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동물

디딤돌 2006. 11. 13. 22:13

   

    언덕에 석상 산등성이로 밀어 올리려는 씨족 사이의 경쟁이 이스터 섬의 문면 붕괴를 가져왔다. 원인은 나무다. ‘모아이’라 하는 석상을 나무를 모조리 잘라 올렸지만 빗물은 섬의 모든 것을 쓸어버렸고, 카누를 잃은 선조들은 비참한 생을 마감해야 했다. 남은 후손은 선조의 찬란한 문명을 기억하지 못한다.


핵물리학을 전공했지만 마초가 지배하는 과학기술에 반기를 든 반다나 시바는 생태여성주의자의 길을 걷는다. 그는 칩코운동을 전개했다. 지참금이 없어 부모에게 버림받는 딸, 남편의 포악성을 견디다 못해 아이를 들쳐업고 집을 뛰쳐나온 주부, 창녀촌에 팔려나갈 뻔한 여자아이, 이혼당한 아내들은 숲으로 들어가야 했다. 약초와 농사로 생계를 이어가면서 아이를 키워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 숲을 파괴하는 사슬톱에 저항하는 여성의 행동이 나무를 끌어안는 칩코운동이다.


사슬톱을 귓전에 윙윙거리며 나무를 끌어안은 이의 생명을 위협하는 남성 노동자들은 숲에서 여성들을 몰아내기 위한 폭력이기에 앞서 자본에 굴종한 것이다. 하지만 자본이 아무리 닦달하더라도 나무를 끌어안고 있는 어머니, 누이동생, 이웃 아주머니를 차마 해칠 수 없자 사슬톱을 내던질 수밖에 없었고, 칩코운동은 숲을 지켜낼 수 있었다.


22세의 줄리아 버터플라이 힐은 ‘루나’라는 이름을 가진 거대한 삼나무에 올라 738일 동안 내려오지 않았다. 천년이 된 생명이 벌채되어 죽는다는 걸 용인할 수 없었던 것이다. 나무에 쐐기톱을 박고, 헬기로 주위를 돌며 줄리아의 생명을 끊임없이 위협하는 자본은 갖은 협박과 회유로 내려갈 것을 강요했지만 소용없었다. 정부가 벌목회사에 거액을 제공하며 루나와 주변 숲을 법으로 보호하자 땅으로 내려온 줄리아는 폭설이 매서운 겨울을 두 번이나 맞으며 맨발로 버텼다. 맨발이 아니면 루나와 마음을 주고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루나와 헤어지며 엉엉 울음을 터뜨린 줄리아는 미국의 소중한 환경운동가로 활동하고, 루나를 지켜낸 지역은 미국 제일의 생태계를 자랑하고 있다.


교실에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면 지저분하고 불쾌하다. 그래서 교실에 쓰레기통을 놓는다. 주택과 공장이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으면 환경이 좋지 않다. 그래서 단지를 체계적으로 조성한다. 그런데, 단지가 난개발되면 어떻게 되나. 용인은 주택단지가 난개발되는 지역이다. 한 문중은 개발이 예고된 산을 그린벨트로 지정해달라고 정부에 탄원했다. 하지만 포클레인과 불도저는 삽시간에 대지산 절반의 표피를 벗겼고, 분노한 환경 활동가는 상수리나무 위에 텐트를 쳤다.


나무를 베면 나무와 함께 목숨을 내던지겠다고 각오를 다진 활동가는 인간을 경원하는 상수리나무에게 진심으로 사죄를 했다. 일주일에 걸친 사죄를 받아들인 상수리나무는 이후 활동가를 받아들였고, 활동가는 상수리나무와 마음을 나눌 수 있었다. 나무에 오른 지 2주일 만에 개발업자는 백기를 들었고, 활동가는 법원 공증을 받을 때까지 내려오지 않았다. 그 동안 3일, 상수리나무는 그 활동가와 헤어질 것에 매우 아쉬워했고, 활동가는 상수리나무에 ‘장군’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현재 장군이 버티는 대지산은 자연공원으로 보전되고 있다.


그리고 인천의 진산 계양산에는 한 활동가가 3주일 가까이 나무에 올라가 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올라 있을지 그 활동가도 모른다. 계양산에 골프장을 만들려고 온갖 협잡을 마다하지 않는 대기업 롯데는 순순히 물러서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활동가에게 빚을 지고 있다. 그이가 아니라면 반딧불이가 숨쉬는 인천 제일의 녹지는 “골프장도 녹지”라고 거품을 무는 인천시장의 지원을 받아 벌써 절딴났을 것이다.


나무를 잘라 만든 펄프를 소비하는 우리는 나무를 둘러싼 환경운동을 잠시라도 잊으면 안 된다. 한 장의 종이라도 최대한 아키는 것은 물론, 반드시 의미 있게 소비해야 한다. 나무 없는 신문이나 글쟁이는 존재할 수 없다. (기호일보, 2006.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