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09. 11. 8. 19:18

 

들어가는 글

 

‘신종플루’라. 이름이 참 무책임하다. 인플루엔자, 줄여서 플루, 다시 말해 독감 바이러스는 어떤 바이러스보다 변형이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앞으로 신종플루가 변형되어 나타나면 어떤 이름을 붙여야 하나. ‘또신종플루?’ ‘다시신종플루?’ ‘자꾸신종플루?’ 아무튼, 우리 정부의 작명 솜씨는 세계보건기구(WHO)를 주무르는 미국보다 한 수 아래인 게 분명하다. 미국은 ‘인플루엔자A H1N1’이라 했다. 변형되어도 B부터 Z까지 여유가 있지 않은가.

 

신종플루 치료제인 ‘타미플루’를 독점으로 생산하는 스위스의 제약회사 ‘로슈’는 시방 세계에서 몰려드는 돈을 갈퀴로 모으느라 정신이 없겠다. 돈을 싸들고 먼저 보내달라는 국가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지 않던가. 신종플루가 유행하기 전에 세상에 나온 만큼 로슈가 신종플루의 출현을 예상하고 타미플루를 개발했을 리 없다. 계절 독감 치료제로 만들었는데 신통방통하게 신종플루에 효과가 있어 떼돈을 벌어들이는 건지 모른다.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자는 국제회의에서 개발도상국이니 봐달라고 바싹 엎드렸던 우리나라도 타미플루 구입 대열에서 뒤처지지 않았으니 대부분의 부자나라들처럼 재고를 충분히 확보했을 게다. 지레 겁먹고 마음 졸이지 않아도 무방하리라. 내 집에도 차례가 왔던 걸 보면.

 

미술대학 신입생인 큰 아이는 걸핏하면 작품 만든다며 집에 들어오지 않았고, 그 기회로 밤새 술을 마시는 일이 잦았는데, 아무리 젊어도 술과 피로로 찌들자 기침과 열을 동반한 호흡기 질환이 왔던 모양이다. 평소라면 그냥 감기일 거로 믿고 지나갈 일이었지만 시절이 시절인지라 조교는 학교 보건소로 냉큼 보냈고 보건소는 다짜고짜 근처 거점병원으로 토스했다. 때는 추석 전, 확진검사비 10만원을 내라는 말에 고개를 젓는 학생이 보나마나 고위험군이 아니라고 판단한 의사는 타미플루 10정 들이 한 갑을 선뜻 내주고 손 턴 게 뻔했다. 그리 심하지 않은 열과 잦은 기침은 신종플루와 증세가 비슷하다지만, 감기나 계절 독감도 대개 그렇다. 신종플루도 아닌데 타미플루를 먹으면 내성이 생겨 정작 감염되었을 때 약효가 떨어질 수 있다지만 그건 다음 이야기일 뿐. 확진 결과 기다리다 치료 시기 놓치는 것보다 있는 타미플루 얼른 내주는 게 났다고 여겼을 테고, 아이도 동조했을 거다.

 

아침저녁으로 한 알, 하루에 두 알 먹는 타미플루를 이틀 먹자 아이는 차도를 보였고, 다 먹기 전에 정상으로 돌아왔다. 아이에 진정 신종플루가 왔을 수 있다. 붙어다니던 친구가 아르바이트하는 학원에 신종플루 확진환자가 있었다 하고, 그 친구도 잠시 열과 기침이 심했다는 걸 보면. 타미플루를 먹고 아이의 증상은 사라졌지만 어쩌면 먹지 않았어도 쉬 나았을지 모른다. 확진환자보다 10배 이상의 사람들이 별 증상 없이 지나간다는 전문의사의 발언을 미루어보면. 아이는 사실 저보다 동생과 부모에게 전염되는 걸 막으려고 타미플루를 먹었다. 식구들이 위험에 빠지는 걸 걱정했다기보다 신종플루 환자라는 의혹만으로 학교와 사회에서 온갖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현실을 감안했겠지.

 

신종플루 때문에 학교를 가지 않았던 아이는 1주일 내내 컴퓨터 게임에 몰두했다. 게임으로 현실을 회피하는 거. 신종플루가 치명적이라면 그럴 리 없겠지만, 학교에 가기 싫어 신종플루에 전염되려는 이 땅의 청소년들의 기분도 비슷하지 않았을까 싶다. 신종플루에 걸리려고 예방수칙을 역이용하는 학생이 많다고 언론은 개탄했는데, 학생들이 등교를 왜 거부하려 하는지 고민하지 않은 언론은 신종플루로 컴퓨터 게임에 빠지는 이가 늘어나면서 관련 주식이 강세를 보인다고 보도했다. 지구온난화 테마주가 잘 나간다더니, 신종플루 핑계로 집에서 컴퓨터 게임에 빠지려 하는 아이들에 비해 돈벌이에 약삭빠른 어른은 개탄스럽지 않은가. 의젓한 어른의 행동이었나. 하여튼, 불안을 팔아 돈을 버는 상품으로 신종플루도 입시 교육 이상 손색이 없는 모양이다.

 

슈퍼마켓 선반에 올라오기 무섭게 동이 나는 항균 세제는 요사이 필수품일까. 신종플루를 포함해 세균의 99.9퍼센트를 제거해준다고 광고하는 손 세정제들은 보통 비누보다 크게 비싸지 않고 거품도 잘 나며 향기도 좋다던데, 이참에 집안의 비누와 샴푸를 몽땅 없애고 아예 항균 세제를 쓸까. 올 여름에는 아폴로눈병이 대폭 줄었다던데, 신종플루나 아폴로눈병이 아니라도 자주 손 닦는 거야 말릴 일이 아니지만, 생각해보자. 주의사항이 유별난 항균 세제 덕분에 광고 문구처럼 손의 세균이 싹없어졌다고 하자. 이제 그 손으로 일을 해야 한다. 연필, 문고리, 가방끈 들을 잡을 때마다 무수히 많은 세균들이 금방 붙을 텐데, 다시 항균 세제를 찾아야 하나. 99.9퍼센트의 세정력에 손을 맡기기보다 중요한 건 내 몸의 면역력을 높이는 일이다. 항균세제는커녕 비누도 사용하지 않았던 우리 조상은 언제나 청청했다. 신종플루는 물론이고 계절 독감도 요즘보다 훨씬 드물었을 것이다.

 

 

독감 유전자의 경이로운 변이 속도

 

신종플루라고 우리 정부가 작명하기 전에 세계보건기구는 돼지독감(Swine Flu.)이라 칭했다. 그도 그럴 것이 바이러스의 내부에 존재하는 유전자 8가닥이 모두 돼지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었다. 멕시코 남부 베라크루스 주의 작은 마을에 위치한 세계 최대 양돈 다국적기업, 미국계 ‘스미스필드 푸드’에서 증세가 시작되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고 그 바이러스의 내부 유전자를 분석하니 북미의 돼지독감에서 기원한 게 분명하므로, 돼지독감이라 명명한 건 정당했다. 하지만 잠시 뿐이었다. 돼지고기가 팔리지 않자 미국은 세계보건기구에 압력을 가했고, 미국의 우산 하에 있는 국제수역사무국(OIE)까지 명칭 변경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추정은 누구라도 가능하다. 세계보건기구 전문가들이 명칭 변경에 어처구니없는 반응을 한동안 보이지 않았던가.

 

미국이 작명한 ‘인플루엔자A’까지 이해하겠는데, 이어지는 ‘H1N1’은 무슨 암호인가. 보통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지 못 하도록 전문가 냄새나게 붙인 H1N1은 독감 바이러스의 표면에 수없이 돌출된 단백질 구조 두 가지를 지칭한다. 막대처럼 돌출한 헤마글루티닌과 끝이 버섯처럼 부푼 뉴라미니다아제가 그것이다. 바이러스의 내부 유전자가 숙주 세포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숙주의 세포막을 여는 기능을 하는 헤마글루티닌은 16가지, 숙주 세포 속에서 새로 복제된 무수한 바이러스를 밖으로 빠져나가게 하는 뉴라미니다아제는 9가지로 밝혀져 있으니, 독감 바이러스는 현재 144가지가 나타날 수 있는 셈이다. 하지만 헤마글루티닌이든 뉴라미니다아제든, 앞으로 얼마든지 종류가 늘어날 수 있다. 그중 H1N1은 1918년 창궐해 당시 세계 인구의 1퍼센트에서 5퍼센트 정도인 5천만에서 1억 명 정도 사망하게 했다고 알려진 스페인독감과 같은 형태다.

 

지금부터 90년 전, 1차대전 참호 속의 무수한 젊은이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스페인독감은 발생 초기인 봄에는 조용히 지나갔지만 여름에 변형되자 느닷없이 무서워졌다. 사람의 왕래가 요즘과 달랐어도 유럽을 휩쓴 당시 바이러스는 세계 곳곳으로 퍼졌고 특히 인도에 참혹한 피해를 안겼다. 시체가 하천에 둥둥 떠내려오는 걸 본 시골 사람들이 놀라 도시에 파고들었는데 그만 그들이 모인 슬럼에 바이러스가 집중 창궐했다는 게 아닌가. 우리나라도 14만 명이 사망했다는데, 일본은 27만, 미국은 55만, 유럽은 200만, 인도는 무려 1800만 명이 사망했다고 역사는 묵묵히 참상을 기록한다. 현재 그리 치명적이 아닌 신종플루는 무시무시했던 스페인독감 바이러스와 표면의 단백질 구조가 같다지만, 독성의 차이가 두드러진 걸 보아 내부 유전자는 판이하게 다를 게 틀림없다. 90년 세월 동안 인간이 천지가 개벽할 정도로 환경을 뒤바꿔놓았으니 독감 바이러스도 변하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독감은 사실 어떤 바이러스보다 경이로운 변이 능력을 가졌다. 헤마글루티닌과 뉴라미니다아제의 다양성만이 아니다. 내부의 유전자가 DNA인 대부분의 바이러스와 달리 RNA로 구성된 독감 바이러스는 정확성이 아주 떨어져 복제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변이체를 발생시킨다고 한다. DNA를 가진 바이러스보다 대략 100만 배나 빠르다고 《조류독감》의 저자 마이크 데이비스는 놀라워한다. 스페인독감도 그랬을 거다. 한데 무수히 많은 변이체 중에서 하필 독성이 강력해진 유전자를 가진 바이러스가 만연될 줄이야. 90년이 지난 지금까지 사람들에게 당시의 공포를 잊을 수 없게 만들었는데, 사실 스페인독감 이후 거의 10년 주기로 맹독성 독감이 반복되었고, 많은 경우 변이체가 치명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부메랑이 될 정도로 농약의 독성을 갱신해왔지만 사람의 과학기술이 잡초나 해충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막아내지 못하는 건 경험적으로 입증되는 정설이다. 거듭되는 최첨단보다 잡초와 해충의 변이가 훨씬 빠르기 때문인데, 항생제도 마찬가지다. 대략 20분마다 분열하는 우리 몸속의 세균은 항생제가 배설돼 나가기까지 10시간이면 충분히 내성을 가질 수 있다고 한다. 10시간 동안 한 마리도 죽지 않고 거푸 분열한다면 세균은 5억 배 이상 늘어날 수 있는데, 그중 한 마리에 내성이 생기기만 해도 어렵사리 만든 항생제는 다음에 소용없게 될 것이다. 예방주사도 마찬가지다. 변형된 세균에 대처할 예방주사는 다시 개발해야 할 게다. 바이러스는 어떤가. 세균에 기생하는 바이러스의 변이는 세균보다 훨씬 빠른 게 보통인데 독감 바이러스는 보통 바이러스의 100만 배라니. 효과가 아무리 빼어난 백신을 공들여 개발해도 금방 쓸모없게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가을이 깊어지기 전에 보건소를 찾는 이에게 접종하는 독감백신은 작년 비축분과 염연히 다르다. 올해 유행할 독감이 작년과 같을 리 없기에 보건소는 해마다 백신을 새로 준비해야 하고, 그를 위해 세계의 관련학자들은 정보를 활발하게 교환하며 연구를 거듭한다. 계절 독감의 백신은 한 가지 바이러스만 예방하지 않고 주사를 맞았다고 모든 항체가 공평하게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접종받는 사람의 상태에 따라 다를 텐데, 그건 신종플루 백신도 마찬가지일 게다. 여러 나라의 제약회사에서 성공적으로 개발한 신종플루 백신은 시방 경제 여력이 있는 국가부터 본격적으로 접종되고 있다. 다행히 이렇다 할 부작용이 보도되지 않고 신종플루의 전파 속도도 주춤해진다고 하는데, 걱정은 남는다. 이미 신종플루 변이체 출현이 여러 차례 보도된 마당에서 백신의 효과가 얼마나 유효할지 짐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공장식 축산의 저주

 

신종플루의 8개 유전자는 출처가 복잡하다. 북미와 아시아의 돼지 뿐 아니라 사람과 조류에서 기원한 유전자도 일부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원인은 바이러스의 유전자 재조합 능력에서 찾아야 한다. 한 숙주에 두 가지 이상의 바이러스가 동시에 들어간다면 각 바이러스는 복제 과정에서 내부 유전자를 교환할 수 있고 심지어 그 유전자의 일부도 교환하며 뒤섞을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한 숙주에 동시에 침투한 두 독감 바이러스는 헤마글루티닌과 뉴라미니다아제의 종류와 무관하게 오만가지로 변형돼 빠져나올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조류를 감염시킨 바이러스가 돼지를 감염시킨 뒤 재조합돼 빠져나와 사람을 공격한다면? 그 바이러스의 유전자에는 조류와 돼지에서 기원하는 유전자를 모두 가질 수 있겠다. 이번엔 다시 돼지를 숙주 삼는다면? 그 돼지는 사람에서 기원한 유전자의 공격도 받겠지. 바로 신종플루의 실체다. 돼지와 사람과 닭이 가까이 몰려 있다면? 재조합은 식은 죽 먹기로 이뤄질 수 있겠다.

 

겨울철새가 날아올 때면 정부는 조류독감 대책을 세운다. 담당 공무원은 발생 즉시 그 축사를 중심으로 반경 300미터에 안전반경을 긋고, 그 안에서 사육되는 닭과 오리와 메추리와 같은 가금류를 모조리 살처분할 것이다. 멀쩡히 살아있더라도 시장의 신뢰를 위해 철두철미하게 죽이고 말 것이다. 조류독감이 H5N1과 같은 고병원성이라면? 안전반경은 10배로 확대될 것이다. 안전반경 안에 돼지가 사육되고 있다면? 돼지까지 불문곡직 죽일 것이다. 조류가 아니라서 아무런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어도 다짜고짜 살처분할 것이다. 축사에서 종일 일하는 사람을 이따금 감염되게 만들기도 하는 조류독감은 사람에서 사람 사이로 퍼져나가지 않지만 조류독감이 돼지를 거치면 사정이 달라진다고 한다. 돼지에서 사람에게 옮겨가면 이후 사람에서 사람 사이로 전파될 수 있다는 게 아닌가. 독감 바이러스가 침투해도 3개월 동안 증상이 없는 돼지는 호흡기 세포의 표면에 돼지 독감 바이러스는 물론이고 사람과 조류의 독감도 달라붙는 수용체가 있다고 한다. 돼지 세포에 들어간 두 가지 이상의 독감 바이러스가 제멋대로 재조합된 뒤 빠져나와 사람을 공격할 가능성이 있고 경우에 따라 속수무책일 수 있다는 거다. 신종플루가 그랬을 거다.

 

신종플루가 시작된 멕시코 베라크루스 주 스미스필드 푸드 인근 마을은 양돈장에서 무단 배출한 분뇨 때문에 주민들이 고통을 받아왔고 신종플루가 세상에 알려지기 직전인 올 2월에는 주민의 60퍼센트인 1800명이 급성 호흡기 질병에 시달렸다고 한다. 멕시코 보건당국이 감기라고 단정했다지만 신종플루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텐데, 당초 돼지독감이라 했던 신종플루는 왜 100만 마리나 되는 스미스필드 푸드의 돼지들을 눈에 띄게 공격하지 않았을까. 100만 마리를 일일이 조사하지 않았을 테지만 일부 돼지는 감염되었을 것이다. 사람이 신종플루를 돼지에 전파한 사례는 보고된 적은 있었다. 신종플루는 그 돼지들에게 큰 피해를 주지 않은 모양인데, 사람의 감기처럼 돼지에게 별 게 아니었을까. 하지만 돼지에 대한 예외 없는 공장식 축산 구조로 볼 때 앞으로는 알 수 없다.

 

독감은 A와 B, 그리고 C형으로 구별한다. C형은 감기로 약화된 형태고 B형은 주로 면역이 약한 어린이나 노인을 괴롭히는 겨울 독감이다. 과거에 A형이었지만 오랫동안 인간 사이에서 순화된 결과라고 전문가는 풀이하는데, 굳이 통계를 내지 않아 그렇지 B나 C형 독감으로 사망하는 환자도 분명 있을 것이다. 문제는 주로 조류독감에서 기원하는 독감 A형이다. 겨울철새가 전파하는 것으로 알려진 우리나라의 조류독감은 양계장의 닭들을 처참하게 몰살시키는 질병으로 우리 뇌리에 각인돼 있다. 갯벌 주변의 호수나 강 하구에 바글거리는 대부분의 철새들은 문제가 없어 보이는데 감염된 닭과 오리와 메추리는 왜 떼로 죽을까. 제아무리 고약한 독감이 창궐해도 양계장의 닭처럼 떼로 죽는 생물은 자연에 일찍이 없었다. 1918년 스페인독감도 조류독감처럼 치명적인 건 아니었다. 그 이전에도 있었을 독감도 그 정도는 아니었으리라. 치명적이었다면 역사가 반드시 기록했을 테니까. 조류독감 바이러스는 왜 사람이 사육하는 가금류만 무더기로 죽이는 걸까. 그것도 최근에 유독.

 

독감을 앓는 겨울철새는 먼 길을 동행하지 못했을 테니 우리나라를 찾은 철새는 별 증상 없이 바이러스만 가지고 왔을지 모른다. 그 독감 바이러스가 사육 중인 닭이나 오리에 침투하려면 철새의 배설물이 하늘에서 에어로졸처럼 퍼졌다 축사로 스며들어야 가능할 텐데, 그런 일은 철새들이 도착한 이후에 발생했을 것이다. 날아오는 도중에 아무것도 먹지 않았으니 철새는 배설할 게 없다. 허기진 상태에서 갯벌의 갯지렁이나 들판의 나락들을 잔뜩 먹은 철새들이 해안 여기저기의 갯벌이나 호수로 이동하면서 배설했을 테고, 그때 바이러스가 포함된 배설물의 일부가 환풍기가 돌아가는 양계장으로 스몄겠지. 그건 그렇다 치고, 우리나라에서 겨울을 보내는 동안에도 조류독감으로 죽어가는 철새는 거의 찾을 수 없다.

 

서해안의 갯벌이 예전처럼 드넓었다면 겨울철새는 굳이 먼저 온 철새들로 바글거리는 호수에 비집고 끼어들 이유가 없었을 거다. 갯벌이 매립돼 사라지자 좁아터진 호수나 매립지 주변의 유수지라도 감지덕지 내려앉을 수밖에 없고, 온갖 철새들로 뒤엉킨 호수에서 배설하며 물을 마시다 질병을 서로 전파하게 되었을 것이다. 조류독감도 물론 공유할 테고. 먹이를 먹고 체력을 이내 회복한 철새들은 별 증상 없이 지낼 수 있지만 기진맥진 날아왔다 제대로 먹지 못한 철새는 면역력까지 약화되었을지 모른다. 그런 녀석들은 결국 하얀 가운을 입은 사람에게 죽은 모습으로 수집되었고, 조류독감 바이러스를 가진 것으로 판명되었을 수 있다. 그래서 철새가 날아올 때면 철새 이동 구간의 담당 공무원과 양계농가에 비상이 걸리지만 뾰족한 대책은 세우지 못한다. 그저 조류독감이 발생한 축사를 신속히 폐쇄하고 안전반경 이내의 닭과 오리와 메추리와 돼지를 바삐 살처분할 따름이다. 지침에는 안락사시킨 후 매장하는 것으로 분명히 규정돼 있지만 시간과 일손이 부족한 현장은 달리 진행될 때가 오히려 많다.

 

중복 날 우리나라의 모든 군인은 영내 식당에서 닭이 한 마리 들어간 삼계탕 한 그릇을 점심으로 먹을 수 있다. 그를 위해 아마 100만 마리의 닭을 준비해야 할 텐데, 차라리 병아리에 가까운 그 닭은 몸의 크기나 무게가 거의 똑같다. 기계로 처리하는 까닭에 제각각이면 고장의 원인을 제공한다. 기계를 위해 닭의 유전적 다양성을 오차 범위 내로 위축시킨 것이다. 부화 후 딱 35일 키우면 삼계탕 뚝배기에 쏙 들어간다. 그런 삼계탕용 닭을 육종하기 위해 축산과학은 끊임없는 시행착오 속에 근친교배를 반복시켰을 것이다. 삼계탕 용 닭만이 아니다. 튀김과 산란을 위한 닭이 그랬고, 용도에 맞는 병아리로 부화될 유정난만 죽어라고 낳아야 하는 암탉도, 그 암탉들과 죽을 때까지 짝짓기 해야 하는 수탉이 그랬을 것이다. 닭만이 아니다. 오리도 메추리도 마찬가지다. 남보다 빨리 많은 돈을 먼저 벌어들이기 위해 최대로 좁힌 공간에 최대한 밀집시켜 사육하는 공장식 축산의 진면목이다. 개성이 말살된 축산동물의 유전적 다양성은 몰수되었고, 그런 만큼 축산동물은 타고난 면역을 잃어 질병에 약해졌으며, 밀집된 실내에서 부대끼는 만큼 질병은 쉽게 번지게 된 거다. 항생제를 사전에 처방해도 조류독감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가금류만이 아니다. 꿀벌이 사라지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인간에 의한 극도의 근친교배와 유전적 다양성이 사라진 벌을 밀집시키는데 있다. 아카시아 꿀을 위해 봄이면 제주도에서 강원도까지 이동하는 우리처럼 미국은 아몬드 나무의 꽃이 필 때 전국의 벌통이 캘리포니아로 몰렸다 흩어진다. 질병이 쉽게 퍼질 수밖에 없다. 유전적 다양성이 억압된 개체들을 밀집시켜 사육하는 건 돼지와 소도 마찬가지다. 수명과 임신 기간이 긴만큼 닭처럼 극단적으로 육종하지 못했어도 용도에 따라 품종을 개량한 뒤 분리해 사육하는 건 똑같다. 사육과 음식문화가 다른 까닭에 소는 대륙과 국가마다 맛과 생김새가 조금씩 차이나지만 돼지는 세계가 거의 공통이다. 몇 마리 안 되는 수컷의 정액을 집중 사용할 뿐 아니라 국제적으로 거래하기까지 한다. 아직 소나 돼지에 고병원성 독감이 창궐한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지만 치명적인 구제역은 조류독감 이상 무섭다. 광우병의 원인도 다른 데 있는 게 아니다.

 

개 도축이 합법화된다면 우리나라는 개도 돼지처럼 육종해 사육할 것이다. 삼복중의 라디오 토론장에서 패널로 나온 어떤 육종학자는 벼르고 있다는 걸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다. 위생적 도축을 명분으로 도축을 허가한다면, 이후 우리나라의 개는 어떤 모습으로 토실토실하게 육종돼 밀집 사육하게 될지, 상상에 맡긴다.

 

 

면역이 약한 요즘 젊은이들

 

11월 초 현재, 세계적으로 6000명 이상이 사망했고, 하루에 9천 명 가까운 신종플루 감염자가 발생하는 우리나라도 50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했지만 대부분 다른 질병에 노출되었거나 나이가 든 고위험군 환자였다. 정체를 몰라 허둥댈 수밖에 없었던 초기 상황에서 벗어난 다른 나라도 사정이 비슷하지 않을까. 물론 어느 나라나 치료제 처방이 늦어 숨을 거둔 젊고 건강했던 이가 없진 않을 것이다. 건조해지는 겨울이면 전파 속도가 빨라지므로 더 지켜볼 일이지만 다른 나라와 비교해 우리나라의 사망자는 그리 많은 편은 아니다. 백신을 본격적으로 투여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치료제가 충분할 뿐 아니라 의료 체계도 양호해 공포를 일으킬 정도로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을 거로 전문 의사들은 예상하면서 학생들이 백신 주사를 맞고 방학에 들어가면 이내 주춤해질 것으로 확신한다. 다만 스페인독감처럼 강력해진 변이체가 만연되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가 남아 있다.

 

같은 H1N1이라 그런가, 90년 전의 스페인독감처럼 신종플루도 많은 젊은이들이 감염되는 양상을 보인다. 불행한 사태로 이어지는 경우가 극히 드문 것과 관계없이 젊은 감염자가 많은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단순히 바깥 활동이 많기 때문일까. 요즘 단위 부대의 지휘관들은 울상이다. 휴가 다녀온 병사는 무조건 1주일 격리시켜야 하니 도무지 작전을 수행할 수 없다는 거다. 영내에서 마스크를 착용하게 해도 감염자가 발생하기도 한다는데, 공교롭게도 자대에 막 배치된 신병이거나 제대를 앞둔 선임 병장에 많다고 한다. 군기나 체력과 관계가 없어 보이는 신종플루 감염은 어쩌면 면역을 약화시키는 패스트푸드나 첨가물이 듬뿍 들어간 음식과 어떤 관련이 있는 게 아닐까. 입대 전과 제대 후의 젊은이일수록 식품첨가물과 패스트푸드에 길들어진 건 분명하므로.

 

1990년대 초 덴마크 연구진이 21개 국가에서 1만5천 명의 남성을 대상으로 정자 수를 비교 연구한 바 있다. 그 결과, 50년 만에 정자 수의 45퍼센트가 줄었다고 발표했고, 이어 영국과 일본도 잇달아 같은 결과를 보고했다. 흔히 ‘환경호르몬’이라고 말하는 ‘내분비 교란 물질’ 때문인 것으로 전문가들은 짐작하는데, 정자 수 감소와 기형 정자는 가공식품을 즐겨 먹는 젊은 층에서 두드러진다고 덧붙인다. 우리나라도 결코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내분비 교란 물질만이 아니다. 항생제와 여성호르몬이 포함된 계란과 우유, 그리고 그 가공식품도 문제를 일으키지만 평생 320킬로그램 먹는다는 식품 첨가물도 예외가 아니다. 《내 아이를 해치는 달콤한 유혹》의 저자인 식품회사 전직 연구실장은 “아이에게 과자를 주느니 차라리 담배를 주라고!” 경고할 지경이다. 면역이 약한 아이들에게 아토피 피부염이 증가하는 이유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인데, 입맛을 길들이는 가공식품을 어려서부터 먹어온 젊은이에게 아토피가 많은 걸 미루어보면 그들의 면역도 과거와 다를 게 틀림없다.

 

뉴욕은 미국에서 19번째로 학교 급식 목록에서 우유를 뺀 주가 되었다고 한다. 젖소가 신선한 바람과 이슬을 머금은 풀을 초원에서 뜯는 게 아니라 축사에서 오로지 유전자가 조작된 옥수수와 콩만 축내는 까닭에 우유에 비만과 당뇨를 유발시킬 칼로리는 넘치지만 균형 잡힌 성장에 필요한 영양분이 결핍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최근 번역 출간된 《우유의 역습》에서 저자 티에리 수카르는 우유를 완전식품으로 알고 먹어댄다면 비만, 당뇨, 심근경색 뿐 아니라 골다공증이 유발되고 발암 위험이 높아진다고 증언한다. 막강한 권력을 가진 미국의 낙농협회에서 노발대발할 내용이지만 우리를 포함한 세계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과학적 근거가 확실하기 때문이리라. 그런 우유. 이 땅의 젊은이들도 입에 달고 다닌다. 첨가물이 듬뿍 들어간 과자와 더불어, 아침 대신.

 

패스트푸드를 즐기는 요즘의 많은 젊은이들은 김치를 외면한다. 세련된 서구적 취향을 가진 듯, 김치를 외면하는 걸 자랑스레 여기기도 한다. 한데 김치를 찾는 이는 다른 국가에서 늘고 있다. 일본은 물론이지만 2003년 치명적 호흡기 질환 ‘사스’로 국가적 공항 상태에 빠졌던 중국도 김치 소비가 늘어난다. 최근 중국에 가면 손님상에 기본으로 김치를 내놓는 고급식당을 자주 보게 된다고 여행자들은 말한다. 얼마 전 뉴욕에서 김치 그림이 그려진 마스크가 등장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값비싼 인삼이나 홍삼이 아니라도 김치가 면역력을 높인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김치만이 아니다. 다른 나라도 그렇겠지만 영양분이 풍부한 우리 전통 식품은 조리 방법이 우수하다. 영양분 파괴를 최소화하고 면역력을 높인다. 우리는 어떤가. 잎채소는 대개 날로 먹고 김치와 깍두기는 콩과 더불어 발효해 먹으며 나물은 데쳐 먹는다. 밥은 끓여 먹고 전은 얇은 기름에 부쳐 먹으며 고기는 구워 먹는다. 기름에 빠뜨려 튀기는 음식은 거의 없다. 한데 요즘 젊은이는 거의 반대 순서로 조리한 음식을 즐긴다. 그것도 출처가 불분명한 살코기 위주로.

 

 

나가는 글

 

최근 신종플루 위기 단계를 ‘관심(Blue)’, ‘주의(Yellow)’, ‘경계(Orange)’를 넘어 최상위인 ‘심각(Red)’으로 격상한 정부는 행정안전부 장관을 본부장으로 하는 ‘중앙 재난 안전 대책본부’를 발족하고 동시에 전국 시군구에 단체장을 본부장으로 하는 ‘지역 대책본부’도 가동시켰다. 2006년 ‘국가 전염병 재난 단계’를 만든 이래 처음이다.

 

심각 단계를 계기로 소방방재청은 민방위교육을 전면 중단했고 교육과학부는 학생에 대한 예방접종을 앞당기기로 했으며 국방부는 그를 돕기 위한 군의관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전국 472개 거점병원의 병상을 입원 중심으로 전환하면서 중환자를 위한 병상을 추가한 정부는 전 국민의 20퍼센트에게 처방할 수 있는 1100만 명 분의 치료제를 연말까지 확보하겠다고 약속했다. “감염자의 증가 추세에 따라 범정부 차원에서 신종플루에 총력 대응하겠다!”고 정부의 의지를 천명한 담당 고위 관료는 “현재에도 심각 단계에 준하는 방역 대책과 사회적 차단 조치를 취하는 만큼, 단계 격상으로 인해 국민의 일상생활에 큰 변동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는데, 일사불란한 정부와 달리 시민은 딱히 할 일이 없다.

 

고위험군이 아니면 치사율이 고작 0.01퍼센트에 불과한 신종플루는 현재 무시할만한 질병의 모습일지 모른다. 하지만 해마다 7천명이 사망하는 교통사고에 비해 안전하다거나 만5천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현상보다 무섭지 않다고 단정할 수 없다. 신종플루 때문에 여행과 관광업계가 직격탄을 맞는다면 국내총생산이 5.5퍼센트나 감소할 수 있다고 경고하는 언론은 홈쇼핑과 온라인 교육업계가 활황을 맞았다고 소개하면서 매출 실적이 배 가까이 늘어나 주식시장에서 대박이 난 기업에 마스크와 세정제를 파는 회사도 포함해야 한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하지만 아무리 현재의 독성이 약하다 해도 경제적인 두려움만이 신종플루 걱정거리의 전부가 아니다.

 

손만 잘 씻으면 안심할 수 있다는 정부의 홍보에 따라 휴지나 손수건으로 입을 막고 기침과 제체기를 한 뒤 휴지는 휴지통에 버리며 손을 바로바로 닦는 시민들은 증상이 계속되면 확진검사 비용을 들고 거점병원으로 달려야 할 따름이지만 여전히 불안해한다. 정부와 언론의 이야기도 혼란스럽지 않던가. 그러자 의협심 익명의 의사가 인터넷에 나서서 “타미플루는 충분하고 백신은 안전하니 크게 염려할 필요가 없다!”며 다독거린다. 고마운 일인데, 그들도 변형된 신종플루의 위험성은 배제하지 못한다면서 손을 잘 씻자고 물러선다. 아니, 손을 잘 씻는다고 신종플루의 변형까지 막을 수 있다던가. 녹색으로 위장한 온갖 개발로 환경이 더욱 교활하게 파괴되는 이때, 신종플루의 변형은 불가항력일 수밖에 없을 텐데, 환경을 파괴하는 개발을 근원적으로 막을 수 없다면 개인의 면역력을 끌어올리는 일이 현재 상황에서 가장 시급한 노릇이 아닐까.

 

한겨레21 최근호(784호)는 “김치와 인삼의 면역력에 기대려는 문명사회가 궁색하다 여긴다면 신자유주의 문명의 작동 방식을 바꾸는 것을 고민해보자.”고 제안한다. 눈이 크게 떠지는 대목이다. ‘국민 건강을 위한 수의사 연대’ 박상표 편집국장은 “산업화 이전까지 인간과 바이러스는 비교적 평온한 공생관계를 유지했지만, 산업혁명 이후 생태계 파괴, 지구온난화에 따른 자연재해, 초국적 거대기업 중심의 공장식 축산업, 신자유주의 이후 빈곤층 증대 등이 바이러스 대재앙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현재의 삶의 방식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고 보도한 ‘한겨레21’은 철새의 서식지를 빼앗아 조류 인플루엔자를 앞마당에 불러들이는 4대강 개발 사업에 대한 반대운동을 그런 성찰 중의 하나로 거론했다.

 

어처구니없게 ‘살리기’를 앞세우는 이명박 정권의 4대강 사업도 당연히 반대해야겠지만 거기에서 그칠 수 없다. 조류독감과 신종플루의 변형을 최대한 억제하려면 겨울철새가 깃드는 갯벌을 송두리 째 매립해 온실가스 마구 배출할 개발에 몰두하는 행위와 더불어 조수의 흐름을 제방으로 막으며 갯벌 생태계를 돌이킬 수 없게 훼손하는 조력발전도 경계해야 하고 공장식 축산과 함께 권력자가 가치를 규정한 획일적 사고에 복종을 강요하는 우리의 줄 세우기 교육도 반드시 돌이켜야 한다.

 

결국 선조의 자연스러운 삶을 회복해야 한다는 게 결론인지 모른다. 지구의 자정능력과 자신의 면역력을 떨어뜨리는 행위, 다시 말해 생태계의 자연스런 질서를 교란하는 개발을 막고 사람도 자연의 일부일 때 가장 건강하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할지 모른다. 11월 7일자 한겨레 신문에 쓴 이계삼의 말처럼 “자연은 신종플루를 통해 이 가공할 재앙을 향한 경고등을 크게 한번 깜빡인 것”이라는데 동의할 수밖에 없다면 아직 돌이킬 수 있을 때 자연스러움을 회복해야 한다. 그렇다면 신종플루는 인간의 오만한 행위에 반성을 촉구하는 자연의 준열한 죽비일 것이다. 지금은 경고를 보내는데 머물지만 죽비는 곧 치명적인 부메랑이 될 수 있다. (환경과생명, 2009년 겨울호)

 
 
 

공동체·인간

디딤돌 2009. 9. 7. 21:21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의 분석을 인용한 한 언론은 신종플루 사망자의 80퍼센트 이상이 5살 이상이라는 점을 주목했다. 4세 이하의 영아나 유아 사망률이 50퍼센트가 넘은 일반 계절 독감과 다른 현상이라는데, 5살 이상에서 신종플루가 많은 이유로 학교나 캠프 활동에서 바이러스와 접촉할 기회가 많다는 점을 들었다는데, 설명이 부족해 보인다. 그렇다면 마찬가지로 주로 밖에서 감염되는 계절 독감은 왜 다른 감염 양상을 보이는 걸까.

 

우리도 사정이 비슷하다. 영아나 유아에 대한 통계는 발표되지 않았지만, 청장년층이 노년에 비해 감염자가 압도적으로 많은 건 사실이다. 신종플루는 독특한 면역적 특징을 갖는 걸까. 평소 건강했던 사람이 증세를 보인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하는 사례가 있으니 걱정은 증폭된다. 나도 예외일 수 없지 않은가. 손 잘 씻고 많은 사람이 모인 곳을 삼간다고 안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의사도 처방이 어려울 것이다. 치료제인 타미플루의 처방이 늦어 사망한 사례가 보도되지만, 확실하지 않은데 함부로 처방했다 역가가 떨어지면 정작 감염되었을 때 치료가 어려워질 수 있지 않던가. 대부분의 신종플루 환자가 일반 감기약으로 치유된 사례가 훨씬 많은 현실을 의사로서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일반 계절 독감에 대한 통계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데, 발표되지 않아 그렇지 신종플루 사망자는 같은 기간에 발생한 계절 독감으로 인한 사망자보다 적을 테고, 그 기간 동안 교통사고로 사망한 수에 비한다면 아주 드물 게 틀림없을 텐데, 우리는 신종플루에 특별한 반응을 보인다. 높은 감염속도에 비해 초기 증세만으로 확실한 진단이 어렵다는 한계보다 신종플루의 면역적 특징이 분명하기 않게 때문일지 모른다. 이런 와중에 보건당국은 신종플루에 대한 면역을 높인다는 건강식품 광고를 조심하라고 경고했다. 시의적절한데, 왜 평소 건강했던 젊은이들이 신종플루에 잘 감염되는지 여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독감에 대한 면역을 백신보다 3배나 끌어올린다면서 초유(初乳)가 불티나게 팔린다고 한다. 사람의 초유는 매우 고가일 테니 시중 제품은 주로 동물에서 얻는다. 새 생명에 돌아가야 할 면역을 성인이 가로챈다는 점에서 마음 편하지 않은데, 미국 뉴욕에서 김치가 독감을 예방한다는 문구와 배추김치 사진이 있는 마스크가 선보였다고 한다. 치명적인 호흡기 질환인 사스로 사망자가 중국에서 동남아시아로 퍼져나갈 때 유독 한국인에게 발병이 없는 이유의 하나로 김치를 꼽았던 전문가들이 많았다는 점을 착안한 모양이다. 사실 김치가 먹는 이의 면역을 증강시킨다는 보고는 많다.

 

신종플루도 포함해 많은 질병은 면역이 떨어질 때 몰려든다. 영아나 유아, 환자나 노인, 그리고 임산부 들이 질병에 조심해야 하는 이유가 그렇다. 젊은이는 면역이 당연히 높아야 한다. 한데, 요즘은 그리 단정하기 어렵다. 자연스럽지 않은 삶을 사는 이가 많기 때문이다. 음식이 특히 그렇다. 지역에서 전통 방식으로 재배해 식구와 천천히 요리해서 함께 먹는 음식을 등한시하는 비율이 젊은이에게 현저히 높은 건 우리나라만이 아니다. 말초적인 미각에 호소하는 가공식품이 면역을 떨어뜨린다는 건 새삼 재론할 필요도 없는 이론이다. 안전성을 쉽게 확인할 수 없는 첨가물이 범벅인 패스트푸드와 가공식품만이 아니다. 흰 밀가루와 설탕과 같은 정제된 탄수화물, 환경호르몬이 들어간 음식에 젊은이들이 더욱 익숙해 있지 않던가. 우리나라에도 김치를 외면하는 젊은이가 많고, 다른 나라도 제 나라의 전통음식을 꺼리는 젊은이가 많다.

 

애초 돼지독감이라 했다 석연치 않은 이유로 이름을 어색하게 바꾼 신종플루는 자연스럽지 못한 양돈농가에서 비롯되었다. 유전적 다양성을 잃은 돼지 수백만 마리를 정제된 사료로 속성으로 키우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전문가들은 의심한다. 돼지보다 사람을 주로 공격하는 신종플루도 비슷하다. 자연스러움을 잃은 젊은이에 집중된다. 신종플루를 계기로, 우리는 조상이 물려준 전통의 자연스러움을 회복해야 할 필요가 충분하다. 음식, 축산, 일상생활도 마찬가지다. (요즘세상, 2009년 9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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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인간

디딤돌 2009. 8. 26. 10:45

 

‘신종플루’ 감염자 가운데 10대와 20대의 젊은이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소식이 들린다. 물론 대부분은 금방 회복되었지만 일반적으로 면역력이 높은 젊은이가 더 감염된다는 사실은 의외다. 전염력이 아무리 높아도 분명히 독감인데, 가을마다 보건소에 줄을 서는 노인보다 젊은이에 신종플루가 집중되는 이유가 뭘까. 활동력이 높을 뿐 아니라 집단생활이 많기 때문이라면 예방 대책 세우기가 한결 편할 텐데, 유달리 신종플루에 대한 면역이 약한 거라면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혹시 김치와 무슨 관련은 없을까.

 

치명적 호흡기 질환으로 밝혀진 ‘사스’로 중국이 혼란에 빠졌을 때, 한국인에게 유난히 사스 감염률이 낮은 이유로 일부 과학자는 김치의 가능성을 조심스레 거론한 적 있다. 이후 그 과학적 타당성을 얼마나 심도 있게 연구했는지, 있다면 그 결과 어떤지, 우리는 여전히 알지 못하지만, 분명한 것은 최근 중국의 고급식당에서 손님상에 김치를 올려놓기 시작했다는 것이고 우리 젊은이들은 장년층보다 김치를 훨씬 덜 먹는다는 것이며 김치가 먹는 이의 면역력을 증강시킨다는 사실이다.

 

외식산업이 발달된 타국에서 한국인보다 현지인이 훨씬 많은 한식당에 가면 기분이 뿌듯해진다. 함께 앉은 한국인이 권하는 음식을 먹으며 “원더풀!”을 연발하는 현지인의 모습은 이제 보는 이를 민망하게 만들 따름이고, 현지인끼리 자리 잡고 능숙하든 서툴든 수저를 사용하며 김치를 곁들인 한식을 먹는 모습이라야 진정성을 엿보이게 한다. 불고기와 갈비에서 김치와 떡으로 이어진 우리 음식의 세계화는 정부의 적극적 지원으로 점차 그 폭을 넓히고 있다. 얼마 전에는 떡볶기의 세계화를 위해, 요리와 시식에 참여한 외국인의 의견을 모으려는 행사 진행자의 모습이 텔레비전 전파를 타기도 했다.

 

해외에서 높아진 내 음식문화에 대한 자부심과 별도로, 정작 내 나라 안에서 감지하게 되는 우리 음식의 지위는 상대적으로 낮아 보인다. 대개의 고급식당은 양식이나 일식과 중식이 메뉴의 중심을 차지하고, 가격대가 다소 높은 한정식이라도 전통의 나물이나 전을 선보이기보다 양식에 가까운 음식이 식탁에 올라오기도 한다. 손이 많이 가는 까닭에 인건비를 아끼려는 의도라기보다 주변에서 재료를 쉽게 구하지 못하기 때문일지 모른다. 생각해보라. 우리가 먹는 음식의 약 4분의3은 수입에 의존하는데, 쌀을 빼면 5퍼센트에 불과한 실정이 아닌가. 내 땅에서 재배한 농산물이라야 맛과 향이 살아날 텐데, 그게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니 한정식까지 전통의 맛과 멋을 잃었는지 모른다.

 

요즘 우리나라는 쌀 재고가 쌓여 걱정이다. 농림수산식품부는 정부가 보관하고 있는 쌀이 현재 67만 톤, 거기에 올 가을에 수매할 37만 톤을 추가하면 100만 톤이 넘는 쌀을 비축하게 되어 관리 예산이 3000억 원 이상 들어갈 것으로 예상한다. 거기에는 민간부분의 비축량과 관리비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재고가 넘치면서 가격이 하락하자 농민들의 시름은 깊어가지만 획기적인 대책은 기대하기 어렵다. 쌀라면을 먹겠다는 대통령의 발언 이후 지방자치단체마다 재고를 줄이려는 고육지책이 제시돼, 공공시설의 집단급식에 사용한다거나 떡이나 빵과 같은 가공식품으로 활용하겠다는 계획이 비슷비슷하게 발표되고 어떤 언론은 쌀 막걸리에 우리 쌀 사용을 제안하지만 그런다고 소비가 갑자기 늘어나는 건 아니다.

 

쌀 재고가 늘어나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소비가 줄어든다는 것일 게다. 1995년 1인당 100킬로그램 이상 먹은 쌀을 2008년에는 75킬로그램 소비할 정도로 그쳤다. 그렇다고 영양 상태까지 줄어든 건 아니다. 오히려 비만 인구가 심각하게 늘어났다. 까닭은 쌀 이외의 음식이 지천이기 때문인데, 쌀 소비 감소와 재고 증가를 충분히 예견하고 있던 정부는 이제 와서 쌀을 가공하는 식품의 종류를 늘리고 그 품질을 개선하는 연구를 지원하겠다고 나서지만, 이미 밀가루와 그 가공식품, 그리고 과일과 고기와 낙농제품에 익숙해진 시민들이 식성을 바꿀지 모를 일이다. 한데 쌀 소비량이 증가한다면 새로운 문제가 고개를 들 가능성이 높다.

 

쌀 과자와 쌀 라면, 밥으로 고기를 감싼 햄버거와 쌀 반죽에 토핑을 얹는 피자를 적극 판매해 쌀 소비량이 늘어나면 그만큼 다른 음식의 소비량이 줄어들 터. 농산물을 수입하거나 수입 농산물을 가공하는 산업은 새로 발생하는 어려움을 하소연할 수 있다. 하지만 그리 심각한 수준은 아닐 것이다. 농산물 수입 규모가 쌀 재고량에 비해 훨씬 클 테니. 그만큼 우리의 수입 농산물 의존은 심각하기만 한데, 해외의 농산물은 언제까지 우리 식탁의 풍성함을 보장할 수 있을까. 해마다 막대한 잉여 농산물을 생산하는 미국의 농경지는 지구온난화와 에너지 위기에 취약할 것으로 기후 전문가들이 예측하는 가운데 미국은 자국의 잉여 농산물을 바이오디젤 연료로 전용하려는 계획을 더욱 확대하고 있다. 이미 식량 순 수입국이 된 중국의 사정도 전 같지 않다. 수입 농산물이 한계에 부딪힐 날이 멀지 않았다는 뜻이다.

 

소비량이 줄어드는 상황에도 우리는 2004년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에서 ‘최소 시장접근(MMA) 의무’로 2014년까지 쌀을 수입하기로 약속했다. 그 물량은 해마다 2만 톤 씩 늘어나게 돼 있어, 2008년 29만 톤에서 올해 31만 톤, 2014년 이후에는 40만 톤을 넘길 예정이다. 그에 상응해 정부는 농가 수매량을 해마다 3만 톤 씩 줄였고, 올해는 고작 37만 톤을 수매할 예정이건만 그 와중에도 쌀 생산량은 늘었다. 하지만 재배 면적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얼마 전 통계청은 우리나라에서 현재 벼농사 짓는 92만4471헥타르는 작년보다 1.2퍼센트 줄은 면적이고 2001년보다 14.6퍼센트, 재배 면적이 가장 넓었던 1987년보다 26.8퍼센트나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해마다 여의도 면적의 20배 이상 줄어드는 실정이라고 한다.

 

정부 수매량이 줄어드는 상황에도 생산량과 수입 물량이 증가하는 까닭에 농가들은 쌀값이 떨어질 것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고, 버티기 어렵다고 느끼는 농가에서 논을 포기하는 현상에서 쌀 재배 면적 감소의 원인을 찾는 통계청은 각종 개발로 형질이 변경돼 논 자체가 사라진 현상도 아울러 주목했다. 쌀 생산량은 국내든 해외든 일정하지 않다. 최근의 재고 증가는 어쩌면 일시적인 현상일지 모른다. 자연환경 조건에 따라 풍작이었던 논이 이듬해에 흉작에 머무는 경우는 비일비재하건만 우리 농토는 해마다 줄어들기만 한다. 휴경이라면 차라리 다행인데, 용도를 변경해 도시로 공장으로 바뀌니 걱정이 클 수밖에 없다. 수입물량의 변동과 생산량 감소를 대비해 유엔 산하 세계식량농업기구(FAO)는 적어도 2달 분 식량을 비축할 것을 각국 정부에 권장하는데, 우리는 논 앞의 쌀 재고량이 많다는 점만 걱정하고 있다. 한가롭다. 국민이 섭취하는 영양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쌀 이외의 농산물은 재고량이 충분할까.

 

식탁 위의 밥보다 반찬을 더 많이 먹는 세상에서 오로지 쌀만이 걱정의 전부일 수 없다. 논보다 먼저 개발돼 사라지는 경작자가 바로 밭인데, 밭에서 재배하는 농작물도 결코 안정적이 아니다. 내 땅에서 생산하는 농작물에 한계가 있다면, 자부심과 관계없이 전통 음식은 후대로 제대로 이어지기 어렵다. 조상이 물려준 음식문화는 변질되고 만다. 이미 우리 사회가 그렇게 가는 중이고, 김치를 거부하는 우리 젊은이 사이에 신종플루가 잘 퍼지는 이유가 새삼 궁금해질 지경인데, 확실한 것은 자급기반을 잃어가는 식량은 우리 내일의 주권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사이언스올, 2009년 8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