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동물

디딤돌 2008. 6. 9. 10:14
 

“간첩은 녹음기를 노린다!” 1980년대 중반 어느 여름, 서슬 퍼런 공안정국 하의 캠퍼스에도 나무마다 싱싱한 잎을 무성하게 달고, 무전기를 오른손에 든 사복형사들이 학생의 소지품을 함부로 뒤적일 때였다. 그것도 손가락을 구부리며 지나는 학생을 막말로 불러 세워 놓고서. 그 꼴을 본 아침, 전단 돌리다 교내에서 붙잡힌 후배 생각하며 우울해하는데, 사환학생이 묻는다. “조교님! 간첩이 왜 카세트를 노려요?” 캠퍼스에 내걸린 펼침막에 쓰인 녹음기(綠陰期)를 카세트녹음기로 생각한 모양이다. 그땐 그럴 때 웃었다.

 

신록이 완전히 자취를 감춘 이른 여름, 나무들은 한 뼘의 볕이라도 더 받으려고 가지마다 넓은 잎을 펼친다. 1980년대 교사 사이에 나무가 많고 단과대학 사이로 숲이 우거졌을 때, 캠퍼스의 공안경찰은 방학 앞둔 학생의 동태를 살피느라 여념이 없었지만, 나무 꼭대기에 앉은 때까치는 날개 푸득거리는 새끼들 먹이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때, 새 울음소리를 조사하는 일은 고행이었다. 자동차는 물론 연구실에 없었지만 대중교통편도 좋지 않았다. 무거운 장비를 든 채 배차 간격이 뜬 시외버스를 잡아타고, 현장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내려 하염없이 걸어야 했다. 녹음기를 맞은 크고 작은 산을 두루 누볐어도 간첩은 한 번도 볼 수 없었다.

 

녹음기와 카메라를 목에 걸고 한 손에 접시 마이크를 들며 산비탈로. 작은 소리에 귀를 곤두세우이며 살금살금, 눈은 작은 가지 사이의 움직임을 빠르게 뒤따르며 반걸음 씩 울음소리에 다가가지만, 됐다 싶어 녹음기를 작동시키기 무섭게 번번이 날아가는 새들. 허탈해진 마음에 장비를 내려놓고 쳐진 목을 들어올리는데, 아니 손닿을 듯 가까운 나뭇가지에서 어린 하늘다람쥐 한 마리가 물끄러미 내려다보는 게 아닌가. 무슨 간첩이 예까지 와서 왜 저 고생인가 측은히 바라보는 것 같았다. 한 컷 찍어야겠다고 슬그머니 앉아 카메라를 눈에 붙이자 그 녀석은 나무 위로 서둘러 올랐다. 하늘다람쥐는 녹음기가 아니라 카메라를 조심했던 거다.

 

장마가 시작되기 전, 화창한 여름 하늘은 언제나 파랬다. 녹음이 우거진 파란 하늘 아래의 나무는 세상 밖으로 막 나온 하늘다람쥐의 호기심으로 분주했다. 산록에 잔설이 줄어드는 2월 말 어미가 짝짓기에 들어가면, 4월 초 딱따구리가 파놓은 구멍에서 두세 마리 태어나는 하늘다람쥐들이 이른 여름이면 어미젖도 거의 뗀다. 어미처럼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날아보고 싶어 안달하는 어린 하늘다람쥐들에게 사람은 무서운 천적이 아니다. 손에 무언가 들 때 나무 위로 달음박질쳐 올라 저 나무의 중간 가지를 향해 몸을 날린다. 어미처럼 날렵하게 공중을 미끄러진 하늘다람쥐는 카메라에서 눈을 떼고 허둥대는 사람을 희롱한다.

 

나무에 쪼르르 올랐다 네 다리를 쭉 펼치고 10센티미터가 넘는 넓은 꼬리로 균형을 잡으며 키 큰 나무 사이를 작은 행글라이더처럼 활강하던 꼬마 하늘다람쥐는 황급히 나타난 제 어미를 따라 카메라 파인더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손목에서 발목까지 망토처럼 펼쳐지는 갈색 가죽은 비막(飛膜)이다. 15센티미터 길이에 100그램도 안 되는 하늘다람쥐는 해질 녘에 활발하다. 그때 새벽부터 졸던 부엉이나 올빼미가 아직 기지개를 끝내지 않았다. 겨울잠을 자지 않지만 하늘다람쥐도 다람쥐처럼 가을이면 도토리를 부지런히 갉아먹어야 한다. 새끼들이 태어난 봄에는? 그땐 나뭇가지마다 봄눈이 매달려 있지 않던가. 여린 잎이 질겨진 6월, 사람이 얼마나 무서운 줄 모르고 하얀 배를 드러내며 카메라 맨 사람 주위의 나무를 요리조리 날아다니던 녀석은 1980년대 중반, 내 시야에서 사라졌지만 연갈색 작은 몸에 큰 까만 눈을 깜빡이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백두산 주변에 많은 하늘다람쥐는 한반도 중부 이남에서 매우 드물다. 그래서 2003년 환경부는 멸종위기 2급에 지정해 법으로 보호하고 있으며 문화재청은 1982년 천연기념물 328호로 지정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딱따구리처럼 멀리 날아오르지 못하는 하늘다람쥐는 마음에 드는 짝을 찾아 둥지를 짓고, 늘어나는 식구를 먹일 만큼 건강한 숲이 주변에 보장되어야 한다. 적어도 30년 이상 지속된 자연림이 넓게 보전되어야 숲 사이를 하늘다람쥐의 생기로 채울 텐데, 사람들은 한반도를 그냥 놔주지 않았다. 발전이라 믿고 백두대간에서 이어지는 13개의 정맥을 고속도로와 고속화도로로 이리저리 끊고 그 사이에 골프장과 스키장을 채운 것이다.

 

그뿐인가. 숲을 경영하겠다고, 극상으로 천이하는 자연림을 뽑아낸 자리에 잣나무를 양팔간격으로 채우거나 간벌을 위해 중간 크기의 나무를 베어내지 않던가. 도토리가 사라진 산록에서 잣을 놓고 청설모와 경쟁 벌이다 치인 하늘다람쥐는 주눅이 들었다. 부엉이와 올빼미는 드물어졌지만 숲이 더욱 좁아지면서 밤낮 없이 아스팔트를 찢는 자동차의 파열음이 적막했던 숲을 옥죈다. 바둑판처럼 이어진 도로를 따라 승용차 몰고 온 사람들은 시도 때도 없이 백두대간을 시끌벅적 누비니 우리의 꼬마 천연기념물은 이제 비막 펴고 날아갈 공간을 찾지 못한다. 먼 친척도 백두대간을 따라 내려오지 못하니 하늘다람쥐는 근친교배에 의존하고, 거듭되는 근친교배는 하늘다람쥐의 내일을 위협한다.

 

최근 한국도로공사는 1천만 그루 이상의 나무를 고속도로 주변에 5년 이내에 심고 깊은 산을 가르는 도로의 한가운데 기둥을 박아 하늘다람쥐가 건널 수 있도록 배려하겠다고 발표했다. 고속도로가 입을 이른바 ‘그린 자켓’이다. 짝을 찾아 도로를 건너던 지리산 주변의 하늘다람쥐가 88고속도로에서 해마다 5마리 정도 차바퀴에 밟혀 죽는다던데, 이제 하늘다람쥐는 한국도로공사의 배려에 고마워해야 할까. 기둥이나마 없는 것보다 낫지만, 88고속도로는 왕복2차선에 불과하다. 왕복 8차선 양쪽의 하늘다람쥐는 어떻게 하나. 도로 사이사이에 키 큰 나무를 심으면 안 되나. 나무가 쓰러진다고 하늘다람쥐가 책임질 수 없겠지만, 그렇다고 볼썽사나운 기둥이 고작이어야 할까.

 

속리산국립공원은 하늘다람쥐를 ‘깃대종’으로 선정했다. 깃대종은 그 지역의 생태계를 대표한다. 깃대종이 건강하다면 그 지역의 생태계는 안정돼 있다는 걸 의미하므로 속리산국립공원은 하늘다람쥐의 생태계를 보전하기 위해 애를 쓸 것이다. 그런가. 국립공원관리공단 속리산사무소는 2008년 4월부터 법주사 입구에 하늘다람쥐를 알리는 홍보공간을 꾸민다고 한다. 덕분에 이용객의 생태계 보전 의식이 고취된다면 좋겠는데, “하늘다람쥐 보려면 속리산에 오세요!”라는 홍보에 이용객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은근히 걱정된다. 디지털카메라가 녹음기보다 흔한 세상에서 쓸쓸한 하늘다람쥐마저 성가시게 하는 건 아닐지. (전원생활, 2008년 7월호)

하늘다람쥐부터 호랑이까지 우리의 숲에서 살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