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11. 6. 21. 02:08

 

요즘은 아침저녁으로 걸어도 덥다. 가로수는 저마다 잎사귀를 활짝 펼쳐 그늘을 만들어주지만 소음이 가득한 아스팔트 옆을 한낮에 걷는 건 아무래도 고역이다. 본격적인 휴가철은 멀었고, 주말을 이용해 식구와 가까운 자연을 찾으려 해도 어디 갈 데가 없다.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뒤덮인 도시는 철두철미하게 자연을 잃었다.

 

1991LA폭동이 발생했을 때, 거리의 소년은 텔레비전 카메라 앞에서 자신의 재주를 과시했다. 소리만 듣고 어떤 권총인지 구별할 수 있노라고. 그 말을 들은 한 자연주의자는 그 나이의 소년이라면 소리만 듣고 어떤 새가 우는지 구별할 수 있어야 하는 게 아니냐며 개탄했다는데, 그이는 수업을 빼서라도 아이 손잡고 자연을 누벼보라고 부모에게 권한다. 우리 도시의 소년들은 어떨까. 소리만 듣고 어떤 새나 개구리가 우는지 알 리 만무하고, 어떤 가수가 마이크를 잡았는지, 어떤 종류의 컴퓨터 게임인지 구별하겠나. 그럴지 모르는데, 분명한 것은 우리 아이들도 시방 자연을 모른다.

 

옛 시민회관 자리에서 주안역에 이르기까지 논이었고, 주안역 너머는 너른 염전이었다는 거, 기억하는 시민은 드물다. 주안에서 반세기 이상 살아오는 이도 어느새 주택과 상가와 공장으로 뒤덮인 모습이 눈에 익었을 게다. 옛 시민회관 자리의 논은 천수답이었고, 그러니 주위에 물웅덩이가 많았는데, 물웅덩이마다 납자루와 버들붕어가 떼를 지어 움직였고, 이맘때 논두렁을 뒤지면 막걸리 담아오던 주전자에 하나 가득 미꾸라지를 잡을 수 있었고, 운 좋으면 가물치도 구경할 수 있었다는 거, 기억하는 이는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 기억은 아련해졌을 뿐, 자식에게 조금도 물려주지 못했다.

 

자연을 잃은 시민은 난민이다.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칠갑이 된 도시에서 바삐 돌아다니며 부딪히는 얼굴은 하나같이 낯설고 눈 마주하기 두렵다. 가로수가 짬짜미 그늘을 드리우는 보행자도로는 물론이고 몇 년을 사는 아파트단지도 마찬가지다. 뿌리를 잃은 시민들은 이웃 사이에도 서로 의심할 뿐, 흔쾌히 마음 나누지 못한다. 새벽부터 오밤중까지 놀토마저 없이 입시공부에 매달리는 이 도시의 청소년에게 친구는 곧 경쟁자요 적이다. 혹독한 경쟁사회에서 남을 배려했다가 뒤처지는 자신을 발견할 수밖에 없노라고 부모와 교사에게 주의를 들어야 한다. 대학에 들어가도, 어렵사리 직장에 들어가도, 결혼해 아이를 낳아도 마찬가지다.

 

자연에서 생물을 마주하면 삭막하기만 하던 도시인은 비로소 마음을 놓는다. 휘파람을 불면 다가오는 곤줄박이에게 땅콩을 주며 스스로 훈훈해진다. 3년 전 가을, 송도신도시 앞의 갯벌에서 생전처음 철새들을 구조했던 청소년들은 모처럼 자연에 대한 동정심을 경험했다. 하늘에서 내려앉았다 둥둥 떠다니는 구더기를 허겁지겁 먹고 보툴리즘 균에 맥없이 감염돼 먼저 내린 철새처럼 구더기를 내놓으며 연실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훠이훠이 소리 지르며 눈물겨워했던 거다. 그들은 살충제 젖은 공원에서 비틀거리는 직박구리 새끼를 보고 애달파하고, 평균을 낮췄다다는 이유로 꾸지람을 듣는 친구를 위로할 것이다. 제 삶에 뿌리가 있다는 걸 조금씩 인식할 것이다.

 

논밭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고 드넓었던 갯벌마저 초승달처럼 사라진 인천에서 청소년은 자연을 느끼기 어렵다. 하필 지저분한 남동산업단지 유수지에 둥지를 친 저어새는 송도11공구까지 사라지면 다신 찾지 않을 테고, 강화도 주변의 바다를 조력발전을 위한 제방으로 둘러막으면 하루 두 차례 거대한 쓰나미처럼 밀고드는 바닷물로 갯벌은 휩쓸리고 말 것이다. 4대강 사업으로 모래가 보충되지 않는 인천 앞바다에서 지금처럼 해사를 퍼내면 인천의 자랑인 풀등은 슬금슬금 사라질 게 틀림없다. 제 지역의 자연에 대한 기억을 잃는 시민들은 뿌리를 잃을 게고, 난민이 될 수밖에 없다.

 

이웃에게 범죄를 저지르지 않으면 다행일 뿐, 난민에게 지역에 대한 애틋함을 기대할 수 없다. 자연을 잃은 현대인 총체적으로 그렇다. 그들은 제 삶터를 스스로 파괴하면서 불안해하지 않는다. 후손의 내일을 걱정하지 않는다. 디아스포라. 고향을 잃은 난민이다. (기호일보, 2011.7.1)

신기촌 흙길을 걸을때도 좋았고 문학산에 걸어서 소풍갔던 시절...
지금 내마음의 뿌리였던 흙길....이제는 돈주 걸어야 직성이 풀리는 부모가 되지 않으려 아둥바둥.....
글을 읽으면서 고향생각 추억에 빠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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