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13. 6. 1. 01:03

 

20114, 전북 김제시 금구면의 한 마늘밭에서 5만 원 권 지폐 22여 만 장이 출토되었다. 불법 인터넷 도박 사이트에서 챙긴 뭉칫돈을 밤새도록 파묻었는데, 마을 사람들은 아무도 몰랐다. 그저 밤에도 일하는 부지런한 사람으로 여겼다.


일찌감치 두레도 품앗이도 사라진 농촌에 가구당 농경지는 다소 늘었어도 거의 기계화돼 이웃 일손이 늘 필요하지 않지만 사례금을 준비하지 않으면 도와줄 이를 찾을 수 없다. 그러므로 밤에 혼자 일하는 게 특별하지 않다. 젊은이들이 떠난 농촌, 독거노인이 많은 농촌은 신사임당이 인쇄된 지폐더미를 이웃 몰래 밤새 파묻을 수 있을 정도로 적막하다.


잘 뚫린 아스팔트 도로는 도시의 전유가 아니다. 승용차가 막히지 않고 사통오달 이어지는 도로는 도시보다 농촌에 더 많다. 그래서 농촌에 독고노인이 더욱 쉽게 늘어난다. 65세 인구가 7퍼센트가 넘는 고령화사회와 14퍼센트 이상인 고령사회를 넘어 이미 20퍼센트를 초과하는 초고령사회로 접어든 곳이 요즘 농촌이다. 차든 사람이든 천천히 움직여야 사고가 없는데, 저녁 먹고 마실가던 구부정한 길이 아스팔트로 직선 포장되자 교통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아스팔트 도로가 마을로 이어지면 손자와 자식들이 자주 찾을 줄 알았건만 투기꾼들이 먼저 들이닥쳤다. 고급 승용차에서 내려 평생 손에 쥐어본 적도 없는 돈으로 흥정하던 투기꾼의 감언이설에 속은 촌로들은 고향에 분명히 남아있지만 물려받은 내 땅은 없어졌다. 땅을 처분하자마자 찾아온 자녀에게 사업자금 넘겨준 뒤로, 이웃도 하나 둘 정든 도시로 떠나고, 집들은 폐가로 방치된다. 언제부턴가 농촌은 쓸쓸하기만 하다.

 

한적해진 농촌


희소식이라고 해도 좋을까. 정신없이 줄어들던 농촌의 인구가 2010년대 말경부터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고 최근 언론이 전한다. 농촌이 넓은 전국의 지방자치단체에서 귀농과 귀촌을 적극적으로 지원하서 농촌 인구가 늘어난다는 건데, 같은 시기, 도시에서 활동하는 귀농 관련 단체에서 농업 강좌가 잇달아 개설된 효과가 도움이 되었을 것이며 농촌 노총각과 결혼하는 여성의 이민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2012년 말 행정안전부는 농촌을 가장 많이 떠났던 전라남도 지역의 인구가 4년 전보다 1만 명 줄어 2008년 이전 해마다 4만 명까지 줄었던 추세가 크게 완화되었다는 통계를 제시했다. 그를 반영해 농어촌이 넓은 광역 지방자치단체의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고 덧붙였는데 1960년대 촉발한 이농 현상이 끝났다고 소개한 언론은 학업 등을 위해 도시로 떠나는 인구보다 돌아오는 인구가 많기 때문으로 분석하면서 도시 자영업자의 몰락과 1955년생부터 1963년까지 이어진 베이비붐 세대의 퇴직을 그 원인으로 들었다.


귀농과 귀촌 인구가 늘어나는 건 분명하지만 농촌 인력의 증가로 이어지지 않는다. 교육과 문화시설을 확충하고 출산을 장려하는 농촌 지방자치단체의 노력으로 늘어난 인구 중 많은 이는 농사에 전념하기보다 번잡하지 않은 시골에서 노후 생활을 즐기려는 경향이 높은 까닭이다. 인구 감소로 통폐합되거나 정부나 광역단체의 지원금이 줄어들 것을 염려한 지방자치단체에서 인구를 늘리는 정책을 펴왔지만, 농민의 증가와 대체로 무관했다.


농촌 지역에 주민등록을 옮기는 이가 다소 늘어나는 것과 관계없이 농가 인구는 2010년 예상한대로 300만이 안 된다. 농촌경제연구원은 2011년 농가 인구는 296만 명으로 1980년부터 해마다 25만 명이 감소한 셈이라고 발표했는데, 그나마 농사에 전념하는 농부는 200만 명이 안 될 것으로 추산했다. 60대 인구가 청년회의 주축이 된 농촌에서 농번기와 농한기가 따로 없는 시설농업은 힘에 부친다. 외국인 노동자가 지원하지 않으면 농사지을 수 없다. 외국인 노동자를 배정받으려 고용지원센터에 장사진을 쳐야 하는 현실에서 농민의 80퍼센트 이상은 일손 부족으로 파종과 수확을 제 때 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농협에서 큰돈 빌려 구비한 농기계와 해마다 빌리는 씨앗과 비료 대금을 조금이라도 더 갚으려면 잘 팔리는 작물을 심어야 하는데, 시간을 다투는 농번기가 오면 삯일꾼이 왁자지껄 모이지만 계산을 마치면 우르르 떠나고 마는 농촌은 살갑지 않다. 시설농업도 마찬가지다. 도시 노동자보다 높은 임금을 줘도 오래 버티지 못하는 일꾼으로 버틸 수 있는 한계는 지났다. 몇 안 남은 늙은 농민들은 새벽부터 저녁까지, 봄부터 겨울까지, 걸음마를 떼고부터 허리가 굽을 때까지, 땅을 여전히 지키지만 좀처럼 예전 같은 신명을 느끼지 못한다.


농번기가 아니라면 한적해지는 농촌은 을씨년스럽다. 이따금 농기계 소음이 적막을 깰 뿐, 마을은 활기를 잃었다. 비슷한 처지의 이웃도 같은 작물을 심는다. 높은 가격으로 이웃보다 많이 팔려면 수확의 양과 질이 더 좋아야 한다. 이제 농사는 농촌에서 경쟁이 되었다. 전처럼 만나지 않으니 이웃 사이의 대화도 관심도 줄었다. 2010319, 통계청은 2005년 인구 2,000명 이하인 면소재지는 287곳이었지만 10년 후 두 배 가까이 증가할 것으로 통계가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안정적인 소득을 보장하는 일자리 창출과 획기적인 교육 정책으로 농촌 마을에 인구를 늘릴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는데, 인구가 늘면 농촌은 활기를 되찾을까.

 

삶이 뿌리 내리는 대책


농촌에 농민들이 돌아오게 하기 위한 대책으로 전문가들은 교육여건 개선을 외친다. 그를 위해 정부의 예산과 제도의 절실한 지원과 무상으로 교육받는 농촌의 중고등학교에서 방과후 학습까지 담당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수 교사들이 오래 정착할 수 있도록 충분한 보수가 보장되길 희망하면서 농촌 학생에게 대학입시의 가산점을 대폭 부여하는 제도를 요구한다. 군소재지마다 우수 고등학교를 육성할 것을 건의한다.


농촌 학생이 도시 학생 못지않게 우수한 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면 농민이 농업을 포기하며 도시로 터전을 옮기지 않을 것이라 전망하는데, 생각해보자. 농촌 출신의 학생이 훌륭한 입시 교육을 받아 우수한 대학에 진학했다고 하자. 그들은 졸업한 뒤 자신의 고향에 돌아올 것인가. 그들이 돌아온들 농촌에서 어떤 일을 찾을 수 있겠나. 농촌에 교육이 불필요할 리 없지만 그 방향이 대학을 향해야 할까.


도시의 은퇴자들을 위한 주거단지를 유치한다면 농촌 공동화는 그만큼 완화될 것인데, 나이 들어 농촌에 들어온 이가 많은 만큼 그들이 안심할 수 있도록 약국이나 병원과 같은 의료시설을 20분 거리 내에 확보해야 한다고 관련 전문가는 제안한다. 전폭적 지원을 요구하는 전문가의 주장을 정부와 지방자차단체는 귀담을 필요가 있겠지만, 어딘가 허전하다.


60대 이상의 귀농 희망자와 제2의 인생을 농촌에서 보내려는 퇴직자가 정착할 수 있는 방안이 물론 준비되어야 한다. 나이 많은 귀농 희망자의 정착 비율이 더 높으므로 그들을 지원할 수 있는 예산과 제도가 준비돼야 하겠지만 젊은이의 능동적인 정착이 세대를 이어 활성화되지 않는다면 농촌의 내일을 기대하기 어렵다.


농촌의 소득을 획기적으로 늘일 수 있는 방안을 찾자고 주장한다. 농업 외 소득을 위한 농공단지 유치는 필요할 수 있겠으나 노동자를 도시에서 불러들인다면 의미가 없다. 지역의 특산물을 높은 가격으로 판매하는 방법을 고려할 수 있다. 부가가치를 높이는 농산물을 생산 가공해 도시나 해외에 판매할 수 있으면 좋지만 대부분의 농민들은 그 방법을 잘 모른다. 그저 외지인에게 의뢰해 굿이나 보고 떡이나 삼킬 따름이다.


지나친 농촌의 소득 향상 대책은 자칫 사탕발림으로 그칠 수 있다. 돈벌이를 위해 도입하는 기술과 자본은 외부에서 제공할 텐데, 그런 소득이 지역 농민에게 돌아가던가. 소득이 획기적으로 늘어난 농민이 생긴다면 그는 사업가로 변신할 텐데, 그는 편의와 문화시설이 풍부한 도시로 떠나려 하지 않을까.


귀농과 귀촌을 지원하면서 소득 향상을 앞세우기보다 공동체의 정주를 우선 고려해야 한다. 교육도 의료 지원도 농촌 공동체의 안착을 생각하는 범위 안에서 이루어지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정주의식을 잃은 농민은 쉽사리 퇴색된 농촌을 떠난다. 이웃이 떠난 농촌에 경작할 농지가 다소 늘어도 신명이 나지 않는다. 밭 가장자리에 비닐이 나부끼고 버리고 간 가재도구가 뒹구는 폐가들이 방치될 것이다.


속도에 지친 도시인이 농촌으로 삶을 이전하는 현상은 바람직하다. 농촌 인구가 늘고 농부와 생산되는 농작물도 늘어날 것이므로 귀농과 귀촌을 희망하는 도시인의 지원은 절실하지만 그들이 기존 농민과 어울리지 않는다면 농촌 공동체는 살가워지지 않는다. 농민의 다음 세대가 농촌을 떠난다면 농촌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농민이 살갑게 북적이는 농촌으로 회복되도록 농민과 귀농 희망자, 그리고 정부가 충분히 의논해 방안을 마련하면 어떨까. (푸른두레생협. 2013년 6월호)

블로그도 있었군요. 늘 좋은 자료들에 감사드립니다. 제 카페로 펌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