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동물

디딤돌 2006. 12. 4. 02:07

     

1990년대 초반, 생태학술조사를 위해 덕유산국립공원을 답사하던 일행은 인적 드문 길을 찾아 하산을 서둘렀다. 회의시간에 맞춰야 했던 것인데, 계곡이 넓어지면서 대벌레가 눈에 띈다. 카메라를 들이대는 연구원을 채근하며 걸음을 재촉하는데, 어라, 이번엔 대벌레들이 죽어 널브러져 있다. 무슨 일일까. 대나무인양 갈듯 말듯 흔들리는 대벌레를 처음 봐 신기해하던 연구원은 이내 얼굴이 굳어진다.

 

수수께끼는 넓은 등산로에서 풀렸다. 관리사무소에서 백련암까지, 자동차가 이동할 수 있게 잘 닦아놓은 등산로가 좁아질 지점에 방역업체의 트럭이 떡 버티고 섰고, 일단의 인부들이 안개가 낀 듯 주변 숲을 연막으로 온통 뒤덮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이런! 여기는 국립공원인데…” 말문이 막힌 연구원은 죽은 대벌레를 들여다보던 카메라를 돌려 방제장면을 찍어댔고, 범상치 않은 젊은이가 이리저리 촬영하는 모습에 놀란 인부들은 초로의 사내를 냉큼 불러왔다.

 

카메라를 내놓으라고 소리 지르며 허둥지둥 달려온 사내는 “하산하는 사람들 모기 물리지 않고 송어회 드시라고 무주군에 어렵게 부탁해 약을 뿌리는 것인데 왜 사진을 찍는 거요!” 거칠게 항의하며 핏대를 세운다. 국립공원에서 연막소독이 정당하다면 젊은이가 사진을 찍든 말든 관계치 말아야할 텐데 송어회 양식장을 경영하는 그 사내는 왜 저리 성화일까. 무주군에서 연막소독을 지원했다면 양식장은 물론 무주군과 덕유산국립공원까지 책임이 확장된다. 국립공원 당국의 허락이나 요청 없이 매포소를 통과하지 못했을 게 아닌가. 젊은 연구원이 아니라 이번엔 나이 든 박사들이 나섰고, 당황한 사내는 기세등등했던 자세를 급히 낮춘다. 좋은 일 한다고 했는데, 한번만 봐달라는 거다.

 

카메라를 빼앗기지 않은 젊은 연구원은 사내 앞에서 언론 고발을 선언했지만,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 발이 닳도록 찾아온 국립공원 관계자의 읍소가 효력을 발휘했는지, 지도교수는 열혈 제자에게 자제를 당부한 모양이었다. 그 광경을 무심히 바라보던 일행 중 몇 명은 어제 저녁, 문제의 양식장에서 송어회 몇 접시 비웠던 터라 자세가 몹시 민망했는데, 국립공원 내에 방제는 말이 되지 않지만 어찌 양식장 설치와 횟집 영업이 허용될 수 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산 무지개송어는 덕유산국립공원 계곡에 원래 분포하지 않는데 말이다.

 

역시 1990년대 초, 덕유산국립공원에 마련된 1만 명 규모의 캠프장을 놔두고 1만 5천 명 규모의 캠프장을 굳이 설악산 기슭에 조성하던 국제잼버리대회 담당자는 벌목을 항의하는 환경운동가에 맞서 인터뷰를 자청했다. “잡목을 없앤 자리에 잔디를 깔아 놓으니 환경이 좋아졌다!”고 텔레비전 카메라 앞에서 너스레떤 것이다. 그가 이야기하는 잡목은 소나무를 제외한 거의 전부다. 한 그루에 수백 종의 동식물이 삶을 기대는 참나무도 당연히 잡목으로 분류한다. 아무튼, 외국인 백여 명에 불과했던 국제잼버리대회는 국내 참가자를 늘여야 했고, 덕유산 잼버리 대회 이상의 성황이었다고 당시 언론은 호들갑떨었다.

 

잼버리 일정에는 야생조류 관찰도 있었다. 캠프장 측은 찾아준 외국인들이 모기 물릴세라 항공방제를 실시했고, 쌍안경을 준비한 잼버리 대원들은 그날 새 한 마리 구경할 수 없었다. 대벌레는 몰라도, 죽어 널브러진 다른 곤충은 무섭게 많이 보았을 거고, 농약 중독된 곤충을 잡아먹다 비틀거리는 비염걸린 야생조류를 발아래에서 관찰한 운 좋은 대원이 있었을지 모른다. 그 대회에 참석한 스웨덴 국왕은 일회성 행사를 위해 천혜의 자연을 파괴한 행위에 안타까워했는데, 현재 잼버리가 열렸던 자리에는 울산바위를 바라보는 고층 콘도미니엄들이 솟아 있고, 차를 놓고 나온 도보 방문객은 경관이 가로막혀 기막혀한다.

 

백두대간에서 힘차게 뻗은 한남정맥의 끝자리에 우뚝 선 계양산은 얼마 전까지 황해를 굽어보았던 인천의 진산이다. 민족상잔의 전쟁 뒤에 헐벗은 백성에게 땔감을 내주고 벌거숭이가 되었다가 서서히 회복되는 생태계에는 반딧불이를 비롯하여 도롱뇽, 버들치, 민물가재와 같이 청정지역을 대표할만한 동물들이 터 잡고 있다. 그중 북사면의 생태계가 가장 양호한데, 바로 그 자리에 한 여성이 50일 가까이 나무 위에 올라 내려오지 않는다. 내놓으라 하는 대기업에서 하필 그 자리에 골프장을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접지 않기 때문이다.

 

산이 좋아서 찾는 인파로 인해 등산로가 천지사방으로 얽힌 계양산은 이미 신도시로 연결되는 송전탑으로 등성이가 패였고 기슭마다 차오른 주택으로 몸살을 앓는데, 한 줄기는 공항으로 빠지는 넓은 아스팔트로 잘려나간 지 오래다. 계양산에 오래 전부터 터 잡던 다람쥐와 너구리는 협소한 공간에서 근친교배에 의존하다 악성유전자가 축적되었는지 사라지고 말았지만 간판 화려한 음식점은 목하 성업 중이다. 인천시는 에코다리를 지어 잘라진 줄기를 연결하겠다는데, 목숨 겨우 부지한 몇 안 되는 동물들은 그 다리를 사양할 듯하다. 많은 예산을 들여 기왕에 만든 다리, 사람도 함께 이용하겠다 하므로.

 

23층 4채가 네모꼴로 마주하는 단지의 가운데 공간은 주차장이고 놀이터가 저 멀리 있는 아파트에서 엄마는 아이들을 놀이터로 보내지 않는다. 우범지대가 되고 날았기 때문인데, 그 아파트단지에 어떤 시댁의 함이 들어섰다. 한 무리의 청년들이 기대에 찬 목소리를 모아, 일제히 “함 사시오!” 외치자 여기 저기 베란다에 문이 열리고, 주민들은 호기심어린 고개를 내민다. 추억이 서린 풍경을 놓치고 싶지 않았을 텐데, 어디선가 “여기가 너네 집 앞마당이냐! 조용하지 못해!” 거친 공명이 밤 공간을 찢는다. 때까치는커녕 참새 한 마리 볼 수 없이 삭막한 아파트단지에서 옛 정취는 사치였던가. 깜짝 놀란 청년들이 후다닥 사라져 적막해진 아스팔트 광장. 잠시 후 대리운전 승용차가 멎더니 흐느적거리는 취객의 발걸음이 밤공기를 교차한다.

 

매미가 시끄럽다고 다 자란 나무들을 간선도로 사이의 둔덕에서 베어내자 질주하는 자동차와 폭주족의 소음이 밤낮 없이 베란다를 넘어온다. 절박한 메뚜기 한 마리의 호소를 들은 지율스님은 100일이 넘는 단식으로 천성산의 생태계를 보전하려 애썼는데, 길거리 고양이를 향해 비비탄을 발사하는 아파트단지의 아이들은 가축들의 살처분에 도무지 무감각하다. 조류독감이나 구제역 발생지역과 가깝다는 이유로 멀쩡한 가축들이 무더기로 살처분되지만, 닭과 양념치킨, 소와 불고기의 관계를 짐작하기 어려운 만큼 가축의 고통을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 생산과 소비가 철저하게 분리된 도시에 자연이 없는 까닭이기도 하다.

 

넓은 프라이판에 기름을 둘러 계란을 까 넣어보자. 독일의 경우, 노른자는 도시이고 노른자를 둘러싼 흰자는 시골이다. 넓은 검은 색 프라이판은? 울창한 숲이다. 그런 도시에 녹지축을 가로, 세로, 동심원으로 배치하고 차는 서행한다. 그러자 5분 걸어 반가운 이웃 만날 수 있는 자투리공원마다 부리가 붉은 새들이 모여들어 찾는 이에게 예쁜 울음소리를 선사한다. 영국 런던의 자랑인 하이드파크에서 방문객을 즐겁게 하는 다람쥐는 박물관이 즐비한 미국 워싱턴DC에도 흔하다. 땅값 비싸기로 유명한 일본 동경에 조성한 우에노공원의 습지에는 철새가 몰려들어 장관을 이루는데, 도시를 더욱 자랑스럽게 하는 그 동물들은 자동차나 콘크리트를 따라 들어왔을 리 없다.

 

멀지 않은 과거만 해도 논두렁과 밭두렁이 넓었던 곳에 우후죽순처럼 아파트단지가 들어서더니 녹지가 부족한 도시에는 한 뼘의 습지도 없다. 최근 뜻 있는 사람들은 개발될 예정인 논과 밭을 보전해 물려주자고 민원을 띄우느라 애쓴다. 그들의 노력에 힘입은 지방자치단체가 논두렁 밭두렁 사이에 그 땅에 오래 어우러졌던 풀과 나무를 심고 샘물이 솟는 자리에 습지를 조성했더니, 이처럼 반가울 수가! 한동안 볼 수 없었던 때까치도 다시 찾고 철새도 내려앉는다. 어떻게 알았는지 족제비와 너구리도 흔적을 남긴다. 그뿐이랴. 봄이면 저녁에 개구리 울고, 새벽이면 새 울음소리가 교교하다. 자연에 허기졌던 생물들이 사람이 배려한 한줌의 생태공간이라도 그게 어디냐며 모여든 것이리라.

 

사람은 논두렁 밭두렁이 건강할 때 몸과 마음이 건강했다. 주위의 동물과 식물도 건강했다. 건강한 논두렁 밭두렁은 사람과 자연의 ‘조화로운 공존’을 보장해주었던 것인데, 논두렁 밭두렁이 사라진 회색도시에 사는 우리는 자연을 위해 무엇을 마련하면 좋을까. 대단한 생태공간이 우선은 아니다. 그들과 함께 공존하려는 작은 배려가 아닐까. 자연만이 아니다. 삭막한 회색공간에서 여유를 잃어가는 자신을 위해 더욱 시급한 노릇임에 틀림없다. (코오롱건설 사보, 2006년 11-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