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추억

디딤돌 2015. 1. 2. 13:47

대붕괴, 폴 길딩 지음, 홍수원 옮김, 두레, 2014.

 

 

노벨상이 때로 국제적 유명 인사를 만들지만 노벨평화상은 이미 유명한 사람 중에 선정하는가 보다. 2007년 엘 고어를 수상자로 선정할 걸 보면. 노벨평화상 수상 당시 그는 미국 평균의 20배에 달하는 전기를 소비하고 석유회사 주식을 소유했으며 온도 자동 조절되는 수영장 딸린 저택에 살았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 사실 여부보다 지구온난화에 대한 그의 처방이 우리를 허탈하게 했다. 온실가스 축적의 공포를 심란하게 열거한 뒤 결론이 LED로 조명 교체라는 게 아닌가.


과학기술이 지구온난화를 해결해줄까? 긴 여름의 끝(아카이브, 2011)에서 마이앤 듀마노스키는 신기루 같은 해결책을 내세우는 과학기술에 진저리치는데, 6도의 악몽(세종서적, 2008)의 저자인 환경운동가 마크 라이너스는 핵발전을 옹호하고 나섰다. 핵발전을 중단하면 화력발전 가동이 늘어 온실가스 배출이 급증한다는 경고를 잊지 않는다. 하지만 지구촌 핵발전소 두세 군데가 더 폭발하면 지구 생태계는 온난화되기 전에 붕괴될 가능성은 환경운동가라는 이가 왜 주목하지 못하는 걸까?


생태계에 기대지 않고 한 시도 살아갈 수 없는 인류에게 과학은 편의와 수명연장을 베풀었지만 생태계의 안정성은 그만큼 취약해졌다. 과학기술이 가져온 지구온난화는 다른 과학기술로 해결할 수 있을까? 환경운동가 일단 과학기술을 믿기로 한 폴 길딩이 보기에 과학기술은 임시변통일 따름이었을까? 전적으로 의존할 수 없다며 근본 대안을 모색하자고 절박함을 호소한다. 우린 이미 충분히 잘 살고 있으니 부자부터 일상을 바꾸자고 손을 내미는데, 부자들이 움직일까?


고래잡이 반대에 50달러를 쾌척하지만 자가용 타지 말라는 권유에 고개 돌리는 이들을 움직이게 할 방법은 무엇일까? 폴 길딩은 충격요법을 구상한다. 경각심만으로 부족하니 누구도 경제적 파탄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을 부각하기로 마음먹는다. 지금도 사람은 지구의 생태 능력의 140%를 남용한다. 삶을 바꾸지 않으면 앞으로 500% 이상을 뽑아내야 하는데, 불가능하지 않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다 기름 떨어지면 제아무리 큰 점보기도 곤두박질친다. 아무도 살아남지 못한다. 충격이 아닌가!


풍요에 도취했던 미국인들이 나치의 패악에 놀라 참전을 결정하고 군사비 지출을 위해 흔쾌히 허리띠를 졸라맨 역사를 상기한 폴 길딩은 기후학자들이 제시한 근거를 바탕으로 2020년 이전까지 온실가스 농도를 350pm으로 제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섭씨 2도 이하 상승으로 온난화를 막아야 손주가 타고 있을 점보기의 추락을 막을 수 있으니 해마다 온실가스 배출을 10%를 줄이며 스스로 가난해지자고 제안하는데, 얼마나 호응할까?


오마바는 미국 화력발전소의 온실가스 배출을 30% 줄이겠다고 약속했지만 함량부족이다. 전기와 석유소비로 움직이는 미국식 삶 자체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지 않은가. 장기 전기소비 예측을 미국보다 높게 잡는 우리나라도 경각심에서 거리가 멀다. 이대로 간다면 당신 손주의 삶은 온전할 수 없다고 조목조목 자료를 제시한다면 화석연료 과소비에서 자유롭지 않은 다국적기업의 최고경영자는 에너지 효율화에 나설까? 그런다고 그가 충격요법에 자극을 받을 것 같지 않다. 은행이자보다 성장하지 못하면 파산하는 기업의 책임자가 아닌가.


폴 길딩은 대붕괴에서 물건의 재활용을 촉발하는 리사이클뱅크와 같은 몇 가지 대안을 제시하지만 그 정도로 해마다 온실가스 10%를 줄이기 난망이다. 이미 충분히 잘 사는 지역부터 은행이자를 없애고 성장 없어도 행복한 삶을 초국가적으로 모색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충격요법이다. 전기 없고 석유 없어도 행복했던 선조의 삶에서 대안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후손에게 대붕괴를 선물할 수 없다. 성장이 무엇인지 몰랐던 시절, 하늘은 언제나 파랬고 물은 깨끗했으며 이웃은 다정했다. (시사in이 선정한 올해의책, 2014.12.27.)

 
 
 

서평·추억

디딤돌 2014. 7. 4. 02:09

 

대붕괴, 폴 길딩 지음, 홍수원 옮김, 두레, 2014.

 

 

 

수필가 박광숙은 1999년 강화도에 텃밭 일구면서 산문집 빈들에 나무를 심다를 펴냈다. 그는 비를 좋아했지만 하늘이 뚫린 듯 칠흑 같은 밤을 뒤덮을 듯 퍼붓는 폭우에 전율했다. 밀려드는 빗물에 산기슭의 작은 집이 떠내려갈까 두려웠지만 어린 아이 앞에서 의연해야 했다. 당장 들쳐업고 빠져나가려 해도 이웃은 너무 멀다. 이튿날, 폭우를 간신히 버틴 오두막을 나서자 강화도 산비탈 곳곳은 깊은 상처를 남겼고, 그 상처는 지금도 아물지 않았다.


1998년 그날, 하루에 600밀리의 강우가 강화에 집중되었다. 기상대는 기상이변이라고 했다. 1998년에 생소했던 기상이변은 이제 일상이 되었다. 2010년 시간 당 75밀리의 폭우로 광화문 일대는 물바다가 되었고 2011년 시간 당 113밀리의 비로 서울 우면산에 산사태가 발생해 18명이 사망했다. 그해 춘천의 한 초등학교에서 발명 캠프를 열던 인하대학교 학생 10명과 주민 3명이 산사태로 매몰돼 숨졌다. 산간도로와 철길이 끊어지고 군부대의 지뢰가 유실되는 일은 이제 뉴스거리도 되지 못한다.


가뭄도 예년 같지 않다. 게다가 홍수와 가뭄이 몰려다닌다. 우리나라만 그런 게 아니다. 때 아닌 홍수와 가뭄이 지구촌 여기저기를 휩쓸면서 올 5월 아프가니스탄은 산사태로 수천 명이 삶터를 잃고 4년 전 러시아의 큰불은 아프리카의 식량위기로 이어졌다. 한결같이 기상이변이고 기상이변의 원인이 지구온난화라는데 이견이 없다. 앞으로 더욱 심화되리라는 걸 믿어 의심하지 않지만 어떤 국가도 어떤 자본도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못한다.


호모 사피엔스를 지구상의 암으로 선언하며 마치 허락이라도 해주는 것같이 인간의 종말은 시간문제로 예견하는 저명한 학자에 진저리치는 마이앤 듀마노스키는 긴 여름의 끝(아카이브, 2011)에서 과학기술로 온난화를 극복하겠다는 허상을 통렬하게 비판했는데, 낙천주의자라 그런가, 대붕괴의 저자 폴 길딩은 과학기술의 성취를 예견한다. 하지만 의존할 수 없다고 말한다. 지구온난화의 상황이 전혀 한가롭지 못하다는 거다. 그래서 몸이 달았다. 마지막 기회가 분명한데, 도무지 행동이 없다. 그냥 지나가면 인류의 붕괴는 피할 수 없지 않은가.


폴 길딩은 학자가 아니다. 젊은 시절 그린피스에서 활동하다 캠페인보다 실천이 중요하다 싶어 기업인이나 사회 주도층을 대상으로 강연에 나선 환경운동가다. 강연에서 청중은 현재의 일상이 계속한다면 살벌한 혼란을 돌이킬 수 없다는 걸 대개 인정한다. 강연을 듣고, 세계 인구가 10억 이하로 격감하면서 얼마나 볼썽사나운 나락으로 떨어질지 논란을 벌이지만 그게 다였다. 후손에게 얻은 빚의 채무 만기일이 닥쳤고 성장 모델의 한계를 넘었다는 거 동의하면서 5등급을 뛰어넘는 6등급 허리케인이 예견되건만 강연 뒤 차 한 잔을 마신 청중은 일상으로 되돌아가고 만다.


쌓여가는 과학적 근거, 예상되는 생태적 교란을 알리며 아비규환을 피하자며 폴 길딩은 행동을 제안했지만 행동은커녕 경각심도 퍼뜨리지 못했다. 성장을 부정하는 말에 불쾌감을 드러내던 기업인들도 지구온난화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축적되면서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지만 그게 다였다. 생태계 파괴에 대한 경각심만으로 부족했다. 고래잡이 반대에 50달러를 쾌척하지만 자가용 타지 말라는 권유에 고개 돌리는 이들을 움직이게 해야 했다.


1997년 학술잡지 네이처는 지구 생태계의 서비스 가치를 최소한 한 해 16에서 54조 달러, 평균 33조 달러로 추정한 바 있다. 그해 세계의 GNP18조 달러에 불과했다. 현재의 경제는 생태계와 한 덩어리로 빈틈없이 묶여 있다는 걸 파악한 폴 길딩은 기후변화가 일으키는 경제적 파탄에 자신도 예외일 수 없다는 인식을 유도해 행동을 촉발하려 마음먹는다. 국제에너지기구는 기후변화 대처를 늦출 때마다 해마다 5,000억 달러 추가 비용이 들어갈 것으로 추산하지 않았나. 무엇보다 경제성장부터 잡아야 했다. IMF 예측처럼 해마다 3.2% 성장하면 2050년 세계 경제규모는 3.5배 상승한다. 지금도 지구의 생태 능력의 140%를 남용하는데, 앞으로 500에서 700%를 허용할 리 없지 않은가. 대붕괴에 직면한다. 어떻게든 피해야 한다.


40여 년 전 인구폭탄론을 들고 나왔던 파울 에를리히가 만든 방정식, ‘I=P×A×T’는 인간 활동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인구(P)에 풍요(A)와 기술(T)을 곱해 분석했다. 인구가 많긴 많다. 많은 인구의 대부분은 미국식 문화를 동경한다. 스프 한 접시가 없어 굶주리는 지역의 인구를 줄이라고 가족과 해외로 휴가여행을 떠나는 지역이 요구할 수 없다. 그 지역의 씀씀이를 먼저 줄여야하는데, 삶의 질까지 위축시키게 만들 수 없다. 지구온난화를 극복하게 할 건전한 시장과 기술이 동원돼야 하는데, 기술은 결정적인 해결책이 못된다. 시간이 충분하지 않지만 기술은 다른 문제를 만들어내기 일쑤가 아닌가. 석유의 대안으로 개발한 바이오연료는 식량위기만 부추기는 게 아니다. 석유위기마저 앞당긴다.

 

 

온실가스 감축의 열쇠는 어디에

 

결국 잘 사는 지역의 인구들이 솔선해야 한다. 어떻게? 폴 길딩은 나오미 클라인의 쇼크 독트린을 읽었나보다. ‘성장 중독에 취한 인류에게 성장 없는 번영으로 행동할 수 있게 만드는 충격요법을 진단한다. 머지않아 90억에 이를 인구가 지금보다 성장한 경제 규모에서 생존할 가능성은 아예 없다. 이대로 가면 공중에서 기름이 떨어진 점보기처럼 곤두박질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조금, 아주 조금의 시간 여유는 있다. 손자가 살아갈 세대 안에 지구온난화를 통제해 곤두박질치지 않게 하려면 2005년부터 행동해야 한다. 이런, 내년이다. 온실가스 배출을 당장 멈추면 온난화 가속은 멈출 것이다. 하지만 그게 어디 쉽나.


기후변화에 대한 정부 패널이 제시하는 2007년 자료를 근거로 10년 정도 여유가 있다고 진단한 폴 길딩은 2010년대 말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지금의 절반 이하로 줄이자고 촉구한다. 많은 기업과 각국 정부는 지구온난화를 섭씨 2도 상승에서 그치도록 대기 중 온실가스 농도를 450ppm으로 제한하자고 제안하지만, 아니다. 섭씨 2도 오르면 분명히 위험해진다. 폴 길딩은 3단계로 ‘1도 전쟁으로 수정한다. 그를 위해 350ppm으로 온실가스 농도를 조절해야 한다. 실패하면 꽤 오래 동안 진행될 대붕괴를 피할 수 없게 된다. 해마다 10%5년 동안 온실가스를 감축하고 이후 2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중단시키자는 거다.


‘1도 전쟁이라. 폴 길딩이 전쟁을 운운한 이유가 있다. 풍요의 맛을 알아가던 미국인들은 유럽에서 벌어지는 이차대전에 끼어들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나치의 패악을 더는 두고 볼 수 없어 참전을 결정하면서 예산 대비 37% 가까운 군사비의 지출에 동의했고, 흔쾌히 검소하게 자신의 생활을 바꿨다는 걸 폴 길딩은 주목했다. 거국적 경각심이 행동의 기반이었던 거다. 나치의 세력 확장과 폭거를 애초 방관하다 폭격을 받자 영국의 처칠은 오직 승리만을 위한 참전을 선언했다. 폴 길딩이 제안한 충격요법의 요체다


대붕괴의 충격을 인식해 행동하도록 이끈다는 건데, 안타깝게 성장 중독에 눈이 먼 이들은 충격을 느끼지 않는다. 대신 텔레비전에 눈이 빼앗겨 이 시간 세계인의 이목은 온통 브라질에 쏠려 있다. 자본에 포박된 월드컵 경기결과에 일희일비한다. 그들은 대붕괴의 고통을 어떻게 실감할 수 있을까. 잘 편집한 경제적 충격요법이 어느 정도 효과를 빚는다고 치자. 해마다 온실가스 10%를 줄일 정도로 스스로 가난해지는 삶, 그게 가능할까? 물론 찢어지게 가난해지자는 의미는 아니다. 소득이 줄어도 행복이 줄어들지 않는 삶일 텐데, 대붕괴는 공감을 끌어내는 설명이 많이 부족하다.


성장 없는 번영에서 팀 잭슨은 일인 당 소득이 15,000달러를 넘으면 삶의 만족도가 높아지지 않는다고 썼다. 원하던 자동차와 에어컨을 드디어 장만하는데 그 정도 소득이면 충분하다는 뜻일 게다. 소득이 늘어 자동차를 더 사고 에어컨 용량을 늘린다고 더 행복해지는 건 아니라는 건데, 선뜻 동의하지 않을 사람도 제법 있을 법하다. 폴 길딩은 소득이 더 높아지면 오히려 불행해진다는 증거를 제시한다. 남과 비교해 질시에 의한 소비를 일삼으니 삶의 질을 어두워진다는 건데, 부자들을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까. 남들 다 가진 핸드폰은 시시하다. 케이스에 다이아몬드를 박는다면 더 근사해질까? 하지만 도난을 걱정해야하고 공연히 남을 의심하게 될지 모른다. 행복은 분명 줄어든다.


그러니 어마어마한 부자들이여, 먼저 행동하길 바란다. 폴 길딩도 그리 지적한다. 돈을 많이 벌어들일수록 행복과 거리가 멀어지므로 부와 일자리를 나누자고 호소한다. 연봉 1억이나 수천억이나 먹고 사는 건 비슷할 것이다. 일을 나누면 여가 시간이 길어지니 비로소 이웃을 바라보고 생태계의 고통에 촉각을 세울 수 있다. 요는 불평등을 없애지는 거다. 그래야 모두 건강해지는데 그 방법은 무엇인가. 대붕괴독자는 당위성을 어느 정도 공감하겠지만 실천행동이 무엇인지 알기 어렵다. 수많은 과학적 자료와 세계 곳곳의 사례를 보며 가슴앓이하는 폴 길딩과 많이 다르다.


폴 길딩은 몇 가지 사례를 희망적으로 든다. 물건의 재활용을 높이는 리사이클뱅크와 유통의 중간단계를 획기적으로 줄인 온라인마켓 오케이도그리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지속가능한 사회를 촉진하는 트리오도스 뱅크들을 주목하는데, 그 사업들은 주류가 아니다. 영향력이 미미하다. 구굴처럼 창사 10여 년 만에 시장에서 수위를 달릴 수 있다고 치자. 그런다고 해마다 온실가스를 발생을 10% 줄일 수 있을까? 폴 길딩은 각국정부가 나서서 국민에게 대대적인 에너지 소비 축소 캠페인을 벌일 수 있기를 바란다. 진보적인 대기업들이 힘을 모아 기후변화에 즉각 대응하도록 정부에 강력하게 촉구하기를 바란다. 우리나라의 기업은 아닐 성싶은데, 가당할까? 얼마 전 자국 화력발전소의 온실가스 배출을 30% 줄이도록 촉구한 미국도 함량부족이다.


책 여기저기에서 반드시 온실가스 배출 억제가 성공할 것이라 자신에게 주문을 걸 듯 확신하는 폴 길딩은 차라리 순진하다. 세계의 잘 사는 나라의 현실을 보라. 온실가스 발생량은 오히려 늘고 있다. 성장 중독 사회에서 온실가스 발생 증가율조차 줄이기 벅찰 텐데, 2010년대 말까지 발생 자체를 50%로 줄이자니. 이대로 간다면 당신 손주의 삶은 온전할 수 없다고 조목조목 자료를 제시하며 행동을 촉구해도 최고경영자는 눈을 질끈 감을 것이다. 대출금 회수와 이자 납부를 걱정해야 하는 최고경영자는 온실가스 감축을 꿈꾸지 못한다. 자식을 대학에 보내지 못하면 낙오되는 불안사회에서 일자리 나누기가 쉬울 리 없다.


폴 길딩은 은행이자를 전혀 주목하지 않았다. 발행하지 않은 이자까지 강요하는 은행은 성장 없는 세상을 저주한다. 폴 길딩은 주식회사의 문제를 살피지 않았다. 주주에게 배당을 주지 않으면 자리를 잃는 최고경영자는 착하기 어렵다. 폴 길딩은 성장 없는 번영을 위한 자본의 투자를 염원하는데, 그런 자본에 어디에 있을지 궁금하다. 자본이 주인인 세상에서 은행이자 걱정 없는 자본주는 착할 수 있지만 자본 자체의 얼굴은 그럴 수 없는데, 다보스 포럼에서 최고경영자의 웃는 얼굴과 많이 만나서 그럴까. 폴 길딩의 절박함은 차라리 애틋하다. 그의 성공 다짐은 탄식으로 들린다.

 

 

행복을 먼저 생각하는 경제

 

폴 길딩이 보기에 거의 기정사실인 대붕괴의 실상이 어떤 모습일지, 얼마나 끔찍할지 기상이변의 실상에 조금만 관심을 가져도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신호는 두려움이 된지 이미 오래다. 하지만 아직도 성장 중독 사회는 지구온난화를 남의 일로 치부하고 만다. 각국 정부가 대개 그렇고 기업의 대부분이 그렇다. 히로세 다카시의 1 권력(프로메테우스, 2010)을 굳이 예로 들지 않더라도, 은행의 탐욕을 제거하지 않는다면, 기업은 물론 기업과 한통속인 정부도 카드연체에 신경이 곤두서는 소비자도 지구온난화는 남의 일일 수밖에 없다. 경각심과 별도로 행동은 멀다.


하지만 기름이 다 떨어지기 전에 점보기의 고도를 조금이라도 낮출 수 있어야 한다. 흉흉한 징후는 강화도에 깊은 상처만 남긴 게 아니지 않은가. 완공되자마자 녹조와 악취로 시달리는 4대강에 폭우라도 내리면 우리는 감당할 수 없는 붕괴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풍수해를 완충하던 갯벌을 없앤 자리에 들어선 신공항과 신도시들의 붕괴는 참담할 것이다.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석유로 짓는 농업의 내일은 인류의 미래를 참혹하게 붕괴시킬 수 있다. 석유와 전기 과소비 없이 존립이 불가능한 초고층빌딩도 붕괴를 면하지 못할 것이다. 위험한 전조를 행동으로 막아야 한다. 역행하는 정부를 가진 우리도.


지구온난화는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어제 내뿜은 온실가스로 내일의 삶이 위협받는다. 폴 길딩은 일자리를 나눠 여가를 늘이는 소득의 하향평준화를 제시했다. 그 평준화는 지역을 넘어 하루 2달러로 연명하는 지역으로 이어질 수 있으면 좋겠는데, 방법은 잘 사는 국가의 온실가스 발생 억제보다 어려울지 모른다. 소득의 평준화는 이웃은 물론 세대를 뛰어넘어야 한다. 다음세대의 행복을 현 세대가 빼앗을 수 없어야 한다는 뜻이다. 소득 평준화에서 멈출 수 없다. 지구 생태계의 서비스를 인간만이 독차지할 수 없어야 한다. 그래야 생태계의 이웃인 인간의 삶도 내내 건강할 수 있다.


성장을 추구하는 경제가 아니라 행복을 먼저 생각하는 경제라면 어떨까. 자신의 행복은 이웃과 조상, 생태계와 자식의 행복에서 온다는데 동의한다면 다음세대의 생존 기회를 빼앗는 성장보다 후손을 위한 선물을 생각하는 행동이면 좋겠다. 어떤 일을 결정하기 전에 7세대를 생각했다는 북미 원주민들의 포틀래치가 그랬다. 이웃과 선물을 주고받는 행동에서 행복을 찾는 거다. 조상의 선물을 받아 태어나 잘 먹고 잘 사는 우리가 후손에게 베풀 선물은 무엇이어야 하나. 반드시 대붕괴일 필요가 있을까? 폴 길딩은 절규한다.


전기 없고 석유 없어도 행복했던 선조의 삶에서 대안을 찾을 수 없을까? 성장이 무엇인지 몰랐던 시절, 오늘이 어제 같고 내일이 오늘 같기만 바라던 시절, 하늘은 언제나 파랬고 물은 깨끗했으며 이웃은 다정했을 것이다. 가난하거나 돈이 많아도 음식을 함께 나누던 시절은 지구온난화와 기상이변, 핵발전소와 초고압송전탑으로 후손의 삶을 저당하지 않아도 불안하지 않았다. 폴 길딩의 대붕괴, 그의 애틋한 탄식을 지구온난화를 음모론으로 치부하려는 우리나라 최고경영자들이 꼭 읽으면 좋겠다 싶다. (녹색평론, 20147-8월호, 1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