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12. 7. 3. 14:08

   저어새는 다리가 4?

 

깃대종이라는 말이 있다. 유엔환경계획(UNEP)에서 만든 개념으로, 그 지역을 대표하는 생물이다. 지역의 생태적 특성과 연관시킬 수 있거나 지역의 문화와 역사를 반영할 수 있는 생물을 보통 지정한다. 우리나라 국립공원은 생태적, 문화적, 사회적으로 해당 국립공원을 대표할 수 있는 종을 동물과 식물에서 각 1종 이상 선정하면서 서식지 안정화와 공원자원보호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그 중 동물의 일부를 보면, 설악산은 산양, 지리산은 반달가슴곰, 내장산은 비단벌레 들을 지정해 보전하고 있다.


멕시코 원주민들은 개구리를 신격화한다. 개구리가 보이면 어딘가 물이 안정된 상태로 있다는 뜻이다. 옥수수를 심어 식구를 먹여 살릴 수 있지 않은가. 멕시코에서 사랑받는 개구리는 당연히 마을마다 다양한 조형으로 장식돼 있고, 작은 장식물은 관광객들에게 기념품으로 팔려나간다. 일본 북해도에 가면 곰을 조심하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듣는다. 북해도에서 곰은 지역을 상징하고, 각양각색의 모형이 기념품점을 장식한다. 미국 서북부의 숲은 스모키 베어가 상징한다. 산불로 그을린 아기 곰을 형상화해 사람의 윤리적 이용을 강조하며 다양한 기념품이 제작돼 선물용으로 판매된다. 그런 예는 나라마다 지역마다 차고 넘친다.


인천을 상징하는 동물은 무엇일까. 먹고 살기 바빠 그런가, 관심 갖는 이 거의 없다. 재두루미는 인천을 상징하는 새다. 그래서 숭의로타리의 조형물로 장식돼 있는데, 관리가 부실하다. 연수구의 상가 앞에도 장식되었지만 지금은 없다. 2년 전 추석 직전에 몰아친 태풍 곤파스로 나무들과 더불어 쓰러지자 아예 없애버렸다. 재두루미는 갯벌이 광활할 때 겨울을 지내러 항상 인천을 찾아왔지만 지금은 아니다. 수명이 긴 만큼, 어렸을 때 앉았던 지역을 가끔 선회하지만 매립돼 개발된 인천의 바닷가에 몸 둘 데 없다는 걸 잘 안다. 추억만 더듬을 뿐, 이내 날아가 버리고 만다.


재두루미를 포함해 대부분의 두루미와 흑두루미들은 먹이를 넉넉히 제공하는 일본으로 간다. 한데 재두루미가 떠난 인천에 저어새가 다가왔다. 그것도 자동차 소음과 오폐수의 악취가 진동하는 남동산업단지 유수지에 벌써 5년 가까이 찾아온다. 강화도 인근의 무인도에 은둔하며 둥지를 치던 녀석들이 둥지 치기 열악한 유수지를 찾은 건 송도신도시 주변의 갯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쑥쑥 자라는 새끼들을 충분히 먹일 수 있지 않은가. 세계적으로 2000여 마리가 남아 멸종이 국제적으로 염려되는 저어새가 스스로 찾아오다니, 그 모습을 보려고 국내외의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기 시작했다.


망망한 바다에서 엿볼 따름이던 국제 희귀조 저어새를 가깝게 볼 수 있는 곳은 남동산업단지 유수지가 세계에서 유일할 텐데, 천적이 없고 먹이가 풍부해 그런지, 유수지에 둥지를 치는 개체수가 해마다 늘어난다. 물론 그 만큼 태어나는 개체도 늘어난다고 전문가들은 희망을 전한다. 하지만 내년 이후 어떻게 될지 모른다. 예정한 사업을 축소하거나 폐기해야 할 정도로 재정이 빠듯하다는 인천시가 하필 저어새가 먹이를 찾는 갯벌을 반드시 매립하겠다고 고집피우는 까닭이다. 유수지를 병풍처럼 둘러싸는 초고층아파트는 갯벌로 오고가는 저어새의 길목을 가로막는다. 깃대종의 가치가 충분한 저어새는 재두루미 이상 푸대접을 받는다.


저어새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유수지의 가장자리에 컨테이너 박스를 놓은 시민단체는 3년 째 저어새의 번식과 행동을 관찰하고 있다. 여름철새인 저어새가 찾아오기 한참 전부터 모두 떠날 때까지 관찰 내용을 기록해온 활동가들은 둥지 재료를 미리 가져다 놓았다. 하지만 개인의 처지에 보호에 한계가 있는 건 분명하다. 갯벌을 매립하려는 시청이 의지를 꺾지 않는 한 소용없다. 겉으로 보호를 외치지만 구체적 제안이나 예산 편성이 없는 인천시를 대신해 저어새가 찾아오는 의미를 시민에게 알리려 노력한다. 주둥이가 주걱처럼 크고 긴 저어새가 인천의 상징하는 동물로 손색없기 때문만이 아니다. 마지막 안식처인 인천에서 자연의 생물이 흔쾌히 찾아올 수 있어야 사람의 몸과 마음도 건강할 수 있지 않은가.


먼저 태어난 어린 저어새들이 요즘 열심히 먹이활동을 배우며 나는 연습을 하지만, 6월 초에 아직 둥지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때 활동가들이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4회 저어새 섬 그림 대회를 열었다. 남동산업단지 유수지 안의 자그마한 섬에 옹기종기 모인 저어새를 그리면 그날 심사해 상품을 전하는 행사였는데, 교사이거나 환경단체 간사들이 호주머니를 털어 준비한 관계로 행사는 조촐했다. 참가한 학생과 그 부모들은 쌍안경과 망원경으로 저어새를 관찰하며 마음이 훈훈해졌고, 저어새의 안전한 번식과 해마다 다시 찾길 기대했는데, 인천시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긴 주둥이를 물속에 넣고 저으며 먹이를 찾는 저어새에게 낚싯줄과 바늘은 치명적이다. 발목에 ‘K96’이라는 표시가 선명한 저어새가 낚시 바늘을 삼켜 고통스러워할 때, 일본인들은 모든 수단을 다해 구조했다. 얼마 전 일이다. 일본이나 대만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차원에서 저어새를 보전하려 애를 쓰지만, 우리는 스스로 찾아온 저어새의 밥상을 걷어찬다. 갯벌을 매립하면서 유수지 주변에 초고층빌딩 병풍을 올리지 않는가. 높고 화려한 건물은 더 높고 더 화려한 건물이 생기면 빛을 잃는다. 시민들은 낡아가는 건물을 자랑하지 않는다. 변치 않을 지역의 독특한 자연과 그 경관에 자부심을 가진다. 많은 국가와 지역에서 시민들의 참여로 깃대종을 선정해 보전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바닷물을 채워도 악취가 사라지지 않는 남동산업단지 유수지에 모인 초등학생들은 저어새 사진이 인쇄된 펼침막의 빈 공간에 소감을 쓰고 저어새도 그려 넣었다. 한데 그림 몇 개가 이상하다. 저어새의 다리가 넷인 게 아닌가. 그 아이들은 동물의 다리는 4개라고 막연히 생각했을지 모른다. 자연을 교과서나 편집된 영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 아이들의 관념이 그렇다. 삭막해간다. 저어새의 실제 모습을 바로 자신이 사는 지역에서 가깝게 볼 수 있다는 거, 회색도시의 아이들에게 녹색 희망이다. 그러므로 스스로 찾아온 저어새를 맞는 인천은 시민들과 의논하며 저어새를 깃대종으로 선정하면 어떨까. (인천in, 2012.7.3)

 
 
 

생태계·동물

디딤돌 2006. 1. 24. 11:22
 

숙취에 효과 있는 칡은 원래 미국에 없다. 어떻게 건너갔는지 알 수 없지만 칡은 미국의 산림을 뒤덮어 가고 있다. 칡에 덮여 탄소동화작용을 할 수 없는 숲을 그대로 두면 얼마 안 가 황폐화되고 말 것이다. 원조식량을 따라 들어왔다고 추정하는 미국자리공은 변산반도국립공원을 잠식하고 있다. 미국자리공은 조화로운 우리 생태계를 비집고 뿌리내리지 못한다. 경작을 멈춘 묵정논이나 밭, 폐가, 이용객의 발에 밟혀 교란되는 숲 가장자리에 자리 잡곤 여간해서 물러서지 않는다. 강력한 독성 물질을 뿌리로 분비하기보다 미국자리공의 천적이 우리 땅에 없기 때문이다.

새로 개설되는 고속도로망이 백두대간과 백두대간에 맥을 잇는 정맥들을 바둑판처럼 절도 있게 끊고 뚫으면서 전국이 반나절 권역으로 좁아진다. 한여름, 강원도 춘천에서 원주 제천을 지나 안동과 대구로 이어지는 중앙고속도로를 지나보자. 빠른 속도로 스쳐가는 풍광 속에 어딘가 이상하다. 왁스를 바른 숲이 많다. 칡이 숲을 완전히 뒤덮었기 때문이다. 국토의 65퍼센트가 산지인 우리나라에서 크고 작은 마을은 산에 둘러싸여 있다. 마을 뒷산을 올라보자. 가느다란 등산로는 조릿대로 빽빽하다. 다른 식물의 씨앗이 흙으로 떨어지는 것을 막을 태세다. 초식동물이 없기 때문이다.

겨우내 토끼는 칡과 조릿대를 뜯어먹는다. 동면하지 않는 산양, 멧돼지, 노루, 고라니도 살아남으려 질긴 조릿대와 땅 속의 칡덩굴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래서 설악산과 점봉산을 넘나드는 시라소니와 작은 산의 삵도 위험한 인가를 기웃거릴 필요가 없었다. 털을 노리는 포수가 여우와 수달을 차례로 거덜내고 일제가 민족정기 말살하려 호랑이와 반달가슴곰을 싹 쓸어버려도 그답지 않던 칡과 조릿대는 왜 요즘 극성인가. 고속도로와 이어진 좁은 임도로 수시로 진입한 사륜구동차량에서 불법 개조한 총포를 난사하고, 마을 뒷산까지 휘감는 올무와 덫이 밀렵꾼과 몬도가네 족을 은밀하게 유혹하는 한, 칡과 조릿대의 세력은 확장될 것이다. 우리 강산의 생물종다양성은 계속 위축된다.

최근 환경부는 멸종위기종의 복원 프로그램을 단계적으로 펼쳐 나가겠다고 발표했다. 밀렵과 분별없는 포획으로 영원히 자취를 감추기 전에, 우리 강산에 오래 전부터 다채롭게 어우러졌던 157종의 야생동물과 64종의 식물을 복원하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드러낸 것이다. 멸종 위기에 처한 생물종이 어디 221종뿐이겠나. 하지만 이제라도 복원을 구상하겠다고 하니 대견하다. 무소불위 개발부서와 사전에 조율하지 않았을 테지만, 핵발전소 주변의 고리도롱뇽과 천성산 일원의 꼬리치레도롱뇽이 위기에 처해 있음에도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주장을 외면하고 보호대상종에서 그 종을 제외한 허약한 환경부로서 대단히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221종 중 64종을 우선 복원하겠다는 환경부는 월악산에 비무장지대의 산양 일부를 옮기려고 3억 원의 예산을 확정했다고 자랑한다. 황새, 크낙새, 수리부엉이와 올빼미를 우선 복원 대상 야생조류로 선정하고 크낙새 도입을 위해 북한에 협조 요청했다고 전한다. 그 예산은 얼마일까. 황새 복원을 위해 십년 가까이 수십억의 연구비를 사용한 한국황새복원연구센터는 러시아에서 성체 한 쌍을 들여와 33마리로 늘이는데 성공했는데, 수리부엉이와 올빼미는 몇 년에 걸쳐 얼마나 많은 예산과 연구원을 동원해야 성공 가능성을 탐색할 수 있을까. 구상 단계에서 어느 것도 확신할 수 없을 것이다.

비무장지대에 방사할 사향노루, 설악산에 자리잡게 할 대륙사슴, 덕유산의 깃대종으로 계획하는 여우, 북한산의 상징으로 대두시킬 표범은 이 땅을 떠난 지 오래 되었다. 조상을 공유해 유전자가 비슷한 외국에서 도입해야 할 텐데, 쉽지 않을 것이다. 충분한 개체를 도입하지 않는다면 유전적 다양성이 부족해 환경 적응력이 위축되고, 치명적 유전병 발현을 막지 못한다. 유전적 획일성만이 아니다. 33마리로 늘어난 황새를 농약을 치지 않는 생태마을에 풀어놓아도 안심하기 어렵다. 손해 보면 사나워지는 사람들과 화해 가능해야 할 텐데, 관련 절차와 비용이 만만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까닭이다.

이미 시작된 지리산 반달가슴곰 복원은 성공할 수 있을까. 자신의 밭을 기웃거리는 멧돼지는 막기보다 잡아 부수입 올릴 요량으로 설치한 올무는 심혈 기울여 방생한 반달가슴곰을 거푸 죽이고 있다. 현장에서 물어보라. 어느 농부가 반달가슴곰 복원사업을 반기나. 반달가슴곰 피해를 보상해준다고 약속해도 멧돼지 피해를 몰라라 하는 정부를 믿을 농부는 없다. 먹고 살고자 산간 깊숙이 들어온 농부들을 내몰 수 없는 정부는 밀렵꾼 단속은커녕 실상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데, 전국 국립공원에 떠들썩하게 방생할 멸종위기종은 옛날 같은 일가를 이룰 수 있을까.

체세포 핵이식 복제로 백두산호랑이를 복원하겠다는 터무니없는 발상이 언급되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지만, 멸종위기종 복원에 앞서 고려해야 할 사항이 있다. 지자체 수입을 배려하는 순환수렵제도를 계속 고집하는 정부는 물론이고, 이벤트나 언론플레이에 관심이 큰 환경단체, 밀렵꾼을 두둔하는 지역주민, 동물의 왕국을 보면서 그린벨트 해제에 찬성하는 전국의 시민들이 자연에 대한 존경심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의 편의를 위해 훼손하는 야생동물의 생태계와 야생동물이 생존할 권리를 먼저 생각하지 않는 복원계획은 공염불에 그칠 공산이 크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멸종위기종 복원은 사람의 눈높이에서 기획되어야 하는 이벤트가 되어서는 안 된다.

멸종위기종 복원을 토대로 지역 생태계의 가치를 웅변하는 ‘깃대종’을 보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파괴의 화신인 사람이 상처받은 생태계 앞에서 반성하는 태도를 우선해야 한다. 자연의 일원일 때 가장 건강한 사람에게 생태계는 마지막 비빌 언덕이다. 사람들의 손찌검이 없는 야생에서 생물종은 가장 행복하다. 야생동물의 눈높이에서 차라리 무관심이 낫다. 생태계마저 허무는 사람에게 가장 심각한 멸종위기종은 바로 자신인데,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니 참 안타깝다. (환경미디어, 2006년 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