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09. 6. 11. 23:43

 

서울시 종로에는 ‘피맛골’이라 말하는 골목이 길게 이어진다. 아니, 길게 이어졌다. 조선 시대의 역사를 기억하는 아주 오랜 골목으로, 양반네들이 말을 타고 지날 때마다 고개를 조아리기 싫거나 귀찮은 백성들이 말을 피해 다녔다는 의미를 담은 피맛골에는 부담 없는 비용으로 밥 먹고 술잔 기울이려는 시민들이 즐겨 찾곤 했다. 이제 피맛골은 일대를 차지하려는 거대한 건물에 밀려 역사 너머로 사라지려고 한다. 어떤 건물은 1층 홀에 ‘피맛골’로 이름붙인 식당가를 단장하기도 했다. 역사와 문화보다 피맛골의 단골손님을 대신 보전하고 싶었으리라.

 

피맛골엔 구운 고등어와 조기와 생선과 꽁치가 손님상에 올라가는 식당이 서너 군데 있었다. 그 중 도톰한 몸통의 한가운데를 잘라 1인분으로 머리나 꼬리 부위를 내놓는 삼치가 별미였는데 언젠가부터 삼치구이 주문하기가 민망했다. 태어난 지 1년도 안 돼, 알조차 낳은 적 없는 어린 생선이라는 걸 알고 나서였다. 어린 만큼 고기가 부드럽다지만 좀 지나쳤다. 참치처럼 냉동과 해동을 잘 하면 덩치가 큰 삼치도 얼마든지 부드럽게 요리할 수 있을 테니 지금보다 훨씬 성긴 그물코로 잡아도 되기 때문이다. 다만 그런 시설을 갖추려면 비용이 다소 늘어날 거고, 벌이가 줄겠지만 식당마다 내놓는 생선의 양을 줄이면 밥값은 올리지 않아도 될 텐데.

 

군사정권의 서슬이 시퍼렇던 1980년대, 주머니가 허약한 대학생이 즐겨 찾던 삼치집이 동인천역에서 자유공원으로 이어지는 골목에 있었다. 가끔 들리는 운동권 학생을 잡으려 형사들도 기웃거렸던 그 집은 석쇠에 삼치를 한 뼘 가깝게 펼쳐 구웠는데, 장정 서넛이 거뜬히 먹을 만했다. 단단한 뼈를 골라내야하는 번거로움은 술기운을 조절하는 기회로 활용할 수 있었는데, 형사가 기웃거릴 때마다 운동권 학생들을 숨겨주었다는 그 삼치집 아주머니는 1인당 소주는 한 병, 막걸리는 한 되 이상을 팔지 않는 신조를 지켰다. 술에 취해 흐느적거리는 손님은 절대 받지 않았던 그 집, 아직 자리를 지키고 있으니 다시 찾고 싶지만 어린 삼치를 보게 될까 두려워 선뜻 발이 가지 않는다.

 

우주센터로 갑자기 유명해진 나로도는 예전에 나라의 말을 키웠던 섬이다. 그래서 ‘나라의 섬’으로 불렀다던 나로도는 얼마 전까지 삼치로 유명했다. 잡힌 삼치를 모두 일본으로 수출하던 시절, 개도 만원 지폐를 물고 다녔다고 너스레떠는 주민들은 1년생보다 2년이 지나 몸이 50에서 70센티미터로 자란 삼치가 가장 맛이 좋고 잡자마자 얼음에 재운 회가 특히 일품이라고 입에 거품을 문다. 그런 삼치는 나로도에 가야 얻어먹을 수 있으리라. 삼치란 생선은 그물은 물론이고 낚시로 끌어올려도 올라오자마자 죽으니 육지로 살려 보낼 수 없는 까닭이다. 일본에 수출하던 삼치가 1980년 이후 동인천역과 피맛골의 생선구이 식당에 선보인 건 아무래도 냉동기술 덕분일 테지.

 

그런데 아닌가. 요즘 웬만한 횟집 출입구 양편의 수족관에는 삼치가 느긋하게 살아 숨 쉰다. 바닷물 째 떠서 잡아왔을 리 없는데, 어떻게 살려온 걸까. 물속에 부지런히 공기를 불어넣는 걸로 부족할 테고 적지 않은 항생제를 투입했을 텐데 그 수족관에 삼치만 살아있는 건 아니다. 농어와 광어, 우럭과 숭어도 섞여 아가미를 맥없이 여닫는데 하나 같이 동작이 둔하고 눈매에 생기가 없다. 수족관에 얼마나 오래 갇혀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그 동안 먹이는 구경할 수 없었을 게다. 사람과 건물로 둘러싸인 도시에 고스란히 노출돼 겁에 질린 채 굶주리며 항생제 때문에 죽지 못해 살아가는 물고기들. 과연 신선할까.

 

억지로 살려 도시의 수족관으로 옮겨지는 생선은 삼치뿐이 아니다.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오게 만든다는 전어도 가을이 되면 도시의 수족관마다 북적이는데 반은 뒤집혀 있다. 차고 깨끗한 물을 재아무리 빨리 순환시켜도 넓은 바다에서 마음껏 유영하던 물고기에게 좁디좁은 수족관은 지옥일 게 뻔한데, 굳이 ‘활어회’를 위한 수족관을 고집해야 할까. 억지로 살린 생선보다 잘 얼린 생선이 더 신선하지 않을까. 생선회의 상태에 매우 민감해 하는 일본은 우리와 달리 잘 얼렸다 녹인 생선의 ‘선어회’가 압도적으로 많다. 높아지는 항생제 내성을 걱정하는 우리도 선어회로 취향을 바꾸면 어떨까.

 

활어회냐 선어회냐에 대한 논의는 오로지 사람의 취향이 기준이다. 입맛이나 안전성이 잣대가 되겠지만 해양 생태 자원의 보전을 생각하자면 지나치게 어린 물고기를 남획하는 어업은 규제할 필요가 있다. 조기처럼, 우리 앞바다에서 삼치마저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1960년대에 만해도 인천시민들이 지겨워했던 갈치는 요즘 제주도 바다에서 잡아오는데, 머지않아 차례상에 올라가는 조기처럼 원양에서 잡게 되는 건 아닐까. 지금도 큼직한 갈치는 대개 원양에서 잡는다. 삼치는 아직 나로도에서 잡지만 예전 같지 않다. 우주센터로 사람들의 관심이 바뀐 나로도를 언제까지 지켜줄지, 삼치는 내일을 기약할 수 없다. 절대 씨앗을 먹지 않던 농부들이 기업에서 씨앗을 사는 시대가 되었다. 이제 어부까지 어린 생선을 싹 쓸어 잡는데, 문제는 위성으로 어군을 탐지하는 대형 선단이다. 그들의 남획은 내일의 바다를 텅 비게 만들지 모른다.

 

우리나라 문어통발은 얼마나 크기에 밍크고래가 걸려드는 들까. 새우통발과 까나리 그물도 심심치 않게 밍크고래와 향고래를 걸려들게 한다니 고래 체면이 말이 아니다. 고래잡이는 분명한 불법이다. 하지만 의도하지 않았는데 그물에 걸려든, 이른바 혼획된 고래에 한해 판매가 허용된다. 그래서 혼획된 고래는 로또나 다름없다고 말하는데, 왜 세계에서 우리나라만 유독 혼획 고래가 많은 걸까. 그물이나 통발을 일부러 촘촘하게 설치하는 건 아닐까. 어부들은 고래가 꽁치그물을 터뜨린다고 하소연하지만 고래가 사라진다고 잡히는 꽁치가 늘어나는 건 아니다. 바다의 풍요로움은 고래와 꽁치와 문어와 까나리가 공존할 때 유지된다. 사람은 그 덕분에 그물을 내릴 수 있었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유기농산물 식품매장에 진열된 생선은 유기사료를 먹여 양식한 물고기가 아니다. 유기농산물 시장에는 남획으로 사라질 위기에 놓였거나 지나치게 어린 생선은 제외시킨다. 내일을 생각한 어업을 지원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사료를 주지 않아도 되고 농번기가 필요 없었던 바다의 풍요로움은 현재 위기를 맞고 있다. 근해는 물론이고 연해의 어족자원이 전에 없이 드물어진 요즘, 원양어업마저 시들어들까 걱정이다. (사이언스올, 2009년 6월 ?일)

느티나무집이었던가요? 매일 정해진 양의 삼치만 팔았던 것으로 기억되는데요 ^^*

 
 
 

생태계·동물

디딤돌 2008. 2. 6. 14:45
 

아귀(餓鬼). 굶주리는 벌을 받는 불가(佛家)의 귀신이다.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좋다.”고 했으니 아귀는 피골이 상접했겠다. 하지만 불가의 아귀는 덩치가 크다. 욕심을 먼저 채우고자 악다구니를 쓸 때 사람들은 흔히 ‘아귀다툼’이라고 말한다. 체면이고 뭐고 내팽기고 허겁지겁 먹는 모습을 두고 ‘아귀처럼 먹는다.’고 한다. 그런 아귀가 굶주린다니, 아리송하다.

 

아귀는 우리 바다 밑에도 있다. 몸집도 몸집이지만 입이 가슴까지 벌어질 만큼 큰 녀석은 바다 바닥에 가만히 앉아 제 앞에 얼쩡거리는 물고기는 뭐든지 꿀떡 잡아먹는다. 아귀처럼. 거대한 입을 쫙 벌려 재깍 넘겨버리는 바다의 아귀와 달리 불가의 아귀는 덥석 문 입안의 먹이를 삼키지 못한다고 한다. 덩치는 크지만 목구멍이 가늘고 길어 잘 넘기지 못하는 데다 삼키려 할 때마다 음식이 불로 바뀐다는 거다. 오라! 탐욕스런 권력사회를 더욱 부패하게 만드는 뇌물이 꼭 그랬으면 좋겠다.

 

바다의 아귀는 행동이 그리 민첩하지 않다. 하지만 먹이를 낚아챌 때는 예외다. 그렇다. 아귀는 먹이를 낚아챈다. 두꺼비나 악어처럼 체통 없이 먹이에 슬그머니 다가가지 않는다. 무념무상은 아니어도, 강태공처럼 낚싯대를 드리우고 먹이가 다가오길 기다린다. 물 밖에서 물속으로 미끼를 넣는 강태공 낚시와 달리, 물 속 낚시를 즐기는 아귀는 제 등지느러미를 적극 활용한다. 작은 살덩이처럼 끝이 뭉뚝한 등지느러미 첫 째 가시를 거대한 입 앞에서 살랑살랑 흔들면 배고픈 물고기가 접근할 터. 사정거리에 들어왔다 싶으면 와락 덤벼들어 거대한 위장으로 꿀꺽 삼키는데, 어떤 해양학자는 ‘아구아구’ 먹고 느긋하게 소화시킨다고 표현한다. 그래서 아귀인가?

 

아무튼 그 아귀, 못생기기도 꽤 못생겼다. 그래서 못생긴 물고기의 대명사가 아귀다. 밤새 쳐둔 그물을 걷어올리는 어부는 아귀가 손에 잡히기만 하면, “에이 재수 없어!” 바다로 텀벙 텀벙 버렸다. 그래서 옛날부터 아귀를 ‘물텀벙’이라 불렀다. 경기도와 인천 일원의 이야기다. 펼친 팔보다 짧은 갈치를 시원치 않다며 버렸던 시절, 고인이 된 소설가 이문구가 하룻밤에 6가마니의 꽃게를 잡던 시절의 이야기다. 요즘 아귀는 ‘물텀벙’이 아니다. 중국에서 수입한 물량이라도 마다할 수 없을 만큼, 이 땅의 아귀는 반가운 생선으로 등극했다.

 

때는 겨울. 낡은 고깃배에서 선창가의 어떤 주막으로 들어왔던 생선 사이에 아귀가 있었다. 보자마자 획! 내버린 주모는 며칠 후 겨울 햇살에 꾸덕꾸덕 말라 있는 아귀를 뒤뜰에서 보았고, 마침 안줏거리가 없어 고민하던 차에 “에라 모르겠다.” 주어들고 고추 양념과 갖은 채소로 찜을 요리했다. 발길 돌리려는 손님상에 내놓았더니, 아니! 무슨 이렇게 쫀득쫀득하고 맛있게 매콤한 고기가 있담! 다음날부터 소문을 들은 손님이 줄을 이었고, 아귀찜은 이후 마산의 명물로 자리 잡았다. 마산은 지금도 아귀를 20여 일 말렸다 찐다.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 했던가. 40여 년 전부터 번진 입소문은 마산에서 전국 해안으로 퍼졌고, 이제 아귀찜이 없는 고장이 없을 정도다. 미더덕, 콩나물, 미나리에 대파를 숭숭 썰어 넣고, 고춧가루와 다진 마늘과 생강들이 찹쌀가루와 어우러진 갖은 양념을 버무린 다음, 푹 찌는 아귀찜에서 그치지 않았다. 설설 끓이는 아귀탕도 미식가의 입맛을 사로잡는다. 고등어 한 마리에 174킬로칼로리, 갈치가 142킬로칼로리인데 64킬로칼로리에 불과해 다이어트에 적당한 생선으로 국립수산진흥원이 인정한 아귀는 콜라겐과 비타민 A가 풍부해 피부 건강에도 좋다지 않던가.

 

암초나 해초로 뒤덮인 바다 바닥에 사는 아귀는 몸집이 넓고 납작해도 연한 회색 반점이 커다란 돌처럼 보여 작은 동물의 눈에 쉽사리 구별되지 않는다. 하지만 빗 모양의 이빨을 양턱에 숨긴 포식자다. 더 큰 아래턱을 비죽 내민 아귀는 입과 가슴이 올챙이처럼 거대한데 비해 뒤로 갈수록 급히 좁아지는데 근육도 가슴에 많다. 큰 가슴지느러미를 위아래로 펄럭이며 바닥을 천천히 움직이며 1미터까지 자라는데, 팔뚝만한 놈이 손님의 식탁에 주로 오른다. 우리나라 연근해와 동중국해. 타이완과 일본 연해, 그리고 멀리 아프리카와 멕시코의 태평양 연해에 두루 분포하는데, 서양의 아귀는 예로부터 고급 어종이란다.

 

인천에는 ‘물텀벙이’ 골목이 있다. 아귀라는 한자말보다 물텀벙이 귀에 친근한데, 왜 물텅벙이 아귀보다 알려지지 않았을까. 개발에 눈이 먼 시 당국의 문화의식이 그만큼 낮기 때문이라고 지역 문화단체는 해석하는데, 그럴듯하다. 물텀벙을 찌거나 끓여 탕으로 내놓는 식당이 대여섯 어깨를 붙인 골목을 인천시는 뒤늦게 ‘전통음식 골목’으로 지정했는데, 예약 없이 간다면 오래 기다려야 자리에 앉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혀를 연실 내둘러야 할 만큼 매워 어른의 모임이나 연인에게 알맞은 마산의 아귀와 달리 웬만한 아이들도 엄두를 낼 수 있으니 인천의 물텅벙은 가족에게 인기가 높기 때문일 게다.

 

천적을 모르던 아귀는 요즘 수난이다. 온난화로 바다 바닥의 생태가 바뀌어도 참을만했는데 귀한 생선으로 지위를 일신하면서 발생한 남획이다. 등지느러미를 쳐들고 먹이를 노리는 아귀를 골라 꼬챙이로 휩쓸어가는 잠수부는 무서워도 무자비하지 않았다. 잠수부의 눈을 피한 아귀가 대를 이을 수 있었다. 한데 바닥을 훑는 쌍끌이 저인망은 달랐다. 한번 지나가면 다신 회복되지 않게 바닥의 생태계를 뒤죽박죽으로 파괴하지 않던가. 바다가 개발돼 오염되면서 물고기의 양과 종류가 줄어들자 새삼 각광을 받은 아귀, 차라리 ‘물텀벙’이었을 시절을 그리워하는 건 아닐지.

 

부드럽고 감칠맛 나는 살만 찌거나 석쇠나 팬에 구워 요리하는 서양은 화이트와인으로 찌는 아귀의 간을 최고로 취급한다고 한다. 일본인은 몸무게의 10퍼센트에 달하는 아귀의 간을 회와 곁들이거나 맑은 복어와 아귀 탕에 넣어 끓여 먹는다는데, 그래서 그런지 우리 아귀 요리에는 도무지 간을 찾아볼 수 없다. 잡자마자 떼어 일본으로 수출하는 모양이다. 아귀탕은 간이 결정한다는 말이 무색하게 이 땅의 아귀는 뭍에 오르자마자 자신의 간을 잃는 것이다. 이래저래 이 땅의 아귀는 물텀벙을 꿈꿀지 모른다. (물푸레골에서,2008년 3월호)

아귀~ 아귀 하길래 궁금했는데
많은 도움 받고 갑니다.

 
 
 

생태계·동물

디딤돌 2006. 12. 8. 05:04
 

아침 일찍 개시하는 종로 교보문고를 들어가는 건, 이제 참으려 한다. 입구에 웅성웅성 기다리던 손님들과 우르르 계단을 내려갔는데, 아니, 일렬로 도열할 종업원들이 허리 숙여 일제히 인사하는 게 아닌가. 나를 알아보며 반가워한 것도, 일찍 찾은 손님에게 고마운 마음을 표현한 것도 아닐 것이다. 메모해두었던 책을 꼼꼼히 들여다보며 여러 권 찬찬히 구입할 심산으로 이른 시각에 찾았지만 어색하고 민망했다. 그래도 피맛골에서 삼치구이로 점심 먹을 수 있는 즐거움이 남았다는 게 다행이었지만.

 

피맛골. 사람 냄새 맡을 수 있는, 서울 시내에서 얼마 남지 않은 골목 중의 하나다. 지체 높은 양반네가 거들먹거리며 지나면 황급히 발걸음을 멈춘 백성들은 고개를 조아리며 가장자리로 물러나야 했는데, 그런 황망함을 피해 형성된 종로통 곁의 골목이 피맛골이다. 말을 피한다는 의미를 가진 조선 시대 피맛골에는 장사치의 호주머니를 터는 색주가와 한 잔 술로 백성들의 애환을 달래주던 선술집이 늘어져 있었다는데 지금도 그 흔적을 느낄 수 있다. 지갑이 얄팍한 시민들이 빈대떡이나 곱창을 안주삼아 긴한 이야기를 허물없이 나눌 수 있다. 그 피맛골에 삼치를 기막히게 구워내는 식당이 있다. 그런데 상에 올라오는 그 삼치, 너무 어린놈을 굽는다는 게 아닌가.

 

나로도. 우리 지명을 한자로 바꾸던 일제가 ‘나라섬’을 나로도(羅老島)라 이름 붙였다는데, 수많은 섬 중에 하필이면 남도 끝자락의 작은 섬, 전라남도 고흥군 나로도가 왜 ‘나라의 섬’이었을까. 삼치를 많이 잡아서? 아니다. 오랜 냉동저장이 가능한 요즘이야  삼치를 자주 먹지만 일제 강점기 이전에는 육지로 좀처럼 올라가지 못했다. 한데 나로도는 달랐다. 어업을 천시하던 조선 시대여서 섬은 관심 대상이 아니었어도 나로도에는 군사나 관아에서 필요한 말을 키우던 국영목장이 있는 까닭이었다. 지금 나로도에 국영목장과 말은 없지만 삼치가 있다. 삼치만이 아니란다. 2007년 완공 목표로 건설 중인 우주센터가 자랑일 예정이란다. 꽤 시끄러울 우주센터는 국영목장처럼 주민에게 별 관심이 없을 텐데.

 

어부들은 “삼치는 나로도로 통한다.” 하고 말한다. 8월에서 12월까지, 찬바람이 부는 거문도와 나로도 사이의 바다에서 주로 잡히는 삼치는 나로도에 모인다. 위판장이 거기 있기 때문인데, 때마침 물결이 잔잔해지는 나로도의 연근해에 쿠로시오난류가 흐르고, 난류를 따라 삼치가 찾아오는 것이다. 일제가 전량 수거해간 삼치가 해방 후 일본으로 대거 팔려나가면서 나로도는 제 섬 출신 학생의 교복에 금 단추를 달 정도로 부자였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그답지 않다. 1970년 후반 무렵부터 삼치 수출이 중단된 것인데, 덕분에 수도권의 서민들도 삼치 즐길 기회를 얻게 되었다. 한데 메뉴는 오직 구이다. 현지인이나 그 출신이 아니라면 삼치회를 모른다. 그만큼 삼치구이의 맛이 기막힌 까닭은 아닐지.

 

1970년대 후반, 당시 인천의 대학생들은 알량한 용돈을 모아 자유공원 아래 삼치골목으로 모였다. 암울했던 군사독재시절, 소주나 막걸리를 마시며 잠시 해방공간을 만끽해야 했는데, 그 집 안주인이 특별했다. 사복형사가 나타나면 얼큰해진 젊은이에게 다가가 입단속을 주문하거나 수배중인 학생을 숨겨주기도 한 것이다. 그로부터 한 세대가 지난 지금, 그 골목은 삼치구이 원조들로 성업 중이다. 반 뼘 넘는 몸통을 서너 토막으로 자르고, 등뼈 좌우로 펼쳐 석쇠로 구워내던 삼치는 먹성 좋은 대학생에게 그만이었는데, 요사이 피맛골의 삼치는 자그마하다. 30센티에 불과한 삼치의 몸통은 두께가 반의 반 뼘에 지나지 않는다.

 

동중국해에서 우리나라 서해와 남해를 지나 일본 홋카이도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까지 분포하는 삼치는 5월 경 부화해 부쩍부쩍 자란다. 새우와 멸치나 까나리들을 먹으며 삼사 개월만 지나도 한 자, 즉 30센티미터를 훌쩍 넘기고 1년이면 두 자로 늘어난다. 7년이면 1미터에 7킬로그램이 넘도록 몸집이 불어나는데, 5킬로그램이 넘지 않아야 제 맛이 난다고 귀띔하는 주민들은 12월 전후로 잡은 것이 맛이 최고라고 덧붙인다. 삼치회를 모르는 사람들이 구워 먹는 1킬로그램 미만은 8월 경에 주로 잡히는 ‘고시’로, 일본말로 ‘고시’라 칭하는 어린 생선을 나로도에선 삼치 축에 끼워주지 않는다.

 

3월 주꾸미에서 5월 밴댕이를 지나 12월 삼치로 이어지는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라서 가치를 발한다. 그런데 지나친 해안 개발과 매립은 자연 해안선을 거의 사라지게 했고, 물고기의 산란과 서식처는 망가지고 말았다. 게다가 경쟁과 욕심은 줄어드는 어족자원의 씨를 말린다. 공판장에 올라오는 성어가 평균 20퍼센트도 못되는 현실에서 갈치의 99퍼센트와 참조기의 95퍼센트가 알을 낳지 않은 미성숙어라고 언론은 전한다. 이런 남획을 중단하지 않으면 10년도 못 가 우리 바다에서 어족자원의 절반 이상이 사라질 것으로 전문가는 예측하는데, 삼치는 어떨까. 오징어를 제외하고 고급어종은 눈을 씻어야 보이는 요즘, 바닥까지 훑는 중국 쌍끌이 선단이 들어와 고갈을 부채질한다던데.

 

콜레스테롤의 생성을 억제하는 불포화지방산이 많아 동맥경화와 뇌졸중과 심장병을 예방해주고, 디에이치에이가 풍부해 고혈압과 심장마비를 막아주며, 아이들의 학습 능력 향상에도 도움을 주는 삼치는 칼슘과 철을 비롯한 무기질도 적지 않다고 영양학자들은 전하지만 그뿐이 아니란다. 비타민의 일종인 나이아신을 많이 함유하여 각종 염증의 방지에 도움이 되는 삼치는 단백질 비율이 높아 칼로리에서 참치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는 것이다. 이렇듯 어린이에서 노인까지 훌륭한 영양소를 저렴하게 제공해주는 삼치는 더없이 귀중한 우리 바다의 자원이 아닐 수 없다.

 

얼마 전 미국의 한 유수한 연구팀은 지구온난화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지금과 같은 개발과 오염과 남획이 계속된다면 50년 뒤 바다에서 물고기가 사라질 것으로 예측해, 지대한 관심을 세계적으로 촉발시켰다. 아직 삼치를 잡을 수 있는 황해는 그 정도가 더욱 심각한데, 우리는 너무 어린 삼치만 구워먹는다. 3킬로그램이 넘는 성어를 얼음에 켜켜이 두 시간 정도 담았다 회로 먹으면 혀끝에서 살살 녹는다던데, 바다와 아이들의 건강을 보전하기 위해 어린 삼치는 좀 남겨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웬만해서는 피맛골에 잘 가지 않는다. 일단 들어서면 삼치 굽는 냄새를 이기기 어렵기 때문이다. (물푸레골에서, 2007년 1월호)

생물도감을 찾아보고 성어가 되면 그 크기가 1미터가 넘는다는 것을 알고 놀랐습니다.
그만큼 어린 삼치를 잡는다는 말인데.. 그러다가 명종이라도 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박박사님.. 언제 한 번 삼치구이 먹으러 동인천 삼치구이집에 가 보십시다. ^^*
동인천 삼치구이집 가면 저도 불러주오.
월요일, 18일, 저녁을 기합시다.시간이 어떤가요. 동글, 새만금 갯벌, 나와 두분, 아니면 추억을 공유하고 싶은 다른 분도, 서로 그리고 제게 연락을(011-9720-57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