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동물

디딤돌 2008. 6. 13. 13:24
 

촛불의 힘! 과연 장하다. 세종로에서 종로1가와 남대문까지 꽉 찼다. 2002년 한일월드컵 붉은악마보다 많아 보인다. 그런데 경찰은 8만이라고 주장한다. 붉은악마였다면 200만이 넘었다고 과장했을지 모른다. 사진의 촛불을 일일이 센 한 네티즌은 촛불을 들지 않은 시민까지 70만 가까이 모인 것으로 추산했다.


아무래도 좋다. 세종로의 높은 건물에서 아무리 둘러보아도 끝없이 이어진 촛불은 국민의 뜻을 외면하는 정부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그 덕분인가. 쇠고기와 달리 미국 눈치 볼 필요가 없는 ‘한반도 대운하’는 취소될 가능성이 엿보인다고 언론은 일제히 보도했다. 자신을 ‘민주화운동 1세대’로 생각하는 대통령이 “국민이 운하를 얼마나 싫어하는지 잘 알고 있다.”며 “국민이 싫어할 경우, 대운하에 대해 결단을 내리겠다.”고 자신의 형에게 알렸다는 것이다. 이는 “여론수렴 후 실행”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던 종래와 다른 모습이었다. 촛불의 힘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아직 안심할 수 없다. 대통령의 발언이 언론에 보도되자 정부와 여당은 한반도 대운하 사업을 정책과제의 후순위로 미루겠다고 천명했다는데, 사업이 늦춰지다 결국 취소될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겠지만 공식 철회된 것은 분명히 아니지 않은가. 압도적 시민들이 여전히 반대해도 ‘물길 잇기’가 아니라 ‘4대 강 치수사업’이라며 본질을 흐릴 때가 엊그제였다. 민심 수습 차원의 꼼수일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 없다. 정부는 신뢰를 잃었다. 광우병 발생 위험이 높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를 외치는 촛불 행렬 속에서 점점 커지는 한반도 대운하 반대 목소리가 아직 철회를 공식화하기에 충분하지 못한 모양이다. 귀가 열려야 듣는다. 확실한 분수령을 넘을 때까지 촛불은 계속되어야 한다.


대통령의 지지율을 20퍼센트 아래로 떨어뜨린 시민만이 촛불이 계속되기를 바라는 건 아니다. 환경부 산하 국립수산과학원 남부내수면연구소에서 인공증식에 성공해 경상남도 함안군 경호강으로 방류된 꼬치동자개도 같은 마음일 것이다. 2003년 환경부에서 멸종위기 1급으로 지정했고 문화재청이 2005년에 천연기념물 455호로 지정해 보존하는 꼬치동자개는 그만큼 드물어졌다. 바람 앞에 촛불처럼 언제 멸종할지 모르지만 광화문에 경부운하를 반대하는 촛불이 모이는 한 희망을 버릴 수 없다.


성 성숙촉진 호르몬 주사를 받아 자기의 의지와 관계없이 자연이 아닌 연구소에 알을 낳아야 했던 꼬치동자개의 눈물겨운 희생 덕분에 2천 여 마리가 태어났다. 그 중 천 마리는 2007년 10월에 방류되었는데, 지속적인 모니터링 결과 경호강 전체에서 3개체에 불과했던 꼬치동자개가 평방미터마다 5개체 가깝게 늘었다고 보도자료를 돌리는 연구진은 싱글벙글한다. 좋은 일이다. 하지만 낯선 경호강에 겨우 정착한 꼬치동자개는 연구진의 기대에 내내 부응할 수 있을까. 예전처럼 안정적으로 터 잡을 수 있을까.


투명한 하천의 중상류, 크고 작은 바위 아래를 터 잡는 꼬치동자개는 원래 빈도가 그리 높지 않았다. 625전쟁 전, 대구 도심의 하천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더라도 다른 물고기에 비해 꽤 드문 종류였다. 경호강의 꼬치동자개는 그 점이 불안할지 모른다. 다른 종류가 사라진 덕분에 경호강을 넓게 차지했지만, 그런 호사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통 알 수 없다. 양친이 단순한 만큼 유전적 다양성이 부족한데 어우러져야 할 생물이 떠난 마당이 아닌가. 생물종 다양성이 부족하면 환경변화에 대한 생태계의 완충능력은 그만큼 떨어진다. 기후변화로 인한 가뭄과 폭우는 전에 없이 치명적일 수 있다.


낙동강을 떠난 적이 없는 꼬치동자개는 한국 특산종이다. 사람의 도로 개발로 분수계(分水界)가 무너져 생태조건과 먹이가 비슷한 동자개와 눈동자개가 낙동강으로 흘러들어왔지만 덩치가 큰 그들은 여간해서 상류로 올라오지 않아 다행이었다. 사촌인 눈동자개와 동자개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꼬치동자개는 밤에 활동한다. 그래서 생태학자는 꼬치동자개의 습성을 아직 파악하지 못했다고 실토한다. 천적이 잠든 밤, 바위 밖으로 슬그머니 나와 긴 입수염으로 감지한 물속 곤충들을 잡아먹으며 10센티미터 남짓 자라는데, 낙동강에 살아남기 위해 꼬치동자개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터전의 안정이다. 그를 위해 경호강에서 여러 지류로 퍼져야 할 텐데, 한반도 대운하의 하나인 경부운하는 그 기회를 낙동강 본류에서 차단할 게 틀림없다.


물결에 굴절된 빛이 갈색 자갈에 연하게 반사되는 듯, 연한 갈색 반점 4개가 담황색 몸통의 등지느러미 앞과 뒤, 꼬리지느러미 앞에 선명하게 보이는 꼬치동자개는 몸이 짧고 납작하다. 위아래로 납작한 등지느러미 앞부분과 옆으로 납작한 몸통에 비늘이 없어 손으로 잡으면 잘 미끄러진다. 가슴과 등지느러미에 강한 가시가 있는데, 그 부분을 무심코 잡다간 낭패를 당한다. 찔리면 여간 아픈 게 아닌 것이다. 덩치 큰 천적이 덥석 물었다 혼비백산하기에 충분할 정도다. 하지만 그 방어술은 운하 앞에 아무 소용이 없다.


변태 전의 물속 곤충은 바위나 돌에 곱게 앉은 이끼를 갉아먹는다. 쏟아지는 빗물을 타고 산기슭의 공사 현장에서 하천에 휩쓸린 흙탕은 이끼를 덮쳐 산소동화작용을 방해할 뿐 아니라 뿌리를 들뜨게 하고, 먹이를 잃은 물속 곤충은 터전에서 사라진다. 꼬치동자개는 터전을 떠날 수밖에 없다. 경부운하는 꼬치동자개의 귀향을 가로막을 테지만, 찾아가도 소용없을 것이다. 굽이치던 강물을 직선으로 펴면서 바닥의 모래와 자갈을 퍼낼 뿐 아니라 운하 양 옆의 거대한 옹벽으로 지천의 흐름을 가로막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여름 한철 강수량이 집중되는 산악지형에서 물높이보다 훨씬 높은 콘크리트 옹벽을 깊게 박지 않으면 걷잡을 수 없는 재앙을 피할 수 없으므로.


거친 개발로 생태계가 이미 교란된 낙동강은 농장과 공단의 오폐수로 몸살을 앓는다. 상류는 아직 견딜만하므로 꼬치동자개는 가녀린 몸을 운둔할 텐데, 국지성 호우와 태풍이 제방을 뜯자 터전은 더욱 좁아졌다. 복원을 빌미로 쌓는 콘크리트 제방이 하천의 자정능력을 떨어뜨렸기 때문이다. 거기에 경부운하라니. 한강과 낙동강의 생태계를 본격적으로 섞을 경부운하는 하천과 주변 생태계를 크게 위협할 것이며 유전적 다양성이 결여된 경호강의 꼬치동자개는 내일을 낙관하기 어려울 것이다.


꼬치동자개의 복원을 지원하고 그 성공을 반긴 환경부의 수장은 어처구니없게 한반도 대운하를 은근히 부추긴다. 촛불 집회 이후 여당 안에 뚜렷하게 감지되는 한반도 대운하 반대 기류는 얼마나, 또는 언제까지 유효할까. 꼬치동자개의 희망, 촛불에 달렸다. (물푸레골에서, 2008년 7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