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추억

디딤돌 2010. 9. 12. 12:39

 

《나는 오늘도 책을 읽었다》, 최성각 지음, 동녘, 2010.

  

시간강사 주제를 망각하고, 자신의 분야에서 행동하는 환경운동가가 되길 선동적으로 요구하는 강의를 시작한 지 어느새 20년. 언제나 그렇듯 중간고사는 서평으로 대체한다. 책으로 간접경험을 하면서 아울러 생각하는 힘을 키워야 한다고 믿기 때문인데, 국영수와 과탐 사탐 교과서와 참고서만 파던 학생들은 서평에 대단히 낯설어 한다. 따라서 책을 지정해야 하는데, 한두 권으로 그칠 수 없는 일. 생태적 시각으로 환경문제를 바라보도록 이끄는 백여 권을 골라 두세 주에 걸쳐 소상하게 이야기하는데, 정작 학생들이 선택하는 책은 그리 다양하지 않다. 쉬울 뿐 아니라 값이 싸야 아무래도 인기가 크다. 어려우면 초장에 포기하고, 비싼 책은 주저없이 외면한다.

 

서평 제출 기한을 기말고사에 맞추니 학생들은 학기 초에 환호하지만 종강이 다가올수록 초조해진다. 그럴 때 남의 서평을 슬쩍 베끼고 싶은 충동이 일어날 수 있을 게고, 가끔 의심스러운 서평도 눈에 띈다. 중언부언하는 내용이 어색하게 세련되었다. 인터넷 여기저기에서 짜깁기했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서툴어도 자신의 의견을 담아 제출한다. 의미 있는 책을 읽었다는 뿌듯함이 묻어나는 내용이 많다. 그러므로 학기 초마다 서평 요구를 멈출 수 없지만, 아쉽다. 제자를 키울 수 있는 위치에 있다면 성실한 서평을 쓴 학생들과 책읽기를 지속하며 환경의식을 더욱 높일 수 있을 텐데 시간강사에게 그럴 기회는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소개하는 백여 권은 학기마다 명단을 갱신하며 신간을 추가하지만 오래 전에 출간되었더라도 뺄 수 없는 책이 많다. 그런 까닭에 목록은 늘어나고, 소개하는 시간은 점점 길어진다. 나머지 강의 일정은 뒤로 밀리거나 포기해야 하니 학기 시작 전마다 빼야 할 책을 고르는 일은 적잖은 고민거리다. 생물학 전공자가 강의 시간에 감당할 수 없는 내용을 담은 책이라면 포함해야 한다. 재미와 감동이 있는 책도 빼놓을 수 없다. 학생들의 꾸준한 선택 때문만이 아니다. 장차 가정이나 직장, 사회에서 행동할 때, 식구와 이웃들을 재미와 감동이 있는 환경운동의 세계로 끌어들일 수 있는 힘이 생겨야 하지 않은가.

 

절판된 아쉬움이 없다면 최성각의 책들은 목록을 굳게 지킨다. 고시보다 어렵다는 신춘문예를 두 번에서 통과한 소설가의 글이기 때문이 아니다. 소설가라기보다 “어설픈 생태주의자”, “환경운동하는 글쟁이”로 자신을 소개하는 최성각의 글은 경험과 고민이 바탕이 되어 그런지 감동이 크고 무엇보다 재미있다. 적확한 단어가 제 자리에서 빛난다. 길들어버린 영상문화에 비해 책읽기에 서툴기 짝이 없는 대학생이라도 일단 펼치면 손을 놓을 수 없을 것이다. 실제로 서평 대상으로 인기가 크지만 더 큰 이유가 있다. 뜨거운 가슴에서 우러나는 저자의 고민은 학생들의 뇌에 바로 전달돼 오래 남을 게고, 환경운동에 참여할 힘을 갖추도록 이끌 거라 믿는다.

 

그가 서평집, 《나는 오늘도 책을 읽었다》를 내놓았다.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 환경운동가인 소설가의 서평집이다. 가난한 농부의 막내아들로 태어나 탄광촌의 교사로 잠시 근무할 때까지 적지 않은 부침이 있었지만 오늘의 자신으로 이끈 책들이 바로 이것이라고 독자에게 펼쳐놓는다. 아무 것도 되고 싶지 않았고 주변 역시 철저하게 무관심했다 느꼈던 젊은 시절, 그에게 채찍이고 송곳이며 때로 담요가 된 책들이라 했다. 그의 표현대로 “따뜻하면서 푸짐했고 언제나 과묵했으며 경이로웠던” 책들은 지금 지하철에서 연예인 이야기로 시시덕거리거나 핸드폰에 눈과 귀를 고정하는 이 땅의 젊은이에게 무엇보다 요긴할 것이다. 88만원 세대라는 자탄에서 스스로 헤어나게 할 그 책이 무엇일까.

 

쓸쓸한 젊은 날을 버티게 한 책들은 그를 생태주의로 안내했고, 덕분에 그는 여러 소설과 숱한 에세이를 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절절하며 재미와 감동이 있는 그의 글은 힘이 있다. 서평도 예외가 아니다. 책의 내용과 저자의 진정성을 평가하는데 그치지 않는 최성각은 행간에 가슴앓이 하던 젊은 날의 경험과 현실에서 부딪히는 고통을 행간에 때로는 편안하게, 때로는 격정적으로 녹인다. 탐욕으로 산하를 마구 망가뜨리는 자에 분노하고 거짓에 점철되는 이웃의 모습에 가슴 쓰라려하면서 책을 읽고, 지금 여기에서 환경운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를 감성적으로 전한다. 돌이킬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더라도 내일의 행복을 위해 이 뒤틀린 오늘을 바로잡아야 하기에, 한 보따리의 책을 독자 앞에 펼친다.

 

세계 최대의 갑부 여성이라는 미국의 오프라 윈프리는 오늘의 자신은 책이 만들었다고 말한다. 미국을 움직이는 여성의 대표주자로 그네들이 손꼽는 오프라 윈프리만일 리 없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위대한 사상가는 언제나 책과 함께 있었다. 흔들리지 않는 정신으로 깊은 가르침을 주는 이를 우리가 무한히 존경하는 이유는 학력이나 지위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 학력과 지위는 오히려 방해가 될 따름이다. 그러므로 지금 이 순간, 멸실되는 생태계의 이웃과 후손의 행복을 고민하는 젊은이라면, 시방 이 땅에서 마구 벌어지는 속도와 경쟁, 그것이 부르는 시기와 멸시의 원인을 직시하면서 가슴앓이하고 분노해야 한다. 그냥은 안 된다. 현장을 보고 행동해야 하지만 자신의 행동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해야 한다. 최성각의 서평집은 길을 안내할 것이다.

 

내일을 빼앗긴 젊은이들만이 결코 아니다. 지위와 돈벌이를 위해 토목건설회사와 정부 부서에서, 학교와 교회와 병원과 법원에서 이웃의 고통을 외면하고 승승장구했다고 어깨에 힘을 주는 이들도 읽어야 한다. 인문적, 생태적 상상력이 없어 4대강을 마구 파헤치며 “살리기!” 참칭하는 자들은 물론이다. 시민운동을 권력으로 착각하는 이도 예외일 수 없다. 돈과 지위에 경도된 사이비 인문주의자도 마찬가질 텐데, 어째 좀 찔리는 나는 이 서평집 덕분에 걱정을 덜었다. 《나는 오늘도 책을 읽었다》의 내용을 심도 있게 소개하면 강의가 훨씬 수월해질 게 아닌가. (우리와다음, 2010년 11-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