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추억

디딤돌 2010. 7. 28. 11:23

 

《슈퍼브랜드의 불편한 진실》, 나오미 클라인 지음, 이은진 옮김, 살림Biz, 2010.

 

 

세계적 저널리스트 나오미 클라인은 얼마 전 《쇼크 독트린》을 펴내 다시 주목을 받았다. 2년 전 우리말로 번역된 그 책은 반세계화 진영의 선두주자인 나오미 클라인이 노암 촘스키를 잇는 지식인이라는 세간의 평가가 과장이 아니라는 걸 여실히 증명했는데, 그를 유명하게 만든 책은 10년 전의《NO LOGO》이었다. 《NO LOGO》가 얼마 전 《슈퍼 브랜드의 불편한 진실》로 번역돼 우리에게 선보였다.

 

‘국격’이라고? 경쟁력이 중요한 국제사회에서 국가의 브랜드 가치가 중요하다는 의미일 텐데, 국제사회는 대한민국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싸구려 상품이나 주문자 상표 부착 신발의 수출국이라는 이미지는 사라진 듯하다. 고품질의 전자와 건설기술을 보유했거나 가끔 가난한 국가에서 노동력을 착취하는 우리 기업이 가끔 외신을 타는 걸 보아 세상이 바뀌긴 바뀌었다. 이제 해외에서 어깨에 힘이 들어갈 정도라는데, 미국과 일본은 시방 어떨까.

 

몬산토는 인구가 늘어나는 가난한 국가를 위해 식량증산을 연구하는 기업일까, 유전자조작으로 내일을 위협하는 최악의 다국적기업일까. 몬산토의 홍보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제사회의 시각은 차갑기만 한데, ‘삼성’은 최우수 전자제품을 만들어내는 초우량기업일까, 태안에 원유를 흘리고 적절한 보상을 외면하는 악덕기업일까.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을 계기로 어느덧 세계적 다국적기업의 반열에 오른 삼성과 현대와 기아는 브랜드 가치를 드높였을 것이다. 그러느라 얼마나 많은 돈을 국제축구연맹에 헌납해야 했는지, 공장과 하청업체의 비정규직 노동자는 잘 모를 것이고.

 

나오미 클라인은 기업과 상표의 브랜드를 비판적으로 주목한다. “누가 나이키를 신는가?” 라는 광고는 나이키 신발을 신은 자와 그렇지 못한 자를 우쭐하게 구별했는데, 조르는 아이와 화려한 매장을 찾은 소비자는 그 신발을 만들기 위해 환기도 안 되는 공장에 갇힌 인도네시아의 어린 노동자가 얼마나 착취당했는지 상상하지 못한다. 반면, 공장이 떠나 실업자가 된 미국의 흑인들은 길거리 농구장마다 커다랗게 붙은 마이클 조던의 광고판을 보며 나이키 신발을 사고 싶어 마약 판매에 나선 자식들을 안타깝게 바라보아야 했다.

 

나이키가 생산을 해외에 맡긴 건 수익 개선과 무관했다. 사실 원가에서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높지 않다. 자본의 이익을 늘리기 위한 일이었다. 상대적으로 높은 국내의 임금을 지불하지 않는 대신 광고를 이용해 상품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자 노조에 시달리지 않게 된 기업주와 주주는 돈방석에 앉게 되었다. 자국의 노동자가 실직하든 말든, 저임금으로 혹사당하는 노동자가 죽든 살든, 단가를 낮추려는 압력으로 그 나라 환경이 오염되는 말든, 나이키 회사의 수익은 전에 없이 증가했다. 그러자 아디다스와 리복이 뒤따랐다. 신발만이 아니다. 경기에 사용하는 각종 공과 숱한 기성복 회사가 요란한 광고로 브랜드 가치를 높이며 수익을 높이는 사이, 한 쪽의 노동자들은 해고되고, 다른 한 쪽은 착취된다.

 

“작은 지구를 위한 솔루션!” 근사하지 않은가. IBM의 광고 문구다. 빌 게이츠가 550억 달러의 재산을 축적하는 동안 자카르타 외곽의 빈민가 같은 공장지대의 17살 소녀는 IBM의 시디롬드라이브를 조립하면서도 컴퓨터는 전혀 사용할 줄 모른다. 반면, 신문과 텔레비전을 뛰어넘은 광고는 인터넷을 점령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영화와 스포츠, 병원과 학교, 심지어 화장실까지 침투했다. 하루라도 광고를 보고나 듣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장소와 시간을 소비자는 찾기 어렵다. 싫든 좋든, 의식하던 하지 않던, 시민들은 광고의 노예가 되었다. 부지불식간에 광고가 지시하는 대로 먹고 입고 행동한다. 적지 않은 돈을 내면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출처를 밝힌 나오미 클라인의 《슈퍼 브랜드의 불편한 진실》은 내용이 방대하다. 브랜드를 앞세우는 착취로 세계에서 거액을 빨아들이는데 가장 적극적인 나이키가 호된 질책을 받지만 나이키만이 아니다. IBM도 스타벅스도 예외가 아니다. 놀랍게도 나오미 클라인은 세계적인 자연 화장품의 브랜드인 ‘더바디샵’도 그냥 두지 않았다. 속임수와 같은 광고 슬로건으로 치부하면서 그로 인한 부작용에 눈을 질끈 감지 않던가. 10년 전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이야기라서 그런가. 삼성, 현대, 기아와 같은 브랜드는 공격하지 않지만 우리나라에 뿌리를 둔 다국적기업이라고 예외일 리 없을 것이다.

 

시간과 장소를 석권해나가는 브랜드를 조명하고 소비자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게 만든 브랜드의 폭력을 가차 없이 조명하는 나오미 클라인은 그로 인해 파괴되는 환경과 인성을 추적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드디어 분노한 민중의 행동을 정력적으로 독자에게 알린다. ‘기호학적 로빈후디즘’으로 ‘광고 비틀기’를 시작했다는 거다. 알래스카에 막대한 기름 유출 사고를 낸 엑손 사의 광고를 “재수 없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뉴 엑손!”으로 패러디했다는 게 아닌가. 각성한 소비자의 행동이 이어졌다는 걸 아울러 전한다. 평범한 영국인 두 명이 맥도널드 사와 벌인 쟁송, 네슬레를 향한 소비자들의 불매운동, 유럽과 미국에서 활발하게 진행된 거리 되찾기 운동도 브랜드에 속을 것을 강요받는 소비자의 행동들이다.

 

10년 전 내용으로 채워진 《슈퍼 브랜드의 불편한 진실》은 우리 현실에 잘 부합한다. 이른바 ‘명품’에 눈이 먼 사회는 ‘명품 도시’를 추구하고, 같은 맥락으로 ‘국격’ 운운하는 가운데 명품 핸드백을 애나 어른이나 허리와 등에 매달고 다니지 않은가. 오로지 브랜드 가치를 내세우는 일류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외국어 고등학교에 가야하고, 그 고등학교에 가기 위해 국제 중학교에 입학원서를 내는 우리나라의 환경은 대부분 일류대학 출신에 의해 파괴된다. 4대강 사업을 보라. 농어촌 공동체의 파괴는 누가 주선하는가.

 

멕시코 만에 기름을 흘린 BP는 기업 브랜드 가치를 한순간에 잃었다. 그럼에도 BP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는 소비자들은 각성할 필요가 있다. 브랜드를 감시하면서 동시에 사회적 기업을 지지하는 소비자의 행동이다. (우리와다음, 2010년 9-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