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09. 5. 18. 01:33

 

재작년 황사 발원지의 실상을 눈으로 확인하고자 인천환경원탁회의 일원으로 찾은 이래 올해가 두 번째 몽골 방문이다. 유기질을 거의 잃어 모래나 다름없는 땅에 뿌리가 들뜬 풀이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는 모습, 그 땅으로 몰려가 발로 모래를 긁어 풀을 뿌리까지 먹어대는 양과 염소 떼를 재작년에 보았다. 이윽고 작년, 재작년 방문을 계기로 인천환경원탁회의는 노도와 같은 물줄기가 모래땅을 뒤엎듯 초원을 파헤치며 종으로 횡으로 사람의 삶터까지 파고드는 사막화를 어떡해든 막아보자는 행동에 인천시민도 동참하게 되었다. 이른바 ‘몽골 인천 희망의 숲 식림행사’였다.

 

나무를 심는 첫해는 참석하지 못했다. 시간강사 주제에 수업을 도저히 뺄 수 없었던 건데 이번 학기에는 학생들의 양해를 얻어 다녀올 수 있었다. 다만 빠듯한 일정이 방문 전에 더 촘촘해졌고 집에 돌아오자 마감을 기다리는 원고가 꼬리를 물고 있다는 사실을 통감해야 했다. 일상에서 비웠던 일주일은 내일의 생각과 행동을 풍부하게 할 게 분명한데, 성큼 앞당겨진 마감시간으로 몸과 마음이 당장 조급해진 것이다. 적막 속에서 천천히 흐르던 몽골의 시간은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다.

 

잠들 틈 주지 않으며 물수건과 땅콩과 기내식과 커피를 종용하고, 비행기 바퀴 내리기 직전까지 면세품 팔던 승무원들은 새벽에 내려 며칠 푹 쉴 틈이 보장되겠지. 공항에서 첫 지하철로 집에 도착해 아침 먹고, 쌓인 우편물 정리하고, 메일 확인한 후 답장 보내고, 씻자마자 오밤중까지 편집회의에 참석해 지쳤어도 몸을 추슬러 책방에 들려야 했다. 황사의 원인을 분석하기보다 몽골 사막을 몸으로 체험한 이의 감성을 호흡하고 싶었다. 이틀 나무심고 하루 시내를 돌아다닌 우리가 도저히 느낄 수 없는 몽골의 진면목을 늦게라도 공유하고 싶었다.

 

2007년 여름, 오후에 당도한 울란바타르는 우리의 완연한 봄처럼 싱그러웠는데, 공항을 빠져나오자마자 코를 자극하는 매캐한 공기는 화력발전소가 원인이었다. 이번엔 그 정도가 더 심해진 느낌이다. 시커먼 연기를 내뿜는 중고 트럭과 버스는 여전히 한국산이 대부분이지만 승용차는 2년 전과 달리 일제가 훨씬 많아 보인다. 스포츠 유틸리티 차량도 눈에 띄게 늘었다. 해외 송금이 아무리 많아도 아직 그답지 않을 텐데, 말 타던 사람에게 자동차에 대한 욕구는 어쩔 수 없는 건가. 가축 출입이 허용되지 않는 시내는 언제나 막힌다.

 

80명이 넘는 인원이 한꺼번에 움직이는 건 아무래도 복잡했다. 출발에서 도착까지, 공항과 호텔과 게르와 식당과 상점을 들고나거나 버스를 오르내릴 때마다 반복하는 인원파악은 베테랑 가이드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일행의 절반 이상은 마음보다 몸이 먼저인 중고등학생이 아닌가. 여비를 감당한 집안 덕을 본 그들은 애초 높은 자원봉사 점수에 마음이 빼앗겼을 수 있다. 하지만 아이들은 몽골 또래와 벅차고 뿌듯했던 작년의 체험을 돌이키고 싶었고, 몽골 다녀온 뒤 한층 진지해진 자녀가 제 성적을 쑥쑥 끌어올리는 걸 본 부모도 선뜻 동의했다고 한다. 그래서 학생들이 행사의 주인공이 되었다.

 

재작년에 묵었던 한국 자본의 선진호텔은 여러모로 안정된 느낌이었다. 규모도 투숙객도 늘었고 늦은 시간의 스낵바에 손님이 남아 있었지만 무엇보다 특급호텔답게 눈과 코를 찌르던 새집증후군이 사라져 좋았다. 피곤한 가운데 회의실에 모여 인사 나누고 잠자리에 든 시간이 새벽 2시. 행사 주체인 인천환경원탁회의를 비롯해 진행을 맡은 인천지역환경기술센터, 그리고 인천시 공무원과 연관 연구기관, 또한 언론사에서 30여 명의 어른이 참여했는데 한나라당 조진형 의원도 시간을 냈다. 아무래도 어른보다 수원과 광명에서 온 학생과 40여 명의 인천 중고등학생이 많은 나무를 심을 것이다.

 

회랑처럼 좁다란 3500킬로미터의 숲으로 진전되는 사막화를 차단하려는 그린벨트 사업은 몽골 정부에서 능동적으로 수행하는데 한계가 있다. 부족한 건 정부예산만이 아니다. 나무를 심으려는 의지가 유목에 익숙한 몽골인에게 그리 절박하지 않고 무엇보다 동원할 인원이 턱없이 부족한 것이다. 유목문화를 수천년 지켜온 몽골인에게 더욱 심각해지는 최근의 황사는 재앙에 가깝다. 목축에 방해가 되더라도 이제 사막화를 막기 위해 나무를 심어야 한다는데 동의할 정도가 되었지만 인구 280만 중에 120만이 수도 울란바타르에 몰려 있는 몽골은 그린벨트가 필요한 지역에 사람이 몹시 드물다.

 

울란바타르 인근 성긴 지역과 서쪽으로 200여 킬로미터 떨어진 바양노르솜의 ‘한몽 희망의 숲’은 희망대로 숲이 완연해져도 그린벨트 3500킬로미터에 비하면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겠지만, 시작은 반이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2만 그루 심고 내년에도 행사가 이어진다면 제법 우거진 숲을 보게 될지 모른다. 사막화는 그 숲을 뚫지 못할 것이다. 인천에서 분 나무심기 바람이 인천 이외의 지역을 넘어 한국과 일본의 시민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면 몽골 그린벨트의 녹색 띠는 더욱 길고 두툼해져 그냥 두면 국토의 90퍼센트 이상 사막으로 변할지 모를 몽골의 초원을 푸르게 보전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그 시작을 열었는데, 아주 반갑고 다행인 것은 학생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행사가 시민들의 모금 덕분에 힘을 입는다는 사실이다.

 

물론 나무를 심는다고 숲이 저절로 조성되는 건 아니다. 일교차가 심할 뿐 아니라 건조한 몽골 사막에서 뿌리가 깊게 내리기 전까지 보살피지 않으면 나무는 말라죽고 만다. 적어도 3년 동안 1주일에 두 차례 물을 주어야하고 양이나 염소와 같은 가축이 나무를 갉아먹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 몽골의 시민들, 그 중에 학생들의 관심과 역할이 중요하다. 사실 사막화의 책임은 몽골과 거의 무관하다. 지구온난화의 원인과 같은 맥락으로 상당 부분 우리와 일본을 비롯한 동북아와 세계가 책임을 공유해야 한다. 우리의 나무심기는 그런 반성의 자세로 비롯되어야 하지만 무엇보다 행사를 계기로 몽골과 진한 우정이 이어지기를 희망해야한다.

 

이번 행사를 인천환경원탁회의와 공동으로 주관하는 ‘푸른아시아’는 몽골에 나무 심는 시민운동의 시원을 마련했고, 어렵사리 노하우를 개척한 우리나라의 시민단체다. 몽골 정부에서 전폭적인 신뢰를 보내는 푸른아시아가 나무를 심는 노하우를 우리에게 아낌없이 전수했기에 ‘인천 희망의 숲’은 나무를 건강하게 채워나갈 수 있었다. 더구나 푸른아시아는 우리에게 묘목을 알선하고 장비를 마련해주었을 뿐 아니라 몽골과 우리 학생들이 함께 나무를 심도록 주선해주었다. 그 또한 두 나라의 내일을 위한 나무심기가 아닐 수 없었다.

 

성긴에서 첫날 나무 심는 일은 쉬웠다. 누구였을까. 구덩이도 미리 파놓았고 모래땅에 부을 물과 거름이 벌써 준비해두었다. 몽골과 우리 학생들은 비록 말이 통하지 않아도 손짓발짓과 즐거운 표정으로 의사소통이 활발했고, 손잡고 나무를 심었다. 가는 나무를 50센티미터 깊이의 구덩이에 넣고 흙과 거름을 덮어 발로 밟고 그 위에 두 양동이의 물을 붓는 일련의 과정을 뙤약볕에서 함께 해나가며 우정을 나눴다. 그 와중에 이름을 교환한 학생들은 간단한 말은 물론이고 춤과 노래까지 서로 배워, 준비한 나무를 다 심도록 격이 없이 가까워졌다.

 

좁은 포장도로와 초원을 이리저리 누비는 비포장도로를 먼지 일으키는 좁은 버스에서 6시간이나 견뎌야 도착하는 바양노르에서 학생들은 처음 잡는 삽으로 땅을 파면서도 힘들어하지 않았다. 오히려 몽골학생들과 어찌나 잘 어울리며 나무를 심는지 뒤에서 어정대던 어른 중의 한 사람이던 내게 진한 감동을 주었다. 뙤약볕에서 어울려 땀 흘리다 헤어질 때 미리 준비한 선물을 교환하면서 서로 주소를 적는 모습에서 희망을 느꼈다. 작년에 참석한 학생은 다시 만난 몽골 학생과 반가움을 나누고, 처음 만났어도 기념사진 찍고 헤어지면서 눈물을 머금었다. 집에서 정성껏 준비한 장신구를 남몰래 가지고와 버스 앞에서 전하는 몽골 학생들의 눈매에서 진한 아쉬움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몽골에 나무를 성공적으로 심은 것이다. 몽골 학생들은 나무들을 잘 보살필 것이다. 1주일에 두 번 물을 주고 한국 학생들과 편지를 주고받을 것이다.

 

이틀 동안 나무를 심은 일행은 울란바타르 인근의 테를지국립공원을 다녀온 뒤 시내에서 자연사박물관과 수흐바타르 혁명광장을 둘러보고 국립민속극단의 수준 높은 공연을 보았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유네스코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테를지국립공원에 한국인의 흔적은 완연했다. 골프장도 한국인 소유였지만 자질구레한 물건을 파는 상인들은 한국어를 알아듣고 호객에 여념이 없었다. 관광버스가 서자마자 어디선가 나타나는 몽골인들은 매사냥용 매를 잡아들거나 쌍봉낙타를 타라며 조르고 있었다. 물론 2달러를 반드시 받았고. 토끼를 잡던 매와 고비사막에 사는 쌍봉낙타가 앵벌이가 된 셈이었다.

 

울란바타르 시내는 재작년에 없던 건물이 속속 들어섰고, 또 올라가고 있었다. 일본과 중국의 지배에서 벗어나게 도와준 구소련에 의해 고유 키릴문자와 존댓말과 젓가락 문화를 잃은 젊은 몽골인들은 행동과 표정이 자유분방했지만, 소련 멸망 후 자리 잡은 자본주의는 빈부격차를 벌려놓았고 시민들의 마음에 자신의 국가가 후진국이라는 인식이 스며들고 말았다. 그래서 외국인 소유의 빌딩이 솟는 걸 자랑스러워하고, 수입한 고물차로 거리가 막혀 매연이 매캐해도 참아내는 것 같았다. 2년 만에 다시 찾은 사막화되는 초원은 아직 그대로인데 몽골 수도의 강산은 변했다. 이미 우리가 겪었고 앞으로 피할 수 없을 환경재난이 몽골에서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건만 확신하기 어렵다.

 

‘몽골’은 용감하다는 의미를 가진다고 한다. 아름답고 순박하며 자신의 문화에 자존심을 잃지 않던 모습을 보전하길 바란다고 당부한다면, 그들은 우리의 당부를 어떻게 생각할까. 알 수 없지만, 경제학자 칼 폴라니는 일찍이 이윤을 앞세우는 개발은 내일을 어둡게 한다고 지적했다. 산업화로 인한 환경오염만이 내일에 대한 걱정의 전부가 아니다. 지각없는 개발로 식량기지를 없애버린 오늘, 내일을 기준으로 우리는 이미 돌이킬 수 없게 버림받지 않았던가. 우리는 앞으로 몽골의 도움을 애타게 청하는 신세가 될지 모른다.

 

작년부터 ‘희망의 숲’을 몽골에 가꾸고 있는 우리는 후손의 건강한 내일을 위해 두 나라의 우정이 지금보다 깊어져야 한다는 인식에 동의할 필요가 있다. 이제 그 시작의 큰 걸음은 내딛었다. (작가들, 2009년 여름호)

큰 일 하고 오셨군요, 심은 나무가 울창한 숲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