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동물

디딤돌 2010. 11. 16. 11:04

 

발로 노를 젓는 배가 있다? 그것도 이 겨울에? 윈드서핑을 위해 몸을 싣는 배처럼 알록달록하지 않지만 납작하고 넓어 한 사람이 타기에 적당한 그 배는 바다가 아닌 갯벌에서 진가를 발휘한다. 앞에 작업도구들을 올려놓고 뒤편에 왼쪽이나 오른쪽 무릎을 올려놓은 뒤 남은 발로 갯벌을 연실 뒤로 밀며 앞으로 나아가는 그 배는 바닷바람이 매서운 전라남도 보성이나 벌교의 갯벌에서 이맘때 실컷 볼 수 있는 바로 ‘뻘배’다.

 

어깨 넓이의 폭에 사람 키보다 긴 뻘배는 입자가 아주 고와 허리까지 빠지는 갯벌에 최적화되었다. 몸무게를 분산시키니 늪지대 같은 갯벌 위를 썰매처럼 미끄러진다. 앞부분이 살짝 구부러져 올라간 뻘배에 앉은 초로의 아낙들이 발동작만으로 날렵하게 움직이지만 보기만큼 젓기 쉬운 건 아니다. 윈드서핑과 달리 바닥 아래에 세로 날개가 없으니 발을 아무리 세차게 저어도 방향을 제대로 잡기 어렵다. 한데 무거운 작업도구 실은 남도의 아낙들은 놀이나 경주를 위해 뻘배에 오른 게 아니다. 참꼬막을 채취하려고 오른다.

 

요즘이야 전에 없이 가겹고 매끈한 뻘배를 목수가 만들어주지만 얼마 전까지 저마다 집에서 엉성하게 널판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널배로 말하기는 이도 많다. 요즘은 가슴까지 올라오는 장화를 신지만 얼마 전까지 내복과 여러 겹의 몸빼바지 위에 스타킹을 몇 겹 두른 뒤 발에 꽁꽁 묵은 고무신으로 배를 밀어야 했다. 지금은 넉자나 되는 갈퀴로 개흙을 훑지만 얼마 전에는 작은 갈퀴로 조금씩 뒤집어야 했다. 덕분에 요사이 도시 식당마다 단백질이 풍부해 쫄깃쫄깃한 참꼬막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고운 갯벌의 10센티미터 깊이에 터를 잡고 성장하는 우리나라의 꼬막은 세 종류다. 폭 4센티미터 미만의 참꼬막을 비롯하여 참꼬막보다 조금 커도 맛이 떨어져 값도 싼 새꼬막, 그리고 커다란 피조개가 그것이다. 찬바람이 거센 11월에서 이듬해 이른 봄까지 채취하는 꼬막들은 추위를 이기려는 건지 갯벌 밖으로 나오면 입을 앙 다물고 여간해서 열지 않는데, 두툼한 탄산칼슘 껍질에 부챗살처럼 펴지는 주름이 더욱 다부진 꼬막은 주름이 20개보다 적은 참꼬막과 30개 내외인 새꼬막으로 쉽게 구별할 수 있다.

 

피 속에 헤모글로빈이 풍부해 뚜껑을 열면 붉은 체액을 뚝뚝 흘리는 피조개는 영양분도 많고 맛도 빼어나지만 길이가 10센티미터가 넘고 껍질의 주름이 40개 가까우니 꼬마조개가 아니다. 그래서 그런가, 피조개라 말한다. 살이 연하고 찰질 뿐 아니라 영양분까지 풍부해 이맘때 미식가들이 외면하지 않지만 전라남도 바닷가 주민들의 제사상에 감히 올라가지 못한다. 그만큼 일상과 거리가 있다는 뜻일 게다. 맛이 덜해 ‘똥꼬막’으로 괄시하는 새꼬막을 제치면, 아무래도 남도의 사람에게 절 받는 참꼬막이 제격이리라.

 

정갈한 수도권 한정식 식당에 품위로 올라오는 타원형 접시에, 입맛 까다로운 택시기사들이 모여드는 이면도로의 ‘기사님식당’의 납작한 옹기에 빠지지 않는 꼬막은 질보다 양을 중시하는 대학가 뒷골목의 허름한 식당의 이 빠진 그릇에도 어김없는데, 대개 무침이다. 껍질 한 쪽에 가늘게 썬 파와 간장, 매콤한 고추장 양념을 뒤집어쓰고 올라오는 무침을 손님은 젓가락만으로 요령 있게 집어먹을 수 있지만 그를 위해 준비해야하는 일련의 과정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썰물을 따라 갯벌에 들어간 아낙이 칼바람을 맞으며 채취한 꼬막은 노력에 비해 가격이 무척 저렴하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부담 없이 구할 수 있지만 세심한 잔손질을 감당해야 한다. 주름 사이는 물론이고 내장 속의 개흙까지 빼내는 해감이 필요한데, 흔히 소금물에 담가 해결하지만 해감보다 중요한 건 익히기다. 요리 중간에 껍질이 열리면 헤모글로빈이 풍부한 체액이 쏟아지니 말짱 도루묵이다. 그래서 제자백가의 요령이 제시되는데, 한 마니아는 꼬막들을 겨우 덮을 정도의 물로 냄비에서 익히되 끓이면 안 된다고 강조한다. 공기 방울이 하나 둘 커다랗게 올라올 즈음 불을 조절하며 잘 저으면 껍질이 벌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골고루 익는다는 거다. 꼬막 안의 수분으로 익어야 바다내음이 고스란히 코와 입을 자극한다나.

 

필수아미노산과 타우린이 많을 뿐 아니라 담즙 분비를 촉진하고 간세포 재생을 활성화하는 성분이 풍부한 꼬막은 노약자는 물론이고 수험생과 임산부에 더없이 좋다고 한다. 따라서 겨울을 앞둔 가련한 도시인에게 그만일 텐데, 그들은 그저 양념 얹은 무침에 밥그릇 비울 따름이다. 하지만 남도는 다르다. 시금치된장국과 부추전과 파전에도 들어간다. 각종 채소를 넣고 볶거나 무칠 때도, 비빔국수에도 빼지 않는다. 그러니 비빔밥에 꼬막이 없으면 타박을 받겠지. 그런 꼬막. 사시사철 맛볼 방법을 외면했을 리 없다. 이래저래 이맘때 남도 갯마을의 아낙들은 힘에 겹겠지만, 아무래도 달콤 짭짜름한 꼬막의 진미를 느끼려면 남도로 시방 달려가야 한다.

 

무엇이든 양식으로 개체가 집중 늘어나면 천적이 꼬이기 마련이다. 불가사리가 크게 늘어 어민들 골머리 앓게 만들더니 낙지와 고둥과 꽃게도 꼬막을 노린다고 한다. 심지어 겨울철새들까지 내려앉아 꼬막을 걷어먹는다는데, 때를 가리지 않고 몰려드는 사람보다 더하랴. 이맘때 여기저기에서 열리는 꼬막축제는 약과다. 윷놀이 각설이타령과 같은 천편일률적인 전야제로 테이프를 끊고 꼬막 관련 요리강좌와 요리대회와 먹을거리 장터가 마당을 펼치면 꼬막 껍질 먼저 까기와 껍질 멀리 던지기가 자웅을 겨루는 축제 마당마다 꼬막과 직접 관련 없는 줄다리기, 노래자랑이 어디나 떠들썩하지만 그건 애교에 불고하다.

 

윈드서핑에 당장 사용해도 좋을 듯 알록달록한 플라스틱 패널이 뻘배를 빙자하고 나타나더니 ‘갯벌 올림픽’을 열겠다는 인사들이 꼬막의 터전에 한여름부터 모여들었다. 그것 참! 보령 머드축제를 능가할 세계적 스포츠로 자리매김하겠다는 게 아닌가. 축제 때 쏟아지는 껍질을 화장품 원료로 수출하게 되었다니 다행인데, 이러다 연중무휴 뻘배 경연으로 갯벌마다 몸살을 앓는 건 아닐까. 이제 꼬막들은 더욱 옹골차게 껍질을 닫고 싶을 것이다. 예로부터 “벌교에 가거든 주먹자랑 하지 마라.” 했다는데, 이러다 겨울바다를 밥상에 끌어오는 꼬막마저 남도 갯벌에서 소외되는 건 아닐까. (사이언스타임즈, 2010.1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