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추억

디딤돌 2012. 8. 31. 13:48

   밥 사먹는 자가 귀 기울여야 할 이야기

사시사철, 최용탁 지음, 삶이보이는창, 2012.4.

 

어릴 적, 친구들 대여섯 명이 뛸 공간이 마을에 있을 때, 나무 그늘 아래에서 놀았던 놀이가 있다. 너덧 명이 눈을 감은 친구 뒤에서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물으면 술래가 된 친구는 여러 가지로 대답했다. “잠잔다.” 하면 우리는 잠꾸러기라 대꾸했고, “세수한다.”고 하면 멋쟁이라 했다. “밥 먹는다.”고 술래가 말하면 반찬이 뭐니?” 물었고, 술래가 개구리 반찬!” 하면 긴장감과 함께, “살았니 죽었니?” 물었다. 만일 살았다!”고 답하면 냉큼 달아나야 했다. 달려드는 술래에 잡히면 대신 술래가 되어야하므로.


살려면 누구나 사시사철 먹어야 한다. 돈도 명예도 먹고 난 이후의 일이다. 평소 사병에 건빵을 건네던 군종장교도 훈련으로 배가 몹시 고프면 숨긴다는데, 보통 사람이야 어떨까. 농사를 포기한 우리는 식품, 또는 농작물을 사서 먹는다. 돈을 먹는 셈인데, 돈이 넘쳐도 지역에 농촌이 없고, 외부의 농작물이 제 때 오지 않으면 굶어야 한다. 16세기 콜롬비아 포토시에서 그랬다. 수백 미터의 노천 은광을 독차지한 부자들은 선주민들을 착취해 유럽에서 식량을 가져왔는데, 그때 쥐를 잡아야 했다.


계절은 물론이고 지역마저 잃은 농작물을 양판점의 식품매장에서 쉽게 구입하는 시대에 우리는 누가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생산한 농산물이 내 식탁에 어떤 과정을 거쳐 올라오는지 거의 모른다. 농촌이 죽는지 땅이 죽는지 관심 없이 그저 돈으로 해결하려 든다. 그런 사람들도 농촌에 자신의 뿌리를 두고 있기에 명절이면 꾸역꾸역 고향으로 가지만 고향이 어떤 처지에 놓였는지 알려고 하지 않는다. 해마다 20조 원에 달하는 음식쓰레기를 버리면서 농촌의 사시사철에 무관심하다.


작가가 되고자 젊어서 먼 길 돌았던 최용탁은 농촌으로 되돌아왔다. 농사를 지으려고 왔는데, 일하다보니 새록새록 생각이 많아졌다. 글 쓰는 일에 관심과 재능이 특별했을 테지만, 글에 활기를 찾게 된 건 아무래도 삶이 땅에 뿌리내렸기 때문이었을 게다. 도회지에서 책과 씨름할 때 뜬구름 잡던 글에 생명이 실린 것인데, 그의 산문집 사시사철은 읽는 이에게 책장을 덮지 못하게 한다. 고향을 아직 잊지 못한 까닭일까. 중간 중간, 생각에 잠기게 한다.


허구헛날 당하면서도 꼭 여당에 투표해야한다고 믿는 이웃들과 선거일 일용잡일 나갔다가 투표 포기하도록 꾐수 부리다 실패해 씁쓸했던 이야기. 투표 안 하면 무슨 벌이라도 받을까 걱정하던 시대에서 멀찌감치 떨어졌건만 시골은 여전하다. 누구의 책략일까. 중학생도 속지 않을 거짓말을 땀 흘리며 되뇌는 후보들의 책략인가. 수매 거부당한 농민들은 말라가는데, 남는 쌀을 개와 돼지 먹이자면서 북한 지원을 한사코 꺼리는 정치인은 농촌의 무엇인가. 농약을 쓰고 싶지 않아도 쓰지 않을 수 없는 현실, 피하고 싶은 야생동물과 한판들, 60여 꼭지의 일화는 재미와 감동을 준다. 도시인에게 고맙고 미안한 마음을 들게 만든다.


     《사시사철은 땅과 농부의 희로애락을 진솔하게 담았다. 농촌에서 몸과 마음이 사시사철 건강하고 싶은 최용택은 밥 사먹는 우리가 반드시 귀 기울여야 할 농촌의 오늘을 채웠다. 과거에서 대안 찾아야 하는 내일, 그런 내일을 위한 절실함이 아닐까. (시사in, 2012818. 통권 2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