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12. 7. 21. 08:13

    놀이터까지 주차장으로 바꾸다니

 

19층 고층 아파트가 네모꼴로 배치된 아파트 단지에서 주차가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 첫 입주 당시 확보한 넓은 주차 면이 날이 갈수록 비좁아졌고, 저녁 이후 집 가까이 차 두는 일은 포기하게 되었다. 어두워지면 이웃의 자동차 앞에 평행주차를 하거나 빈 공간을 찾아 단지를 이리저리 돌아야 하는데, 이른 아침에 차를 빼려면 귀찮은 일을 감수해야 한다. 차 앞에 평행주차한 자동차 여러 대를 밀어야 하는 경우가 생기는데, 비나 눈이라도 내리면 옷이 푹 젖거나 넘어질 수 있다.


어느 주말이었나. 편한 옷으로 쉬는데, 경비원이 올라왔다. 아파트 왼 편에 있는 어린이 놀이터를 주차장으로 바꾸는 안에 찬성 서명을 해달라는 거였다. 서명 용지를 들고 올라온 나이 든 경비원에게 뭐라 할 수 없는 일. 그도 지시를 받았을 것이다. 서명에 응한 가구는 대부분 찬성에 표시를 했지만 그들과 같은 란에 표시할 수 없었다. 선행학습에 바빠 그런지 거의 한산하기는 해도, 어린이 놀이터마저 빼앗는 어른의 횡포에 동참하기 싫었다. 내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놀 나이가 지났지만 놀이터는 옳다고 보았다.


말이 어린이 놀이터지, 그 놀이터에 어린이만 모이는 건 아니다. 학교와 학원을 오가는 사이에 잠시 들리거나 어쩌다 학원에 빠진 아이들이 놀기도 하지만, 주로 유치원을 파했거나 유아원에 들어가지 않은 꼬마들이 엄마나 할머니, 어떨 때는 할아버지와 같이 와서 시소나 그네를 탄다. 깨끗한 모래가 푹신하게 깔려 안전하다. 그늘이 있는 의자에 앉으면 아이들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엄마들이 삼삼오오 모여 차를 마시며 수다 떠는 공간이기도 하다. 어두워지면 입시를 외면한 듯 보이는 청소년들이 소곤거리거나 큰 소리로 일감 벌이지만, 그들에게 그만한 공간도 제공하지 못하면 어디 동네라 할 수 있겠나.


2년 전 추석을 하루 앞두고 수도권을 몰아친 태풍 곤파스는 태풍에 대비하는데 익숙하지 않은 아파트 주민들을 괴롭혔다. 단지마다 수십 가구의 베란다 새시가 깨졌고 무수히 많은 나무들이 뿌리를 드러내고 누웠다. 연수구가 특히 심했는데, 그건 매립한 소금 땅에 나무들의 뿌리가 깊지 않은 탓일지 모른다. 그날 어린이 놀이터에 넓은 그늘을 드리워주던 미루나무가 널브러졌다. 몇 달 전, 제주도 곶자왈에 가야 운 좋은 자에게 제 자태를 보여주는 삼광조가 앉은 나무였다. 한동안 방치하더니 그만 잘라내고 말았다. 숲을 떠나지 않는 아열대의 아름다운 새는 다시는 찾지 않을 게 틀림없어지고 말았다.


아름다운 새와 다음 세대의 아기와 엄마들, 그리고 노인과 청소년들이 이따금 찾아와 쉬고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야말로 아파트에 태부족하다. 주차 공간이 모자란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차를 세우지 못했다는 이 없었다. 어린이 놀이터를 없앤 자리에 고작 20여 대의 승용차가 더 주차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 정도로 주차난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주차장을 아무리 넓혀도 자동차 수가 늘어난다면 소용없는 일인데, 굳이 어린이 놀이터를 없애야 했을까. 비록 구청에서 비용을 지원했다지만, 제 아이와 이웃의 아이들, 그리고 이웃이 편안하고 안전하게 놀며 쉬던 녹지를 꼭 시커먼 아스팔트로 뒤덮어야 했을까.


아이들의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위해 아이들을 선행학습에 몰아넣지 않아야 한다는 거, 웬만한 부모들은 동의한다. 국회에서 선행학습 통제하는 법을 제정하려고 벼를 정도로 그 부작용은 심각하다. 많은 학자들은 말한다. 우리의 아이들이 상상력을 키울 틈도 없이 학습에 매달리게 하지 않으려면 밖으로 나가 뛰어놀게 만들어야 한다고. 그렇다면 놀이터마저 없는 동네에서, 학원가지 않을 아이들의 선택은 무엇이어야 할까. 컴퓨터게임이어야 하나.


     주차장이 모자란다는 민원을 주차장 없애는 대응으로 풀어낸 유럽의 도시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숲과 자전거가 대안이었다는데, 우리는 등 뒤에 자동차가 없다면 마음이 편하다. 사람은 녹지에서 여유를 찾는다. 비로소 웃으며 이웃을 마주할 수 있다. 아이들과 이웃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기존 주차장을 녹지로 바꾸지 못할망정 알량한 놀이터마저 없애다니. 어른의 횡포에 고개를 차마 못 들겠다. (요즘세상, 2012.7.22)

너무동감합니다
서울은 도시가아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