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추억

디딤돌 2012. 9. 17. 19:15

     싼 가격에 숨겨진 진실

 

완벽한 가격, 엘렌 러펠 셸 지음, 정준희 옮김, 랜덤하우스, 2010.

 

 

기왕이면 다홍치마! 장날 어머니 손잡고 따라나선 딸이라면 그런 생각에 젖을지 모르지만 엄마는 가격을 먼저 흥정할 것이다. 같은 가격이라면 몰라도 상하면 수선하기 어려운 다홍치마를 농경사회의 엄마가 시집보내기 전에 입히고 싶지 않지 않았을까. 시집보낼 때가 되어 다홍치마를 구하려 할 때, 엄마는 같은 다홍치마라면 가장 가격이 낮은 걸로 고르고 싶을 게 틀림없다. 인지상정이므로.


값이 싸다고 무조건 선호하지 않을 것이다. 질을 살펴야 한다. 이른바 명품이라면 마음에 꼭 들지 않더라도 구입하는 사람이 많은 요즘이라면 디자인과 더불어 어떤 상표인지 눈여겨 살필 것 같다. 아무리 저렴하고 질이 높으며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도 생소한 상표를 가진 물건이라면 외면당하기 쉽다. 물건을 시장에 내놓으려 하는 사람은 자신이 판매하려는 물건의 가치를 알리려 애를 써야 한다. 방송매체에 등장하는 광고가 그 일을 담당할 텐데, 광고에 길들어진 소비자라 해도 시장에 나가 물건을 고를 때 가격을 저울질한다. 기왕이면 다홍치마가 아니라 아무래도 값이 싸야 한다.


자동차 트렁크 가득 물건을 실을 요량으로 찾아가는 대형 마트는 보통 가격이 저렴하다. 박리다매 원칙이기 때문이라고 흔히 말하지만, 한꺼번에 많은 분량으로 판매하므로 가격이 떨어진 건지, 가격이 싸서 필요 이상 구입하게 되는 건지, 사실 아리송하다. 같은 물건을 여러 개 모은 포장 상품도 있지만 물건 하나하나를 낱개로 포장한 물건도 있지 않은가. 자동차를 이용하지 않는다면 한 봉투만 구입할 복사용지도 박스로 구입하는데, 사실 그 가격 차이는 크지 않다. 박스로 구입한 만큼 종이가 충분하다. 인쇄하는데 인색하지 않게 된다. 그러니 복사지 가격이 낮은 게 좋은데, 마트의 고유상표를 단 물건은 매장 내에서 가장 싸다. 그 복사지를 납품하는 회사의 상표보다 오히려 가격이 싼 이유는 무엇일까.


대학에서 과학저널리즘을 강의하는 엘렌 러펠 셸은 시장에서 싸게 거래되는 물건의 진면목을 주목한다. 그 물건이 만들어져 시장에 나오기까지 이력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가격이 쌀 수밖에 없는 이유를 드러낸다. 기왕이면 다홍치마가 아니라, 값 싼 다홍치마만 시장에 잔뜩 쌓인 현실을 직시한다. 어쩌다 질 다른 다홍치마가 눈에 띄지만, 어이쿠 그건 가격이 이만저만 아니다. 부츠가 그렇다는 거다. 얼마 신지 않아 못 신게 되거나 흥미를 쉽게 잃는 중국산이 아니라면, 한 켤레 씩 할로겐램프 아래 전시되는 이탈리아의 엄두나지 않는 부츠뿐인 극단의 세상은 왜 생기게 되었을까. 사실 소비자는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다. 싫든 좋든 그저 공급자의 의지에 수동적일 수밖에 없다.


가격은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합리적으로 산출한 과학의 결과물일까. 엘렌은 고개를 완강하게 젓는다. 주관적이라는 거다. 우리 대형마트에서 이따금 판매하는 통큰시리즈물의 가격을 합리적으로 누가 판단할 수 있겠나. 자동차 기름을 날마다 넣지 않듯, 대형 마트로 가서 날마다 트렁크 넘치게 물건을 사는 것도 아니다. 주변 주유소 문 닫을 지경으로 기름 값을 싸게 책정한 대형 마트는 기름 값 인상으로 주름 깊어지는 시민들을 배려하는 건 당연히 아니다. 기왕 기름 넣는 김에 트렁크에 물건 채우려는 고객의 운집을 기대한다. 휘발유는 미끼에 불과하다.


진열된 물건의 가격이 낮으면 승용차로 찾아오는 중산층들은 부유해질까. 엘렌은 미국 중산층 위축은 대형 선박으로 막대하게 수입하는 중국 물건의 가격에 반비례한다는 걸 간파한다. 중국산 물건의 가격이 저렴할수록 미국 중산층의 폭이 위축된다는 것이다. 월마트를 비롯해 대형 소매상이 대도시 근처의 고속도로에서 서로 매장 면적을 경쟁할 때, 중국 물건을 값싸게 판매하는 소매상은 납품 원가 낮출 걸 끊임없이 요구한다. 그럴수록 중국 노동자는 착취되는데, 같은 물건을 생산하던 그 지역의 회사는 종업원 해고를 남발하다 견디지 못하고 파산하고 말 것이다. 저소득층으로 전락한 소비자는 낮은 가격의 물건을 고르게 된다.


품질을 동일하게 만든 대량 생산은 물건의 개성을 말살했다. 덕분에 가격은 낮다. 미국에서 가장 먼저 대량 생산한 물건은 총이라고 한다. 총기 소유가 자유로운 미국이니 지금도 마찬가지일 텐데, 소매상은 총알도 무게로 판다고 한다. 총기를 소지해야 안심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는 문화일까 역사일까. 아니면 총기회사와 총기협회가 만든 불안 심리일까. <보링 포 콜럼바인>의 마이클 무어 감독은 미국 특유의 배타적 불안 심리를 총기 대량 생산을 정당화한다고 생각할 텐데, 전기 자동차 충전 비용이 휘발유보다 훨씬 저렴한 이유는 무엇일까. 당연히 정부의 보조금이다. 중동 국가의 유정에서 미국 소비자까지 모습을 바꾸며 전달된 기름은 과정마다 보이지 않는 보조금들을 받았다. 중동의 피비린내도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전기는 보조금의 정도가 훨씬 더하다.


정당한 보수를 외면하는 가격과 파우스트적 계약을 하면서 경기침체가 발생하게 된다는 걸 간파한 엘렌은 공짜 면도기를 지적하는데, 어디 면도기뿐이랴. 헐값인 컴퓨터 프린터의 잉크와 토너는 적지 않은 부담을 소비자에게 안긴다. 이래저래 수입이 줄어든 소비자는 대안이 없으니 이윤을 독점하는 기업의 제품을 고를 수밖에 없다. 표준을 만들어 개성을 제한하는 대기업은 독점적 이익을 챙기고, 동네의 상점들을 파리 날리게 만드는 대형 마트는 공장식 친절로 소비자들을 현혹한다. 얼굴을 모르는 비정규 종업원은 과장된 동작을 반복할 뿐이다.


     수입곡물이 더 싼 이유는 무엇일까. 곡물에서 얻는 칼로리보다 더 높은 석유를 농기계와 화학비료와 제초제와 살충제로 부어야 하는 농업은 막대한 물을 요구한다. 수확해 대형 시설에 저장하고 대형 선박으로 오대양육대주로 운송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은 적지 않지만 싼 것은 그 나라 세금으로 불공정하게 제공하는 보조금 까닭이다. 공정무역은 적절한 가격이 기본이다. 사회적 약자를 희생시키지 않는 가격은 자신을 외면하지 않는다. (우리와다음, 2012년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