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인천

디딤돌 2013. 8. 8. 15:08

 

많든 적든, 비가 내린 뒤 거리로 나서면 천지사방이 아파트인 동네에 지렁이가 보인다. 비가 그치자마자 도시의 보도블록은 벌써 바싹 말랐는데, 땅 속으로 들어가는 길을 찾지 못하고 먼지를 뒤집어 쓴 지렁이는 꾸물거리다 결국 죽고 만다. 근린공원을 찾은 새들이 걷어가거나 개미들이 달라붙어 죽은 지렁이들을 잘라 운반하는 경우도 있지만 말리 비틀어진 사체가 청소원의 쓰레받기에 담길 때도 많은 것이다. 척척한 곳에서 살지만, 비가 와 척척해지는 땅속을 피해야 할 이유가 생긴 건 아닐까.


가로수와 근린공원의 조경수에 끈적끈적한 살충제를 뿌리고 나서 비가 내려도 어김없이 지렁이가 나와 물기 없는 보도블록 위를 꾸물거린다. 살충제 녹아든 빗물이 땅속으로 스며들었을 게 분명한데, 요즘 같은 장마철이라면 살충제 성분은 꽤 희석되었을 것이다. 장마철에 보이는 지렁이는 영역을 넓히고 싶어 나왔을지 모르겠지만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칠갑이 된 도시에서 사람들이 공원의 화단이나 노출된 흙에 옮겨주지 않는다면 땅속으로 들어갈 길을 도저히 찾지 못하고, 그러다 죽는다.


빗물은 참 깨끗하다. 아무리 대기가 산성화돼 있어도 빗물은 별도의 정화장치 없어도 마실 수 있다. 빗물 저장고를 보급하는 서울대학교 건설환경공학부 한무영 교수는 빗물을 맞아 머리가 벗겨진 사람이 있다면 자신의 돈으로 머리카락을 심어주겠다면서 찾아오면 빗물로 끓인 차를 대접하겠다고 덧붙인다. 눈을 가리고 생수와 수돗물과 비교하니 빗물을 가장 맛있다고 선택한 사람이 제일 많았다며 실증 사진을 제시한다. 그렇게 깨끗한 빗물이지만 도시의 표면에 닿아 흐르면 이내 오염된다. 특히 자동차들이 질주하는 아스팔트를 스친 빗물은 독극물에 가까워진다.


중앙대학교 건설환경공학과 연구팀은 서울시 도로 유출수의 상태를 조사해 2007년 발표했다. 화학적 산소 요구량(COD)이 한강의 400배가 넘고 납과 카드뮴과 같은 중금속이 높게 함유돼 있으며 대장균까지 득실거린다는 게 아닌가. 6년이 지난 지금 자동차가 늘었는데 오염상태가 완화되었을 리 없고, 화물차 운행이 많은 인천이 특별히 나을 게 없다. 자동차 배기가스 뿐 아니라 타이어와 브레이크에서 발생하는 미세 먼지가 섞였을 거로 분석하는 연구팀은 빗물이 청계천에 갑자기 쓸려들어간 게 2006년 물고기 떼죽음의 이유라고 설명했는데, 2시간 정도 지나야 도로 변을 흐르는 갈색 빗물이 맑아진다고 했다.


아스팔트를 스친 빗물이 하수구를 타고 종말처리장으로 모두 들어가는 건 아닐 것이다. 가끔 도로를 넘친 빗물이 보행자도로를 휩쓸기도 한다. 자동차 통행량은 적지만 아파트단지 안의 아스팔트 역시 오염물질이 적지 않다. 그 위를 스친 빗물은 화단을 거쳐 땅속으로 스밀 테고, 견딜 수 없던 지렁이는 밖으로 나왔다 봉변당했을지 모른다. 결국 그 지렁이는 사람 때문에 죽어가는 건데, 정작 사람은 괜찮을까. 자동차를 위해 도로는 필요한 것이니 가엾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일까.


비온 뒤 땡볕에 죽어가는 지렁이를 애처롭게 바라보는 이는 드물다. 그런 현상을 줄이는 방법을 찾거나 도시의 교통체계를 자연 친화적으로 바꿔보자고 생각하는 이 역시 거의 없다. 하지만 불가능한 건 아니다. 가로수 보도블록을 걷어내고 그 자리에 풀을 많이 심으면 좋다. 근린공원의 콘크리트 피복을 걷어낸다면 밖에 나온 지렁이들은 다시 땅속으로 들어가기 쉽다. 녹지 곳곳에 습지를 조성한다면 깨끗한 빗물이 고이며 땅속을 지나 지하수로 이어질 것이며 수해를 그만큼 완충해준다. 그 습지로 이어지는 배수로를 지렁이가 빠져나갈 수 있게 만든다면 비온 뒤 죽어가는 지렁이를 덜 볼 수 있을 것이다.


근린공원과 자투리녹지와 이어지는 가로와 세로 녹지축, 그리고 동심원 녹지축이 외곽의 녹지와 자연스레 연결된다면 새들이 날아와 밖으로 나온 지렁이를 걷어갈 수 있다. 가로수나 근린공원에 살충제 뿌리는 방식을 바꿔도 달라질 것이다. 개미가 늘어 지렁이 사체를 치워줄 것이다. 도심 도로의 제한속도만 낮춰도 효과가 생긴다. 오염물질 발생이 줄어든다. 제한속도가 줄어든 도로의 차선폭을 좁히고 그만큼 자전거도로에 양보하면 공기도 좋아지고 시민들은 건강해진다. 유럽의 많은 도시처럼 자전거도로와 차도 사이에 가로수를 심고 가로수 아래 풀을 잔뜩 심는다면 사람은 물론 지렁이도 쾌적한 도시에 공생할 수 있다.


몸에 마디와 같은 체절이 많은 지렁이를 척추동물의 조상으로 해석하는 학자도 있다. 그렇다면 사람의 조상을 한없이 추적하면 지렁이와 비슷한 모습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사람 눈에 지렁이가 징그럽지만, 지렁이가 보기에 사람이 그리 멋진 존재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무던하게도 지렁이는 사람이 버린 쓰레기를 정화하며 오염시킨 땅을 끊임없이 회복시킨다. 지렁이의 사체가 보도블록 여기저기에 보이는 건 결코 유쾌하지 않다. 그 지렁이는 광산의 카나리아처럼 사람에게 경고한다. 이대로 가면 사람도 견딜 수 없게 될 것이라고. (인천in, 2013.8.6)

좋은 글 잘 읽고, 그냥 갈 수 없어 "감사합니다" 댓글 남기고 갑니다. :)