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08. 3. 15. 03:12
 

오늘 내 구두는 유난히 번쩍인다. 흙이 묻어야 마지못해 닦던 구두가 번쩍이는 건, 구두 수선점을 다녀간 어제 이후에 발생한 사건이다. 지하철 몇 정거장을 일부러 걷다보니 굽 한쪽 면이 지나치게 달았지만 나머지는 멀쩡해서 굽을 교환했는데 그때 장인의 손을 잠시 거친 것이다. 구두약 절반을 바르고 문질러도 도무지 광이 나지 않던 내 구두는 앞으로 며칠 동안 광채를 잃지 않을 것 같다. 그러느라 만이천원을 썼다.

 

그 구두는 내가 만들지 않았다. 아내가 바겐세일하는 백화점에서 샀다. 그 백화점도 구두를 만들지 않았다. 구두 공장에서 납품한 물건일 것이다. 구두에 들어간 쇠가죽은 어디에서 왔을까. 구두공장 옆에서 소를 사육했을 리 없고, 목장에서 키우던 소를 도살장으로 옮겨 도축한 뒤, 벗긴 가죽일 테지. 쇠가죽은 다시 전담 공장에서 가공돼 구두공장으로 갔겠지. 나는 그 과정 어디에도 관계하지 않았다. 가죽을 제공한 소는 무엇을 먹었나. 사료는 미국에서 수입한 유전자조작 옥수수와 콩일 가능성이 높은데, 그 곡물은 중동의 석유를 가공한 화학비료와 제초제와 살충제가 투입되며 생산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나는 그 일체의 과정에도 관계하지 않았다.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 세수하고, 밥 먹고, 외출복 입고, 집을 나서 잠시 걷다 지하철 타고, 점심 먹고, 사람 만나고, 다시 지하철 타고 집에 돌아와 저녁 먹고, 씻고, 텔레비전 보다 잠옷 입고 잠들 때까지, 나는 수많은 노예의 시중을 받았다. 지하철과 침대나 텔레비전은 물론, 비누와 수건, 옷과 쌀도 모두 나 이외의 사람이 준비해 준 것이다. 어떤 독특한 경제학자는 그걸 노예의 도움이라고 주장하면서 미국인은 평균 250명의 노예를 부린다고 계산했다. 나는 얼마나 많은 노예를 부리는 것일까. 과거의 어떤 황제도 부럽지 않은 인생을 사는 나는 노예의 품값을 제대로 지불하고 있는 걸까. 착취당하는 노예 덕분에 안락한 삶이 보장되는 건 아닐까.

 

많은 이가 가보고 싶어 하는 두바이는 휘황찬란할 뿐 아니라 물자가 풍부하다. 그 이면에는 저임금에 혹사당하는 인부가 있다. 그들의 계속되는 희생이 없다면 오늘의 두바이는 불가능하다고 특파원은 전한다. 그들은 노예와 다름없다. 두바이만이 아니다. 세계적 휴양지의 번듯한 호텔도 노예처럼 값싼 노동력이 없다면 유지될 수 없다. 우리 농산물은 경제성장을 위해 가격이 억제되고 있다. 덕분에 공산품의 품질이 높아졌고 수출도 잘 된다. 농민의 희생이 없었다면 오늘날 같은 수출입국은 꿈도 꿀 수 없었다고 경제학자는 지적한다. 애초 공장 인부를 농촌 떠난 농민으로 충당한 국가는 농업을 천시하는 풍조를 부추겼다. 노예처럼 일해도 오늘날의 농촌은 도시를 따라 잡을 수 없다.

 

유기농산물의 가격이 높다고 하소연하는 소비자가 많다. 중간 유통 과정을 거치면서 값이 상승하는 일반 농산물보다 유기농산물이 비싼 이유는 고급이기 때문이 아니다. 유통과정을 과감히 줄였어도 가격이 높은 것은 소비자가 농부의 권리를 인정한 데 그 이유가 있다. 생명체인 우리는 먹지 않으면 생명을 부지할 수 없다. 먹을거리를 직접 생산하지 않는 한, 농부의 도움 없다면 우리는 당장 굶어야 한다. 자동차나 텔레비전은 없어도 살 수 있는 소비자는 이제 공정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노예 취급했던 농부에게 미안해하거나 고마워해야 한다. 그러자면 노동의 대가를 농부에게 공정하게 지불하는 건 당연하다. 그래서 가격이 올랐지만, 농산물의 가격이 비로소 제 자리를 찾은 것으로 이해해야 옳다. 여유가 없다면 전처럼 먹으면 된다. 우리는 시방 지나치게 먹고 버린다.

 

최근에 값비싼 커피와 설탕이 유기농산물 매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유기농산물 직거래를 공정거래라고 정의한다면 공정무역은 수출국과 수입국 사이의 공정한 거래다. 다국적기업의 농업 플랜트는 그 나라 농부의 건강을 해치고 대지를 황폐화시킨다. 농부가 혹사당하는 만큼 다국적기업은 살찐다. 우리는 그 모순을 공정무역으로 극복해야 한다. 내 땅에서 재배할 수 없는 농산물을 공정하게 수입한다면 그 나라 농부와 대지를 살릴 수 있고, 두루 지속가능하다.

 

둘러싸인 노예 덕분에 안락한 생활을 구가하는 우리는 자신의 환경을 더욱 파괴했고 후손의 자리는 그만큼 위축되었다. 전혀 지속가능하지 않다. 불공정하게 생산되어 저렴해진 농산물과 공산품을 마구 소비하자 지구는 전에 없이 더워졌다. 대지와 물은 더러워졌으며 우리 몸에 나타난 아토피는 더욱 심각해졌다. 늦기 전에 공정해야 한다. 사용하거나 먹는 걸 스스로 만들거나 재배할 수 없다면, 나를 위해 일하는 이에게 공정한 대가를 고마운 마음으로 지불해야 한다. 그래야 낭비가 줄고 지구는 후손의 세대까지 지속가능해진다. 그를 위해 우선 노예의 수를 줄이도록 노력해야 한다. 될 수 있는 한 노예가 만든 제품을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

 

얼마 전 텔레비전은 중국 물건 없는 일상이 얼마나 불편한지 보여주었다. 그만큼 중국 제품이 우리 생활을 지배하고 있는 셈인데, 저가의 중국 물건 없다고 못 사는 건 아니다. 꼭 필요한 물건을 국산으로 구입해 수선하며 사용하면 자원의 낭비를 줄이거나 피할 수 있다. 공정교역과 공정무역도 같은 맥락으로 접근할 수 있다. 우선 가혹한 노예 노동으로 만든 물건부터 사용하지 않는 행동을 준비하면 어떨까. 지속가능성과 교역과 무역의 공정성을 위한 꽤 괜찮은 운동일 텐데. (야곱의우물, 2008년 5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