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일반·개발

디딤돌 2013. 1. 26. 14:29

 

하얀 눈으로 덮인 가로. 미끄럽다. 장갑 낀 손을 호주머니에 넣고 조심조심 걷는 바로 그 길은 얼마 전에 낙엽이 뒹굴었다. 그 낙엽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바람만 불면 우수수 떨어져 뒹굴며 쌓이던 낙엽이 가로에서 말끔히 사라진 건, 구청 환경미화원의 노고 덕분이겠지. 그들에게 이 겨울은 휴식 시간인가. 쌓인 눈을 치우는 환경미화원은 눈에 띄지 않는다.


도시의 가로를 덮은 낙엽은 종류가 많지 않아도 제법 다양하다. 잎이 넓은 플라타너스 낙엽은 운치를 자아내지만 쓸어 담는데 무거울 거 같고, 시도 때도 없이 떨어지는 벚나무와 느티나무 낙엽은 지겨울 것 같다. 역시 잠깐 고되긴 해도 한꺼번에 떨어지는 은행나무의 노란 낙엽이 치우기 편하지 않을까? 가장 귀찮은 건 아파트단지에서 가로로 떨어진 일본잎갈나무의 낙엽일지 모른다. 양도 많지만 쓸어 담기 어렵게 작고 뾰족하다. 가로의 낙엽 한 장 치우지 않은 처지에 괜한 지청구인가.


새벽에 쌓인 눈은 인파에 밟혀 반질반질하다. 삼한사온을 몰아낸 한파는 가로를 얼어 붙여 직립보행을 위협하는데, 연탄재가 사라진 거리에 낙엽이 남았다면 어땠을까. 지나친 육식과 가공식품이 악화시키는 골다공증은 직립보행의 치명적 단점을 부추긴다. 손을 짚고 미끄러지다 골절상을 입는 건데, 노인은 더욱 위험하다. 고관절이라도 끊어지면 치명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의사가 경고하는데, 낙엽 위에 눈이 쌓았다면 완충효과가 있을까. 가로의 낙엽을 그대로 둘 걸 그랬다는 뜻은 아니다. 낙엽들이 모두 어디로 갔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커다란 마대에 담긴 낙엽의 일부는 남이섬으로 갔다. 낙엽 풀장에 담겨 관광객들이 가을의 운치를 만끽하는데 도움을 주었다는데, 서울시 가로 낙엽의 극히 일부일 뿐이다. 나머지는 구청 환경미화원의 손을 거쳐 어디론가 사라졌다. 인천시는 대부분 시립 양묘장으로 보낸다고 들었다. 양묘장? 묘목을 키우는 곳? 장차 가로수가 될 나무를 키워내는 기관에서 퇴비를 만든다는 건데, 가로수 낙엽이 썩어 가로수의 양분이 된다니 다행이긴 하다. 그나마 자연스러운 일인데, 잘 썩을까.


갈무리 계절을 이은 겨울은 마냥 쉬는 계절이 아니다. 잎을 잃고 앙상해진 가지마다 잎눈과 꽃눈을 성숙시키고 낙엽은 썩는다. 혹한이 몰아쳐도 바싹 마른 낙엽이 모여 썩으며 열기를 내뿜는다면 나무뿌리는 냉해를 입지 않겠지만 낙엽을 잃은 가로수는 이 겨울, 오들오들 떨어야 한다. 지난 가을 책갈피로 거듭난 극히 일부를 제외한 낙엽은 이 시간 양묘장에서 퇴비로 변하고 있을 텐데, 미생물이 제대로 번성하려는지 궁금하다. 날씨가 추워서가 아니다. 구청에서 뿌린 살충제가 여전히 묻어 있다면 미생물이 낙엽에 접근하지 못할 수 있다.


밥이 똥이 되고 똥이 또 밥이 되던 시절, 가족이 먹은 농작물에 식구의 똥오줌을 거름으로 주었을 때, 하늘은 맑았고 땅은 기름졌다. 그뿐인가. 이웃은 따뜻했다. 하지만 양변기가 똥오줌을 빼앗아가면서 땅과 하늘은 화학물질로 오염되고 말았다. 거름 대신 화학비료와 제초제와 살충제 세례를 받은 땅은 많은 수확을 내놓지만 땅을 황폐하게 했다. 이웃과 나누던 농작물이 상품으로 전락하면서 먹는 이는 건강을 잃었다. 화학물질로 오염된 농산물은 첨가물로 맛을 내며 가공했고, 그런 음식을 먹은 사람의 똥오줌에 파리는 달라붙지 않는다.


양묘장에서 썩은 퇴비가 가로수 거름이 되면 좋겠지만 양이 충분하지 않다. 자동차 매연과 살충제에 찌든 낙엽으로 모자라므로 가로수를 관리하는 구청은 다른 거름을 보탠다. 음식쓰레기를 발효시킨 유기질 퇴비를 섞는데, 진한 소금기와 식품첨가물이 뒤섞인 음식쓰레기도 발효가 어렵다. 그래서 그런가, 봄철 가로수와 그 주변의 녹지에 뿌리는 검은 색 유기질비료는 가까이 가기 꺼리게 만드는 냄새가 난다. 충분히 썩으며 발효되었다면 그런 냄새는 나지 않을 것 같다.


음식쓰레기 대신 축산분뇨를 유기질비료로 만들어 뿌리기도 하는데, 대부분의 축산분뇨는 유기질비료의 원료로 마땅치 않다. 유전자를 조작한 농산물을 먹인 축사와 양계장에서 나오지 않았던가. 오랜 세월 유기농산물 보급운동에 나선 한 농부는 요즘 대형 축사에서 나온 비료는 유기질이 아니라고 단정한다. 화학비료와 제초제와 살충제를 뿌린 농작물은 미생물에서 사람까지 온갖 생물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던 흐름을 차단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살충제가 묻은 낙엽도 유기질 비료로 변할 수 없다. 나뭇잎을 갉아먹는 애벌레가 있어야 새가 날아들지 않은가. 애벌레를 먹은 새똥은 훌륭한 거름이지만, 요즘 가로에 새와 애벌레는 아주 드물다.


낙엽을 걷어가지 않고 가로수 아래 모아두면 어떻게 될까. 바람에 흩어져 가로를 지저분하게 만들까? 가로수에 살충제를 뿌리지 않으면 애벌레가 생겨 민원이 쏟아질까? 살충제를 뿌리면 애벌레는 금방 내성을 갖추게 되고, 시간이 지나면서 구청은 더 강력한 살충제로 바꿔야 한다. 독성을 강화한 살충제는 애벌레만 죽이고 새들의 접근을 차단하는 게 아니다. 끈적끈적한 액체에 섞어서 뿌리는 살충제는 지나가는 사람들의 피부에 떨어지거나 호흡기로 파고든다. 아장아장 걷는 아기 때부터 아토피에 고통 받는 이유는 가로와 그리 멀지 않다.


미관을 생각해야 하는 도시에서 낙엽을 치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애벌레가 사람을 더 싫어할 게 틀림없어도 애벌레에 놀라는 사람들이 아우성치는 민원은 가로수에 살충제를 뿌리게 만들 것이다. 그렇더라도 살충제는 삼가는 게 바람직하다. 애벌레가 생기면 새들이 찾아온다. 가로와 가로에 이어진 근린공원에 새들이 모이면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는 시민들의 정서는 너그로워지며 자연에 대한 배려를 배운다. 새들이 애벌레를 줄이면서 가로수는 건강해지고 양묘장으로 모이는 낙엽은 훌륭한 유기질 비료로 활용될 수 있다.


     한 어린이는 어둠이 비키면 내일이 온다.”고 했는데, 봄은 눈이 녹으면 틀림없이 온다. 편안한 휴식이 건강한 내일을 이어주듯, 겨울이 아무리 추워도 내일을 제대로 준비할 수 있다면 봄은 건강하게 출발할 것이다. 낙엽 대신 쌓인 눈이 반질반질 행인의 발걸음을 조심스럽게 만들지만 눈이 질척질척 녹으면서 봄은 다시 찾을 것이다. 가을철 낙엽이 겨우내 썩어 봄에 뿌려지듯, 그물코처럼 이어진 삼라만상은 건강하게 연결되어야 한다. (작은책, 20132월호)

디딤돌님~^^안녕하세요^^!!
에코볼루션입니다!
좋은정보 보고갑니다~!!
많이 춥습니다. 감기 조심하시구
유익한 정보 공유해요~

 
 
 

도시·인천

디딤돌 2008. 11. 24. 10:36

 

기상관측 이래 가장 뜨거웠던 가을이 잠시 선선해지더니 한겨울 추위가 느닷없이 모습을 드려냈다. 가을비가 추적추적, 주말의 낮 시간을 촉촉이 적시곤 겨울이 성큼 다가온 거다. 포플러의 넓은 낙엽이 발길에 채이던 보행자도로는 수북하던 낙엽을 차분히 내려앉혔다. 낙엽들이 빗물을 머금은 거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자 역할 마친 잎사귀를 일제히 털어낸 가로수들은 파란 하늘 아래 더욱 앙상해 출근길을 서두르는 인파의 외투를 바싹 당기게 한다. 마침 거세게 분 바람도 한몫했을 텐데, 내린 비에 비해 바람이 거세었는지 오후가 되자 낙엽들은 다시 바스락거린다. 잎사귀 하나 남기지 않은 은행나무 아래의 도로는 노랗게 물들어, 오가는 이의 발길을 푹신하게 한다.

 

가을을 맞은 시민들은 모처럼 도시에서 낭만에 젖는다. 주말이면 햇살이 따사로운 거리에서 가족과 연인들이 낙엽을 끼얹으며 사진 찍기에 즐겁고, 따라 나온 강아지는 줄이 짧다며 덩달아 흥겹다. 하지만 낙엽은 곧 치워질 것이다. 일부러 방치했던 서울시 종로구 일부와 덕수궁 돌담길도 마냥 놔둘 수 없다. 인파의 구두 굽에 밟혀 부셔진 낙엽은 행인의 옷깃을 더럽혀 민원을 발생시키지만 가을비로 추레해진 낙엽은 낭만에 방해가 될 거고, 무엇보다 미화원들이 가만히 두지 않을 게 틀림없다. 눈이라도 내리면 낙엽 치우는 일은 홀로 감당할 수 없을 테니.

 

가을이 뜨거웠던 만큼, 올해 가로수들은 언제 잎사귀를 떨어내야할지 종잡지 못했을지 모른다. 한꺼번에 떨어진 낙엽에 푸른색이 남은 걸 보면. 엽록체를 가장 많이 남긴 가로수는 은행나무로 보인다. 자동차와 보행자도로 사이의 경계를 푹신하게 덮은 낙엽들은 전처럼 샛노랗지 않았다. 역시 기후변화 때문인가. 얼마나 많은 보행자들이 파란 기운을 남긴 낙엽을 보며 걱정할지 여부와 아무 관계없이 낙엽은 부대에 담겨 어디론가 사라질 텐데, 대체 어디로 가는 걸까. 가로수만이 녹색이던 이 도시에서 낙엽은 상당한 양인데.

 

부지런한 미화원의 손길로 도로 구석에 쌓인 부대에 벌써부터 꽉 들어찬 낙엽들은 가로수를 보급하는 시립 양묘장으로 가려는가. 거기에서 1년 이상 푹 썩으면 새로 심는 가로수를 튼실하게 키울 퇴비로 모습을 바꿀 수 있을 텐데, 모든 낙엽이 양묘장으로 가지 못할지 모른다. 남은 낙엽은 부대 째 소각장 아궁이로 들어가는 건 아닐까. 사실 많은 자치단체는 대부분의 낙엽을 태운다. 생활쓰레기만 받는 소각장에서 거부하는 까닭에 1톤의 낙엽을 별도의 시설에서 태우는데 대략 20만원이 들어간다고 한다. 숲을 가꿀 자원을 태워 온난화를 부추기는 꼴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양질의 퇴비로 숙성시키려면 낙엽의 상태가 좋아야 한다. 그런데 도시 가로수의 낙엽은 질이 떨어진다. 인파에 밟혔기 때문이 아니다. 크고 작은 건축물과 공장, 그리고 자동차에서 뿜어지는 배출가스에 오염되었지만 문제는 낙엽 사이에 쓰레기가 많다는 점이다. 담배꽁초는 기본이고 썩지 않는 과자봉지를 포함해 온갖 깡통들이 뒤섞어 기껏 만든 퇴비를 부어도 나무와 농작물의 뿌리가 뻗지 못한다는 게 아닌가. 낙엽에 묻힌 쓰레기를 분리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아 자치단체들이 퇴비화를 망설이게 된다고 언론은 아쉬워한다.

 

해결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다. 낙엽 수거 미화원의 이름을 부대에 적어 쓰레기 분리를 유도하자 퇴비화를 위해 낙엽을 요구하는 농촌이 늘어나 예산을 절감했다는 자치단체도 있다. 그 경우 절감된 예산을 담당 미화원에게 분배할 수 있을 것이다. 숲이 있는 학교로 낙엽을 보내는 자치단체도 있다고 한다. 퇴비 만드는 교육을 위한 것으로 학교 숲의 긍정적인 측면이 새롭게 부각되는 셈이다. 노인의 취로사업과 별도로 학생의 자원봉사로 보행자도로에서 쓰레기를 분리해도 좋을 것 같다. 학생들은 자신이 버리는 쓰레기의 문제를 새삼 느낄 테니까.

 

낙엽을 태우지 말아야할 이유는 더 있다. 끈적거리던 살충제가 가뭄 때문에 충분히 씻기지 않아 태우는 사람의 폐로 들어갈지 모른다는 거다. 잠시 낭만을 베풀어준 도시의 낙엽은 아무래도 소각보다 퇴비화가 옳겠다. (인천e뉴스, 2008년 11월 25일)

 
 
 

환경일반·개발

디딤돌 2008. 11. 9. 15:26

 

이른 아침. 파란 하늘을 바라보며 낙엽 쌓인 길을 걷는다. 완연한 가을이다. 어젯밤 찬바람에 떨어진 바싹 마른 낙엽들이 발길에 밟힌다. 바람에 휩쓸린 낙엽은 길 한쪽으로 모이고, 밟을 때 푹신함을 전한다. 아파트단지 사이의 하늘은 공활하지 않지만 높고 구름 없다. 모처럼 심호흡을 해보고 싶어진다.

 

발길에 바스락거리는 낙엽은 왕복 10차선 아스팔트도로와 그 양 옆의 보행자도로 사이에 심어놓은 가로수에서 떨어졌고, 출근인파가 분주하지 않은 지금도 연실 떨어진다. 한여름 수고해 누렇게 변한 잎사귀를 떨어뜨리는 가로수의 가지들이 파란 하늘아래 벌써부터 쓸쓸하다. 곧 겨울이 성큼 다가올 것이다. 겨울을 준비하는 가로수는 잎을 떨어뜨리고, 그 아래를 종종 걷는 사람들은 두툼한 옷을 걸쳤다.

 

다시 하늘을 본다. 높고 구름 없는 하늘 가운데는 과연 파랗다. 심호흡을 할만하다. 하지만 눈길을 돌려 앞쪽 먼 하늘을 보니 가슴이 갑갑해진다. 구름 한 점 없이 분명히 맑은 날이건만 가장자리 하늘은 붉으죽죽하다. 대기의 밀도가 진하게 드러나는 하늘 가장자리가 붉으죽죽한 우리의 도시에서 얼마 전에 다녀온 독일 공업지대의 파란 하늘이 생각난다. 우리의 가장자리 하늘도 언제나 파랬던 멀지 않은 시절, 그들의 하늘은 언제나 누랬건만 지금은 아니다. 우리의 하늘이 유럽으로 옮겨간 모양이다.

 

아침에 소복한 낙엽은 저녁이면 부지런한 미화원의 빗자루로 커다란 자루에 들어간 뒤 길 한 컨에 수북이 쌓일 것이다. 자루에 담긴 낙엽은 어디로 갈까. 시립 양묘장으로 옮겨져 퇴비로 활용된다면 다행인데 쓰레기소각장으로 직행하는 건 아닐까. 서울시는 겨울이 다가오기 전까지 쌓이도록 놔둔다고 하던데, 우리도 그냥 두면 어떨까. 지난 주말 오후, 떨어진 낙엽을 한 움큼 집어 던지며 사진 찍는 연인들로 북적이는 덕수궁 돌담길을 흐뭇하게 지났는데, 회색도시에서 삭막해진 시민들이 잠시나마 가을정취에 취하게 배려할 수 없을까.

 

바쁜 도시인들의 구두에 밟혀 잘게 부셔진 낙엽은 바람이 불면 옷깃을 더럽히지만 문제는 가을비다. 가을비에 젖은 낙엽은 추레해져 도시의 미관을 해친다. 빗자루에 잘 쓸리지도 않는다. 그래서 미화원들은 낙엽을 서둘러 치우고 싶을 수 있겠다. 문득, “내년 이맘때까지 낙엽을 그대로 두면 어떻게 될까?” 생각해본다. 사람도 다니지 않는다면 길은 떨어진 낙엽으로 완전히 뒤덮이겠지? 비와 눈을 맞으며 쌓인 낙엽 사이로 새 풀이 돋겠지? 아예 사람이 사라진다면 보도블록 사이로 작은 풀이 비집고 나온 이 길은 어떻게 변할까?

 

얼마 전, 우리 비무장지대를 방문한 앨런 와이즈먼은 《인간 없는 세상》(랜덤하우스 2008)에서 사람이 갑자기 사라지면 지구는 어떻게 변할지 상상했다. 50년 동안 인간의 출입이 차단되자 두루미가 날아든 비무장지대가 한국의 게티즈버그와 요세미티를 합친 자연생태계로 거듭나기를 희망하면서 인간이 사라진 뒤의 지구를 묵시론적으로 예측했다. 이틀이 지나자마자 지하철에 물이 가득해지고 일주일 후 핵발전소의 냉각수 순환모터가 정지되리라 추정하면서, 1년 후 고압전선에 부딪혀 희생되던 10억 마리의 새들이 살기 좋아지며 100년 후 더는 상아를 잃을 일 없는 코끼리가 20배 이상 늘어나겠지만 너구리와 여우는 야생화된 고양이에 의해 밀려날 것으로 짐작한다.

 

300년 후 댐이 무너지고 1000년 후 인간의 구조물 중 영불해협만이 남을 것이라고 보는 앨런 와이즈먼은 10만 년 후 이산화탄소가 인류 이전으로 돌아가고 수백만 년 후 플라스틱을 분해하는 미생물이 진화할 것이며 30억 년 후 상상이 불가능한 갖가지 생물체가 번성할 지구는 50억 년 후 태양과 더불어 불타버릴 것이라 예상한다. 그래도 인간이 남긴 라디오와 텔레비전 전파는 영원히 외계를 떠돌아다닐 것으로 예상하는데, 우울하지만 인간은 그 장면을 볼 수 없다. 그렇다면 사람이 사라진 뒤, 낙엽이 더욱 푹신할 이 거리는 누가 어떻게 차지해나갈까? 낙엽 속의 톡톡이와 거미를 먹으러 도롱뇽과 두더지가 돌아다니고 뱀을 노리는 올빼미와 족제비가 삵과 경쟁하는 동식물의 터전, 바로 아스팔트와 보행자도로가 생기기 이전처럼 회복되려나.

 

가운데 하늘이 파란 오늘, 가장자리 하늘도 파랗던 시절을 생각하며 바삐 지하철로 걸어 들어간다. 그런 생각에 젖어 더 걸으면 약속시간에 늦는다. (인천e뉴스, 2008년 11월 ?일)

인간없는 세상의 지구를 상상한것이 참 흥미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