니다. 이렇게 제 이름 석 자가 정말 사람냄새 나게 그냥 불리는 게 얼마만인지요... 저야말로 박병상선생님이 계셔서 항상 힘을 얻고 있습니다. 아시죠? 언제나처럼, 항상 앞으로도 그렇게 지켜봐 주세요...
원고를 보내자마자 올리는 이 블로그는 제 글 창고인 셈인데, 어떻게 여기 올리자마자 바로 읽으셨군요. 허락도 없이 선생님의 서평을 썼는데... 저는 김 선생님에 다 맡기고 딴 일하는 느낌이 들어 늘 부채감을 갖고 있는데, 이리 고마워하시니 우쭐해집니다. 일 있을 때 연락해서 자주 뵙시다. 새롭게 벌어지는 일도 알려주시고요. 저도 공부를 해야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