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13. 3. 26. 18:14

 

농업국가 라오스. 서양인들이 꼽는 가장 가고 싶은 여행지의 으뜸이라고 한다. 이번 겨울, 잠시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짧은 일정 때문에 찾아간 지역의 주민들과 대화를 나눌 기회는 없었지만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분위기는 보는 내내 편안했다. 이렇다하게 알려진 관광지는 없어도 많은 유럽인이 찾고자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 맑고 공기 좋은 라오스에서 사람들은 늘 웃는다. 국민의 95퍼센트가 농업에 종사하는 라오스에는 시간이 천천히 흐른다. 그래서 바쁜 일상에 치인 이들이 방문하고 싶은 건 아닐지.


쌀을 주식으로 하는 라오스는 국경선을 맞대는 태국과 달리 대부분의 논이 일모작이다. 강수량이 많아도 관개시설이 없는 탓이라는데, 과연 태국의 논은 갈수기에도 다채로웠다. 모내기를 방금 마쳤는지 작은 모가 올라오거나 익은 벼가 고개를 숙였고, 대형 농기계로 추수가 한창인 곳도 많았지만 방치하는 논은 없었다. 반면 추수를 일찌감치 마친 라오스의 논은 고즈넉했다. 날씨가 온화하지만 우기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가이드는 설명했는데, 풀에 뒤덮인 2월의 라오스 농촌에 물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닭과 돼지가 자유롭게 돌아다녔다.


농사 경험이 있는 한 일행은 태국처럼 다모작을 못해 부유해질 수 없는 라오스의 현실을 안타까워했지만, 가이드는 태국의 건설 현장에서 돈을 더 주겠다고 해도 잔업을 마다하는 라오스 사람들의 여유로움을 이야기한다. 게으름과 다르다면서. 수도 비엔티안의 국립대학을 졸업해도 직장 구하기 어렵지만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고향에 농사지을 땅이 있으므로 큰 불만이 없다고 했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일본, 그리고 서양에서 도와주려 찾는 이가 늘어나건만 정작 라오스 사람들은 느긋했다. 마음이 풍요로워보였다.


미국 턱 밑에 있는 쿠바는 한때 풍요로웠다. 설탕과 담배 그리고 약간의 커피를 소련이 시세보다 월등한 가격으로 수입해가는 덕분에 공업제품은 물론 농산물과 의약품을 넉넉히 수입하며 살아갔는데 오래가지 못했다. 소련이 무너지자 미국의 철저한 경제봉쇄로 곤혹을 치러야했던 것이다. 외부 지원에 의존하던 쿠바 경제는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졌어도 망하지 않았다. 화학비료가 끊어지고 의약품이 동떨어져 한동안 위기에 휩싸였지만 유기농업으로 살려낸 땅에서 농산물을 자급하고 자연의학을 활성화하면서 견뎌낸 것이다. 미국의 경제봉쇄가 얼마 안 가 무색해진 건 쿠바 사람에게 땅이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


멕시코의 칸쿤은 세계적 휴양지다. 초일류 호텔이 부서진 산호 알갱이가 만든 눈부신 해변을 장식하며 이어진다. 주로 미국과 유럽에서 온 관광객이 해변을 거니는 칸쿤에 일본과 우리나라, 그리고 중국 관광객이 늘어난다는데, 그 휘황찬란한 시설이 허리케인이 빈발하는 해변에서 빛을 발할 수 있는 건 불황에도 관광객이 모여들 정도로 경관이 수려하고 기후가 온화하기 때문만이 아니다. 큰 비용 들이지 않고 찾아갈 수 있는 세계적 휴양지가 어디 한두 군데인가. 칸쿤이 화려함을 유지할 수 있는 건 남루한 복장의 원주민이 관광객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저임금으로 일하기 때문이다.


북경 올림픽에 이어 광저우 아시안게임, 그리고 상해 엑스포까지 중국이 거대한 규모의 세계 축전을 거푸 성공적으로 펼쳐낼 수 있었던 건 외화 보유고가 그만큼 막대하기 때문이라고 평가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돈벌이를 위해 시골에서 찾아온 이른바 농민공이 저임금으로 시달렸기 때문이라고 분석하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외부인의 시선에 잘 띄지 않던 농민공들의 노고가 아니었다면 중국은 행사를 기획하기 어려웠을지 모르는데, 그들 대부분은 건설 시장이 위축되면서 제 고향으로 돌아갔다. 농사지을 땅이 거기에 있지 않은가.


칸쿤과 북경만이 아니다. 지금은 건설경기가 곤두박질한 두바이도 마찬가지지만 서울 강남의 높은 건물도 낮은 임금으로 일하는 이가 새벽부터 강북에서 출간하지 않는다면 화려함을 유지할 수 없다. 남루한 복장과 관계없이 칸쿤의 원주민은 대개 근처에 물려받은 땅을 가지고 있다. 거기에서 식구와 농사를 짓는다. 고향을 찾아간 중국의 농민공들은 당장 손에 쥐어지는 현금이 적더러도 땅이 있으므로 가족 굶주리게 하지 않을 것이다. 강남의 건물을 청소하는 강북의 눈에 띄지 않는 분들도 쪼들리기는 해도 굶주리지 않는다. 하지만 앞으로 경기가 추락하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그들에게 땅이 없다. 일자리가 사라지면 갈 곳이 없다.


아무리 도시의 화려한 생활에서 소외되어도 돌아갈 땅이 있다면 삶에 여유를 잃지 않을 수 있지만, 없다면 불안할 수밖에 없다. 땅이 있다면 지하 서울역에서 골판지 펴고 겨우내 쪽잠을 자는 노숙자 신세는 면할 수 있다. 골판지뿐인 서울이든 책 몇 권을 갖춘 도쿄든, 시골에 농사지을 땅이 없는 노숙자는 도시에서 동정심의 의지해야 하는 삶을 피하지 못한다. 그들은 낯모르는 이의 접근을 극도로 경계한다. 복장이 남루한 북경의 농민공이나 칸쿤의 원주민과 달리 방문객이나 관광객에게 친절하기 어렵다. 자신의 자리가 불안한 강남 빌딩의 청소원들도 낯선 이에게 친절하기 어려울 것이다,


공산품 수출로 농산물을 포함한 식품 대부분, 적어도 4분의3을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는 농사지을 땅이 상당히 부족하다. 지구온난화가 심화되면서 곡창지대에 가뭄이 발생하여 국제 곡물가격이 급등하는데, 언제까지 웃을 수 있을까. 늘어나는 소비보다 퍼올리는 양이 부족해진 석유위기 시대에 기계화를 기반으로 하는 이모작과 삼모작은 불가능하다. 화학비료와 농약은 수입식량과 더불어 가격이 치솟을 텐데 땅을 확보하지 못하는 우리는 어떤 대안을 모색해야 할까. 거품경제는 계속될 리 없다. 남은 시간은 많지 않다.


     1930년대 할리우드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스칼렛 오하라로 나오는 비비안 리는 마지막 장면에서 타라가 있다고 했다. ‘타라는 고향의 땅이다. 어떤 시련이 있어도 농사지을 땅이 있으니 좌절하지 않는다는 메시지였는데, 라오스가 시방 그렇다. 그들은 전혀 가난하지 않다. 내일을 우리만큼 걱정할 필요가 없다. 자신들이 서 있는 발아래 땅이 있지 않은가. 그들은 우리와 달리 선조에게 받은 땅을 현대문명에 팔아넘기지 않았다. 그래서 여유로운 그들은 언제나 웃고 이방인에게 친절하다. (작은책, 2013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