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인간

디딤돌 2016. 12. 1. 13:37


자괴감(自愧感). 사전은 자신의 무능함이나 한심함 때문에 생기는 부끄러운 감정이라고 풀이한다. 요즘 세간에 회자되는 자괴감은 자신의 무능함에 대한 부끄러움일까? 한심함에 대한 신세한탄일까?


연실 터지는 최순실 게이트추문으로 대통령 지위를 가진 이의 지지율이 콘크리트를 내리쳐 박살내며 급락하고 돌아선 민심이 전국 곳곳에서 비등해지자 114일 청와대에서 황급히 두 번째 대국민 담화를 가졌다. 출입기자의 질문을 여전히 사양한 920초 동안의 담화문에서 무엇으로도 국민들의 마음을 달래드리기 어렵다는 생각을 하면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을 했나?’라는 자괴감이 들 정도로 괴롭기만 하다.”고 토로했건만, 민심은 가라앉지 않았다. 대신 세간에 패러디가 퍼졌다.


정치가 더 웃기니, “내가 이러려고 코미디언을 했나 하는 자괴감이 들 정도로 괴롭기만하다는 연예인의 글이 올라오더니 이러려고 세금 냈나 자괴감이 들고 괴롭다거나 이러려고 담화 경청했나 자괴감이든다는 네티즌이 연이어 등장했다. 마감을 넘겨도 원고를 보내지 못한 내게 이러려고 잡지사 편집자가 되었나 자괴감이 들고 괴롭다는 문자 메시지를 받는 게 아닐까 자괴감이 들고 괴로울 지경이다.


자괴감은 대통령의 몫이 아니다. 유권자인 우리는 애초 전지전능한 이를 대통령으로 옹립하지 않았다. 요즘 정치는 대의제다. 민중의 의견을 대신하며 통치하는 정치 체제에서 대통령은 의사결정의 공공성을 숙고해야 한다. 안정된 국가를 수반하는 대통령의 정책은 수많은 논리적 토대 위에서 제시되어야 하지만 그 토대는 대통령이 마련하지 않는다. 대통령을 청와대와 내각에서 보좌하는 고위 공직자도 아니다. 정치적 안배로 고위직을 차지한 공직자 역시 공공성을 담보할 전문성이 부족하다.


국무총리를 비롯한 17개의 내각과 청와대의 보좌진은 의사결정에 앞서 여러 분야 전문 인력의 도움을 충분히 받을 수 있다. 정부를 구성하는 방대한 조직을 뒷받침하는 연구소가 무릇 얼마나 되나? 그 연구소에 근무하는 수백? 어쩌면 수천의 박사급 연구자들은 국내외 사례를 수집 분석하며 대의제 민주주의에 깃들 공공성 논리의 토대를 다양한 방면에서 생산해낸다. 그들의 연구결과는 정부부처의 내각과 청와대 비서진에 전달되어 의사결정의 기반이 된다. 세금으로 설립해 운영되는 숱한 국책연구소의 존재 이유가 그렇다.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하느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성경의 창세기는 전지전능한 말씀을 그렇게 전한다. “강바닥을 준설하고 친환경 보를 설치해 저수량을 대폭 늘려서 하천 생태계를 복원하고 홍수와 가뭄에 대비하겠노라!” ‘4대강 살리기 사업을 하느님 말씀처럼 추진한 전 정권의 수장은 녹조로 찌든 강변에 나와서 흐뭇해했다. 여름철이면 녹조가 생기는 법이라며 4대강변에 나와 자전거를 타던 그는 올해 가뭄과 홍수를 전혀 완충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황폐해진 4대강의 생태계를 보고 자괴감을 느꼈을까?


자괴감은 일찍이 건설기술연구원 김이태 연구원이 가졌다. 건설교통부장관상을 두 번, 세계 물의 날 유공자 상을 받은 그는 20085, 도저히 용기를 내지 않을 수 없기에 모든 불이익을 감수하고 국토의 대재앙을 막기 위해 4대강 사업의 문제를 지적했다. “한반도 물길 잇기 및 4대강 정비 계획의 실체는 운하 계획이고 아무리 머리를 짜내도 4대강 사업을 반대하는 시민사회의 논리를 반박할 자료를 내놓으라는 정부의 요구에 대답할 수 없기에 영혼 없는 과학자가 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정직 3개월 처분을 받았다.


정부의 정책을 연구하는 곳은 국책연구소 뿐이 아니다. 전국 굴지의 대학마다 용역을 수행해 두꺼운 보고서를 쏟아내건만 4대강 사업에 문제를 제기한 연구자는 드물었다. 김이태 박사 이외에 시민사회에서 문제를 제기한 학자가 몇 있었지만 그들은 국가 연구비를 포기해야 했다. 나머지 대부분의 학자들은 무엇을 궁리했나? 강을 틀어막으면 생태계가 파괴되고 재앙으로 이어진다고 학생에게 강의를 한 처지에 자신이 쓴 보고서와 논문과 교과서를 들춰보며 어떤 생각을 했나? 그들은 자괴감이 들어야 마땅했다.


경주 핵폐기물처분장은 완공돼 폐기물이 저장되고 있다. 정부의 관련 지침은 갈라진 틈이 없는 단일 암석에 석회암과 지하수 흔적이 없어야한다고 명확히 못 박았건만 실제는 어떤가. 하루 천에서 4천 톤 의 지하수가 샘솟고 삽으로 떠낼 정도로 연약한 바위에 콘크리트를 타설해 공사를 마치지 않았나. 그런 상황에 핵폐기물을 넣고 봉쇄하면 머지않아 핵물질이 나와 지하수와 인근 해안을 항구적으로 오염시킨다는 거 전문가는 몰랐을 리 없다. 하지만 공사는 강행되었고 핵폐기물은 시방 쌓인다. 국가는 누구의 의견을 전적으로 참조했을까?


4대강 사업과 핵폐기장만이 아니다. 유전자 조작 농산물의 안전성을 유전자 조작 농산물을 개발 보급하려는 사람에게 묻는다. 과연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을까? 경제가 성장하더라도 전기 소비가 늘어나지 않는다는 건 이미 상식인데, 전기가 남아돌아 현재 운영하는 핵발전소 용량보다 많은 가스화력발전소들의 가동을 중단시킨 마당임에도 핵발전소와 화력발전소를 추가하려는 논리는 어디에 근서를 두었을까? 에너지 효율화로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지구온난화와 미세먼지 발생을 줄이려는 연구자들은 좌절할 수밖에 없다. 자괴감이 들 것이다.


설악산 정상으로 향하는 케이블카는 이제까지 보전된 수려한 경관과 생태계를 짓밟을 수밖에 없다. 많은 전문가들은 그 부당성을 강조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취소되지 않는다. 전문가의 연구보다 정권의 비선실세의 요구에 부응하려 한다는 소문이 돈다. 설악산에 케이블카가 허가되면 기다렸다는 듯 지리산을 비롯해 많은 국립공원에 케이블카 설치 요구가 빗발칠 것이고 불허할 명분이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전문성이 없는 비선실세의 사적 이해에 발맞춰 정부가 정책을 펼친다면, 대통령이 아니라 국책사업의 공공성을 연구해온 전문가들은 자괴감이 든다. 이러려고 그렇게 힘들게 공부해서 국책연구소에 들어왔는지, 지기자신이 한심하고 부끄러울 것이다. 그런 정책을 남발하는 정권에 표를 던진 유권자들도 자괴감이 들어 괴로워할 게 틀림없다. (작은책, 2016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