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동물

디딤돌 2006. 7. 17. 17:54
 

어느 해 3월 14일, 강의를 시작하려는데 누군가 앞문을 세차게 두드린다. 지각한 학생이라면 슬그머니 뒷문으로 들어올 일인데 누군데 저토록 문을 두드릴까. 학교 당국에서 무슨 급한 전갈이라도 가지고 온 걸까. 문을 열어주려 몸을 돌리려는데, 커다란 사탕 바구니를 양손에 든 젊은이가 얼른 들어오며 인사를 꾸뻑하더니, 학생들 쪽을 향해 한 여학생 이름을 크게 부른다. “○○○학생, 계신가요? □□□학생이 ○○○학생에게 드리는 사탕입니다!” 평소에 학생이 잘 앉지 않아 늘 비어 있는 첫줄 책상에 사탕바구니를 올려놓은 젊은이는 일 마쳤다는 듯, ‘후다닥’, 지가 열어놓은 앞문으로 달아나고 만다.

 

아, 오늘이 ‘화이트데이’라지. 새 학기를 맞은 대학가에 알록달록 사탕 파는 상점이 갑자기 늘더니, 이 바구니, 크기도 하군. 부끄러운지 ○○○학생은 나타나지 않고, 손잡이에 붙어있는 가격표를 보니 보통 액수가 아니다. 저 사탕을 다 먹으려면 시간이 꽤 걸리겠는걸. 그때까지 연인 관계가 잘 유지될지 알 수 없지만, 양치를 자주 하지 않으면 틀림없이 충치가 생길 것 같다. 상업주의에 이끌려 사탕을 선물하기보다 꽃을 한 아름 안겨주는 편이 차라리 젊은이다운 애정 표현이 아닐지, 잠시 노파심에 젖어본다.

 

꽃에는 대개 꽃말이 있다. 얽힌 역사와 문화에 따라 사람들은 꽃에 의미를 붙였다. 화이트데이에 연인들이 주고받을만한 꽃말을 가진 꽃은 무엇일까. 백합은 순결, 장미는 아름다움과 애정과 미덕, 카네이션은 여인의 사랑을 상징한다. 젊은 연인들은 ‘열렬한 사랑’을 상징하는 붉은 장미나 ‘당신을 사랑한다’는 붉은 국화가 어울릴지 모른다. 그런데 선명성이 남다른 생명공학자는 파란 장미를 선호한다. 파란 장미의 꽃말이 ‘불가능’이기 때문이란다. ‘세계 최초’라는 지위를 학수고대하는 어떤 생명공학자를 소개하고자 한다.

 

1998년 농촌진흥청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그는 유전자조작을 반대하는 우리에게 비아냥거리며 질문을 던진다. “제레미 리프킨이 쓴 ‘더 바이오테크 센트리’를 읽으셨나요?” 고개를 젓자, “세계적인 문명 비평가조차 21세기는 생명공학의 세기가 될 것으로 확신하며 찬성하는데, 당신들이 뭘 안다고 반대하는 거요!” 아직 번역 안 된 그 책을 읽지 못해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는데, 그는 유전자조작 연구에 몰두하는 청중을 향해 “인류복지를 위한 생명공학은 계속되어야 한다!”며 부흥회 연사처럼 자신의 발언을 마쳤다.

 

이듬해 번역 출간된 제레미 리프킨의 그 책, 이미 고전이 되었지만, 그 생명공학자의 주장과 거의 반대였다. 추세대로라면 21세기가 생명공학의 시대로 어두워질 뿐 아니라, 그로 인해 희생될 다음 세대가 걱정이라고, 그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불안해하는 내용이었다. 나 참, 그 생명공학자는 책의 영문 제목만 읽은 셈이었다. 인류복지를 부르짖던 그 생명공학자도 파란 장미 개발에 10년째 몸이 달았다. 도라지의 파랑색 유전자를 장미에 거듭 넣는데, 외국에서 성공한 파란 카네이션과 달리 꽃잎 끝에 파란 반점이 지저분하게 박힐 따름이라고 조바심 낸다. 그런데, 도대체 파란 장미가 인류복지와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한 송이에 1달러가 넘으면 구매력이 떨어지는 장미를 유전자조작으로 파랗게 만들면 상품성이 생길까. 성공한다면 12달러 이상 받아야 수지를 맞출 것으로 예상하는 전문가는 고개를 젓는다. 만일, 돈 많은 백인들이 좋아하는 하얀 백합에 노란 하트 무늬를 새겨 넣는다면 어떨까. 개발자는 큰돈을 벌어들일 수 있을까. 외국의 어떤 생명공학자는 하트 무늬가 꽃잎 가운데 선명한 백합을 유전자조작으로 개발하겠다고 호언한 바 있다. 그런데 그 생명공학자는 하트 무늬 유전자를 어디에서 찾으려 할까. 모르긴 해도, 등 무늬가 현란한 노린재 중에서 찾을 공산이 크다. 에사키뿔노린재의 등에는 하트 무늬가 선명한 까닭이다.

 

딸기우유만 먹는 아이가 보챌 때, 급하면 토마토케첩도 마다하지 않는 엄마를 위한 희소식! 딸기유전자를 소에 널겠다는 포부를 밝히는 생명공학자가 있다. 젖소의 젖꼭지는 4개. 딸기 뿐 아니라 바닐라와 초콜릿유전자까지 넣으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개 유전자를 넣어 닭다리가 4개 달리게 하자는 생명공학자에게 제안한다. 개보다 게, 게보다 성게의 유전자를 넣어야 다리가 많이 달린다고. 높이뛰기 선수에게 벼룩을, 멀리뛰기 선수에게 개구리를, 단거리선수에게 치타의 유전자를 넣는다면 장거리선수에게 어떤 동물의 유전자가 어울릴지, 생명공학자에게 물어볼까나.

 

하트무늬가 선명한 백합을 개발하려는 생명공학자에게 에사키뿔노린재의 유전자를 소개하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안한다. 하트무늬 좌우에 영어 알파벳 ‘아이’와 ‘유’자 무늬를 같이 넣을 것을. 하늘소와 풍뎅이 종류를 잘 찾아보면 알파벳 아이와 유 비슷한 무늬를 가진 유전자를 찾을 수 있을 거니까. 적정도 있다. ‘I♡U’의 순서와 색깔과 크기를 조화롭게 꽃잎에 배열하려면 숱한 시행착오가 있을 것이므로, 그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곤충과 꽃이 죽음을 강요당하겠지. 하지만 무엇이 문제랴. 노란 하트무늬를 가져 고가로 책정될 백합의 매출,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나 그 보답으로 상업적으로 생긴 3월 14일 화이트데이 때 놀랍지 않겠는가. 그런 상상력을 동원, 생명공학의 문제를 모르는 후원자에게 사탕발림으로 설명하면 연구비는 계속 지원될 수 있을지 모른다.

 

우리와 달리 돼지 어깨살을 좋아하는 서양에서 있었다던가. 닭의 유전자를 넣었더니 뜻하지 않게 발목이 가늘어진 돼지는 쉬 골절당해 죽는 게 아닌가. 닭다리 놓고 밥상머리에서 형제끼리 싸우는 가정을 위해 연구하겠다는 생명공학자의 눈물겨운 배려에 닭이 개처럼 뛰어다닐 날이 멀지 않았다고 우스개를 던진 언론은 닭이 게처럼 옆으로 기거나 성게처럼 굴러다니는 꼴을 볼 수 있다고 믿을까. 그런 엽기적 생물은 자연 생태계 내에서 생존이 불가능하겠지만 혹시 인간의 과학적 사육으로 살아남을 경우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까. 조작에 사용한 유전자가 자연 생태계에 뜻하지 않게 퍼져나갈 경우 인류는 장차 어떤 문제에 부딪힐까. 그래도 생태학적 상상력이 결여된 생명공학자는 “파란 장미는 시작일 뿐이다. 언젠가는 지지 않는 꽃도 개발될 날이 올 것”으로 장담한다. 그런데 왜? 꼭 그래야 하는 거지? (물푸레골에서, 2006년 10월호)

셈틀에 능한 젊은이들이 쉴새없이 해킹을 하고 바이러스를 만들고...다만 으스대기 위해서.
그것처럼 생명공학자들은 파란 장미건 개다리를 한 닭이건 만들어놓고 제 실력을 으스대고 싶어하는 건 아닐까요.
인간의 멍청하고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아니 해악만 되는 오만...
맞습니다. 비바라기 님의 글은 비 온 뒤 늘 새롭더군요. 요즘 내리는 비는 인간의 한계를 분명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오직 인간만이 그 사실을 모르는 듯 싶습니다. 이렇게 관심을 가져주시니 언제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