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추억

디딤돌 2011. 5. 25. 01:37

꾸리찌바 에필로그, 박용남 지음, 서해문집, 2011.

 

 

꾸리찌바. 이제 브라질의 그 도시는 생태도시의 아이콘이 되었다. 1996녹색평론에 간략하게 기고한 박용남이 직접 다녀와 2000꿈의 도시 꾸리찌바를 펴냈을 때에 우리 사회는 꾸리찌바에 생소해 했고 도시를 끌어가는 단체장이나 의원들도 시큰둥해 했다. 하지만 생태도시의 가치를 주장하고 실현을 갈망해온 시민단체와 일부 연구자의 적극적인 운동과 소개가 힘을 얻었는지, 우리 사회에서 꾸리찌바는 어느새 일반명사가 되어간다는 느낌이다. 하지만 여태 거기까지다.

 

지구 북반구가 한참 추운 겨울마다, 우리나라의 크고 작은 시의 단체장이나 의원들이 하도 방문해서 꾸리찌바 시 관계자들이 혀를 내두른 적이 있었다고 어떤 경험자는 전한다. 하필 현란한 리우 카니발이 한창일 때 찾아왔다가 꾸리찌바에서 단 하루 머물며 이것저것 허투루 둘러본 뒤, 후다닥, 삼바 춤으로 북적이는 리우 데 자네이루로 썰물처럼 빠져나갔다는 게 아닌가. 당시 꾸리찌바의 공무원들은 한국인들 때문에 일을 하지 못할 지경이라며 방문 보이콧 움직임까지 일었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가. 생태도시 꾸리찌바의 사례는 남의 이야기에서 별 진전이 없어 보인다.

 

우리나라가 전혀 참고하지 않은 건 아니다. 도입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포기한 서울시의 굴절버스가 꾸리찌바의 사례였고 지금도 잘 이용하고 있는 서울시의 버스 중앙차로제가 그것이다. 도입 초기 교통사고 가능성 때문에 잠시 설왕설래했지만, 큰 사고가 없었고 조금씩 확장되고 있다. 한데 중앙 버스차로제가 시행되는 도시는 서울시 이외에 아직 없다. 도로 폭이 그리 넓지 않고 버스가 분담하는 교통량이 상대적으로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치부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예산 마련에 여유가 있는 광역도시마다 자존심처럼 지하철을 선호하기 때문일지 모른다.

 

2000년에 소개된 꾸리찌바는 현재 어떤 모습일까. 여전히 시민들은 자신이 사는 도시를 떠나려하지 않고 지하철보다 100분의1 비용으로 가설된 버스전용차선은 요즘도 시민의 교통비를 절감하면서 시간을 단축하고 있을까. “꿈의 도시, 희망의 도시라는 칭호가 붙게 도시를 이끈 당시 시장은 주지사가 되었다는데, 100배 이상 늘어난 도시의 녹지는 지금도 잘 보전되고 있을까. 꾸리찌바 에필로그를 쓴 박용남은 그렇다고 말한다. 지하철의 필요성이 잠시 논의된 적이 있지만 바뀐 시장도 버스전용차로와 자전거도로를 확장하는데 주저하지 않으며 꿈의 도시 꾸리찌바에서 소개한 여타 혁신 프로그램도 예전과 같다고 한다. 다른 제3세계의 도시처럼 빈부와 온갖 사회문제가 들끓었던 꾸리찌바였지만 벌써 20년 가까이 이른바 녹색정책이 지속되면서 시민사회에 정주의식이 완연이 뿌리내렸다고 말한다.

 

생태도시는 무엇인가. 고질적인 교통문제를 해결하는데 그치는 건 물론 아닐 것이다. 꾸리찌바에서 보여준 쓰레기 아닌 쓰레기 프로그램으로 재활용 쓰레기를 수집하는 저소득 계층에 유기농산물을 제공하는 정책도 포함될 수 있겠고, 부랑청소년을 동네의 도서관으로 이끄는 등대 도서관 운동도 검토될 수 있을 것이다. 도시를 저탄소 사회로 옮겨가게 하는 정책 뿐 아니라 농산물 자급을 위해 최대한 노력하는 행정도 생태도시에 정착될 필요가 있으며, 무엇보다 모름지기 생태도시라면 계층과 학력, 종교와 정파 따위와 관계없이 시민 사이의 배려와 소통이 존중되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행정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 도시를 생태도시, 비슷한 말로 녹색도시로 풀이할 수 있을 텐데, 우리는 언제 꾸리찌바처럼 실현해 갈 수 있을까.

 

꾸리찌바만이 아니다. 박용남은 작은 실험들이 도시를 바꾼다에서 콜롬비아의 보고타를 주목하는데 그치지 않았다. 대중교통으로 자동차 의존도를 크게 줄인 덴마크의 코펜하겐과 독일의 프라이부르크도 자전거와 보행자를 위한 정책들을 성공적으로 정착시켰다. 그뿐인가. 능동적인 시민들과 더불어 화석연료 사용을 최소화하고 그만큼 태양이나 바람과 같은 재생 가능한 에너지원 적극 발굴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도시보다 잘 살든 아니 든, 역사와 문화가 길든 아니든, 진정성 있는 정책으로 시민들을 감동시키는 자치단체는 앞서 나가고 있건만 안타깝게 우리는 여전히 남의 이야기로 치부하고 있을 따름이다. 오늘보다 내일, 나보다 우리를 먼저 생각하는 시민과 그런 시민의 지지를 받는 단체장의 행동이 앞서 빚어낸 결과들은 언제까지 부러움의 대상이어야 하나

 

거품이 꺼지기 전까지 우리가 덮어놓고 칭송했던 두바이 신드롬을 과다한 에너지 없이 잠시도 유지될 수 없는 한낱 바벨탑 같은 신기루에 불과하다는 걸 지적하는 꾸리찌바 에필로그는 인천 송도신도시를 잇는 지하철의 무모함에 혀를 내두른다. 고작 하루 수백 명에 그치는 이용객을 위해 막대한 세금을 퍼부어 대리석을 깔며 매립된 갯벌을 뚫은 또 다른 바벨탑이기 때문이다. 화려하고 찬란한 초고층빌딩에 사무실을 낸 송도신도시의 사업자들은 앞으로 인천지하철을 자주 이용하려 할까. 납부하는 전기료 내역을 절대 비밀로 간직하려는 60층 아파트의 주민들은 지구온난화와 석유위기 시대에 역행한다는 세간의 지적에 어떤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려 들까.

 

대구에서 지역통화 한밭레츠10년 넘게 이끌고 있는 박용남은 꾸리찌바 에필로그에서 지역에서 나눔과 보살핌으로 공동체를 실험하고 있는 지역화폐의 가치를 다시 강조한다. 의지와 능력도 있는데 단지 돈이 없다는 이유로 소외되어야 하는 이웃을 서로 보듬어 공동체 안에서 떳떳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내 지역을 우정과 환대로 배려하는 공동체로 가꿔야하기 때문이다. ‘지역화폐가 훌륭한 그 매개체가 될 수 있다면서 자신이 참여하는 한밭레츠에 지금까지 어떤 성과가 있었고 남은 과제는 무엇인지, 관심을 가진 독자에게 경험담을 소상하게 풀어준다. 중앙이 심사를 해서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복지보다 만나면 반가운 이웃과 나누는 삶이 사회 안정에 긍정적이다. 주민의 삶을 지역에 뿌리내리게 하는데 크게 기여할 게 틀림없다. 바로 우리가 찾아 누려야 할 정주의식이다.

 

꾸리찌바 에필로그에서 박용남은 저소득계층이 자급할 수 있도록 작은 자금을 베풀어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방글라데시의 그라민은행을 주목한다. 그 은행의 꿈과 현실적 한계를 짚어보면서 우리나라에 도입된 소액대출이 극복해야 할 과제가 무엇인지 고민하게 한다. 또한 지구온난화에 이은 기상이변과 분별없이 추구하는 경제성장에 의해 무참하게 농토가 사라지는 현실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식량위기를 지역에서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우리의 도시를 염두에 두고 걱정한다. 한데 우리는 그런 문제들에 대한 대안을 이미 알고 있다.

 

도시농업과 자급자족이 대안이요 답이다. 다만 선뜻 실천하지 못할 따름이다. 결국 대안의 실천을 위해 함께 고민해야 할 현실의 숙제는 거버넌스일 것이다. 다시 말해 시민, 기업, 그리고 정부가 머리를 맞대며 생태도시의 실현을 위해 함께 논의하는 일이다. 모두 알고 있는 정답을 향해 공동체가 팔 걷어붙이는 일이라는 걸 새삼 확인하는 박용남은 책 제목에 에필로그라는 말을 일부러 넣었는지 모른다. 결국 에필로그는 마무리라는 의미가 아닐 터. 다 알고 있는 이론에서 머물 게 아니라 행동이라는 걸 새삼 추동하려는 건지 모른다. 시작이 반이므로 그리 멀지 않다.

 

애정을 갖고 접근하는 시민 중에 자신이 사는 도시의 문제를 모르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다만 행동에 옮기기 쉽지 않을 따름인데, 박용남의 꾸리찌바 에필로그는 앞장서고 있는 도시가 있다는 걸 우리에게 다시금 알려준다. 일단 마음을 먹으면 우리도 하지 못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는 걸 새삼 확인해준다. 그 점에서, 인천도 예외가 아니다. (인천in, 2011.5.31)

 
 
 

도시·인천

디딤돌 2010. 7. 14. 16:24

 

남쪽 지방에 장맛비가 예보된 지난 주말. 그린벨트로 뒤덮인 시흥시에서 요즘 유행하는 걷기에 나섰다. 그 길은 ‘늠내길.’ 13킬로미터의 늠내길은 작은 언덕을 여러 차례 아기자기 넘으며 수도권 그린벨트의 숲을 만끽하도록 배려하고 있었다. 중간 중간에 쉬더라도 예닐곱 시간을 걸었으니 내심 힘겨웠을 테지만 서로 기운을 북돋던 10대에서 70대까지 30여 명의 일행은 모처럼 숲 사이에서 도시락을 꺼내 먹는 즐거움을 나누고 이마의 땀을 씻어주는 산바람에 환호할 수 있었다. 다음 일정을 손꼽아 기다리게 되었고.

 

가족과 친구, 그리고 연인이 꾀꼬리와 뻐꾸기 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걷는 즐거움. 그 즐거움을 인천과 가까운 시흥의 숲길에서 만끽하는 가운데 더욱 기뻤던 건, 한 꼬마가 우리에게 인사했다는 사실이다. 평소 걸을 기회가 거의 없는 도시인에게 늠내길이 지나치게 높거나 가파르지 않아도 10여 킬로미터가 넘으니 아무래도 버겁다. 수다 떨다가도 지치면 말없이 터덜터덜 앞만 보며 걷게 되는데, 그때 반대편에서 내려오는 이를 피해야 하는 일이 생기면 귀찮아진다. 바로 그럴 때, “수고하십니다!” 인사 건네며 다시 활기를 찾는 사람들. 산길은 그래서 좋은데, 한 꼬마가 밝게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넨 게 아닌가.

 

철근시멘트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점철되는 도시라는 곳. 그 도시의 후미진 골목에서 시민들은 지나치는 이와 눈을 마주하기 극도로 꺼린다. 대도시일수록 그렇고 녹지가 부족할수록 그렇다. 바로 인천이 그렇다. 생각해보라. 자신을 바라본다는 사실 만으로 욕설이 횡행하는 곳이 어디인가. 적어도 녹지는 아니다. 숲길은 더욱 아니다. 고층빌딩이 즐비한 도시의 뒤편이거나 술집에서 그런 폭력이 난무한다. 언어폭력에서 그치지 않는다. 문을 걸어잠가도 부시고 들어와 성폭력을 자행하고, 전화를 길게 건다는 어른의 핀잔에 칼부림하는 자들이 활보한다. 도시의 거리에서 어깨를 부딪치는 사람들은 서로 모른다. 군중 속의 외로움. 회색도시는 배려할 이웃이 없다. 삶이 뿌리 내리지 않은 익명의 공간이다.

 

익명의 도시에서 어려움에 처했을 때, 사심 없이 도와줄 이웃은 가까이에 없다. 뼈대를 치우면 사람이 위아래 좌우로 사람이 빼곡한 아파트단지에서 주민들은 식구 이외에 마음을 함부로 터놓지 못한다. 공연한 오해살 수 있고 사기당할 두려움도 크다. 응급환자를 위한 기관이 있지만 살갑지 않고 사회복지 시설이 있지만 따뜻하지 않다. 운 좋으면 박제된 친절을 은행과 대형 상가에서 멋쩍게 만나지만 흔쾌하지 않다. 규정과 일정에 치이는 담당자들은 고객의 사정을 속속들이 이해하고 시간과 편의를 제공하는 게 아니다.

 

어떤 생물보다 사회적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동물이 인간이건만, 요즘 사람은 내 옆에 있는 다정한 이웃의 존재를 깨닫지 못한다. 목표에 도달해야 할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낄수록, 불안감을 조성하는 경쟁이 치열할수록, 이웃을 돌아보지 못한다. 타인의 도움과 배려 없이 하루도 건강하게 살아갈 수 없으면서 내 옆에 있는 이웃의 희로애락을 공유하지 못한다. 속도와 목표를 숭상하는 도시가 그런 구조를 강요했다. 뒤처지면 돌이킬 수 없다는 불안감이 지배하는 회색도시에서 시민들은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나락으로 곤두박질칠 가능성을 항상 끌어안고 살지만 이웃의 외로움과 고통을 외면할 수밖에 없으니 행복하지 않다.

 

낳은 아기를 산후조리원에 맡겨야하는 부부보다 친정엄마나 시어머니가 보살펴주는 부부가 더 행복하다. 엄마와 아빠가 보살피는 아이가 바쁜 부모 대신 할머니가 키우는 집의 아이보다 행복할 것 같다. 식구와 친척의 관심 속에 자라면서 동네의 언니와 오빠, 누나와 동생이 마을에서 어우러질 수 있는 아이의 행복이 그렇지 못한 아이보다 훨씬 행복할 것이다. 그런 동네라면 이웃에 삼촌도 많고 이모도 많다. 옛 이야기 들려줄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많을 것이다. 에어컨이 시원한 실내에서 국영수 과탐 사탐만 파다 엄마 아빠 없을 때 컴퓨터 게임에 몰두하는 청소년에 비해 이웃을 배려하는 마음이 클 게 분명하다.

 

사이코패스와 같은 범죄는 삶이 뿌릴 수 없는 토양에서 쉽게 배양된다. 거리를 감시하는 카메라가 도시의 안전을 도모하는 건 아니다. 시민의 삶이 마을에 뿌리내릴 수 있는 도시라야 한다. 이웃과 희로애락을 나눌 수 있는 도시라야 시민들은 마을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다. 그렇다면 이제 도시의 구조를 바꿀 필요가 있다. 어려울 때 도움을 나눌 수 있는 이웃과 함께 삶을 뿌리내릴 수 있는 마을을 도시에 만드는 거다. 규정에 의한 사회복지와 보상을 요구하는 친절이 아니라 어려운 사정을 이해하며 개성을 배려하는 친절과 도움으로 따뜻한 안전망이 돈독한 사회를 만들자는 거다. 바로 녹색도시다.

 

이웃에는 앞뒤와 위아래의 집 식구만이 전부가 아니다. 내 삶을 지탱해주는 농민과 상공인, 세탁소와 배달 직원도 당연히 포함되어야겠지만, 맑은 산소를 제공하는 나무와 풀, 귀를 싱그럽게 하는 아파트 단지의 직박구리와 여름이면 찾아오는 숲속의 꾀꼬리도 들어가야 한다. 내게 익숙한 언어와 생활문화를 전해준 조상의 삶은 아니 그럴까. 주변의 생태계는 물론이고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역사와 문화도 포함되어야 한다는 거다. 그런 도시를 어떻게 만들면 좋을까. 똑똑한 전문가의 멋진 아이디어를 밀어붙여 완성되는 게 아니다. 사회 구성원이 팔 걷고 함께 나설 때 만들어갈 수 있고, 그런 도시라야 후손에게 자부심으로 물려줄 수 있다.

 

지방자치단체마다 낙후되었다면서 요구하는 개발은 주민들의 삶과 어떤 관계를 맺을까. 새로 지을 거대한 아시안게임 주경기장은 적자를 회피하기 위해 온갖 상업시설을 유치할 텐데, 빚을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처지의 인천에서 시방 이웃의 행복을 증진할 수 있을까. 아시안게임 후 놀릴 가능성이 높은 선학동의 하키 경기장은 그린벨트를 반드시 허물어야 하나. 갯벌을 매립하고 들어선다는 151층 쌍둥이빌딩은 일대에 거대한 그늘을 드리울 텐데, 시민들은 덮어놓고 환영하란다. 송도11공구는 어렵게 둥지를 친 세계적 희귀종인 우리의 이웃, 저어새의 터전이건만 매립이 예정돼 있다. 강화 일원도 갯벌은 어패류의 산란장이자 수도권의 산소탱크이건만 조력발전으로 희생시키겠다고 벼른다. 녹지가 태부족한 인천의 유일한 외곽의 S자 녹지축은 고속화도로에 뜯기고 찢길 예정이란다. 이런 공간에서 나와 이웃의 삶은 뿌리내릴 수 없다. 남보다 많은 돈을 빨리 벌어 다른 곳으로 떠나려 한다.

 

남에게 잘 보이려 하거나 비싼 가격으로 팔아치우려 드는 건지, 세간에 ‘명품도시’를 운운하는 자가 많다. 아무나 들고 다닐 수 없는 명품 핸드백처럼, 화려하게 솟아오른 명품도시는 모든 사회 구성원의 행복을 보장할 것 같지 않다. 두바이가 화려할 수 있었던 건 여권을 빼앗긴 채 착취되는 가난한 이웃을 그늘에 감췄기에 가능했다. 한데 그 화려함은 거품을 유지하게 하는 돈이 마르자 한갓 신기루에 불과했다는 게 드러났다. 인천이 추구하는 명품도시의 진면목은 무엇인가. 내 건강한 삶을 보장해주는 시민 모두의 행복을 진정 보장하는 것인가. 내일의 인천시민인 후손의 삶을 뿌리내리게 배려하는가.

모두 잘 알듯, 인천은 대다수의 시민이 사는 마을 주변에 녹지가 아주 부족하다. 건물이 하늘을 가리고 아스팔트가 걸음을 차단한다. 외곽의 녹지와 이어지는 도심의 녹지축이 보잘것없는 만큼 마을을 찾아오는 생태계의 이웃도 매우 드물다. 이웃을 안심하고 만날 공간도 길도 빈약한 인천에서 시민들은 숨이 막힌다. 떠나고 싶다.

 

녹지가 필요하다. 부자들만 즐기는 골프장은 물론 아니다. 살충제를 뿌리는 공원녹지에서 그칠 수 없다. 소통에 목말라하는 이웃과 공유할 수 있는 녹지를 말한다. 다행스럽게 인천에도 제주도의 ‘올레길’이나 시흥의 ‘늠내길’과 같이 시민들이 걷는 이른바 ‘둘레길’을 만들겠다고 62지방선거에 당선된 지방자치단체장마다 약속을 했다. 어떤 개성을 가진 ‘둘레길’을 어디에 어떻게 만들 것인지 궁금한 만큼, 만드는 과정에 지역의 주민들이 민주적으로 참석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웃과 천천히 걷는 길은 오늘은 물론이고 내일까지, 인천시민의 삶에 뿌리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길은 광장으로 이어져야 한다. 이웃을 느끼고 배려하면서 아이와 노인들도 안전하게 걸고 만나 속마음 털어놓을 수 있는 광장을 녹색으로 활짝 열어야 한다. 이웃의 개성이 배려되는 녹색의 광장과 둘레길. 다음 세대 시민의 행복을 먼저 생각하는 도시의 행정이 되어야 한다. 눈이 마주치는 낯모르는 이웃에게 어린 꼬마도 스스럼없이 반갑게 인사할 수 있는 인천을 위해. (인천in, 2010.7.?)

 
 
 

도시·인천

디딤돌 2006. 10. 4. 15:22

 

     지난 9월 18일에 열린 제149회 인천시의회 정례회 상임위원회 제6차 회의에서 ‘자전거 이용 활성화에 관한 조례안’이 약간의 논란 끝에 부결되고 말았다. 서울시에서 자전거 사용 활성화를 위해 ‘자전거 조례’를 제정할 예정이라고 발표한 바로 그날이다. 4년 전에 발의된 ‘자전거 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과 그 시행령에 의거, 이미 몇 지방자치단체에서 가동하고 있는 조례를 도입한다는 소식에 많은 시민들이 기대했건만 시의회는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것이다. 서울보다 앞서 제정할 기회를 양보한 관문도시의 미덕인가.

 

자전거 도로가 설치되는 만큼 감소할 보행자 도로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고, 기존 구도심에 자전거 도로 설치가 가능한지 먼저 검토해야 한다는 것들이 신문에 보도된 인천시의회의 부결 이유인데, 접근 자세가 서울과 다르다. “레저나 여가목적보다는 생활교통수단으로 확대하는 방안의 하나”로 조례를 만들어 자전거를 이용하는 시민들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민간시설 내 자전거 보관대 설치를 권장하며, 의무화의 근거를 마련하는 것은 물론, 필요하다면 도로 폭을 줄이는 것도 검토할 수 있다고 서울은 의지를 밝혔다. 자전거 도로를 현실 여건과 눈앞의 경제 부담에 종속하는 게 인천의 의지인가.

 

프랑스 파리 시 어느 구의 역발상을 소개한다. 시내에 자동차 주차장에 부족해 빗발치는 민원을 그 구 당국은 주차장을 줄여 멋지게 해결했다. 주차장을 줄이는 대신 주차료를 크게 올리고, 이용자 편의에 맞게 자전거 도로를 대폭 확충하자, 시민들은 불편한 자동차는 집에 두고 너나 할 것 없이 자전거를 이용했고, 들끓던 민원이 산뜻하게 해결되더라는 오래된 소식이다. 주차장은 물론 도로까지 자전거에 양보하자 시민들이 크게 만족하게 된 사례는 프랑스 파리 시의 그 구에 국한되지 않는다. 프랑스는 물론 독일, 영국, 네덜란드와 덴마크를 가리지 않고 민주주의가 성숙된 유럽 대부분의 도시에서 자전거는 자동차보다 편리한 일상의 이동수단이다.

 

자전거 도로를 보행자 도로에 설치할 경우 자전거 이용자와 보행자 모두에게 불편을 줄 뿐 아니라 사고 위험이 높아진다. 자전거 도로는 보행자와 분리해야 안전하다. 기존도심의 경우 도로 차선의 폭을 줄이거나 없애 자전거에 양보해야 바람직하다. 차선폭과 제한속도를 줄이면 교통사고 위험은 눈에 띄게 줄어든다. 크고 작은 가로수가 양편에 식재된 녹색터널의 자전거 도로로 출퇴근과 등하교는 물론 관공서와 시장에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다면 훨씬 깨끗해진 길에서 건강을 찾는 시민들은 도시를 떠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유럽의 도시 뿐 아니라 최근 도시학자들이 주목하는 남미의 많은 도시들이 그렇다.

 

자전거 도로를 추가 조성하면 공사비 증가로 입주민이 반대할 것으로 염려한다면, 그건 짧은 생각이다. 한번 건설하면 수 십 년 동안 이용해야 하는 재개발 주택단지에 자전거 도로가 없다고 가정해보자. 사통오달 연결된 자전거 도로를 주민들이 쉽게 이용할 수 없는 주택단지는 머지않아 부동산 가격에 불이익을 받지 않겠는가. 자동차 편의만으로 계획된 도로는 늘어나는 차량들로 예외 없이 정체된다. 도심의 주차장 부족 문제가 촉발될 뿐 아니라 교통사고와 대기오염은 심각해지고 시민들의 만족감은 후퇴된다. 자전거가 도심의 자동차를 대체할 수 있을 때 교통수단은 물론, 도시와 시민의 건강을 후대까지 견인하게 될 것이다.

 

자전거는 자연과 인위를 건강하게 연결하는 인간이 발명한 최고의 기술 중의 하나다. 푸른 내일을 꿈꾸는 현대 도시마다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행정 중의 하나다. 그를 위한 자전거 조례는 녹색도시를 약속하는 인천에서 외면하면 안 된다. 현실에서 부딪히는 장애요인은 열린 논의로 극복해야 할 과제이지 넘을 수 없는 장벽이 아니다. 도시에서 자전거는 자동차를 보조하는 수단일 수 없다. 자전거 도로는 녹색도시의 기반이다. 인천시와 인천시의회는 내일을 위한 준비로 자전거 정책과 조례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마땅하다. (인천신문, 2006.10. )

자전거...나의 약점.ㅠㅠ
다른 지역에 비해 언덕이 유난히 많은 포천은 자전거 타기 쉽지 않지요. 더구나 도로에서 차들은 싱싱 달리고. 자전거 활성화를 위해 안전한 도로도 필요하고, 언덕에서 편리한 자전거가 널리 보급되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러면 가족과 넓은 공터에서 자전거를 연마하고 거리로 나갈 수 있겠지요. 추석 설 풀 쉬세요.
인천으로 이사가는데 쟈철역이 멀어서 자전거 한대 살라 했더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