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추억

디딤돌 2009. 4. 22. 16:13

 

로완 제이콥슨 지음(2009), 노태복 옮김,『꿀벌 없는 세상, 결실 없는 가을』, 에코리브르.

 

 

벌은 두려움의 대상이다. 그래서 우리는 잘못한 뒤에 벌을 받는다고 하던가. 교실에 벌 한 마리라도 들어오면 난리가 난다. 어떻게 해서라도 창밖으로 내보내야 안심이 된다. 장수말벌이라면 모를까 고작 꿀벌 한마리라도 호들갑을 떠는데, 설사 쏘인다 해도 부어오르며 잠시 참기 어려운 통증을 유발할 뿐 이내 괜찮아진다. 하지만 꿀벌은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 다른 야생동물과 마찬가지로 꿀벌도 여간해서 사람 곁에 다가오지 않는데 인간은 꿀벌을 이용한다. 벌꿀을 가로채기 위한 것인데, 언제부턴가 꿀벌이 사라진다며 한숨이다. 무슨 곡절이 있을 까. 꿀벌의 처지에서 바라보아야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고 대책을 근본적으로 세울 수 있다.

 

 

1

 

벌꿀에 대한 집착의 역사는 깊다. 로완 제이콥슨은 『꿀벌 없는 세상, 결실 없는 가을』에서 6500년 전, 에스파냐의 한 동굴그림을 주목한다. 높은 나무에 오르던 꿀 사냥꾼이 구경꾼들의 환호성에 놀라 사다리에서 팔을 버둥대며 미끄러져 떨어지는 순간을 포착했다는 거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다. 인도네시아의 한 마을은 아슬아슬하게 연결한 대나무에 몸을 의지해 까마득한 절벽 위 바위틈의 꿀벌집, 다시 말해 석청을 따러 오르는 사람들로 유명하다. 한번 맛 들으면 도저히 포기할 수 없는 벌꿀의 유혹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치명적인 모양인데, 그건 오로지 인간의 입장이다. 꿀벌의 처지에서 보자. 사람들의 등쌀에 집과 꿀은 물론이고 생명까지 내놓아야 했던 꿀벌들은 인간이 만든 양봉의 덫에 걸린 이후 가축과 다름없게 구속되었는지 모른다.

 

우리는 벌통에서 벌꿀과 로열젤리, 그리고 꽃가루를 채취하지만 우리가 꿀벌에 대해 아는 건 거의 없다. 꿀벌에 토종과 양봉이 있고, 토종벌은 한 군데 붙박아두었다 1년에 한 차례 딴다는 거, 양봉은 유채나 아카시나무의 꽃을 따라 남에서 북으로 이동하며 그때그때 채취한다는 거, 꿀에 가짜가 많으니 조심해야 한다는 정도 이외에 아는 게 거의 없다. 다만 꿀벌이 가까이 다가오는 걸 몹시 경계할 뿐인데, 사실 우리는 벌통의 벌꿀을 채취하는 게 아니다. 착취한다고 해야 옳다. 그렇게 착취하면서 고작 우리가 벌통 속의 꿀벌에 베푸는 건 설탕물이나 물에 탄 옥수수 시럽 따위. 하지만 꿀벌은 이른 봄부터 늦가을까지, 아니 비닐하우스에서 한겨울에도 인간이 먹는 채소와 과일을 영글게 한다. 꿀벌은 인간이 없어도 대를 잇는데 큰 무리가 없지만 우리는 벌꿀 없는 내일을 생각할 수 없다. 생태계에 의지하며 진화한 순서가 그렇지 않은가.

 

들에 꽃이 피기 시작하면 우리는 당연히 봄을 다가오는 걸 느끼지만 꽃이 봄을 알린 건 지질연대로 보아 그리 오래 전이 아니다. 식물이 꽃이라는 번식 수단을 찾아낸 건 1억5천만 년 전으로, 적어도 곤충이 진화돼 세상에 나온 뒤다. 그 전에는 바람에 꽃가루를 날리는 방식에 의존했는데 그 방식은 낭비가 심했다. 지금 지구상에 존재가 알려진 25만 종의 식물 가운데 4분의3이 꽃가루를 동물에 의존해 수정시킨다. 하지만 동물이 공연히 그런 수고를 아끼지 않을 리 없다. 식물은 꽃 속에 즙을 만들어 유혹해야 했고, 포유류보다 덩치가 작은 벌새와 같은 꿀빨이새, 그 밖의 많은 곤충들이 한번 맛본 후 앞 다투어 자원했을 것이다. 우리나라 봄의 전령인 동박꽃은 동박새가 맡고, 아직 꿀벌이 활동하기 전에 모습을 드러내는 눈밭의 복수초나 변산바람꽃은 꿀벌 이외의 다른 곤충이 접근하겠지.

 

벌이라고 모두 꿀을 모으는 건 아니다. 2만 종에 달하는 벌 종류 가운데 고작 몇 종에 지나지 않는다고 로완 제이콥슨이 이야기보따리를 푼다. 고작 100여 마리 옹기종기 모여 땅속에 꿀단지 몇 개 만드는 데 그치는 뒤영벌도 거기에 해당하지만 보잘것없고, 꿀벌이 단연 으뜸이라는 거다. 『꿀벌 없는 세상, 결실 없는 가을』을 쓴 그는 음식과 환경 사이의 연결고리에 관심을 갖는 작가다. 그가 어느날 문득 아침상에서 꿀벌이 꽃가루를 수정해 얻은 농작물이 대부분이라는 걸 눈치채는데, 세상의 꿀벌들의 군집이 갑자기 붕괴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른바 ‘군집붕괴현상’이었다. 그는 작가의 감수성을 발휘하며 원인을 찾아나섰다. 책과 자료를 뒤지고 미국을 헤집으며 사람을 만났다. 그의 노고로 완성된 흥미로운 책은 고맙게도 불과 1년 만에 우리 손에 번역돼 들어왔다.

 

꿀벌은 열대성 곤충인 모양이다. 200만 년 전, 나뭇가지에 매달던 벌집을 바위틈에 짓는 방법을 개척한 이후 아프리카에서 퍼져나가 이제 세계 곳곳 없는 곳이 없지만 영상 15도가 넘어야 벌집 밖으로 나서는 꿀벌은 기원이 같은 만큼 생긴 모습도, 번식하고 꿀을 저장해 나누는 생활 방식도 거의 같다. 한데 아메리카 대륙에 꿀벌이 들어간 건 오래되지 않았다. 북미는 중남미에서 유럽 꿀벌로 양봉하던 백인에 의해 들어갔다 하니 아메리카대륙의 원주민들은 벌꿀의 맛을 몰랐을 게 틀림없다. 요즘에야 꿀벌 덕분에 유럽과 아시아에서 건너간 과일과 채소를 다양하게 즐길 수 있지만 20세기에 와서도 벌이 식물의 생명력을 앗아간다고 믿어 꿀벌의 수입을 금지하는 법안이 입안되기도 했단다. 흥미롭게도 사료작물이 씨를 맺는 데 필요한 꿀을 가로챈다고 믿었다는 게 아닌가. 이후 승승장구하던 미국의 양봉산업은 1990년대 들어 중국산 벌꿀이 수입되면서 곤두박질쳤고, 2005년 이후 위태롭던 양봉산업이 2006년 가을에 급기야 허물어졌다고 로완 제이콥슨은 주장한다. 군집붕괴현상이 광범위하게 발생한 건데, 그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2

 

4월 둘째 주 주말, 서울 여의도는 자동차 통행이 불가능할 정도로 사람들이 몰렸다. 제방도로인 윤중제에서 벚꽃놀이가 한창이었기 때문으로, 가족이나 연인 단위로 축제에 참여하는 시민들은 만개한 벚꽃 아래에서 행복한 표정이었지만 길을 막고 주전부리를 파는 상인에 치어 불편을 겪어야 했다고 언론은 전했다. 여의도만이 아니다. 충청북도 제천시도 의림지에서 벚꽃축제를 열었고 인천시도 예외가 아니었다. 인천대공원이 축제로 떠들썩할 때 운동삼아 아파트단지를 이리저리 걷는데, 벚꽃이 활짝 핀 이면도로에 인파가 북적였다. 비록 벚꽃놀이를 나온 건 아니어도 상춘객과 상인 사이를 요리조리 피하며 길을 걷기로 했다. 늘어놓고 파는 물건도 들여다보고 부탁하는 연인들에게 사진도 찍어줄 겸.

 

왁자지껄한 2킬로미터 정도의 길을 왕복하면서 어딘지 모르게 쓸쓸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따사로운 봄볕에 아무리 살펴도 꿀벌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던 거다. 벌과 나비가 없는 꽃은 향기가 없다고 신사임당이 그랬다고 하던데, 도시에 장식된 벚나무는 꽃향기를 잃었을까. 꿀이 없는 걸까. 저 정도 규모로 가득한 꽃무리를 꿀벌이 외면할 리 없는데 왜 이리 조용할까. 주변에 양봉이 없을지 모르지만 멀지 않은 문학산과 청량산이나 가까운 그린벨트의 농경지에서 날아드는 꿀벌이 적지 않을 텐데, 섬뜩하다. 하지만 그건 내 생각일 뿐이고, 바글거리는 시민들 중에 꿀벌이 없다는 사실을 눈치채는 이는 없어 보인다. 언론은 관심을 보일까. 월요일 아침, 배달된 신문과 인터넷을 뒤졌지만 없었다. 다른 벚꽃축제 현장에는 꿀벌이 동참했던 걸까.

 

요즘 쏟아지는 특종에 정신이 팔린 언론은 물론이지만 경각심을 가진 전문가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데, 꿀벌이 사라진다는 건 단순히 벌꿀을 포기해야 한다는 사실을 넘어선다. 수많은 과일과 채소를 먹을 수 없다는 푸념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꿀벌이 사라지면 사람은 4년을 버틸 수 없다고 아인슈타인이 이야기했다던데, 아닌 게 아니라, 인간 음식의 80퍼센트가 곤충이 꽃가루 수정을 매개해준 농산물로 가공한다고 한다. 어쩌면 인간 뿐 아니라 동물에 꽃가루를 맡기는 식물 대부분이 내일을 기약하기 어려워질지 모른다. 꿀벌을 대체할 생물군이 출현하지 못한다면 생태계의 질서는 무너질 것이기에 작년과 재작년, 유럽과 미국의 언론은 꿀벌이 사라지는 현상에 전전긍긍했다. 그 사실을 남의 이야기처럼 덤덤하게 전했던 우리나라에도 예외일 수 없을 텐데, 우리는 시방 경각심이 없다. 만개한 꽃 앞에 꿀벌이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데.

 

자연에서 벌집 하나에 육각형 밀랍 원통을 10만 개 정도 만들어내는 꿀벌은 하루 벌통 하나에 2500만 송의의 꽃에서 꿀을 모아오는 능력을 가진다. 따라서 지평선 가득 단일 작물만 심는 현대의 농장이나 과수원은 꿀벌 없이 운영 자체가 불가능한데, 당분이 16퍼센트에 지나지 않는 꽃꿀은 순전히 꿀벌의 노고로 70퍼센트 이상 농축돼 작은 원통 안에 가득 채워, 많을 때에는 벌통마다 200킬로그램까지 저장한단다. 5만 마리에 달하는 꿀벌이 좁은 벌통과 벌통 밖의 넓은 자연에서 조화롭게 움직이기 때문인데, 로완 제이콥슨이 눈부시고 놀라운 지능으로 움직인다고 추임새를 넣은 꿀벌 사회의 흥미로운 현장을 따라가 보자.

 

“벌이 얼마나 영리한가?” 묻는 질문은 “내 뇌세포 하나가 얼마나 영리한가?” 묻는 거와 마찬가지라고 한 대목이 재미있고, 하루 2000개의 알을 낳는 여왕벌을 그저 로열젤리 받아먹고 ‘알 낳는 기계’라 표현한 지점도 흥미롭지만 수정되지 않은 알에서 태어난 수벌의 빈둥거리는 태도를 바람기를 주체하지 못하는 일부 남성에 유비한 것도 이채롭다. 일벌이 건네주는 양분을 받아먹으며 이웃 벌집의 수벌들과 어울려 놀다, 처녀 여왕벌을 쫓아다니는 수벌을 기본적으로 ‘날아다니는 정자’라는 건 어떤가. 일생에 오직 한 가지 목적으로 바깥나들이를 하는 여왕벌은 수벌이 노는 곳에 잠시 모습을 드러내곤 하늘로 치솟아 오르는데, 그때 질세라 따라 오른 수벌은 교미 후 정자를 쏟아내며 떨어져 죽고, 여왕벌은 다시 다른 수벌을 유혹해 하늘로 치솟아 오른다고 한다. 그렇게 열대여섯 마리의 수벌과 교미를 마친 여왕벌은 저장된 정자를 조금씩 사용하면서 평생 알을 낳고, 교미에 실패한 수벌은 벌통에 돌아오지 못한다. 용도가 끝난 ‘날아다니는 정자’를 일벌이 폐기한다는 거다.

 

육각형 방마다 하나 씩 낳은 알은 양육을 담당하는 꿀벌이 꽃가루를 삼킨 뒤 소화해 만든 로열젤리를 먹으며 하루에 두 배, 6일이면 방에 꽉 찰 정도로 자라서 고치가 되고, 3일이 지나 성체로 태어난다고 한다. 그렇게 부화한 꿀벌은 ‘안살림 벌’이 되어 방 청소와 같은 시시한 일을 하다 4일이 지나면 애벌레들을 키운다. 다시 열흘 정도 지나면 벌통 밖에서 먹이를 구하고 돌아온 꿀벌이 뱉는 꿀을 받아 빈 방에 내려놓은 일을 맡는다. 꽃꿀을 입에 넣었다 뱉으면서 물기를 줄이는 과정에서 효소를 첨가해 설탕을 끈적거리는 과당으로 바꾸고, 날개를 진동하면서 수분이 20퍼센트 아래로 떨어지는 벌꿀을 만든 후 방을 밀랍으로 봉하는 임무다. 그 일로 일주일이 지나면 밖으로 나가 비로소 꽃꿀을 모으는데, 선배와 동료의 엉덩이춤에 휩쓸려 3주 정도 들판에서 신바람이 나면 늙는다. 부화돼 3주는 벌통 안에서, 3주는 밖에서 보낸 후 일생을 정리하는 것이다.

 

1973년 오스트리아의 카를 폰 프리슈는 벌의 행동 원리를 밝힌 공로로 노벨상을 받았다. 벌통 위에서 엉덩이로 원을 그리면 가까운 곳에, 누운 8자를 그리면 먼 곳에 꽃꿀이 많다는 신호고, 8자 춤 1초면 대략 1.2킬로미터 지점이라고 한다. 8자 춤 사이로 꽃꿀의 방향을 알리는데, 춤 반복 회수는 꿀의 양을 일려준다. 1회에 그치면 가치가 낮지만 100회라면 벌집 전체가 발칵 뒤집힐 소식이 되고, 20회 정도라면 무난하다는 거다. 그렇게 꿀벌 사회에 세월이 흘러 가을이 완연해지면 여왕벌은 알 낳기를 그만두니 남은 일벌은 몸에 비축된 로열젤리로 살아남기 위한 버티기에 들어가고 봄이 와 여왕벌이 다시 알을 낳으면 안살림 벌로 돌아간다고 한다. 그렇게 늘어난 꿀벌은 봄에 분봉에 돌입한다. 2만 여 벌떼가 여왕벌을 에워싸며 날아올라 새로운 둥지를 찾는데, 그 신호를 미리 간파한 사람이 여왕벌을 빈 벌통에 넣어 양봉의 규모를 늘린다.

 

알을 낳아 집단의 생존을 좌우하는 여왕벌은 리더가 아니다. 벌꿀은 지휘자 없는 오케스트라의 개개 단원으로, 알아서 제 일을 담당하는 사회 속의 개별적 존재다. 바로 그 점이 꿀벌의 사회를 위태롭게 만들었다고 로완 제이콥슨은 주장한다. 학습과 기억능력, 감각, 식욕, 수명 들에 대한 개개 반응 체계의 혼란이 집단을 붕괴시키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3

 

처음에는 꿀벌의 천적인 응애를 생각했다. 애벌레의 체액을 빨아먹는 응애로 꿀벌 집단이 붕괴되는 일은 흔했기 때문이다. 양봉가들은 응애를 처리할 방법을 강구해야 했지만 뾰족한 수단이 없다. 응애가 창궐할 때면 화학회사에서 개발한 살충제, 다시 말해 꿀벌에 이상을 초래하지 않고 응애만 죽이는 약을 뿌렸지만 얼마 안 가 소용이 없었다. 응애는 즉각 약품에 적응했던 것이다. 3전3패. 그런 약품은 꿀벌에도 문제를 주었다. 한데 이번의 집단붕괴현상은 응애와 거리가 있었다. 건강한 벌통이든 아니든 애벌레를 공격하는 응애의 수가 비슷하거나 집단이 붕괴된 벌통의 응애가 더 적었던 거다. 바이러스였을까. 아닌 게 아니라 여왕벌을 비롯한 많은 꿀벌의 몸에 바이러스가 많았는데, 딱히 바이러스라고 판정하기 어려웠다. 그런 현상이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지만 사이사이에 건강한 벌통도 많지 않은가.

 

휴대전화를 의심했다. 전자파를 많이 받은 벌통일수록 되돌아오는 꿀벌의 수가 적다는 연구가 나온 것인데, 다시 들어다보니 그런 현상으로 결론을 짓기에 부족했다. 중계소가 없는 전자파 청정지역이나 그렇지 않은 지역이나 군집붕괴현상은 다르지 않은 것이다. 혹시 유전자조작 농산물이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을까. 천연 살충제를 가진 유전자조작 농산물이 제주왕나비의 생존율을 떨어뜨리는 것으로 밝혀졌는데, 영향이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전자조작 옥수수가 가득한 지역의 꿀벌이라고 특별한 문제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지구온난화에 혐의를 두어야 할까. 지구온난화로 인한 가뭄으로 꿀벌이 몰살하는 경우야 드물지 않지만 이번 일과 직접 관계가 없었다. 농작물 씨앗에 방사능을 쪼이는 관행도 관계가 없게 나타났다.

 

유기살충제의 피해에 골머리 앓던 화학회사에서 니코틴과 같이 식물에 함유된 천연 살충제를 개발했다. 그 살충제를 뿌리면 식물은 물론이고 포유류나 사람에 아무런 해를 주지 않으며 해충만 제거하는 효과를 발한다니 광범위하게 소비되고 있는데 문제는 곤충인 꿀벌에 피해를 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천연 살충제를 개발한 세계 굴지의 화학회사는 농도가 낮아 꿀벌이 찾는 꽃가루나 꽃꿀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주장해 양봉산업보다 다국적기업의 이익에 관심 수준이 훨씬 높은 미국 행정당국마저 양봉업자의 하소연을 무시하는 게 아닌가. 이번에는 양봉업자가 나서 조사해보니 그 살충제는 벌통으로 돌아오는 꿀벌의 수를 크게 줄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뇌가 손상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프랑스는 사용을 금지했다는데, 우리나라는 어떤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그런데, 한 젊은 학자가 꿀벌의 몸 상태를 정밀하게 조사했더니 더욱 끔찍한 결과가 나타났다. 집단붕괴현상에 처한 꿀벌의 몸에서 모두 47가지 살충제 성분이 조사되었다는 게 아닌가. 이미 생산을 중단해 살포한지 오래된 살충제 성분도 포함해 평균 한 마리 당 5가지였다고 한다.

 

중국에서 벌꿀이 수입되면서 수익을 기대할 수 없는 미국의 양봉가들은 새로운 소득원을 찾아나서기 시작했다. 유전자가 단순한 농작물을 드넓은 지역에 심을 경우 한꺼번에 꽃이 피는데 그때 주변의 꿀벌만으로 꽃가루 수정이 절대 부족하다. 그래서 농장주는 양봉가에 급히 도움을 청하는데, 그 비용을 받아 수익을 올리는 양봉업이 창출된 것이다. 미국 전역에서 커다란 트럭에 실은 벌통이 수천 킬로미터를 달려 모여 짧은 순간에 꽃가루를 수정하는 장면을 연출하게 되는데 문제는 그때 숱한 질병이 만연하게 되고, 피로와 스트레스에 지친 꿀벌의 면역이 급격히 저하된다는 사실이다. 인간은 꿀벌의 벌꿀을 착취하는 데에서 꿀벌 자체를 앵벌이로 삼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세계 수요량의 80퍼센트 이상을 떠맡는 캘리포니아 아몬드를 보자. 2월에 꽃이 피는 아몬드를 일시에 꽃가루 수정하기 위해 100만 벌통이 동원될 정도라고 한다. 겨울딸기, 봄 참외가 시장을 점령한 우리나라는 어떨까.

 

살충제에 찌든 꿀벌을 계절에 관계없는 지나치게 이동시킨 결과 면역이 크게 낮아졌지만 유전적 다양성의 폭이 협소한 것도 문제였다. 알을 많이 낳고 꽃꿀을 잔뜩 채취해오면서도 사납지 않은 이탈리아 꿀벌로 전국의 양봉업이 거의 획일화된 마당에 살충제에 내성을 가진 응애와 항생제와 백신을 이겨낸 병원균과 바이러스까지 준동을 하니 양봉산업이 배겨날 수 있겠는가. 결국 인간의 탐욕이 꿀벌 집단붕괴현상의 발단이자 결과였다. 그렇다면 대책은 무엇이어야 할까. 역시 자연스러움이다. 자연에서 이 꽃 저 꽃을 옮겨 다니며 꽃꿀도 따고 다양한 꽃가루도 섭취해 면역력을 높이게 배려해야 한다. 유전적 다양성을 회복할 수 있도록 획일적 양봉산업과 관계없는 지역에서 꿀벌을 도입해 유전적 다양성을 다시 높일 필요가 있다. 면역이 높아지면 응애도 병원균이나 바이러스에도 이겨내게 될 것이다.

 

자연에 나가 많은 수벌과 교미하는 극동아시아의 러시아 꿀벌은 사납지만 활발했고 꽃꿀을 적게 모았지만 건강했다. 러시아 꿀벌로 대안을 찾으려는 양봉가의 성공담을 로완 제이콥슨은 희망처럼 제시하며 책을 마무리하는데, 자연스러움에서 대안을 찾아야 하는 새삼스러움은 꿀벌에서 그치는 게 아니다. 로완 제이콥슨은 주목하지 않았어도 구제역에 노출된 돼지와 소도, 조류독감에 무방비인 닭과 오리도, 극도로 품종개량한 애완견도 마찬가지다. 획일적 선행학습에 물먹는 우리의 어린 학생들은 아니 그런가.

 

 

4

 

인간에게 벌꿀을 착취당하는 꿀벌은 봉침이라 미화한 인간에 의해 생명마저 잃어왔다. 고혈압, 동맥경화와 같은 순환기 질환을 비롯해 만성두통, 불면증, 정신분열, 안면신경마비와 같은 신경 질환, 오십견, 좌골신경통, 통풍, 관절염, 류마티스와 같은 퇴행성질환, 무좀과 습진과 비듬과 같은 피부 질환, 자궁내막염, 냉대하, 생리통과 같은 여성 질환에 두루 적용된다며 탐하는 벌꿀은 차라리 애교인 셈인데, 민간의료의 한 축을 담당하느라 계절과 밤낮없이 희생된 우리의 앵벌이 꿀벌이 오롯이 인간의 탐욕에 의해 시방 사라지고 있다. 내일의 침묵을 예고하는 것이리라.

 

어린 시절, 남의 집 벌통을 슬쩍 열고 풀대를 꺾어 꿀을 찍어먹다 혼난 적 있는 사람들에게 로완 제이콥슨은 『꿀벌 없는 세상, 결실 없는 가을』에서 무엇을 이야기하려는 걸까. 단순히 꿀벌이 사라진다는 걸 알리려는 건 아닐 테고, 제철 제고장에서 자연스런 농산물로 자급자족해야 인간이 건강하듯, 꿀벌이 다시 건강하게 늘어나려면 알에서 태어난 바로 그 지역에서 군집사회를 형성해 자연스럽게 생육해야 한다는 걸로 마무리했지만, 삼라만상 모두 자연스러워야 한다는 걸 새삼 강조하고 싶지 않았을까.

 

벌꿀은 채식 같은데, 분명히 꿀벌 몸에 들어갔다 나왔다. 엄격한 채식주의자는 벌꿀도 외면한다는데, 아몬드는 괜찮을까. 우리가 미국에서 수입하는 아몬드야말로 꿀벌의 집단붕괴현상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데. 『꿀벌 없는 세상, 결실 없는 가을』을 덮었으면 벌꿀과 과일을 정도껏 먹을 필요가 있겠다. 아몬드보다 땅콩이 낫겠지. (환경과생명, 2009년 여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