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동물

디딤돌 2010. 7. 3. 01:55

 

 

장맛비가 내리자 기다렸다는 듯 맹꽁이가 운다. 대도시의 아파트단지의 녹지 어느 구석에서 우는 맹꽁이는 개발 이전의 농촌에서 어렵게 살아남은 조상의 후손일 텐데,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장마철마다 울었다. 10차선 건너 대형 양판점이 문을 열기 전에 떼 지어 울었지만 이제 서너 마리에 불과하다. 잠시 물이 고이는 도랑에 알을 낳을 건데, 내년 이맘때에도 만날 수 있을지.

 

서울 신정동 아파트단지 신축 공사장에서 작년 맹꽁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환경단체가 보호를 요청했고 공사 담당 기업은 대체서식지를 마련해야 했다. 시멘트 가루가 날리고 공사장비들이 지축을 흔드는 와중에서 잘 견디고 있을지. 은평구 뉴타운 공사 이전부터 살던 맹꽁이들도 대체서식지로 옮겨갈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터전을 지키려 애쓴 환경단체의 노력이 경제논리를 앞세우는 기업을 이겨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약속한 대체서식지의 면적이나마 기업이 지켜주니 고마울 따름이다.

 

한강의 랜드마크라는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오페라하우스가 계획된 노들섬에서 맹꽁이가 발견되었다. 서울시는 별 생각 없이 더 좋은 곳으로 옮겨주겠다고 선언했지만 환경단체는 발끈했다. 노들섬의 맹꽁이에게 가장 좋은 환경은 바로 노들섬의 좁은 녹지라고 믿기 때문인데, 현재 노들섬 맹꽁이는 서울숲으로 옮겨졌다. 오페라하우스가 완성된 후 원래의 녹지로 돌려보내겠다는 약속과 함께. 노들섬에서 타향살이하는 맹꽁이는 시방 오페라하우스 완공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을까.

 

맹꽁이는 환경부가 멸종위기종 2급으로 지정한 보호대상종이다. 법정 보호대상종이 아니라면 아무리 희귀해도 공사업체는 괘념치 않을 테지만, 보호대상종이라는 걸 환경단체가 주목하고 있으니 울며 겨자를 먹는다. 공사 주체는 모종의 수단을 써서라도 맹꽁이를 보호대상종에서 제외시키고 싶을 것이다. 환경단체는 힘을 가진 그들의 의지 때문에 불안하다. 실제로 골프장 계획부지마다 나타났던 꼬리치레도롱뇽과 산허리 주택단지에서 자주 발견되던 두꺼비가 뚜렷한 이유 없이 멸종위기종의 목록에서 제외되지 않았나.

 

대체서식지로 옮겨진 생물은 안녕한가. 생태적 습성과 조건을 성실히 파악해도 사람이 그 조건을 정확히 재현하기 어려운 게 사실인데, 공사 진행이 급한 시행자들은 어설프게 조성한 공간에 섣불리 풀어놓는 일이 다반사다. 특산종인 단양쑥부쟁이가 옮겨 심겨진 남한강 ‘4대강 사업’ 현장 인근 대체서식지의 단양쑥부쟁이는 공사당국의 장담과 달리 대부분 말라죽고 말았다. 소홀한 환경영향평가 탓에 서식 여부를 미처 파악할 수 없었던 공사 주체가 무리하게 이식을 서둘러 초래한 일이다.

 

‘4대강 사업’ 현장에서 계속 출현하는 층층둥굴레도 법정 멸종위기종이고 담수어류인 꾸구리도 마찬가지다. 삵과 수리부엉이와 같은 보호대상종이 발견되자 담당자는 훼손이 불가피한 곳에 서식하는 보호종은 대체서식지에 이식해 보호하면 된다고 앵무새처럼 반응했지만 환경단체는 안심하지 못한다. 4대강 사업 현장만이 아니다. 인천 송도11공구 매립 갯벌의 수많은 생물들은 보호대상종이 아니므로 당연히 매몰시키겠지만 그 갯벌에서 먹이를 취해 새끼들을 키우는 저어새는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의 보호대상종이다. 저어새는 어느 공간에 대체서식지를 만들어 줄 수 있을 것인가. 그런다고 생존이 가능할 텐가. 하지만 매립 담당자는 여전히 대체서식지 타령이다. 가히 대체서식지 결정론이라 아니할 수 없다.

 

용산에 터 잡고 사는 이에게 더 좋은 곳으로 나가라고 하자 어떤 사고가 발생했는지 우리는 뚜렷이 기억한다. 몇 푼 쥐어주는 돈의 액수가 이전의 우선 조건일 수 없었다. 마찬가지다. 삶이 뿌리내린 공간은 사람이든, 맹꽁이든, 단양쑥부쟁이든, 대체할 수 없다. 대체서식지는 죽든 살든, 터전에서 내쫓으려는 기득권자의 폭력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생명을 백안시하는 독선이다. 그러니 밤늦은 이 시간, 아파트단지의 작은 녹지에 장마철마다 맹꽁 맹꽁 울어주는 자연의 이웃이 그렇게 반갑고 고마울 수 없다. 내년에 다시 만날 그들의 존재를 아무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다. (요즘세상, 2010.7.?)

잘 읽었습니다. 답답한 현실이지요...

 
 
 

생태계·동물

디딤돌 2010. 5. 3. 16:55

 

투망질. 그거 쉬운 게 아니다. 오른손잡이라면, 풀려나가기 쉽게 감은 투망 끈을 왼손에 살며시 잡고 왼쪽 팔뚝에 납추가 무거운 투망의 절반 정도를 걸쳐야 한다. 오른손으로 나머지 투망의 앞쪽을 움켜쥔 채 잔잔한 물속을 유심히 바라보다 별안간, 왼쪽으로 움츠린 허리를 오른편으로 획 돌리며 목표 지점을 향해 오른손과 왼손을 순식간에 뻗는 기술. 허리와 팔이 떨어져나가라 휘돌려도 뭉친 채, 어쩌다 초승달처럼 풍덩, 발치에 빠뜨리는 신출내기는 감히 흉내낼 수 없다.

 

목표 지점이 멀면 왼손에 쥔 끈이 팽팽해질 만큼 멀리, 장애물이 있으면 반달이나 역삼각형으로 펼치며 투망을 던져야 시간 안에 목표를 채울 수 있었다. 한 지역에서 천 마리 이상을 조사해야 이상적이지만 시간은 늘 부족했다. 그래도 천 마리의 4분의1은 채워야 통계에 유의성이 인정되므로 해지기 전에 250마리를 채워야 했다. 그래서 신출내기의 성의는 사양해야 했고 능숙하게 그물을 던지는 이의 곁을 졸졸 따라다니는 연구원은 바빴다. 잡힌 종류와 개체수를 후다닥 파악해야 했으니까.

 

잠시 하늘로 솟았던 투망이 보름달처럼 펴지며 강바닥까지 내려가면 투망 안에 있는 물고기들은 순간 패닉 상태에 빠진다. 그물코보다 작은 녀석들은 황급히 빠져나가 가슴을 쓸어내리지만 큰 녀석은 그물코에 아가미가 끼어 꼼짝달싹 못하거나 바닥에 깔린 추가 좁혀오는 공간에서 허둥대다 그만 투망 아래의 주머니에서 퍼덕거리게 된다. 그런데 투망만으로 담수어류 생태계를 온전히 파악할 수 없다. 바위틈이나 아래 들어가 숨는 꾸구리는 여간해서 투망에 들어가지 않는다. 몸이 10센티미터 미만으로 작기 때문만이 아니다.

 

꾸구리. 참 생소한 이름이다. 이름처럼 생긴 모습도 독특한 녀석은 오로지 한강과 금강의 중상류의 모래바닥에 산다. 게다가 특산종이다. 우리나라 이외는 물론이고 한강과 금강 밖의 수계에서 전혀 볼 수 없다. 잉어목 잉어과 모래무지아과에 속하는 꾸구리는 사촌 사이인 누치나 어름치처럼 덩치가 크지 않고 새미나 쉬리처럼 예쁜 것도 아니라서 투망 들고 천렵 나온 이들의 관심 밖이지만 어떤 물고기도 갖지 않은 특징이 있어 관련 학자들에게 주목받는다. 고양이처럼 홍채를 세로로 좁히며 빛을 조절할 수 있다는 게 아닌가. 덕분에 밤낮을 가리지 않고 남한강의 모래바닥을 누빌 수 있으리라.

 

꾸구리는 크고 작은 자갈이 모래 사이에 흩어진 강에 분포한다. 그래서 몸은 모래와 같은 옅은 갈색이지만 등에 자갈 그림자가 드리워진 듯, 대여섯 개의 진한 갈색 띠가 꼬리로 이어진다. 무늬 때문에 투망을 피하게 되는 건 아니다. 햇살이 눈부셔도 바위틈으로 들어가지 않아 투망이 날아오는 걸 진작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탁월하겠지만 그보다 물살이 아무리 거세도 동작이 재빠른 까닭이다. 투망이 수면에 닿기 전에 바닥의 돌 틈에 잽싸게 숨어들어가니 납추가 아무리 촘촘한 투망이라도 소용없는 것이다.

 

남한강의 생태계 구조를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우리는 족대를 추가했다. 햇살이 투명하게 강바닥을 비추는 날, 족대를 들고 살금살금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며 모래바닥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운 좋으면 눈을 가늘게 뜨고 아가미를 빠끔거리는 꾸구리를 모래바닥 사이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작은 곤충을 노리던 꾸구리는 문득 사람이 다가오는 걸 느끼고 잽싸게 작은 바위 숨어들 터. 그때 우리는 바위 아래에 족대를 세우고 반대편에서 그 바위를 걷어차자마자 족대를 들어 올렸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 때까지 그 짓을 거듭하다 보면 실눈으로 우리를 노려보는 꾸구리 한두 마리를 알현할 수 있었다.

 

강이 깨끗한 건 주변의 드넓은 모래밭이 걸러주기 때문이지만 그 과정에서 강물이 남긴 유기물을 모래 속의 숱한 생물이 제거하는 까닭이다. 꾸구리가 노리는 물속의 곤충은 모래에 묻는 유기물을 먹고, 유기물은 빗물을 타고 강에 스며들었을 것이다. 모래로 강이 깨끗하기에 꾸구리가 게 있는 것이지만 어쩌면 꾸구리가 있기에 강물이 깨끗한 건지 모른다. 꾸구리가 없으면 유기물을 처리하는 곤충이 조절되지 않을 게 아닌가. 꾸구리가 있어 논밭과 과수원과 축사, 심지어 공단을 적시며 흘러든 강물이 여전히 깨끗한 것이리라.

 

여주군 남한강변의 지명은 금사면(金沙面)이다. 신륵사 앞을 흐르는 강변을 조상은 ‘은모래금모래’라 이름붙였다. 장마철마다 노도처럼 불어나는 강물이 누세월동안 쌓은 모래가 햇살이 강한 대낮에는 은빛으로 석양이 드리우는 저녁이면 금빛으로 찬란해지는 텐데, 거기에 꾸구리가 산다. 배지느러미를 흡반처럼 모아 바위나 자갈에 몸을 붙이며 물살 빠른 여울을 지키는 꾸구리는 입가 두 쌍의 짧은 수염으로 먹이를 감지하면서 남한강에 모래가 쌓인 이래 지금껏 산다. 오랜 옛날 어떤 천재지변으로 분수계(分水界)가 흐트러지면서 북한강과 금강에 흘러들어갔을 테지만 본디 백사장이 넓은 남한강에 터를 잡았을 것이다

 

서울의 서빙고동과 동빙고동은 겨울철 잘라온 한강 얼음을 여름이 지나도록 보관했던 시설이 있던 곳이다. 임금에게 시원한 음식을 대접하기 위한 얼음 창고는 강물이 깨끗하기에 유용했을 텐데, 드넓은 백사장을 거느리던 한강이 겨우내 꽝꽝 얼었던 시절의 이야기다. 지금 한강은 얼지 않는다. 백사장도 없다. 하지만 백사장이 남은 남한강은 겨우내 언다. 축사와 과수원을 적신 물이 모이지만 백사장을 스치는 물은 떠먹고 싶을 정도로 투명하다. 그래서 꾸구리가 산다.

 

최근 신륵사 앞의 남한강은 흙탕물이다. 대형 보 3개를 위한 가물막이 공사를 벌이며 모래를 퍼내고 콘크리트를 들이붓기 때문이다. 그러자 아가미에 끼는 흙먼지와 독소를 더는 견디지 못하고 누치와 함께 꾸구리가 떼로 죽어나갔다. 그 참혹한 모습을 발견한 시민단체가 문제를 제기하자 공사 담당자는 황급히 흙으로 덮어 흔적을 덮으려했지만 그런다고 꾸구리가 살아나는 건 아니다. 공사 중에 상류로 이동했다 흙탕이 가라앉으면 돌아올 것을 공사 책임자는 장담했지만 꾸구리는 모래가 없는 상류로 이동하지 않을 것이다. 보로 막혀 흐름을 잃은 강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꾸구리는 사람보다 훨씬 먼저 은모래금모래의 남한강에 터 잡았을 텐데, 이제 작별을 고하려 한다. 꾸구리가 사라진 남한강은 타고난 생명력을 잃고 수로로 변질될 텐데 사람인들 건강할까. 삶터가 오그라들어 죽어간 꾸구리는 사람의 내일을 예견하는 건지 모른다. (사이언스타임즈, 2010.5.?)

 
 
 

공동체·인간

디딤돌 2010. 4. 25. 22:43

남한강 신륵사 주변의 ‘4대강 사업’ 구간에서 얼마 전 누치와 잉어 천여 마리가 죽었다. 강물이 웬만큼 오염돼도 견디는 종류건만 감당할 수 없게 이는 흙탕물이 아가미가 틀어막아 질식한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공사 담당자는 죽어 떠오른 물고기들은 황급히 흙으로 덮으며 은폐하려 했지만 시민단체의 활동가들의 카메라는 그 시도까지 고스란히 담았다. 물고기를 파묻으려던 웅덩이를 뒤진 활동가는 환경부에서 멸종위기종으로 지정해 공식 보호하는 작은 물고기 꾸구리의 무수한 사체도 촬영했다.

 

정부는 물고기들이 공사를 하지 않는 상류나 지류로 이동할 테니 문제가 없을 것이라 근거 없이 예단했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여름이 들어서기 전에 깨끗한 모래 바닥에 알을 낳는 꾸구리는 번식 전에 한꺼번에 사라지지 않았나. 더 큰 걱정은 일부 살아남은 꾸구리의 운명도 그리 밝지 않다는 거다. 오염된 강에서 건강한 짝을 만나기 어렵겠지만 짝을 만나 알을 낳아도 부화돼 성체로 살아남는 개체들이 무척 드물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봄은 유난히 짧았다. 번식에 쓸 시간이 부족했다는 건데, 비슷한 사정으로 먹이가 될 작은 생물이 크게 줄어든 상태에서 어린 꾸구리를 노리는 덩치 큰 천적은 여전할 테니.

 

번식 시기를 기다리던 남한강의 꾸구리와 누치와 잉어만이 아니었다. 날씨에 직접 영향을 받는 육지의 식물은 그 정도가 심했다. 흐드러지게 피는가 싶더니 이내 우수수 꽃잎을 떨어뜨린 벚나무들도 짧은 봄이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전에 없었던 봄추위가 풀리는가 싶더니 금세 영하로 떨어지자 봉오리가 냉해를 받았고, 꿀벌마저 찾아오지 않았다. 따뜻해지자 철지나 봉오리를 열었던 목련꽃도 냉해로 변색되더니 오그라들었다. 벚나무와 목련은 올해는 실한 씨앗을 맺지 못할 것이다.

 

겨우내 내린 눈이 녹을 때 복수초와 변산바람꽃이 피고 매화와 동백이 이어 꽃봉오리를 열면 개나리와 진달래, 벚꽃과 목련이 차례로 꽃송이를 펼쳤건만 올해는 달랐다. 들쭉날쭉한 날씨로 꿀벌이 활동을 멈춘 사이 한꺼번에 꽃을 피웠다. 그만큼 짧아진 봄은 꽃눈과 잎눈을 펼칠 시기를 놓친 식물만 혼란스럽게 한 게 아니었다. 나무 꼭대기에 앉아 교교하게 울며 짝을 찾는 새들도 짝을 찾을 시기를 놓치기 십상이었고, 곤충들도 부드러운 잎 뒤에 알을 낳는 시기가 부족했을 것이다. 부화된 새끼들에게 벌레를 물어주어야 하는 새들은 여름이 고통스러울 테고.

 

올봄은 갠 날이 드물었다. 산불을 조심해야 할 정도로 건조했던 봄에 비가 많았다. 햇살이 비치지 않으면 여간해서 벌통을 나오지 않는 꿀벌은 봄을 느낄 수 없었을 거다. 게다가 변덕스럽게 추우니 나왔더라도 다시 들어가고 말았을 텐데, 사실 몇 년 사이 우리의 들과 산에 꿀벌이 급격히 줄었다. 우리만이 아니다. 유럽과 북중미의 꿀벌들도 자취를 감췄다고 한다. 꿀벌 없이 짧게 지나가는 봄은 삼라만상의 생물에게 재앙을 예고한다. 내년을 기약할 수 없지 않은가. 자연에서 벌꿀과 과일과 오곡작화를 얻어야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사람도 안심할 수 없다.

 

개구리가 걱정이다. 관개농업이 논 가장자리의 물웅덩이를 없애자 개구리들은 봄철마다 알 낳던 장소를 상당히 잃었고 어렵게 알을 낳아도 농약에 중독되곤 했는데, 지나치게 짧은 봄은 알 낳을 시기와 장소를 더욱 단축시켰다. 봄과 여름철로 구별해 알을 낳던 두 종류가 한 웅덩이에서 만나 잡종이 생기는 경우도 발생한다. 문제는 아주 드물게 발생하는 잡종은 번식 능력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기껏 낳은 알이 다음세대를 이어주지 못한다면 그해 개구리의 수는 급격히 줄어들 뿐 아니라 이듬해 번식에 나설 성체가 그만큼 부족해진다는 걸 의미한다. 개구리를 먹고 사는 새나 뱀도 줄어들 수밖에 없으니 생태계는 그만큼 단순해질 거고, 유기농업에 종사하는 이는 개구리 대신 손으로 벌레를 잡아야 할지 모른다.

 

올해 우리의 봄이 유난히 짧았던 건 지구온난화의 여파로 기상학자들은 주장한다. 북극권의 차가운 기단을 묶어두던 제트기류가 풀어지면서 때 아닌 한파가 봄까지 이어졌다는 건데, 하긴 미국 동부도 과다한 눈으로 고생이 심했던 모양이다. 눈을 치우지 못해 행정부가 마비되었을 뿐 아니라 눈 덮인 플로리다의 과일나무들이 냉해를 입었다고 한다. 반면 겨울이 혹독하고 눈이 많기로 유명한 캐나다 서남부에 비가 내려 동계올림픽을 개최한 밴쿠버는 녹아내리는 인공눈을 수시로 보충해야 했다. 걱정은 이런 기상이변이 올해로 끝나지 않을 거라는 데 있다. 해마다 그 정도가 심해지리라는데 전문가들은 의견을 같이한다.

 

계절의 변화에 적응해 살아가는 우리는 오래 전부터 그에 맞춰 농사를 지어왔다. 사계절이 뚜렷한 지역만이 아니다. 건기와 우기가 반복되는 지역도 그에 맞는 농사를 지었다. 계절 변화에 적응된 씨앗을 갈무리하고 이듬해 심은 것인데, 요즘 대부분의 농촌은 씨앗을 받지 않는다. 기업에서 파는 다수확 씨앗을 일괄 구입하는데, 문제는 그런 씨앗은 유전적 다양성의 폭이 대단히 좁다는 것이다. 씨앗에 맞는 조건이 안정적이라면 농부는 기대 이상의 수확을 얻을 수 있지만 기상이변이 발생할 경우 작황은 형편없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요즘 농업은 “모 아니면 도”가 되었다고 농부들은 하소연한다. 너나없이 같은 씨앗을 뿌리는 까닭에 풍작이면 가격이 떨어질 테고 흉작이면 모두 망한다. 예전에도 때때로 기상이변이 발생해 흉년이 들었어도 드물었고, 이내 회복되었지만 이젠 아니다. 환경변화에 대한 완충능력을 잃은 씨앗은 짧아진 봄을 견디지 못한다.

 

올봄의 이상 기후는 장바구니 들고 시장가기 무섭게 채소 가격을 끌어올렸지만 전문가들은 앞으로가 더 걱정이라고 지적한다. 추운데다 일조량까지 부족하니 씨앗 뿌릴 기회를 잡지 못했고, 뿌린 씨앗도 제대로 싹트지 못했다는 게 아닌가.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하는 채소는 정도가 덜 하겠지만 절반 가까이 냉해를 입은 과일을 비롯해 노지에서 생산해야 하는 농작물은 심각할 것이라 점친다. 아마 가격이 크게 오를 것이다. 정부는 수입을 서두를 테니. 가격이 오른다고 농부의 수입이 늘어나는 건 아니다. 그런데 수입할 농작물마저 부족해지면 어찌될까. 최근의 기상이변은 우리나라만의 사정이 아닌데.

 

사람의 탐욕이 저지른 지구온난화는 기상이변을 불렀고 그런 이유로 짧아진 봄은 자연의 뭇 생명을 혼란에 빠뜨렸어도 일부 계층의 사람만은 아무렇지 않아 보인다. 석유 생산이 정점을 향해가면서 화학비료와 농약의 가격이 오르면 식량 구입비용이 그에 비례해 늘어나겠지만 개의치 않는다. 그들은 농토와 갯벌을 매립해 도시를 확장하는데 여념이 없다. 생태계를 거듭 단순하게 만드는 사람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기상이변은 환경변화에 이겨내지 못하는 생물종을 도태시킬 텐데, 다른 지역보다 배 이상 평균 기온이 오른 우리나라는 4대강을 16개의 대형 보로 막아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호수로 만들고 그 안의 생물을 몰살시키고 있다. 우리는 짧아진 봄을 견딜 수 있을까. 돈과 기술로 문제를 증폭시킬 따름인데. (작은책, 2010년 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