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일반·개발

디딤돌 2011. 3. 7. 01:38

 

재작년 겨울인가. 내성천의 눈 덮인 모래밭은 푹신했고 얼음 아래 흐르는 강물은 바닥까지 투명했다. 물살이 빨라 얼음이 없는 가장자리에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엎드린 일행은 뼛속까지 시원한 내성천 강물을 그대로 마셨다. 안동과 문경을 거쳐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내성천은 모래가 있기에 맑을 수 있다. 축산단지와 농공단지에서 스며든 유기물질을 깨끗하게 정화해주기 때문인데, 그래서 그런가. 내성천 물을 그대로 마신 어느 누구도 탈이 나지 않았다.

 

1200킬로미터를 굽이굽이 흐르는 낙동강은 얼마 전까지 어디를 가나 맑은 모래로 가득했다. 예천의 회룡포, 안동 하회마을, 상주의 경천대만이 아니다. 부산의 을숙도까지 드넓은 모래가 아름다웠다. 국토의 65퍼센트가 경사가 급한 산지이고 비가 여름 한철 집중돼도 사시사철 맑은 물을 흘러내릴 수 있는 건 산간의 풍부한 산림과 더불어 강바닥에서 물살을 따라 흐르는 모래다. 빗물을 받은 오래된 화강암이 모래로 부서져 계곡을 타고 중하류에 멈칫멈칫 흐르며 유기물을 정화할 뿐 아니라 갈수기에도 물기를 품어주기 때문이다.

 

막 떨어진 빗물은 떨어진 지점보다 낮은 곳으로 흐르며 작은 물길을 만들고, 물길이 모여 하천을 형성할 텐데, 모든 하천은 굽이쳐 흐른다. 조금이라도 낮은 곳을 구불구불 찾으며 움직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경사가 거의 없는 하류로 접어들면서 더욱 굽어지는 건 지구의 자전과 관련이 있다. 23.5도 기운 상태에서 자전하는 한, 지구의 모든 강물을 굽이치며 바다로 나간다. 계곡에 거대한 바위, 상류에 호박돌, 중류에 자갈과 모래, 그리고 하구에 너른 펄을 남기며 굽이굽이 흐르다 때로 비가 많아 넘치고 때로 바싹 마르기도 한다. 그렇게 수 십 억년을 흘렀다.

 

지구의 얇은 표피에 강이 흐르기에 온갖 생명들이 삶을 영위할 수 있었다. 상류에서 하류로 끊어지지 않는 강은 좌우의 생태계를 이어주는데 그치지 않는다. 지하수와 연결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샘솟아 올라올 뿐 아니라 세월을 이어준다. 홍수와 가뭄은 자연재해가 아니라 강의 생명현상이다. 홍수로 범람할 그 자리에 알을 낳는 물고기가 있고, 그때 그 물고기와 알을 찾아 수많은 생물들이 모여든다. 많은 물고기들은 물이 마르기 전에 알을 낳으려 상류로 오르고, 수많은 동물들도 그때 강가로 몰려들 것이다. 그렇듯 굽이쳐 흐르는 강은 생명의 축제를 만끽하게 시공간을 하염없이 이어주었다.

 

물살을 따라 하류로 떠밀려 내려가는 모래는 석영, 장석, 운모로 형성돼 있다. 화강암의 주요 성분이 그렇기 때문인데, 단단한 석영과 장석과 달리 시간이 지나면서 달아 사라지는 운모는 미생물에게 공간을 내준다. 물살을 따라 움직이며 산소를 공급받는 모래 속의 미생물은 물속의 유기물을 영양분 삼아 번식할 테고 플랑크톤과 작은 동식물의 먹이가 될 것이다. 많은 물고기들은 모래를 파고 알을 낳은 뒤 모래로 덮는다. 알도 보호하지만 깨어난 치어는 모래 속에서 먹이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강에 모래가 사라지면 강은 자신의 오랜 생명력을 잃고 만다. 지금 ‘4대강 사업이 그럴 수밖에 없다.

 

댐과 보는 강물의 흐름을 차단한다. 주변 농경지에 물을 공급하려는 농사용 보도 마찬가지지만 농사용 보는 담는 물이 그리 많지 않아 강물은 언제나 넘쳐흐른다. 낙동강에 8군데, 한강과 금강에 3군데, 그리고 영산강 2군데를 막는 4대강의 16개 보는 규모가 대단하다. 세계 댐학회에서 대형 댐으로 분류할 정도다. 평균 수심 6미터의 물을 담아놓는 낙동강의 보는 10미터 이상의 높이를 자랑한다. 그러면 모래는 흐르지 못하고 쌓인다. 모래 속의 미생물은 제대로 생장하지 못할 테니 물은 정화되지 못한다. 많은 생물들이 순환하던 생태계는 그만 무너지고 말 것이다.

 

정부는 4대강 사업을 살리기로 치장한다. 물과 모래의 흐름을 차단하는데 어떻게 살리기가 될 수 있을까. 상류에서 하류의 영구했던 흐름을 차단하는데 그치는 게 아니다. 좌우의 연결을 차단하고 지하수위 변화시킨다. 어디는 마르게 어디는 넘치게 해 혼란스럽게 만들고 강물의 변화에 생애주기를 맞추던 생태계는 그 순간 종말을 고하고 말 것이다. 그런데 살리기란다. 아마 생태계나 강에 자신의 생명을 의탁해야 하는 후손의 생명은 살리려는 대상이 아닐 것이다. 강에 초대형 보를 막고, 강바닥의 모래를 6미터 깊이로 파내면서 막대한 수익을 창출할 기업, 그런 기업과 연관된 정치권은 흥하겠지.

 

올해 안에 마무리하겠다고 호언하는 4대강 사업은 강바닥에서 파낸 모래를 강변과 가까운 농경지에 쌓았다. 아마 그 자리에 나무와 심거나 잔디를 깔겠지. 그러고서 환경이 좋아졌다고, 살아났다고 마냥 아우성치겠지. 하지만 강물은 돌이킬 수 없게 더러워질 것이다. 그냥 떠 마실 수 있던 강물을 화학처리해서 마셔야 할 것이다. 항구도시를 꿈꾸라고 청와대가 귀띔했다던 대구로 부산에서 화물선이 오고간다면? 그 물을 어찌 마실 것인가. 화학약품은 점점 더 늘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굽이굽이 흐르는 모래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푸른생협, 2011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