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동물

디딤돌 2008. 12. 23. 08:29

 

1998년 모월 모일. 강원도 속초시 동쪽 해상의 꽁치 그물에 북한 잠수정이 걸리는 안보상황이 발생했다. 며칠 뒤 그 잠수정에 탑승했던 것으로 보이는 북한군 사체가 해안에 밀려와 국내 여론은 해안 경비의 허술함을 지탄한 사건이었다. 하지만 어부들은 꽁치 그물의 우수성을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날 그물에 잡혔던 꽁치들은 빠져나가려 몸부림친 잠수정 덕분에 찢긴 그물코 사이로 달아났을 테지만, 꽁치 그물이 게 있는 한, 우리 동해안은 잠수정 따위가 얼쩡거리지 못할 만큼 겹겹이 지켜진다는 걸 대내외에 여실히 천명했다.

 

주 메뉴보다 딸려 나오는 음식이 훨씬 많은 횟집의 단골인 꽁치는 ‘꽁’과 ‘치’ 자가 조합돼 우습게 여겨지는 경향이 짙지만 영양가 풍부한 우리나라 등푸른 생선 중의 하나다. 등푸른 생선의 효능을 들여다보자. 필수아미노산이 듬뿍 포함된 단백질은 물론이고 오메가3지방산과 DHA가 풍부하여 자라나는 아이의 두뇌 발달에 좋을 뿐 아니라 혈액순환을 부드럽게 해 심장병이나 동맥경화를 차단한다. 류머티즘과 골다공증 예방에 효과가 있으며 폐암 발병률을 줄이는 한편, 심리적 안정감을 높여 우울증을 낮춘다고 의학계는 보고한다. 고기를 주로 먹는 북극권의 이누잇 세계에 혈관질환이 드문 이유로 서구 의학계는 등푸른 생선을 즐기는 그들의 식습관을 꼽는다는데, 막대기처럼 가는 몸이 한 자에 불과한 꽁치는 등푸른 생선의 어엿한 대명사다.

 

사촌 사이인 학공치보다 덜하더라도 주둥이가 꽤 뾰족한 꽁치는 공치다. 아가미 근처에 침을 놓은 듯 깊은 구멍이 있어 그렇다고 전문가는 해석한다. 가을에 많이 잡히는, 칼처럼 생긴 물고기라 추도어(秋刀魚)다. 그물에 걸린 수천마리가 햇빛에 반사돼 번쩍거리며 올라오니 칼을 연상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하지만 먹는데 부담이 없어 좋다. 은백색 배나 흑청색 등과 대조적으로 연갈색인 살코기는 석쇠에 구울 때 다소 텁텁하지만 담백한 맛을 자랑하고, 머리와 꼬리를 뗀 서너 마리를 반 토막 내어 다짜고짜 깡통에 집어넣은 통조림도 뜨거운 밥에 넣어 석석 비비면 그런대로 먹기 괜찮다. 그래서인가. 꽤 높은 산에 오르는 등산객의 배낭에 어김없이 꽁치 통조림이 등장한다.

 

차가운 물을 좋아하는 꽁치는 동해 연안에서 주로 잡히지만 일본 규슈에서 쿠릴열도를 지나 북태평양 해역에 두루 분포한다. 한겨울이면 동중국해와 오키나와 일원에서 월동하다 5월이 지나면서 동해안으로 몰려와 알을 낳는데, 영양분이 알에 몰린 그때는 맛이 별로다. 꽁치는 서리가 내려야 제 맛이라고 한다. 한류와 난류가 교차하는 10월이 지나야 살에 지방이 많기 때문이다. 그때 속초 부근부터 포항 영일만 일원의 호미곶과 구룡포로 이어지는 해안에 잠수정이 걸릴 정도로 그물이 겹겹이 쳐지는데, 최근 구룡포 꽁치의 인기가 높아졌다. 언제부턴가 과메기의 향긋한 미각이 전국의 주당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그에 화답하려는지, 이른 12월이면 구룡포는 과메기 축제를 벌인다.

 

차가운 바닷바람이 아침저녁으로 교차하는 12월부터 꽁꽁 얼린 상태로 구룡포에 내다 널면 1주일 정도 얼다 녹기를 반복하던 꽁치는 군침 꼴깍 넘어가는 과메기로 쫀득하게 변한다. 물론 그 전부터 주당들의 문의는 선술집에 빗발칠 터. 그런데, 과메기 먹는 법이 어디 따로 있던가. 선술집의 차림새는 천편일률이다. 가늘게 자른 과메기를 미나리, 파, 마늘과 초고추장을 얹은 다시마와 김에 살짝 올려놓고 둘둘 말아 먹으란다. 하지만 개의할 필요는 없다. 손가락으로 잡으면 독특한 향이 한동안 떠나지 않을 테니 얼큰한 주당들은 젓가락 없이 그냥 집어먹어도 관계없겠다. 숙취를 해독하는 아스파라긴산이 풍부하다니 술꾼에게 금상첨화일 테지만 여성과 아이에게 좋은 비타민과 무기질이 많으니 식구와 집에서 먹으면 더욱 좋으리.

 

공치였던 꽁치가 왜 과메기가 되었을까. 사실 과메기는 꽁치가 아니라 청어였다. 구룡포에서 산더미 같이 잡히는 청어의 배를 따 알을 빼내고 그 나머지는 말렸다 두고두고 먹었는데, 말릴 때 가는 작대기로 눈을 꿰었던 모양이다. 그 모습을 본 어느 한학자가 점잖게 관목어(貫目魚)라 했을 테고, 그 말을 들은 갯마을 사람들도 관목어, 관메기어 하다, 말하기 쉽게 과메기라 하지 않았을까 사람들은 추측한다. 한데 1970년대에 이르자 흔하디흔했던 청어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청어를 말려먹던 구룡포 갯마을 사람들은 하는 수 없이 북태평양의 원양어선이 냉동해 가져오는 꽁치를 말렸고, 과메기 소문에 맛을 본 전국의 주당들이 일제히 환호하게 되었으리라. 그렇다면 구룡포 과메기는 동해의 꽁치 그물과 관계가 거의 없겠다.

 

최근 청어가 돌아왔다고 한다. 한해 80톤에 불과했던 어획고가 2천톤이 넘어서면서 경북 영덕군 해안에 청어 과메기가 차가운 바닷바람을 맞으며 은빛 물결을 이룬다고 언론들이 보도하기에 이르렀다. 꽁치 과메기는 이윽고 이름을 빼앗기고 인기마저 시들해질 것인가. 그럴 리 없다. 옛 과메기 맛을 기억하는 이를 청어가 유혹할지라도 이미 전국의 주당들은 꽁치 과메기에 익숙해진 뒤가 아닌가. 서로 원조라 주장하듯, 영덕은 청어 과메기를, 포항은 꽁치 과메기를 으뜸으로 치겠지만, 달짝지근한 감칠맛의 청어 과메기나 촉촉하고 부드러운 꽁치 과메기는 맛이 서로 다르다. 누군가 찹쌀밥과 멥쌀밥의 차이에 비유하던데, 청어는 청어목이고 꽁치는 동갈치목이다.

 

가을부터 떼로 잡히던 꽁치가 겨울에 든 바다에 모습을 드러내더니 요즘 때 아닌 청어가 나타나자 드물어지는 이유가 뭘까. 바다부터 시작된 온난화와 무관하지 않을 터. 1960년대 이전, 봄이면 고깃배의 진행을 방해하고 어부들 잠 못 들 정도로 시끄럽게 몰려들던 청어 떼가 수온이 오른 우리 연안을 한사코 외면했는데 겨울에 든 구룡포에 요즘 모여드는 까닭은 같은 시기에 꽁치가 사라져가는 사정과 관계가 깊을 것이다. 일찍이 구룡포에서 말려먹던 과메기가 꽁치로 재료를 바꾸더니 다시 청어로 환원된 현상은 누가 뭐라고 해도 지구온난화일 게 틀림없겠다.

 

청어든 꽁치든 백성의 오랜 등푸른 생선이다. 게다가 꽁치는 무단 침투하려던 잠수정까지 막아주었다. 백성 된 처지에 어찌 성원하지 않을 수 있으랴. 그러니 최근 다시 찾은 청어에 밀려 자취를 감출까봐 지레 걱정이다. 구룡포 발 소문 덕분에 이제 막 입에 붙게 된 꽁치 과메기, 청어처럼 오래 동안 잊거나 잃고 싶지 않다. (물푸레골에서 2009년 1월호)

온난화... 피할 수 없는 현실이겠지요. 이어서 빙하기도 빨리 올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