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19. 11. 18. 21:50

 

올 김장은 언제 담글 거라고 아내는 일찌감치 못박아놓았다. 해마다 도와주지 못해 미안해하기만 했다. 마무리 된 뒤 집에 들어와 겉절이를 맛보았는데, 올해는 시간을 진작 알려준 거였다. 지금 이 시간에 장모와 아내, 그리고 작년에 이어 막내아들이 분주하다. 절인배추에 양념한 김치소를 비벼넣는다. 내년 초여름까지 밥상을 포기김치가 알차게 장식할 것이다.


내심 마음 단단히 먹었어도 이번에도 제대로 참여하지 못했다. 시간을 비어두려고 지나치게 무리했나보다. 기존 일정에 추가로 새벽 약속이 연이틀, 마다하지 않았더니 그만 감기몸살이 왔다. 하필 김장 전 날. 못 이기는 양, 또는 자청하며 앞장서던 23차를 굳이 마다하고서 몸을 덜덜 떨며 이른 시간 집에 도착했지만 준비 과정부터 외면해야 했다. 들어서자마자 이불 속에 들어간 나를 아내는 오전이 다 가도록 깨우지 않았다. 마침 집에 온 큰아들이 힘 들어가는 일을 후다닥 처리해놓고 나갔고 막내아들이 40포기에 들어갈 김치소를 손쉽게 버무린 모양이다. 마감 앞둔 원고를 쓰는 이 시간, 아내는 간간히 잔심부름만 부탁하면서 김장을 마무리한다.


아이 둘이 대학을 들어간 이후 수능에 도무지 관심을 두지 못한다. 아니 아이들이 어떻게 대학에 입학했는지 조차 잘 모른다. 다만 표창장 없이 입학하고 졸업 또는 자퇴한 이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으려 노력하는 모습이 미더웠다. 과정에서 다가오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대견할 따름인데, 그건 또래 남편들이 대개 그렇다. 그런 남편들은 김장김치를 맛있게 먹을 뿐 조합을 이루는 재료의 오묘함을 짐작하지 못할 것이다. 짐작할 생각도 한 적 없을 게 분명하다.


지면이나 강의에서 우리와 세계의 다채로운 음식문화의 가치를 이야기하는 처지에서 정작 1년 중의 큰 대사인 김장에 참여하지 못한 이중인격을 올해는 모면하려했지만 늦었다. 아예 방해되는 존재로 취급되어도 잔심부름하면서 눈동냥을 했다. 김장에 소외되어도 나름 성과가 있었다. 말과 글로 쉽게 표현해온 농민과 어민의 땀방울이 묵직한 느낌으로 다가온 것이다. 우리 김장김치에 우리 농민과 어민의 땀이 버무려진다. 100여 가지 김치에 들어가는 재료는 누가 어디에서 어떻게 재배한 것일까? 생산에 관계한 농민은 얼마나 될까?


무채와 고춧가루만이 아니다. , 마늘, 새우젓과 굴, 그리고 더 들어갔다. 매실청, 배즙, 더 무엇이 있었는데 조금 전 일이지만 기억이 어렵다. 채로 썰기에 충분한 크기로 재배한 무는 두툼한 배추와 더불어 유기농산물이다. 어릴 적 김장은 어느 이웃이 생산했는지 아는 농작물을 구입해서 담았지만 지금은 생활협동조합이 연결해준다. 누가 어떻게 재배했는지 몰라도 생활협동조합을 신뢰하기에 구입한 무와 절인배추는 건강한 땅에서 봄부터 흘린 땀이 배었을 것이다. 새우젓과 굴도 새벽에 출항한 어민의 억센 손에 담긴 마음이 오롯하게 어렸겠지.


지역마다 조금씩 다른 양념과 젓갈이 빚어내는 맛도 다양하다. 인천 앞바다가 제 모습을 간직하던 1960년대, 담벼락 높이로 쌓아놓은 배추를 절여놓고 이웃이 모여 김장을 담글 때 우리 꼬맹이들은 그저 축제였다. 어른들도 같은 마음이기에 분주해도 웃음이 멈추지 않았을 그 시절 인천, 지금과 달랐다. 토막을 낸 어린 갈치를 갖은 양념과 더불어 버무린 김치소를 사용했다. 김치 사이에 드러나는 졸깃한 갈치의 맛은 지금도 뇌리를 자극하지만, 요사이 고급이 된 갈치는 갯벌이 사라진 인천에서 알현하기 어렵다.


요리를 욕망하다에서 마이클 폴란은 발효식품을 이야기하면서 김치를 예로 들었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쓰는 마이클 폴란의 글은 언제나 생생하고 진정성이 감동으로 전달되는데, 경기도 남쪽 도시에서, 100여 가지 김치는 손맛이라는 이현희 씨의 말에 받은 무한한 감동으로 책을 마무리했다. 손맛? 처음 통역이 전한 그 말뜻이 아리송했지만, 손맛은 사랑의 맛이라는 의미를 마음 깊이 되새긴 것이다.


어릴 적 커다란 배추 200포기 이상 담았던 김장은 요즘 20포기를 넘지 않는다고 한다. 오늘 담은 40포기 김장의 일부는 장모가, 더 조금은 큰애가 가지고 가고 나머지는 5개월 가까이 우리 식탁을 든든하게 지켜줄 것이다. 큰일을 마친 아내는 내가 원고를 마칠 즈음, 편안해진 마음으로 겉절이를 내놓겠지. 큰맘으로 준비한 관현악 정기공연을 마친 지휘자의 마음이 그렇겠지. 갯벌을 매립해 화려하게 망가뜨린 인천이지만 여전히 펼친 올해의 음식문화 종합예술, 김장김치 담기를 마무리한 시간, 이 아름다운 전통이 내내 이어질질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지금여기, 2019.11.18.)

 
 
 

환경일반·개발

디딤돌 2012. 12. 5. 00:51

    내년 김장도 올해 같기를

 

하늘이 파랗다. 분명 11월이건만 주말마다 비가 내렸는데, 모처럼 구름 한 점 없다. 풀무학교 전공부에서 농사를 가르치는 장 선생은 정작 자기 밭의 수확과 파종이 늦어 안타까워하던데, 주말농장을 다니는 이도 오늘 같은 가을을 기다렸으리라. 주말농장이야 잘 여문 배추와 무를 뽑으면 빈터로 한겨울을 보내겠지만, 장 선생의 밭은 오늘 양파와 우리밀이 가지런히 품을 것이다. 덕분에 우리는 농약 전혀 없는 빵과 튼실한 양파를 내년이면 맛보겠지.


밖으로 열리는 유리창에 성에가 좀처럼 끼지 않는 도시에서 시민들은 희한해하겠지만, 갈무리를 마친 농경지에 하얀 서리가 아침이면 내릴 것이다. 배추와 무는 커다란 트럭에 실려 도시의 농산물시장으로 떠났으니 바야흐로 김장철이 되었다. 마당이 없는 도시는 김장독을 대신하는 냉장고를 비워둘 테고, 농민들은 주문에 맞게 배추를 소금에 절여놓을 것이다. 염전은 여름 땡볕에서 굵은 땀방울을 연실 흘렸고, 어부들은 가을에 잡아올린 새우들을 충분히 염장했을 것이다.


어려서 본 김장은 일종의 축제 같았다. 가깝게 지내는 이웃 사이에서 기대에 찬 우리는 마냥 즐거웠다. 집안의 추레한 모습을 가리는 담장의 높이만큼 쌓아올린 배추는 근 200포기는 되었던 거 같다. 남자들은 김장독을 묻으면 그만이었는데, 여자들은 바빴다. 절이고, 무 채 썰고, 양념 준비하고, 양념과 버무린 무채를 배춧잎 사이에 넣고, 깊은 김장독에 차곡차곡 김치를 넣어 뚜껑을 닫는다고 일이 끝나는 것도 아니었다. 뒷정리도 많았지만, 아까부터 기다리는 남자들에게 소주에 곁들인 보쌈을 내놓아야 했다. 마냥 뛰어다니던 아이들에게 몇 점 먹였고.


그때 대부분의 가정은 12월 중순에 김장을 했는데, 요즘은 11월 찬바람이 불면 시작한다. 양념과 젓갈류는 물론 배추와 무도 시장과 쇼핑몰의 식품매장에 사시사철 준비돼 있지만, 무엇보다 김치냉장고가 있으니 계절에 제한을 받지 않는다. 그렇더라도 역시 김장은 김장철에 해야 제 맛이다. 김치에 깃드는 유산균도 계절에 따라 다른 건지, 보통 한두 포기, 많아야 예닐곱 포기에서 그치는 김치는 아무리 맛이 좋아도 김장김치 같지 않다. 북적거리며 준비하는 분위기에서 기대가 증폭돼 그랬을까. 마치면 한겨울이 넉넉해져 그런 건 아닐지.

 


과학기술이 개입하는 우리네 요즘 김장

 

몇 해 전인가. 늦은 겨울 강화의 한 호텔에서 회의를 할 때였다. 저녁 만찬에 나온 순무김치는 특별했다. 순무 사이에 간간이 보이는 밴댕이는 강화 특유의 향취를 입 안 가득 전해주었다. 김장철에 밴댕이는 잘 잡히지 않지만 그래도 갯벌이 넓은 만큼 없지는 않을 터. 속알지를 때내고 머리를 잘라낸 밴댕이를 순무김치와 버무리면 봄철 입맛 돋게 하는데 그만이었을 것이다. 특히 강화에서.


순무는 강화에서 재배해야 독특한 향이 분명해지는데 밴댕이가 많이 잡히는 곳이라서 그런가, 가을 밴댕이는 꼭 순무에 넣었다. 밴댕이가 적당히 발효된 순무김치 맛이 얼마 전까지 강화를 대표할 수 있었는데, 인천은 갈치를 김장배추에 버무려 넣었다. 지금이야 제주도 인근 바다에서 커다란 상태로 잡아 올리지만 그리 멀지 않은 과거,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인천 앞바다에 갈치가 흔했고, 살을 발라내기 어렵게 작은 갈치는 그대로 토막을 내 양념에 넣었다. 2월 김장독 깊은 곳에서 꺼낸 김치 사이에서 찾아내는 갈치는 쫀득쫀득, 바다가 살아 있음을 단박에 알려주었는데, 갯벌이 거의 사라진 지금은 아니다.


취향에 따라 다소 다르겠지만, 요즘 인천에서 담그는 김장의 젓갈은 다채롭지 않다. 가을에 잡은 새우로 만든 추젓이나 1년 이상 백령도나 대청도 인근에서 숙성한 까나리액젓이 주종을 이룬다. 까나리액젓은 최근 일이고, 육젓은 전부터 김장에 넣었는데, 매립이 광범위하게 진행된 인천 앞바다는 갯벌만 잃은 게 아니다. 모래도 막대하게 사라졌다. 수도권의 하늘 모르게 치솟는 건물을 위해 퍼올려진 모래의 양이 어마어마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모래는 매립하는 갯벌의 위에 쏟아 부어졌다. 그래서 모래가 쓸려나간 해안은 좁아지고 방풍림은 뿌리를 드러냈으며 세계적으로 인천 이외에 그 유래가 없는 풀등도 자취를 잃어간다. 바닷물이 썰어 낮아져도 모래가 나타나지 않는 거다. 그러자 새우가 전처럼 잡히지 않는다.


바닷모래로 세워 올린 아파트마다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인천에 인구는 급증했고 그들 모두 김장을 담근다. 새우젓이 그만큼 필요하다는 뜻인데, 갯벌이 명맥만 유지하는 소래포구에 넘쳐나는 새우젓은 어디에서 왔을까. 새우젓만이 아니다. 인천 앞바다에서 드물어졌거나 아예 잡히지 않는 생선과 여러 젓갈들이 승용차 몰고 찾아오는 손님들을 화려하게 유혹한다. 바닷모래가 넉넉했던 덕적도 인근에서 주머니 긴 그물로 연실 잡아올리던 새우들은 어느새 추억이 되었건만 소래포구와 연안부두는 새우젓을 산더미처럼 쌓았고, 강화는 해마다 새우젓 축제를 준비한다.


과학기술 덕분이다. 인공위성으로 새우 집단을 미리 파악할 수 있는 동력선과 잡아둔 새우를 얼려두는 냉동시설, 그리고 바닷물에서 소금을 얼른 추출할 수 있는 건조시설이 준비돼 있는 한, 새우젓은 사시사철 넘친다. 어디 새우젓뿐인가. 장마철 지나야 파종하던 김장용 배추와 무는 경기도와 강원도의 산간에서 일 년 내내 심고 수확할 수 있다. 비닐멀칭과 화학비료와 제초제와 농기계가 있고, 커다란 트럭이 농산물시장으로 즉각 배달하기 때문으로, 모두 석유를 펑펑 소비하는 과학기술이 뒷받침한다. 다시 말해보자. 과학기술이 돕지 않는다면 이맘때 몰리는 김장 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 석유가 모자란다면 김장 비용은 반비례해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뿐인가. 가전회사에서 열심히 개발해 텔레비전으로 광고하는 김치냉장고가 없다면 김칫독을 묻을 수 없는 아파트는 김장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과연 과학기술의 찬란한 승리다.


 

걱정스런 내년 이후의 김장

 

계절의 변화에 순응하는 농토와 바다가 있기에 오래 전부터 적응해온 우리는 제철에 김장을 담가 겨울을 지낼 수 있었는데, 과학기술의 덕분에, 그리고 값싼 석유 덕분에, 우리는 제철보다 앞당겨 김장김치를 먹는다. 생활협동조합이 아니라면 김장용 양념 무채에 양식 굴을 넣고 가을부터 호강할 수 있지만 요즘 과학기술은 과도하다. 차라리 지나치다. 내의 차림으로 겨울을 지내게 해줄 정도로 에너지를 풍부하게 만들어내는 발전소마다 바다의 온도를 높여놓았다. 이산화탄소를 내뿜는 화력발전소는 공기의 온도까지 높이는데, 같은 용량의 화력발전소보다 2배나 많은 온배수를 쏟아내는 핵발전소는 바다의 생태계를 크게 흔든다. 새우잡이 그물이 찢어져라 올라오는 해파리는 바다 수온의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


이젠 그 수준을 넘어선다. 수온변화는 애교가 되었다. 이맘때 제주도 모슬포에서 성황리에 잡아 올리는 방어를 삼가는 게 좋은 이유는 회유하는 방어의 특성 상,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로 분출된 방사성 물질이 포함되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김장에 넣는 멸치젓이 걱정인 이유 역시 후쿠시마 해역을 멸치가 회유하는 탓이다. 김장에 꼭 넣는 젓갈에 방사성 물질까지 포함시킬 수는 없건만, 우리는 안심할 수 있을까. 아직 갯벌에서 잡히는 해산물은 괜찮다고 하므로. 영광 핵발전소가 갯벌을 향해 막대한 온배수를 토해내지만 방사성 물질이 포함된 건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걱정이다. 들리는 소문이 흉흉하다.


수명을 다해하는 핵발전소에 엉터리 부품을 사용했다는 의혹은 사고를 연상케 한다. 자연재해가 사고로 이어진 후쿠시마는 지진대 위에 지었는데, 어떤 전문가는 후쿠시마 핵발전소보다 우리 핵발전소의 위험 요소가 훨씬 크다고 주장한다. 후쿠시마 정도의 사고가 난다면 인천 앞바다의 갯벌마저 광범위하게 오렴시킬 게 분명한 영광 핵발전소도 예외가 아니다. 영광 핵발전소에서 사고가 발생한다면, 우리는 갯벌에서 건져올리는 어떤 어패류도 먹을 수 없다. 어쩌면 젓갈이 없는 김장김치를 맹맹하게 먹어야 할지 모른다. 우리 서해안에 세운 핵발전소만이 아니다. 중국 동해안, 다시 말해 우리 서해안을 바라보는 핵발전소에서 사고가 발생한다면 어떨 것인가. 우리는 핵발전소를 감시하는 환경단체와 주민들이 있지만 중국엔 없다. 감시 없다면 어떤 시설도 안전하지 않다.


     그렇더라도, 김치냉장고를 구비한 덕분에, 생활협동조합에서 절인배추를 공급하는 덕분에, 아니 배추를 절여서 전해주는 유기농민 덕분에, 그리고 첨가물 없이 추젓을 담은 어민 덕분에, 11월 중순, 우리집은 김장을 일찍 마칠 수 있었다. 지구로 쏟아지는 태양의 입사각도가 좁아지면서 기온은 조금씩 내려가지만 햇빛이 드는 한낮은 따사롭다. 적당하게 익은 겉절이와 생굴로 버무린 김장용 무채로 휴일의 늦은 아침을 넉넉하게 먹은 오늘, 파란 하늘 아래 잎사귀를 잃은 가로수는 파리해보이지만, 깊어진 가을이 한결 여유롭다. 이런 호강, 내년에도 이어질 수 있을까. (푸른두레생협, 201212월호)

 
 
 

공동체·인간

디딤돌 2010. 10. 4. 00:12

 

지난 달 여수의 한 고등학교에서 신종플루 집단 감염 증세가 나타나 보건당국이 주목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작년과 달리 ‘긴장’이 아니라 ‘주목’할 정도에 그치는 건, 감염된 4명 모두 완치되었고 추가 확진환자가 발생하지 않았으며 항바이러스 제재가 충분히 비축돼 있는 까닭이라고 당국은 주장했다. 그래도 65세 이하 노인과 기초생활수급권자에게 무료로 백신을 접종하겠다고 약속했다.

 

다행이다 싶은데, 같은 시기 네덜란드의 한 대학병원은 어떤 항바이러스 제재도 효과가 없는 변종 신종플루 바이러스가 발견되었다고 발표하며, 걱정을 태산같이 했다. 신종플루 발병 후 3개월 만에 숨진 5살 아동은 작년 개발회사를 돈방석에 올려놓은 타미플루와 리렌자를 모두 투여했건만 소용없었고 그 밖의 치료제에 내성을 보였다는 게 아닌가. 문제의 변성 신종플루가 심각한 사태로 퍼질 가능성을 놓고 네덜란드의 전문가의 걱정은 속수무책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발생한 신종플루가 다행이 변성이 아니라 그런가. 네덜란드와 달리 우리나라는 여전히 태평해하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시민들의 면역이 네덜란드보다 높은 걸까. 의약분업 이후 병원에서 처방이 줄어들고 있다고 해도 여전히 항생제 처방률이 세계 수위를 다툰다 하고, 횟집 식탁에 오르는 양식어류에 적지 않게 항생제가 들어가고 있으므로 시민들의 항생제 내성이 상당하다고 전문가들이 걱정하고 있다. 그만큼 우리나라 사람들은 항생제 내성이 높다는 거고, 따라서 그만큼 면역이 약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 신종플루가 변성될 조건은 충분하다는 건데, 보건당국과 언론, 그리고 시민들이 아직 태평하다. 어떤 믿는 구석이 있는 건가.

 

가만히 생각해보니, 작년 신종플루도 그랬지만 2003년에 발생해 중국을 중심으로 아시아와 세계에서 수백 명의 사망자를 낳게 한 ‘사스’도 우리나라에 심각한 피해를 안기지 않았다. 항생제 내성이 남달리 높아도 많은 다른 나라 사람들을 속수무책으로 사망하게 한 그 질병들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잘 견디는 비결은 무엇일까. 우리나라 사람들의 면역력을 높이게 하는 묘약이 있는지 사스 때 중국이 주목한 바 있는데, 그들은 김치를 거론했다. 날 배추를 천일염으로 절인 뒤 젓갈을 적당히 버무려 넣고 발효시켜 먹는 김치. 그걸 항상 먹어 면역이 강한지 한국인들은 끄떡없었다고 분석했다는 거다.

 

신종플루로 세계가 긴장할 때 뉴욕에서 김치 그림을 그린 마스크가 등장했는데, 중국의 고급 식당은 한때 기본 반찬으로 김치를 내놓았다. 중국인들이 여전히 김치를 즐겨먹지 않고 그저 호기심 정도였지만 김치는 이미 세계적인 건강식품이 되었다. 특히 면역을 높이는 데 효과가 크다는 사실은 널리 입증되었다. 라면만 먹인 쥐는 몇 주 살지 못했지만 김치를 곁들이자 보통 쥐와 똑같이 건강했다는 연구결과가 있었다지 않던가. 그렇다면 작년 신종플루에 감염된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 젊은이가 유독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의 공통점은 김치를 멀리한다는 데 있을 거라 믿는 이도 있다.

 

김치가 없는 밥상을 생각할 수 없는 우리네는 까마득한 오래 전부터 겨울을 대비해 김장김치를 담갔다. 그를 위해 장마가 끝나면 배추를 심었다. 지금보다 큰 그릇에 밥을 많이 담아 먹고 고기나 가공식품을 덜 먹었던 시절, 웬만한 가정은 100포기 이상의 김치를 담가야 했고, 김장하는 며칠은 집안이 축제처럼 떠들썩했다. 담 높이로 쌓아놓은 김치를 절이고 커다란 무를 채 썰어 갖은 양념과 젓갈로 무치는 일로 온 식구가 부산했다. 여성들이 가장 바빴지만 남정네들도 팔 걷어붙이고 도왔다. 그래야 푹 삶은 돼지고기를 곁들인 보쌈 한상을 얻어먹을 수 있었다.

 

마당이 없으니 파묻을 김장독도 없는 요즘, 김치냉장고가 부엌의 냉장고 크기를 따라잡아도 배추 100포기 이상 김장을 담그는 집은 거의 없다. 40포기를 담는다는 이를 놀란 토끼처럼 바라보는 이들은 김치 말고 식탁에 올리는 반찬이 많다. 김치 소비가 많지 않으니 배추도 예전처럼 많이 구입할 리 없다. 외식이 잦으니 한 번 담근 김치는 한참 먹는다. 식구들의 밥상에 김치를 빠뜨리지 않지만 그렇다고 떨어져간다고 긴장하지 않는다. 대형 마트의 식품매장에서 4계절 배추 뿐 아니라 온갖 김치를 쉽게 구입할 수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그러고 보니, 김치 담글 줄 모르는 젊은 주부들이 요즘 많단다. 담지 못한다거나 담가본 적 없다는 걸 자랑스레 이야기하는 새댁도 적지 않다고 한다. 신종플루가 젊은 층에 유독 많았던 이유의 설명일 수 있겠다.

 

배추가 한 포기에 1만원을 넘어 1만5천 원이라는 보도가 나온 후 정부는 중국에서 배추를 긴급 수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참 간단한 대책이다. 김치 수입량도 치솟겠지. 대부분의 농부들은 중간상인과 밭떼기로 계약한 관계로 배추 가격이 오른다고 수입이 늘어나는 것도 아니다. 그 소식을 듣고 심어도 3개월이 지나야 실한 배추를 내놓을 수 있는데, 벌써 찬바람이 분다. 배추 심는 시기는 이미 놓쳤다. 장마철 뒤 맑은 하늘이 실종되어 김치를 제때 파종할 수 없었던 농부들은 심난한데, 결국 수입업자와 상인들만 신나게 생겼다. 중국 김치공장의 위생 상태를 한때 무척 의심했던 정부 당국은 이번 수입을 계기로 검사를 철저하게 할 것인가.

 

대통령 비서실장이라는 직책을 가진 인물은 업자의 사재기를 가격 인상의 원인인 듯 주장했다. 그런가. 언제나 매점매석하는 자가 예나 지금이나 없는 건 아니지만 배추 값이 사상 초유로 오른 원인이 바로 그건가. 그렇다면 한시바삐 단속하고 숨겨둔 배추를 내놓도록 조치를 취해야 할 텐데, 어딘가 모르게 수상쩍다. 이번 배추 값 인상의 원인으로 야당을 비롯한 많은 이가 4대강 사업으로 경작지가 위축되었다는 걸 지적한 이후의 호들갑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사실 하도 땅이 질어 배추를 파종할 시기를 놓친 농민이 많았지만 따져보자. 이번에 배추 값만 올랐다던가. 비닐하우스에서 계절과 관계없이 수확하는 거의 모든 채소의 가격이 올랐다. 비닐하우스도 더러 날씨의 제약을 받지만 요즘처럼 가격이 솟구칠 정도는 아니다. 그렇다면 대통령 비서실장의 주장처럼 진정 사재기를 의심해야 할까. 그 정도의 물량을 도대체 어디에 숨겨놓고 버틴다는 겐가. 온갖 정보를 먼저 들여다볼 위치에 있는 대통령 비서실장의 주장치고 참 치졸한데, 부정할 수 없이 분명한 것은 4대강에서 마구 퍼올린 오염된 모래와 자갈은 강변의 농토에 막대하게 쌓였다는 점이고, 그 땅은 작년과 그 이전에 각종 채소를 생산하던 기름진 농토였다는 사실이다.

 

김치를 포함한 채소는 경매를 거쳐 시장에 나온다. 경매는 사려는 자에 비해 팔려는 자의 물량이 적으면 가격을 오르게 한다. 그래서 경매를 거치는 채소와 어패류는 그날그날의 물량에 따라 가격이 오르내린다. 또한 앞으로 경매에 나올 물량에 대한 소식에 따라 가격이 민감하게 요동칠 수밖에 없다. 배추와 채소가 더욱 줄어들 거라는 예측이 가격이 오르게 하는 건 당연하다. 매점매석과 관계가 멀다. 배추 값 때문에 4대강 사업에 대한 반대 여론이 커질 걸 몹시 두려워하는지 정부의 관계부처는 배추 값 인상과 4대강 사업은 서로 무관하다고 강변했지만 도무지 맥아리가 없다. 권력 핵심부의 눈치를 보려는 것 같아 가련하기까지 하다.

 

방귀 뀌다 들킨 것처럼 깜짝 놀라서 4대강 사업으로 줄어든 채소밭의 면적은 가격에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니라고 즉시 변명했지만, 금세 공허해졌다. 정부의 부실한 주장에 대해 바로 이어진 4대강 주변 농토 농민과 시민단체의 구체적이고 실증적인 수치에 대해 이렇다 할 반론을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부의 공허한 대책이 겨울철 김장을 먹지 못하는 게 아닌가 걱정하는 우리를 달래주지 못한다. 중국에서 긴급 수입하겠다는 발상이 소비자와 생산자의 분노를 위로하지 않는다. 김치 없는 겨울을 어느 누가 상상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러다 시민들도 역사와 문화에 없던 양배추로 김장을 담가야 하나. 생각만 해도 역겹다.

 

김치가 우리네 면역을 증진시키는 건 신토불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 땅에서 우리가 직접 재배한 배추에 같은 땅에서 같은 방식으로 수확한 갖은 양념을 넣었다. 또한 우리 염전에서 생산한 소금으로 절인 뒤 우리 갯벌에서 손으로 채취한 젓갈로 담지 않았던가. 생각해보라. 모름지기 땅을 떠난 먹을거리는 먹는 이의 건강을 제대로 도모하지 못한다. 수입식품과 가공식품이 그렇다. 항생제가 들어간 양식어패류, 우유, 계란들. 수천 킬로미터를 항해하며 농약 세례를 받은 수입곡식과 과일들이 그렇다. 유전자조작 사료를 먹여 키운 외국 육류도 그렇다. 그 결과 면역이 떨어져 우리 땅의 젊은이들이 작년에 신종플루로 고생하지 않았나.

 

그나마 밥상 앞에서 조금 씩은 언제나 김치를 먹어온 우리의 젊은이들은 거의 입에 댈 수 없었던 다른 나라의 젊은이에 비해 면역이 높을 것이라 믿는다. 그래서 이번에 여수의 한 고등학교에서 신종플루 환자가 발생했지만 당국처럼 우리도 아직은 그리 큰 걱정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의 배추 파동은 우리의 내일을 걱정스럽게 한다. 기상이변으로 몸과 땅의 기운이 전 같지 않은데, 배추가 동나 김치마저 먹을 수 없다면, 내일의 건강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네 겨울 밥상에 김장김치가 없거나 희귀해서는 안 되는 일이 아닌가. 김치가 없는 겨울, 우리네 역사와 문화에 없지 않던가. 역사에 기록돼 두고두고 지탄받을 게 명약관화한 4대강 사업은 이번 배추 파동으로 보아도 당장 용서하기 어렵다. (인천in, 2010.10.?)

깊이 동감합니다. 공급이 적으면 가격이 올라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특히 배추와 같이 장기저장이 어려운 생물인경우에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