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동물

디딤돌 2010. 7. 13. 01:05

 

관중몰이 기록을 해마다 경신하는 올 프로야구도 어느덧 가을야구를 향해 순항중이다. 가을야구 동참 여부와 관계없이 8개의 팀마다 필승전략을 구사할 테지만 야구의 속성상 전략의 큰 비중은 투수 운용에 있다. 누구를 선발로 내세운 뒤 어떤 투수로 뒷문을 맡겨야할지 감독은 언제나 골머리를 앓는다. 승리를 보장하는 선발투수가 많은 팀은 가을야구 참여가 거의 보장된 반면 불안한 팀은 내년을 기약해야 할 텐데, 어떤 팀은 유독 한 투수를 절대 신뢰한다. 능수능란한 투구가 타자의 얼을 빼놓기 일쑤이기 때문인데, 언론은 그를 능구렁이에 비유한다.

 

능구렁이라. 속담사전은 “능글능글하고 속이 엉큼한 사람”이라고 주장하던데, 팀의 승리를 절대적으로 책임지는 그 투수가 능구렁이라고? 국어사전은 ‘능글맞다’를 “능글능글한 태도”로, ‘능글능글’을 “하는 짓이 능청스럽고 능갈친 모양”이라고 주장한다. ‘능청’은 “아주 능갈치게 남을 속이는 태도”이고 ‘능청맞다’는 “마음은 엉큼하면서 겉으로 천연덕스러운 것”이라는 국어사전은 ‘능갈치다’는 “교묘한 수단으로 잘 둘러대는 재주가 있다”는 뜻으로 풀이한다. 한결같이 부정적이다. 그 투수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다시 국어사전을 살펴보자. 정작 능구렁이를 어떻게 해석하나. 생물학적 설명은 넘기고, “성질이 음흉한 사람”이란다. 속담사전과 비슷한데 “능구렁이가 되었다”는 관용구의 해석은 좀 다르다. “세상일에 익숙해져서 모르는 체 하면서도 속으로는 다 알고 있음을 비유”한다는 거다.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지 않는 능구렁이는 결국 겸손하다는 해석인데, 맞다. 능구렁이는 능력이 있는 구렁이다. 속담사전은 ‘구렁이 담 넘어가듯’을 “힘들이지 않고 수월하게 무슨 일이든 하는”으로 해석한다. 그런 구렁이보다 능력이 뛰어나지만 내색하지 않는 녀석이 능구렁이다. 그 투수의 별명이 비로소 이해된다.

 

능구렁이는 성이 ‘박’ 또는 ‘변’이라는 이유로 어려서부터 ‘바가지’ 또는 ‘방귀쟁이’로 친구의 별명을 붙이던 조상에 의해 ‘능글’이니 ‘능청’이나 ‘능갈’이니 하는 말을 속담에 받았어도 능구렁이는 인간에게 자랑하지 않을 뿐, 다른 뱀이 갖지 못한 능력을 갖는다. 야행성이기 때문만이 아니다. 초가지붕 안에 똬리 틀어 집안의 수호신으로 경외되기도 하던 구렁이와 달리 환영받지 않는 몸을 여간해서 드러내지 않고 헛간이나 곳간 주변의 깨진 항아리 뚜껑 밑에 웅크리다 낱알을 탐하는 쥐를 처리하지만, 그건 겉모습일 따름이다.

 

‘능’자를 핑계로 매도하는 장삼이사들은 자연에서 한번이라도 능구렁이를 보긴 한 걸까. 대체로 능력이 부족한 자는 능력 있는 자를 질시하는 까닭에 매도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히는 경향이 있지만, 생각해보자. 능글, 능청, 능갈이라는 거. 능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는 재주가 아닌가. 거만하기로 자연에서 두꺼비를 따를 동물도 드문데, 능구렁이는 두꺼비도 잡아먹는다. 커다란 천적 앞에서 눈만 껌뻑거리는 두꺼비. 피부의 독에 놀란 천적들이 알아서 피하지만 배고픈 능구렁이는 대뜸 먹어치운다. 그래서 그런가. 두꺼비를 잡아먹은 능구렁이로 담근 술을 ‘능사주’라 칭하는 한방은 신경통에 그만이라 귀띔한다.

 

그뿐인가. 능구렁이는 능구렁이답게 뱀까지 잡아먹는다고 ‘뱀수집가’, 다시 말해 ‘땅꾼’들은 혀를 내두른다. 보통 마을에서 멀지 않는 바위 춤의 그늘에 숨었다 밤이 이슥해지면 인가로 숨어드는 녀석은 불빛을 찾아온 나방과 딱정벌레들을 날름날름 잡아먹는 개구리를 노리거나 쥐를 솎아내는데 그치지 않는다는 거다. 조심성 없는 둥지에 다가가 어린 새나 알을 삼키는 건 물론, 물고기도 잡아먹지만 뱀까지 영락없다는 게 아닌가. 땅꾼들은 호들갑떨며 “살모사도 다 삼키고 만다니까요!” 거품을 문다. 독이 없는 능구렁이가 치명적인 독을 가지고 있는 살모사마저 꿀꺽 삼켜버린다니. 과연 능구렁이, 능수능란하다.

 

성질이 사납다고? 두꺼비에 살모사까지 집어삼키니 그렇다는 건데, 다른 뱀과 마찬가지로 능구렁이도 배가 고프지 않으면 방심하는 먹이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햇살 받는 바위를 요리조리 들추며 살모사와 능구렁이를 죄 잡아가는 땅꾼, 그 땅꾼들이 잡은 뱀을 끓여내는 뱀탕집, 그런 집에 문턱 닳게 드나드는 인간에 비해 훨씬 얌전하다. 길어야 1.2미터에 불과한 붉은 몸에 50개 이상의 검은 띠가 꼬리까지 이어지는 능구렁이는 아무리 용을 써도 사람을 위협할 수 없고 제아무리 입을 크게 벌려 물어도 아프기만 할 뿐이데, 사납다니. 추위에 약해 일찍 동면에 들어가야 하는 능구렁이에게 가을이 깊어지기 전에 가는 그물로 산을 휘감는 인간보다 두려운 존재가 또 있을지 모르겠다.

 

능수능란한 게 능구렁이라 해도 어릴 땐 허투루 굴면 큰일 난다. 이른 여름 알에서 나온 능구렁이도 먹어야 산다. 본능처럼 방심하는 곤충에 스르르 다가가 느닷없이 달려들어 몸을 칭칭 감은 뒤 삼켜야 하는데, 앞발을 떡 들고 버티는 사마귀는 어째 만만치 않다. “쇄~애-!” 소리를 질러도 아랑곳하지 않을 뿐 아니라 당랑검법까지 과시하지 않은가. 확 달려들어 몸을 감으려하자 이젠 앞발의 톱날로 사정없이 찔러댄다. 혼비백산한 경험이 남은 능구렁이는 사람보다 사마귀를 더 사납다고 여길지 모르는데, 자동차 바퀴를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산허리를 마구 끊은 아스팔트는 뱀그물보다도 훨씬 사납다. 공포 그 자체다.

 

허리가 긴 동물은 다 사람에 좋은가. 허리와 관절염에 그만이라며 천거하는 땅꾼과 뱀탕집들은 정형외과 없던 시절의 의서를 여전히 내세우는데, 미처 제주도와 울릉도에 숨어들지 못한 능구렁이는 더욱 드물어진다. 일본, 베트남, 몽골, 중국의 능구렁이도 그럴까. 좀 유난하다 싶었는지 능구렁이를 멸종위기종 목록에 제외시켰던 환경부가 칼을 뽑았다. “전국 뱀탕집에 대한 일제점검 및 불법행위 집중단속을 실시한다!”"고 으름장을 놓은 것이다. 잡거나 파는 자는 물론이고 먹는 자까지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백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큰소리쳤으니, 산골짝 바위틈에 은둔하는 능구렁이들은 비로소 안심할 수 있을까. 능청스러우면 농약 사라진 농촌에 나와 줄만도 한데, 도무지 곁을 안 준다. (전원생활, 2010년 9월호)

우리 동네 능구렁이 많아요. 돌담 사이로 스스로 다니면서 쥐 두꺼비를 잡아 먹지요. 사람들은 집지킴이라면서 잡거나 죽이면 안된다고, 우리 마을 사람들 능구렁이 보호심이 대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